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제도권 내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인 우리 반.
또 다른 명칭으로도 아무런 의의 없이 소통되는 우리 반, 이름하여 장미반.
학년이 같은 또래보다 서너 살이 많은 그들에게 왜 장미반이라고 하는 예쁜 꽃 이름을 선물했을까?
이름이 주어짐으로써 의미를 가진 대상물로써 존재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막상 소개하려고 하니 막막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왠지 겸연쩍고, 이래저래 참 걱정이다.
과학의 발달은 기호와 숫자를 발명하여 구분하고 분류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것은 신화로 존재하던 시대의 집단적 억압을 해체하여 개인의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찾으려는 노력이었는데 인간의 근원적 정체성을 무시한 편리성과 효용성을 주장하는 바람에 단지기술만 발달하고 말았다고 하던가.
1번,000. 장애등급 0급, 지능지수 00, 정신연령 0,0 사회성숙도 00. 장미 반. 등등 기호와 이미지로 기억되는 그들의 정체성은 이미 선험적이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숫자와 이미지적인 명칭만으로도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아는 것처럼 분류되고 특정 개인의 잠재성과 섬세한 차이는 이미지 속에 감추어지어 소멸되어 버려 이제는 증후군처럼 취급되는 현실.
또한 기시감을 일으키는 이 증후군이 쳬계적으로 쌓여 하나의 객관적성을 확보하여 진실의 자체성으로 드러날 때 이미지는 선험적이 되는 것인다.
그 이미지가 허구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늘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을 숫자로 기억하고 그들에게 부여된 숫자(기호)에 의하여 그들의 행동을 예상하고 가르치려든다.
그 마저도 부여받지 못하고 불능(검사불능)이라는 기호를 받은 형편의 아이들이 모인 우리 반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숫자로만 소개할 수는 없지 않는가.
.전에는 몰랐던 이 사실이 내가 그들에게 숫자놀음을 하고 있었다니.하는 깨달음과 궁색한 들킴처럼 어색하고 미안한 마음을 들게 한다.
그래도 우리 반, 장미 반의 소개는 해야 되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이다. 부딪혀 보자.
우리 반은 남자 9명, 여자 2명, 총 11명이다. 그 중 검사불능의 기호를 부여 받은 학생은 9명이다. 검사불능은 자신의 신변 및 사물함의 정리를 하지 못하여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생이다..
단 한 학생 신봉수만이 이 일상적인 언어소통이 가능하며 교실 청소를 잘 마무리 할 수 있다. 한식이는 자신의 물건을 잘 챙긴다. 다들 나이가 정상보다 서너 살이 많지만 봉수는 18살이고 사물함의 정리를 잘 하는 한식이는 20살이다.
온전한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종이와 상현이 그리고 을동이는 그나마도 힘들어 재택수업을 받는다.
얼굴이 하얀 하나는 교실바닥에 늘상 누워 있으며, 은하는 휘휘 마음 쓰인 대로 나다니는 자유인이고, 나보다 키가 큰 지훈이는 리어카 끄는 것이 취미이고, 한식이는 능동적인 면이 있으나 눈을 뒤집으며 교실 바닥에 쓰러질 때마다 나를 놀래킨다.
갑자기 쓰러지기며 발작을 잘 일으키는 동현이는 한식이와 함께 아예 교실 뒷켠에 자리보존 하는 학생이고, 용이는 트림에 고집이 만만치 않다. 그래도 영삼이 보다는 덜 힘드는 아이들이다.
우리 반 소개가 너무 싱겁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반 아이들이 꽃보다 아름다운 건 사람이기 때문이다.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 안치한 )
우리의 삶이 관념과 이미지로 구성된 것이라고 할 때, 몸으로 실제 몸으로 겪는 구체적인 경험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게 내 철학 공부의 시발점이었다.
지금의 나는 정신과 육체가 양분되어있는 게 아니라 서로 유기체적으로 상호보완 하며 또 다른 하나를 만들어 내는 추동력이 관념과 경험의 한 몸임을 안다. 비로소
이미지에 갇힌 그들을 생소하지 않는 눈으로 ...,하고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