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바라크로 지붕을 인 피난민 마을과
마을의 뒤로는 긴 둑을 끼고 아득하도록
보리밭이 펼쳐진 광천동에 있었네
이른 아침 약국 문을 열고 비질을 하러 나간 언니가
내 이름을 부르며 소리쳤네
얘, 어서 나와 봐! 누가 너한테 카드를 넣고 갔다아!
함박눈 뭉텅뭉텅 내리던 간 밤
햇목화솜이불인 양 품어 안으며 잠 속으로 미끌어 들었던
처마 아래까지 와서 불러주던, 마을 성가대의 크리스마스케럴!
밤 깊도록 엎드려서 그리고 다시 그렸을 카드에
정작 내 이름 한 자를 틀리게 쓴체,
잠 깊은 유리문 틈새에 끼워 넣고 간 그 남학생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 하며 살까
남도의 그 도시엔 오늘 밤도 펑펑 솜사탕뭉친 양 눈이 쏟고,
은색금색초록빨강 우체국 근처 문방구엔
이국적 풍경의 색색 카드들이 줄줄이 걸리고
케럴송과 한껏 상기한 행복들 붐비는 거리 한 켠,
과묵히 늙은 우체국 앞마당에서
지금도 빨간 우체통은 쏟아지는 함박눈 속에 다리를 묻고
기다리고 있을까 하염없이 하염없이
시집 <목숨 건 사랑이 불시착했다>에서
첫댓글 아직도 코끝이 매큼해지는 그 광천동
부엌에선 엄마가 국을 끓이고 언니가 내 이름을 웨쳐 부르던 그 아침에 가 닿고 싶다. 하염없는 보리밭 사잇길을 걷고 싶다. 열일곱 살의 눈물겨운 그 광천동.
열일곱, 푸르디 푸른 시절이었네요. 아득함 제게도요.
남녘 그 쯤 가고 싶어요 저도. ...샘 아프지 마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