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시오 수돗물불소화'는 일 년여 전부터 수돗물불소화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혼란함과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검토하면서 정리한 책입니다.
수돗물불소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며, 먼저 주변의 화학을 공부한 분들과 의사 분들에게 도대체 불소가 어떤 물질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잘 알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사용되고 우리 몸에 알게 모르게 들어오는 불소라는 화학물질에 대하여 일반적인 지식밖에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지하수에 불소 함량의 과다로 나타난 치아불소증(반점치)을 갖고 있는 사람한테, 치과의사는 '먹는 물에 불소가 부족하여 즉, 수돗물불소화를 실시하지 않아 그런 증상이 나타났다'고 진단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재 우리 나라에서 대대적으로 확대 실시하려고 하는 수돗물불소화가 정말 철저한 검증과 시민사회의 치밀한 사회적 논의 과정을 통해 결정되고 있는 것인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불소반대론자, 불소추진론자, 중립적인 사람들이 주장하는 논문과 글을 읽으며 또 한번 혼란에 빠졌습니다. 의료적 지식과 구강보건정책에 대한 안목과 지식이 전혀 없는 제가 180°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는 내용들을 이해하고 뭐가 옳은 것인가 판단하기란 정말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수돗물불소화 문제를 조금 깊이 보려 하신 분들은 대부분 저와 같은 곤란함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는 전문적 지식에 빠져 헤매기보다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명운동을 하는 관점에서 하나하나 자료를 비교해 보고 검토하는 과정을 천천히 밟았습니다. 불소라는 화학물질의 성질부터, 수돗물에 들어가는 불소화합물이 어디서 나오고, 다른 나라들은 수돗물불소화를 어떻게 검토하고 추진해 왔는가 꼼꼼히 살폈습니다.
자료 정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수돗물불소화 문제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두 가지 의미있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수돗물불소화를 실시하고 있는 의왕 정수장에서 관리 잘못으로 방류된 불소(불화규산)로 인하여 안양 학의천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한 사건입니다. 한겨울 물 위로 떠오른 물고기 사진을 보면서 다시 한번 수돗물에 들어가는 불소화합물이 강력한 독성을 지닌 인공화학물질임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사건은 그동안 수돗물불소화를 찬성하는 것으로 알고있던 대한의사협회가 '수돗물불소화에 대한 입장을 유보하고, 수돗물불소화 참여단체에서 의사협회의 명칭을 빼 달라'고 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간 수돗물불소화를 추진하는 분들은 '수돗물불소화가 절대 안전하고, 그에 대한 검증은 끝났다'고 되풀이하여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대한치과의사협회로 보내는 대한의사협회 공문에는 '아직 불소화합물이 인체에 미칠 수 있는 다양한 독성작용에 대한 규명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수돗물불소화에 대한 강력한 신화에 사로잡혀 그동안 어떤 논의도 진전을 보지 못했던 상황이 조금은 나아질 것 같아, '멈추시오 수돗물불소화'를 내놓으며 큰 위안이 됩니다. 대한의사협회의 공문은 부록에 첨부(부록 7)하였습니다.
수돗물불소화 문제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며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정책이나 의사 결정 과정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형식적이고 허술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수돗물불소화를 비롯한 보건정책은 명백하게 당국과 전문가들만이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논의과정과 합의를 통해 추진해야할 사회적 의제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수돗물불소화에 대한 시민사회와의 진지한 논의는 고사하고, 보건당국에 의해 너무 일방적이고 급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많은 화학물질과 약품이 우리의 몸과 삶의 영역으로 알게 모르게 밀려 들어오고 있는데도, 너무 무감각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독성물질로 알려진 불소의 경우, 정말 우리 생활 중에 범람하고 있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무런 주의 없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화학물질과 약품의 남용으로 인한 피해는 사용하는 사람들과 환자들이 그대로 받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몸에 들어오는 화학물질과 약품에 대해 사회적 규범을 만들지 못하면 그로인해 받는 악영향을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사회운동하는 사람으로서 그동안 어떤 문제에 대해 깊이 탐구하여 판단하지 못하고, 감각적으로 판단하거나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의해 운동해온 그동안의 제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또한 일 년여 동안 자료를 검토하며, 작은 문제일 수도 있는 수돗물불소화 속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생명과 인권의 소중함, 자율적인 시민의식과 시민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깊이 있는 사회 원리가 담겨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멈추시오 수돗물불소화'가 나오게 된 데는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과 학자적 양심을 밝혀온 소중한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그분들은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수돗물불소화에 담긴 문제를 조용하지만 끈질기게 우리 사회에 제기하고 있습니다. 온갖 비판을 받으면서도 오랫동안 외국의 문헌을 보며 수돗물불소화의 문제를 인식하고, 지면을 통해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해온 김종철 교수님, 순천에서 불소 투입을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신 김용주·반봉찬 선생님, 또한 학자적 양심으로 수돗물불소화 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오신 안혜원 교수님, 바깥에 요구하기보다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신 장택희 박사님 같은 분들이 계셨기에 이 책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늦었지만 우리 나라 수돗물불소화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청주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것은 지역 여러분들의 힘과 뜻이 합쳐졌기 때문입니다. 수돗물불소화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지역사회에 제기해나가는 청주시민행동과 청주지역 사회단체 동지들과, 무슨 일이든 몸과 마음을 함께 모아주는 소중한 우리 '터' 회원들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지금도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생명에 대한 감수성과 양심에 따라 고민하며 "수돗물불소화 멈추시오"라고 외치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이 책이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분들에 의해 더욱 잘 정리된 두 번째 책이 나온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