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기왕 내릴려면 가믐이나 해갈할수있게 내릴 노릇이지, 가을비가 분탕질나게 오고있다.
어제 저녁 나절에 시금치 파종을 할려고 골을 잡아 흙을 삽으로 뒤집어 파놓고 보니 땅이 너무 메말라 물을 흠뻑
뿌려두고 오늘 아침에 파종을 할려구 마음 먹었었는데,
이놈의 비가 아침부터 감질나게 내리는 통에 아무겄도 하지 못하고 이러고 있다.
김장용 배추와 무, 알타리 무우도 잘 자라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어야만 했지만, 아직 까지는 잘자라고 있다.
우물 우물 도무지 자라지 않을것 같던 대파도 물 몇번 주었더니 훌쩍 커서 한시름 놓았다.
참새와 쥐들하고 반타작한 지장은(지장: 수수알 보다는 작고, 좁쌀 보다는 큰 알곡)겨우 반말정도 수확을 했다.
제대로 수확을 했으면 아마 두어말은 했지 싶은데 말이다.
그나마 어제 아침 나절과 점심후 조금
지난주에 뽑아놓은 고추대에서, 동치미 담을 때 박을 지고추와, 겨우네 튀각해서 반찬으로 쓸 애고추를 넉넉히 따놓았기 망정이고,
산초도 따다 말려놓은 것중에 기름 짤 알맹이와, 산초 가루 양념으로 쓸 껍질도 좀 분리 해놓고 술판에 끼어 들었기 망정이지...
어머님 투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시다. 어제 늦어도 시금치와, 지난번 쪽파 파종했다가 제데로 나지 않은 빈자리에
다시 파종을 했더라면 아침부터 비도 오고 얼마나 좋았겠냐고 오가며 두런 거리신다.
누군 하기 싫어 안했남유~, 그놈의 돼지를 잡는통에 홀려 가지고 오후 한나절을 망처 버리지 안았남유~,
시금치 심을 두둑을 만들어놓고 물뿌려 놓고, 잠시 허리 쉼좀 하고, 마져 애동 고추를 따고 있는데,
"어여 와!, 한잔 햐!. 선지국 다 끓었어"
오전부터 밭 끝쪽에 있는 방앗간 집 영묵 애비가 몇몇이서 돌부리로, 돼지를 한마리 잡는다구, 수선을 피워 대는데....
아침나절엔 그냥 기웃 거리다가, 마악 배를 갈라 꺼내놓은 돼지 생간에, 명절을 앞두고 차레상에 올리려고
담근 동동주 두어잔으로, 참까지 해결을 잘하고,명절밑, 술의 유혹도 잘 뿌리치고, 오전 일을 잘 마무리 했다,
거기다가 집사람이 검정 방콩 노릇노릇하게 익기 시작 하는 콩대 몇대 삶아서 내놓은 참까지 먹고,
얻어마신 동동주로 점심은 먹는둥 마는둥했다.
예전에 할머니가 살아 계셨을땐, 쇠죽끓이던 여물솥에 삶아서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콩대를 쥐고 한알 한알 까먹던
맛을 지금도 잊을수 없는데, 지금 우리 애들은 잘 먹으려 들지를 않는다.
오후 들어서는 순대국을 만들어 먹자는둥, 선지국을 끓여 먹자는둥, 자꾸만 궁둥이를 들썩이게 만든다.
그냥 꾹 참고 할일도 있고 하여, 순대속에나 넣으라고, 잘 말려둔 씨레기 두 묵음을 갔다주면서
"순대국이나 만들면 한그릇 줘? "
하고, 일을 잡았는데 담장넘어 들려오는 소리에 자꾸만 귀가 쏠린다.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넘어오는 구수한 순대국
끓이는 냄새가 넘나들고, 마음은 점점 밭에서 벋어나 애고추 따내는 손끝이 자꾸만 겉돈다. "그려!, 뭐니 뭐니 해도 명절엔 그져
동네에서 돼지 한,두마리는 잡아야 명절 기분이나지..." 혼자 중얼거려 보는데, 담장을 넘어오는 영묵애비 목소리...
"어여 와!, 한잔 햐!. 선지국 다 끓었어"
" 그려~~~? 알았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담장을 돌아, 마당으로 들어서니, 마당가 한켠에 걸어놓은 커다란 무쇠솥에선 , 훈김이 뚜껑 사이로
칙칙 새어 나오고, 아궁이엔 잘마른 참깨단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우물가엔 몫을 나누어 놓은 다리, 갈비살,등등이 나뉘어 있었고,
빙둘러 않은 쟁반상위엔 굵은소금 한접시와 김치한접시...
순대 만들라고 갔다준 씨레기는 그냥 우물가 커다란 양푼에서 팅팅불고만 있었다.
"순대속을 만들사람이 없어서 그냥 선지국을 끓였는데 맛이 그만여?, 어여 잔 부터 받어..."
아예 술은 동이째 같다놓고 용수를 박은체, 술을 퍼내는 꼴이 벌써 바닥이 가까워 보이는 것이 분명하다..
술잔과 함께 받은 선지국엔, 커더랗게 아무렇게나 썰은 대파와 씨레기 조금, 생강잘게 썰은것, 마늘 다진것..그리고 내장과,
간 남은것, 허파등등을 넣고 끓인 선지국은
남정네들이 대충 만들었는데도 맛은 그만이었다. 이미 범수 아제와, 흔칠이 대부는 턱을 괴고 있는 한손을 자꾸만 미끄러트리고,
반쯤 감긴 눈으로 어서오라고, 눈인사만 간신히 하고는, 얼마를 버티지 못하고, 자꾸만 머리를 떠밭치고 있는 손을 미꾸러트려
고개를 껄덕이고 있는 모양이, 아마 술을 어지간이 마신듯하다. 몇잔씩을 주고, 받는 사이 동이에 박힌 용수 속에서,
한잔을 퍼올리는데, 표주박을 여러번 넣었다 올리는 꼴이 이젠 또 어느해처럼, 상에 올릴 술마져 다마셔 버린듯하다.
아궁이에 미쳐 밀어 넣지못한 참깨단 끝까지 아궁이의 불길이 밀려나오고, 어둠이 처마끝을 삼킬때쯤에야 술판은 일단 끝을 보았다.
동이째 내놓은 동동주는 용수를 겉어내고 손으로 짜서 까지 마시고는 그냥 우물가에 밀어놓고 영묵이네 집을 나섰다.
지끈거리는 머리로 아침도 먹는둥 마는둥하고, 전부칠 두부를 한모 사오라는 싸모님의 엄명을 받들고(어제 지은 죄가 있어서..)
농협 공판장에 나섰다가, 게심치레 서있는 영묵애비를 보았다.
"뭐한다고 아참일찍 나온겨?"
게면쩍게 웃으며 내보이는 까만 비닐 봉지 안에는 차레상에 올릴 약주 두병이 담겨있었다.....
비가 내린 덕분에 이렇게 한가한 오전을 맞이 했습니다.
오후엔 애들하고 송편을 만들어야지요...
솔잎 켜켜이 깔아가며, 송편 속은 지난번 주어온 밤으로 할 모양입니다.
차레상에 올릴 배도 너,댓게 따야 하고요, 밤도 쳐 놓아야 하고요, 아무래도 오늘 오후는 바쁠것 같습니다.
모처럼 친구분들 만나셨다고, 애꿋은 술동이만 축내지 마시고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요
2001/09/30
연기군에서 건농 임달식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