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의 반이 지났습니다. 올 상반기 한국 영화는 극장 관객점유율에 있어서
마의 40% 벽을 넘어섰는데요, [공동경비구역JSA]가 선전을 했던 지난해 보다도
10% 정도 껑충 뛰어오른 42%를 기록했습니다. 만약 하반기에도 김성수 감독의
[무사]나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같은 다른 블록버스터들이
제 역할을 해주면, 연말에는 사상 최초로 관객점유율 40%를 넘는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우리 영화가 이제는 완성도 있게 만들어져서 할리우드 대작들과도 맞
서 싸울만 하다는 것인데요, 다른 어느 해보다도 할리우드의 대작들이 많은 올
여름에도 한국 영화가 선전하기를 기대해봅니다.
상반기 총 29편의 한국 영화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심의를 마쳤는데요,
이것은 지난해와 비교해서 거의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전국 8
백만이 넘는 대기록을 달성한 [친구]가 들어 있어서, 우리 영화 관객 점유율을
껑충 뛰어오르게 했습니다.
자, 하재봉이 뽑은 상반기 우리 영화 베스트3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베스트3의 3위는 곽경택 감독의 [친구]입니다. 지난 3월 31일 개봉해서 현재
도 상영중인 [친구]는 국회의 대정부 질문에도 등장할 만큼 커다란 반향을 불
러 일으켰고, 하반기 한국 영화에 조폭들이 다시 등장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
습니다. 실화에 바탕을 둔 곽경택 감독의 각본도 절제와 강조가 뛰어났구요, 힘
의 완급을 조절하며 흡인력 있게 밀고 나가는 리드미컬한 연출, 현장편집기를
활용한 깔끔한 편집, 담백한 색채로 인물들의 내면과 밀착된 수려한 영상, 무엇
보다 장동건 유오성 두 주연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 작품이었습니다.
베스트3 중 2위,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입니다. 삶의 비천한 면모를 한 발자
국 물러서서 담담하게 바라보게 하는 관찰자의 시선을 제공해준 [파이란]은,
[카라]로 데뷔하면서 작품성과 흥행성의 쓴맛을 보았던 송해성 감독이 야쓰다
지로의 원작소설 [러브레타]를 한국적으로 각색하여 만든 새로운 드라마였습니
다. 존재의 정체성 확인과 진실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 맞물리면서 감동의 수직
상승을 이룬 작품인데요, 특히 여주인공으로 홍콩배우 장백지가 캐스팅 되어
좋은 연기를 보여 주었구요, 무엇보다 인천의 삼류 건달로 나온 최민식의 연기
가 생애 최대의 뛰어난 감성과 집중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작품입니다.
베스트3중 1위.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 불명]입니다. 비록 흥행에는 대참패를
했지만, 김기덕 감독의 영화미학이 높은 단계로 발전한 수작 필름입니다. 데뷔
작 [악어]부터 [파란대문]을 거쳐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되었던 [섬], 그
리고 올해 발표된 [수취인불명]에 이르기까지 김기덕 감독은 일관되게 저예산
영화를 고집하면서 우리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 소외된 인생들을 애정 어린
시각으로 다루고 있는데요,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은 그 방법적 표현에 있어서 몽둥이로 쳐서 죽이
는 개도살 장면이라든가, 칼로 눈알을 자해하는 등 극한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은 여전하지만, 개인의 삶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사회와 역사의 문제까지 함
께 아우르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는, 한결 성숙된 면모를 보여
준 작품이었습니다.
자, 이번에는 상반기 한국 영화 최악의 워스트3입니다. 워스트 3는 너무나 못
만든 영화 3편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서 순위를 나누지 않고 동시에 선정을
했습니다. [광시곡][천사몽][그녀에게 잠들다] 등입니다.
블록버스터로 위장 선전되었던 [광시곡]과 [천사몽]. 한국 영화의 블록버스터
에 대한 허황된 기대에 편승하여, 흥행을 노려보려고 했지만 관객들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습니다. 기본기가 되어 있지 않는 연출. 지나치게 설명하거나 지나
치게 비약하는 엉성한 각본, 그리고 배우들의 부조화, 이 삼박자가 절묘하게 맞
아떨어지면서 최악의 영화들을 연출했습니다.
[쉬리]의 삼류 아류작인 [광시곡]은, 대테러부대의 내부 갈등을 중심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는데요, 우선 전체 서사구조의 흐름을 잡지 못하는 미숙한
연출이 패인의 일등공신이었습니다. 관객들을 화면 속으로 끌고 오는 리듬 있
는 연출은 기대하기 힘들었구요, 거기에 비해서 오히려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
습니다.
[천사몽]은 당초 홍콩의 탑스타 여명이 출연하고 이나영 등 신인들이 가세해
서 볼만한 영화가 나오지 않겠느냐 기대를 했었는데요, 전생과 현세를 넘나드
는 네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 축이었지만, 영화 촬영의 기본이 되는 쇼트
나누기에 대한 이해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 연출은 물론이고, 엉성한 이야기
구조, 학예회 수준의 셋트와 소품의 조악함, 배우들의 숙련되지 못한 연기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워스트3에 올랐습니다. 특히 여명의 연기에 어색한 한국말
더빙을 한 것도 패인의 주원인이었습니다.
또 장 자끄 베닉스 감독의 [베티 블루 37도 2]를 한국적으로 리메이크 한
[그녀에게 잠들다] 역시 박성일 감독의 연출력 부재가 최고의 패인입니다. 세계
적으로 작품성과 흥행성에 있어서 이미 검증을 받은 이야기를 똑같이 흉내내고
있는데도, 이렇게 참혹한 결과를 빚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극장에 앉아
있는 시간이 이렇게 지루하고 괴로운지 가르쳐준 작품이었습니다.
워스트 3에 오른 작품들은 한결같은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기본기도 안되어
있는 연출력의 부재, 엉성한 각본, 배우들의 부조화가 그것입니다. 이러한 결점
들이 극복될 때 한국 영화의 진정한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아니, 왜 [친구]가 3위야? 이렇게 의아하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친
구]가 갖는 높은 상업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베스트3에 꼽은 이유는, 작품성
에 있어서 [파이란]이나 [수취인불명]이 갖고 있는 깊은 울림을 뛰어 넘기에는
힘들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영화는 오락이고 산업이면서 동시에 인간 상상력의 위대한 표현인 예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순수와 대중의 경계선상에 있는 독특한 장르인데요, 극장에서의
2시간동안의 쾌락도 중요하지만, 극장 문을 나서면서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
오랫동안 울림을 주는 미학적 완성도가 있는 영화가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저는 관객들이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만 영화를 보지 말고, 삶과 세계에 대해
서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영화를 선택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