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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12월 24일...이었지...그 때가.
추억이라는 말에 밤새 바닷바람에 서걱이던 을숙도 물억새가 생각이 나네...
난 그때 전주에 있었는데 숙이는 부산에 있었구나.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모두가 들떠있던 그 때 하물며 피끓는 청춘이었던 우리 나이. 250원짜리 라면을 점심으로 먹고 500원짜리 (그 때 다방 보다 좀 고급스러워진 커피숍이 생김)커피를 마시며 행복해했던 그때
점심보다 커피를 마시는 분위기를 즐기던 시절 이브에 퇴근 후 마지막 대전행 버스에 몸을 싣고.
대전발 0시58분??? 기차에 올랐을때의 설레임이란...
아직 어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부산역 태어나서 첨 가본 그 낯선 곳. 광장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던 포장마차들... 김 모락모락 피어나던 어묵이랑 그밖의 무엇들로인가 새벽허기를 채웠음에도 새벽은 멀리있었다.
해운대 해돋이를 보고 넘 추워서 들어간 카페에는 밤새운 연인들로 빈자리가 없었고 커피 한 잔 값으로 숙박을 해결하던 그들로 인해 어찌어찌 끼어 앉아 마신 커피 한 잔은 평생 잊지 못할 따스함이었다.
태종대에 들러 오랜시간 파도가 만들어논 매끌매끌한 돌 백사장에 앉아 돌 사이로 파도가 스며들 때 얼마나 정겨운 소리가 들리는지를 감상하다가
해녀 아줌마의 유혹에 끌려 싱싱한 회한접시.. 덜덜덜 떨면서.
을숙도로 가는 통통배를 타고 뱃전에 앉아을 때는 내가 뭔가를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갈대밭, 상상하던 그 곳에 가게 된다는 것만으로 설레였을 뿐.
지금도 생각난다 통통배 삯이 300원이었다. 사람들은 다 600원을 주고 배표를 사고 있었음에도 우리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드넓게 펼처진 갈대밭. 키를 훌쩍 넘어 앞사람과 조금의 거리를 두면 잘 보이지 않던. 하나인 거 같지만 갈밭 사이사이로 뻘 줄기가 들어와 건너 뛰지 못할 만큼의 거리로 인해 결국은 일정한 길이 나 있음을...
낙동강 하구의 푸르른 물줄기에 저녁해가 산산히 부셔지고 있었는데 통통배들은 집으로 돌아가느라 바쁜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요즘 말로 "대략난감" 이 아니라 "지대난감"하였으니..
우리의 통통배는 막배였고 어느정도 구경하다가 다시 그 배를 타고 나가야 되었다는게 그 아줌마의 설명이었는데. 그래서 왕복표를 구하는 거였는데 ㅠㅠ 이런... 을숙도내에는 숙박시설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으니
허걱~ 을숙도에 꼼짝없이 갇혀 버린 ...
을숙도에 거주하는 사람은 세집 정도가 된다는데 섬안에 끝없는 파밭을 일구고 그걸 가꾸기 위한 집뿐이란 거였다...
사정을 모르는 타지의 여행자들을 그 대로 방치할 수 없던 아줌마의 배려로 우린 안방차지를 하고 (너무도 허술하게 지어진 두 칸짜리 갈대집) 아줌마가 해 주시는 생태지게로 저녁을 먹은거 까지는 좋았다.
아줌마는 다른 집으로 사정이야기를 하고 주무시러 가시고 방안을 둘러 보니 문고리도 없고 마루도 없고 누워서 문열면 바로 파밭이 펼처지고 뒷문을 열면 그냥 갈대밭.
아무리 아무도 없는 섬이라지만 무섭고 두렵고 밤새 잠못들고 부침개 놀이를 하고 말았다 뒤집고 또, 뒤집으며 ...
밤새 들리던 바람에 서걱이던 갈대소리 동도 트기전 들리는 온 갖 통통배 소리들.. 끼륵끼륵 철새들의 수다..
어차피 잠못 든 크리스마스 저녁 ... 새벽에 나와 걸어 본 물빠진 뻘밭에 수없이 찍혀있던 철새들의 발자욱....
내 기억속에 영원한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을 그 해 겨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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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억을 먹고 살나이가 아닐지라도 넌 아름다운 추억이 있어서 참 좋겠다...부러버 난 그시절 뭐했을꼬
태종대의 불쭉불쭉 솟은 바위들이 눈앞에 선하구나..아름다운 추억들이 눈에 펼처진다 ..기억과 생각이 예쁜현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