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다음 죽림누필에세 가지고 왔읍니다
교통체증으로 꽉 막힌 도로, 차들은 아예 멈춰버렸고 여기저기 요란한 크랙션 소리가 짜증스럽다. 긴 차량 행렬의 중간, 고급승용차 뒷좌석에 앉은 양복차림의 중년신사는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조바심을 내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때 바로 옆으로 청바지 차림에 인라인스케이트를 탄 청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빙긋 웃어주는 청년, 불쾌한 표정의 신사.
장면이 바뀌어, 고급스럽게 인테리어 된 사무실로 급히 들어서는 중년 신사, 옷매무새를 고치고 사장실에 들어가서 공손하게 인사하다 말고 깜짝 놀란다. 사장자리에 앉아 있는 말쑥한 양복 차림의 남자는 조금 전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던 젊은이가 아닌가. 카메라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젊은 사장의 시선을 따라 그가 벗어 놓은 인라인스케이트와 헬멧을 비춘다. 이때 경쾌한 음악과 함께 화면을 가득 채우는 카피 한 줄.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한번 쯤 보았음직한 이 방송광고는 국내 굴지의 통신회사가 고루한 공기업 이미지를 떨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리얼리티가 너무 떨어지는 게 흠이다. 실제라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고급 승용차 옆을 쏜살같이 지나친 젊은 남자는 얼마 못 가서 경찰관에게 단속되었어야 한다.
도로교통법상 인라인스케이트는 놀이기구에 불과하며, 인라인스케이트를 탄 사람은 ‘보행자’로 분류된다. 보행자는 보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에서는 언제나 보도로 통행하여야 하고, 이에 위반하여 차도를 통행하면 범칙금 3만원이 부과된다.
인라인스케이트를 둘러싼 사회문제
1760년경 영국에서 처음 발명된 롤러스케이트는 여러 개의 바퀴를 병렬식으로 장착하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1980년대 초 개발된 일자 형태의 인라인스케이트가 롤러스케이트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처음 롤러스케이트가 소개된 이래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은 인라인스케이트가 붐을 이루기 시작한 2000년 무렵부터이다.
바퀴가 병렬식으로 장착된 전통적인 롤러스케이트는 회전반경이 작아서 좁은 공간에서도 아기자기하게 즐길 수 있다. 이에 반해서 본래 스피드에 중점을 두고 개발된 인라인스케이트는 회전반경이 커서 좁은 공간에는 적합하지 않다. 병렬식 형태와 인라인의 관계는 이를테면 피겨스케이트와 스피드스케이트의 관계와 유사하다.
유료 링크(rink)나 작은 공원만 있으면 탈 수 있던 병렬식 롤러스케이트와는 달리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기 위해서는 스피드를 내기에 충분한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거의 축구장 넓이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땅 값이 비싼 도심에 축구장 넓이의 링크나 공원이 있을 리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인라이너들은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장소를 찾아 강변 산책로나 대학 구내 도로, 심지어 일반 차도에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변수는 의식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발생한 욕구이다. 종래 스포츠나 취미는 여가활동, 다시 말해서 남는 시간을 소일하는 일쯤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이제 의식이 바뀌어 스포츠와 취미는 직장생활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직장생활보다 중요한 삶의 일부가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즐기는 스포츠와 취미를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최고의 장비를 구입하고, 최고의 기술을 연마하여, 최고의 기량에 다다르기를 원한다. 인라인스케이트 동호인들의 장비와 복장, 그리고 기량은 직업 선수의 그것에 버금간다. 웬만한 인라이너들은 시속 50km를 넘는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질주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빠른 속력으로 질주하는 인라인스케이트가 도로를 이용하면서 사고가 속출하게 된다. 2004년 5월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광장에서 인라인스케이트와 충돌한 보행자가 중상을 입었는가 하면, 2006년 1월에는 아파트 상가 앞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던 초등학생이 승합차에 치여 사망하는 등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머잖아 이것은 사회문제로 대두되었고, 대책마련에 나선 정부는 2001년 다음과 같이 법을 개정하였다.
▲ 인라인스케이트를 ‘놀이기구’로 규정하였다(도로교통법시행규칙 제9조의2 제1항 제3호). 인라인스케이트가 놀이기구로 규정됨에 따라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탄 사람은 ‘보행자’로 분류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결과 보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에서는 인라인스케이트는 보도에서만 타야 한다(도로교통법 제8조 제1항). 이를 위반하고 차도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면 3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도로교통법시행령 제73조 별표3).
▲ 어린이의 보호자가 교통이 빈번한 도로에서 어린이에게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게 하는 것을 금하였다(도로교통법 제11조 제1항). 이를 위반한 보호자에게는 범칙금 2만원이 부과된다. 또 교통이 빈번한 도로가 아닌 곳에서 어린이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경우 그 보호자는 어린이에게 안전모를 착용하도록 해야 한다.
규제만능의 정부대책
인라인스케이트로 인한 인명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할 사회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인라인스케이트를 둘러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과연 적합하고 타당한지 강한 의문이 든다.
첫째, 인라인스케이트를 ‘놀이기구’로 규정하여 차도에서 타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사고가 크게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인라인스케이트와 관련된 사고는 주로 강변 산책로, 대학 구내 및 아파트 단지 내의 도로, 주택가 골목길, 공원 등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정작 이러한 곳들은 도로교통법상 ‘차도’가 아니라서 인라인스케이트와 관련된 사고가 감소될 리 만무하다.
둘째, 어린이에게 교통이 빈번한 도로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지 못하도록 한 것은 한 마디로 넌센스다. 교통이 빈번한 도로에서는 차들도 조심하며 서행한다. 정작 위험한 것은 차들이 빠르게 질주하는 한적한 도로이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정부가 마련한 대책이란 것이 전혀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는 부적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정부 대책이 적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무지 타당하지도 않다는 데 있다.
이 문제를 처리하는 정부의 태도에서 ‘규제 만능주의’의 구태를 본다. 인라인스케이트 때문에 문제가 발생되었으니 인라인스케이트를 규제하면 된다는 식이다. 대학생들의 과외가 사회문제가 되자 당장 과외를 전면 금지하고, 호화결혼식이 사회문제가 되자 <가정의례준칙>을 만들어 결혼식 장소와 축의금 액수까지 규제한 것 등은 대표적인 규제 만능주의적 행태였다.
규제 만능주의는 다분히 관료집단의 실적주의와 행정편의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행태로는 사회문제의 본질과 원인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사회를 구성하는 유기적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과 통시적 파급효과까지 고려하는 사려 깊은 대책을 기대할 수 없다.
넥타이는 청바지와 평등한가
인라인스케이트와 관련된 사회문제는 인라인스케이트의 기능적 특성과 의식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욕구를 기존의 환경과 질서가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여 상호 충돌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이 문제의 대책은 인라인스케이트의 기능적 특성과 의식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욕구를 수용할 수 있도록 환경과 질서를 바꾸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인라인스케이트의 기능적 특성을 무시하고 욕구를 억누르면서 기존의 환경과 질서의 틀에 억지로 맞추려 하는 것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이며 ‘꼬리가 개를 흔드는 짓’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두 가지 논란거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첫째, 인라인스케이트를 ‘차’로 인정하라.
인라인스케이트를 ‘차’로 인정하라니 다소 생뚱맞아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도로교통법상 차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사람 또는 가축의 힘이나 그 밖의 동력에 의하여 도로에서 운전되는 것’이다. 또 도로교통법은 소달구지나 자전거를 ‘차’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라인스케이트를 자전거와 차별하여 차로 못 볼 것도 없다.
▷ 관련 글 링크 : 자전거 생활을 위해 알아야 할 교통법규
여기에 대해 자전거는 주로 이동수단(교통수단)으로 사용되지만 인라인스케이트는 주로 놀이수단 또는 운동수단으로 이용되므로 달리 취급해야 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도로교통법이 도로를 통행하는 것들 중 일정한 것을 ‘차’로 분류하여 보행자와 달리 취급하는 이유와 기준은 ‘통행의 목적’이 아니라 ‘위험성’이다. 운동을 위해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도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차’로 분류되는 것이다.
‘위험성’의 측면에서 인라인스케이트는 자전거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 일반인이 자전거로 시속 30km이상의 속력을 내기는 어렵지만, 웬만한 인라이너는 시속 50km의 속력으로 달릴 수 있다. 보행자의 입장에서 인라인스케이트는 자전거와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이처럼 위험한 인라인스케이트를 놀이기구로 취급하여 보도를 달리게 하는 것은 ‘차’의 소통을 위해 ‘보행자’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차’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불합리는 사고 발생시에 현저하다. 자전거가 보행자와 충돌하여 보행자가 다친 경우, 자전거는 ‘차’이기 때문에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 적용된다. 그래서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해자와 합의하면 자전거 운전자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에 반해 인라인스케이트는 차가 아니기 때문에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 아닌 형법이 적용된다. 그래서 업무상과실치상죄·중과실치상죄가 적용되는 경우 가해자는 치료비를 보상하고 원만히 합의하더라도 처벌을 면할 수 없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회복을 촉진하는 한편, 과실로 교통사고를 낸 가해자를 가급적 전과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제정된 특별법이다. 1981년 이 법이 제정됨으로 해서 피해자는 치료비 등 피해보상을 쉽게 받고, 가해자는 처벌을 피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인라인스케이트로 인한 사고에 대한 대책이랍시고, 인라인스케이트를 ‘차’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인라이너들은 피해보상을 해주더라도 전과자가 될 수밖에 없고 그 피해자들은 피해보상을 제대로 받기 어려워지는 모순은 어찌할 것인가.
둘째, 인라인스케이트를 위한 도로를 만들라.
인라인스케이트를 위한 도로를 만들라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전거의 경우에는 이미 그러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1995년 제정된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의해 지방자치단체장은 (차도와 연석이나 분리대로 구분된) 자전거 전용도로의 설치와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 등이 포함된 "자전거이용시설의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인라인스케이트로 인한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인라인스케이트를 차량은 물론 보행자와도 분리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인라인스케이트가 달릴 수 있는 도로를 확보해주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 연후에 차도 및 보도의 통행을 금지하는 것이 옳다(현행 도로교통법은 자전거는 자전거 도로가 있는 곳에서는 자전거 도로로만 통행하도록 정하고 있다)
인라인스케이트 전용도로를 만들기 곤란하다면 앞으로 확충될 자전거전용도로를 인라인스케이트가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 될 것이다. 물론, 인라인 전용도로든 자전거·인라인 겸용도로든 ‘차도’와 연석이나 분리대로 구분된 도로를 만들자면 기존 차도의 폭이 좁아지고, 차도의 교통소통에 저해가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지나치게 ‘차량소통 중심’내지 ‘차량 편의위주’의 교통정책으로 일관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할 때가 되었다.
도심의 교통문제는 끝없이 도로폭을 넓히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 오히려 도심에서 차량을 끌고 다니는 일이 대중교통이나 자전거 또는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것보다 더 불편하고, 비싸고, 느린 것으로 인식이 전환되어야 비로소 교통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자동차와 인라인스케이트를 평등하게 만드는 일은 교통문제 뿐 아니라 사회의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지금과 같은 인식과 제도와 환경으로는 앞으로도 영원히 넥타이는 청바지보다 우월할 수밖에 없다.
ⓒ 죽림누필
첫댓글 대부분 맞는말이네요 근데 k2 휘트니스급의 인라인스켓도 시속 50키로 나오나요? 좀 믿기힘드넹;; 레이싱 인라인을 말하는 것이겠져?
트플로 70키로 나옵니다 ㅋㅋㅋ
퍼갑니다.......
밀어만 주신다면 100킬로 낼수있습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