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권회원이란
교회법 용어 중에 ‘언권회원’ 이라는 것이 있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생소한 용어다. 어느 장로교회에 나가는 은퇴 장로는 교회 중대사를 처리하기 위해 제직회가 열리는데 참석 할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설령 참석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은퇴한 주제에 이런 자리에 나가 발언을 하게 되면 주위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주저했다.
그래서 그 장로님이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 헌법을 찾아서 보았다. 제2장 정치 편 제45조에 은퇴 장로의 제직회 언권을, 제57조에서는 은퇴집사·권사의 제직회에서의 언권을 규정하고 있었다. 반면 공동의회는 별다른 제한이 없었다. 제89조에서 18세 이상 무흠 세례교인(입교인)이면 공동의회 회원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직회의 경우 언권회원은 제직회에 참석해서 의견을 개진하되 표결은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런 규정이 존재하는 이유는 은퇴자의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활용하고자 하는 취지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피도 눈물도 없는 법에서 이처럼 따스한 규정이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좋은 규정은 잘 선용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이 규정을 놓고 은퇴자와 시무자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어느 교회에서는 언권회원 규정을 이용해 힘센 은퇴 장로가 당회를 좌지우지하는 정도의 개입을 해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 은퇴 장로는 은퇴 후에도 교회 대소사에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
후배 장로를 규합하고 조종한다.
후배들은 이런 현실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갈등하는 사이 교회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는 속담이 있다.
언권 규정을 자주 남용하는 것을 보아와서 그런지 시무장로들은
은퇴자의 고견을 경청하려고 들지 않는다.
예컨대, 교회 건축과 담임목사 청빙과 같은 교회 중요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은퇴한 원로장로들이 당회에 참석해서
후배 시무 장로들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전하고 싶어도 참석 자체를 제지당하기도 한다.
은퇴했으면 시무하는 자신들에게 맡기지 왜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느냐는 말이다.
원로의 말을 경청하면 좋으련만 문전박대를 하니 야박하다는 생각조차 드는 것이다.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는 지인을 따라 그가 시무하고 있는 어떤 교회에 들렀다가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은퇴 장로실이 별도로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당회실에 들어가 보니 같은 방 안에 시무 장로석과 은퇴 장로석이 있었다.
당회가 열리면 은퇴 장로와 시무장로가 함께 회의에 참석한다고 했다.
안내를 맡은 그 시무 장로에게 당회 때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자 불편 점도 있고,
좋은 점도 있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마 언권 규정을 둔 헌법 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언권 규정을 두고 대립하는 것은 은퇴자와 시무자가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역사가 오래된 교회의 경우 당회 구성에 있어서
신구 당회원의 세대교체가 급격히 이루어진 경우 갈등의 골은 더 깊다.
은퇴자의 입장에서 보면 교회학교에서 자기들이 지도하던 청년들이
장로가 되어 교권을 쥐게 되니 어딘가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자신들이 시무하던 과거에는 교회 재정이 어려우면 집을 저당 잡혀서라도
교회 살림을 책임졌지만 지금의 젊은 시무 장로들은 그런 책임감은 보이지 않고
장로 직분을 무슨 계급장처럼 생각해서 권한만 행사하려든다고 불만이다.
회의 운영도 못마땅하게 보인다.
어떤 안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 의견이 대립하는 경우 몇 달을 두고 기도하면서
상대를 설득시켜 결국 만장일치를 이끌어 냈다.
그런데 요즘 장로들은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의견이 갈리면 별 고민 없이 속전속결로 표결처리 해버려 교회의 분열이 염려된다.
요즘 당회가 돌아가는 모양을 보니 믿음 대신 학벌 좋고,
사회에서 전문가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합리성과 효율성을 앞세우며 당회를 주도해 나간다.
모이면 무슨 회의를 그렇게도 많이 하며 기도하는 시간보다 회의하는 시간이 길다.
목회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규정과 감사로 처리한다.
원로들은 도무지 이곳이 교회인지 회사인지 모를 정도라며 교회 정체성을 염려한다.
후배 장로들도 할 말이 많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시대의 트렌드를 읽지 못하니 고리타분하다고 불평을 한다.
교회도 새 시대의 옷을 입어야 된다고 한다.
은퇴 장로들이 교권을 잡고 있을 때 불만이 많았지만
꾹 참고 기다려왔는데 은퇴하고 나서도 시무하려고 드니
은퇴라는 뜻조차 모르는 양심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다.
교회 일을 제도와 규칙을 만들어 시스템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데
힘과 인정에 매여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해 오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이처럼 교회가 시대의 흐름을 외면한 채 계속 옛날일만 답습하다가는
교회가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처리해야 할 문제를 적기에 해결하지 못하고
인정에 이끌려 문제를 더 키운다고 한다.
남의 눈치를 보고 체면을 중시하느라 늘 실리를 잃어버린다.
교회 공동체도 중요 하지만 가정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 반목의 골은 깊어만 간다.
언권규정을 둔 것은
어디까지나 시무 장로들의 교회 운영을 돕기 위해
보조적으로 자문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규정으로 보인다.
은퇴한 사람들이 사람들을 규합하여 시무 자들이 발안하지 않는 안건을 낸다거나
그 안을 통과시키려고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설쳐대는 것은 곤란하다.
은퇴자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지혜를 조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후배들은 선배들의 경험과 지혜를 잘 경청하고
주님 뜻이라 판단되면 진영논리를 떠나 의견을 겸허히 받아야 한다.
교회 당회 안에도 여당과 야당이 있겠지만,
정당처럼 당수나 그 당에서 배출된 대통령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