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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 디스크자키, 배철수
“ 배철수입니다. 출발합니다!” 매주 오후 6시, MBC FM 포유의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 는, DJ 배철수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그 막을 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 코멘트가 나가기 전, 어김없이 등장하는 시그널 송은 바로 비엔나 심포니 오케스트라 (Vienna Symphony Orchestra) 의 노래 Satisfaction이다. 롤링스톤즈의 명곡 Satisfaction을 클래식 버전으로 만든 이 곡은,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배철수의 음악캠프> 시그널 송으로 국민들 머릿속에 완전히 박혀있기 때문에, 이 노래의 인트로만 들어도 머릿속에서는 배철수의 외형이 떠올라질 것이다. 그만큼 <배철수의 음악캠프> 를 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노래이다.
이 렇게 시그널 송 등장과 배철수의 간단히 포문을 여는 코멘트가 끝을 맺으면, 오늘 방송의 첫 번째 곡이 무대 위에 오른다. 대개 이렇게 인트로를 시작하는 노래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광고음악으로 눈길을 끌었던 팝송이나, 아니면 신나는 멜로디를 지닌 하드 록이 이름을 올리는 편이다. 이렇게 오늘 프로의 시작을 마무리하면, 배철수는 다시 청취자들의 옆에 앉듯이 슬그머니 등장해서, 그 걸걸한 목소리로 “예, 들으신 곡은 누구누구의 뭐뭐입니다” 하며 간단한 곡 소개를 한 다음, 곧바로 그 곡을 신청한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말한 다음, 부드럽게 프로그램을 본 궤도에 올려놓는다. 여기까지 도달하는데 있어서 배철수는, 라디오 DJ 20년을 해온 베테랑답게, 전혀 어렵지 않은 모양새다.
이 렇게 배철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의 포문을 Satisfaction과 함께 열어제끼면서, 20여년간을 항상 이런 패턴으로 해왔기 때문에 방송이 적절한 지점에까지 도달하는데 있어서 무리 없이, 그리고 실수 하나 하지 않고 매끄럽게 이끌어 올려 보낸다. 물론 경력이 많은 DJ들 역시 배철수와 마찬가지로, 실수를 하지 않고 방송을 본 궤도에 올리는 능력이 대단하지만, 이렇게 배철수처럼 대화 형식으로 마치 옆의 사람에게 말을 걸듯이 능청스럽게 (?) 프로그램을 움직이는 스킬을 발휘하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 것이다.
우 리가 라디오를 들을 때, 얼마나 그 DJ가 완벽하게 대본을 읽으며 분위기를 끌어올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마이크 꺼진 상태에서 편안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할 줄 아는 것이 더 대단하게 느껴지듯, 배철수는 그냥 그렇게 별 힘을 안 들이고 구수한 목소리를 곁들여서 자연스럽게 다음 파트로 청취자들을 이끈다. 그래서 희한하게도 <배철수의 음악캠프> 를 듣고 있으면, 배철수가 굳이 분위기를 띄우려고 목소리에 힘을 주지 않아도, 그의 그 편안한 음색 때문에 청취자들의 마음이 그와 함께 같이 느긋해지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만큼 배철수는 전국으로 퍼지는 수많은 라디오망을, 마치 한 사람에게 직접 말을 걸듯이 대화로 풀어나가니, ‘천상 DJ’ 라는 말을 해 줄 수 밖에 없을 터.
20년 장기집권의 힘? 바로 “꾸준함”, “애정”, “트렌드”
< 배철수의 음악캠프> 는 1990년 3월 19일 MBC 라디오에서 막을 올려, 2009년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방송 프로그램도 아니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나의 방송이 20여년을 지내왔다는 것은, 기실 정말 대단한 사실일게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TV, 라디오 통합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을 꼽을 때, KBS <가족오락관>, <전국 노래자랑>, MBC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 그리고 바로 이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다섯 손가락 안에 집어넣는다. 아무리 오래 라디오 DJ를 맡는다 하더라도, 매일같이 방송국에 나와서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할 여력이 없어서, 그리고 다른 연예 활동을 위해 길어도 5년 정도 하다가 접는 경우가 태반인 가운데에서, 배철수의 장기집권 (?) 은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할 정도.
그 렇다면 이렇게 <배철수의 음악캠프> 가 장기집권 할 수 있는 그 힘은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보면 너무 뻔한 말이지만, “꾸준함” 이 아닐까 한다. 먼저 첫 번째, 영미권의 팝 뮤직과 록음악, 그리고 해외의 대중음악들을 다루는 하나의 주제를, 1990년 첫 방송 그때부터 지금까지 똑바르게 지키고 있으니, 이미 우리들 기억 속에 팝 뮤직 전문 라디오 방송 하면 딱 <배철수의 음악캠프> 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그 프로그램의 포맷을 건실하게 잘 박아놓은 것이 성공비결이 아닐까. 몇몇 라디오 프로그램들은 주제가 명확하지 않아서, 얼마 안 가서 포맷을 좀 바꾸기도 하는데, <배철수의 음악캠프> 는 그럴 필요 없이 그냥 예전부터 팝 뮤직이 주목적이었으니까, 거기의 틀에 벗어나지 않은 정도 (正道) 의 길을 걸었기에 이렇게 장수 프로그램의 명맥을 유지하였으리라 판단이 된다.
두 번째, 배철수의 끊임없는 라디오 사랑에 있다. 그는 예전부터 쭉 피력해왔지만, 라디오상에서 팬들을 만나고,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팝 뮤직 혹은 신청곡을 통해서 받은 노래들을 틀어주면서 청취자와 DJ간의 활발한 상호작용 및, 같은 팝 뮤직을 좋아한다는 기호 아래에서 생기는 동질감을 너무나도 좋아한다고 하였다. 한때 록그룹 송골매로 잘 나가던 멤버 배철수, 그리고 입담 하면 여럿 예능인을 세치 혀로 제압하는 달변가 배철수가 굳이 TV 프로그램을 사양하고, 이렇게 라디오 프로그램을 주로 고집하는지는 바로 그런 라디오 프로그램 특유의 매력에 푹 빠졌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최근의 인터뷰에서 “완벽히 준비가 되었을 때, 다시 음반을 내겠다” 라고 말할 정도이니, 그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어쩌면 자신의 음악적 능력을 한 단계 발전시키고픈 마음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배철수의 음악캠프> 는 자칫하다간 고리타분한 올드 팝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지 않는 록음악을 고집하는 독단적인 방송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DJ 배철수의 트렌드 보는 눈과 끊임없는 방송 코너의 살 덧붙이기 노력 때문에, <배철수의 음악캠프> 는 주 청취자들이 중년층, 성인층이더라도 일단 방송만큼은 상당히 젊다. 물론 이렇게 주 청취자들의 나이대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올드 팝을 트는 경우가 많지만, 이제는 10 ~ 20대 청취자들의 입맛에 맞게 요즘 영미권 현지에서 유행하는 팝 뮤직이나, 아니면 인디 록을 틀어주는 횟수도 생각보다 많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요즘 광고음악을 통해 각광받는 노래라던지, 영화 OST도 빼놓지 않고 방송해준다. 게다가 금요일 코너 <사람과 음악> 에서는 유행 대중가요 아티스트, 그리고 인디 뮤지션 등등 계층을 구분하지 않고 초대 게스트로 모시니, 메이저와 인디를 동시에 아우를 수 밖에.
죽어가는 음악 비평 문화를 살리도록 노력하다
< 배철수의 음악캠프> 는 현재까지 두 명의 팝 칼럼니스트, 그리고 한 명의 음악 지식 풍부한 연예인을 고정 게스트로 두고 있는데, 바로 월요일에는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등장하고, 수요일에는 라디오 DJ를 맡고 있는 ‘음악 지식 풍부한 연예인’ 배칠수가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요일에는 우리나라의 전설적인 팝 칼럼니스트 임진모가 코너를 맡는다. 이렇게 세 명 이상의 고정 게스트는, 자기가 맡은 요일에 나와 배철수와 함께 꽤나 진지한 음악 비평을 시작하는데, 음악 비평계가 죽어버린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에서, 이렇게 1시간 이상을 음악 비평하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기적이라는 표현 외엔 방법이 없을 듯 하다.
물 론 배칠수가 나오는 코너는, 성대모사의 달인인 배칠수가 아나운서 손석희,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을 성대모사 하며 코너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가고, 김태훈이나 임진모 역시 생각해보면 그다지 그렇게 진지한 음악 이야기는 안 하고, 청취자들을 위해서 농담 따먹기 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머리 맞대고 음악 비평에 대해 이야기 하기’ 를 이들이 <배철수의 음악캠프> 를 통해서 이끌어나간다는 점이겠다. 월요일 코너 <김태훈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은 영화 OST를 주로 다루긴 하지만, 가끔 김태훈이 자신의 팝 뮤직 지식을 양념식으로 갖다대면서 흥미를 유발시키고, 배칠수가 진행하는 수요일 코너 <철수와 칠수> 에서도 역시 한 주간 일어났던 대중음악계의 뉴스를 다루면서 음악 비평 이야기가 나온다.
임 진모가 진행하는 목요일 <임진모의 네버엔딩 팝 스토리> 는 두 말할 필요 없이, 팝 뮤직 비평가의 두 거목 배철수와 임진모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음악 비평을 풀어나간다. 특히 임진모는 앞서 말한 코너들보다 조금 더 진지하게 배철수와 함께 팝 뮤직에 대한 이야기, 그 곡에 담긴 사연, 아티스트 소개, 그리고 음악 비평을 풀어나가니, 이런 음악 비평을 좋아하는 리스너들에게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라디오 시간대의 프라임타임에 속하는 저녁 6시 ~ 8시 사이의 프로그램에서, 뻔하디 뻔한 유행가 대신에 이렇게 음악 비평으로 시간을 보내는 프로그램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배철수의 음악캠프> 는 솔선수범 하여, 이 시대의 죽어버린 음악 비평을 다시 살리고자 노력을 많이 한다.
한 창 새벽 시간대에 음악 비평을 늘어놓으며, 음악 마니아들의 귀를 쫑긋 세우게 하였던 인기 DJ 전영혁도 전영혁이고, 성우만큼이나 강렬하고 인상적인 음색으로 듣는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DJ 김기덕, 김광한 등도 있겠지만, 이들의 주 활동 무대는 이렇게 리스너들이 적을 수 밖에 없는 새벽이거나, 아니면 오전 11시 정도에 등장하는 게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그들이 돗자리 펴놓고 음악 비평을 한다 하더라도, 죽어버린 이 시대의 음악 비평이 그것을 말해주듯, 시간대도 어정쩡하고 사람들이 잘 안 듣는 것도 사실. 이것을 적당한 시간대의 메인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 가 맞춰주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리스너들은 적절한 위안을 갖는다. 그리고 다시 우리나라 땅의 음악 비평 부활을 작게나마 소망한다. 배철수는 묵묵히 꽃이 피기까지 자양분을 충분히 퍼트리고 말이다.
팝 뮤직의 마지막 안식처 - <배철수의 음악캠프>
주 지하다시피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수많은 세계적인 뮤지션들은, 한번쯤은 <배철수의 음악캠프> 의 초대 게스트로 초청 받는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록그룹 익스트림 (Extreme) 의 멤버 게리 셰론과 누노 베텐코트가 출연하여,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외에도 딥 퍼플, 린킨 파크, 메탈리카 멤버들이 출연한 적이 있었고, 전화 인터뷰로는 세계적인 블랙 뮤직 여가수 알리샤 키스 (Alicia Keys) 가 모습을 드러냈었다. 배철수는 이외에도 공식 방송상을 벗어나서 해외에서 수많은 세계적 뮤지션들을 만났었다. 이렇듯, 배철수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일단 우리나라에서 인지도가 대단하다는 방증이겠고, 팝 뮤직을 다루는만큼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방문은 수순이라는 것이다. 또한 팝 뮤직 전문가로서의 명성도 있기에, 해외에서의 배철수의 영향력 역시 무시 못 하는 수준이다.
< 배철수의 음악캠프> 는 DJ 배철수의 끊임없는 라디오 사랑, 질리지 않는 포맷으로 일관하며 꾸준함을 이어오는 그 힘, 그리고 팝 뮤직에 그만큼 헌신한만큼 해외에서도 인정을 해주는 네임 밸류 덕분에 20여년간의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팝 뮤직이 라디오 에어플레이에서도 죽어버린 우리나라의 현 주소에서, 그들의 존재는 말 그대로 ‘팝 뮤직의 마지막 안식처’ 이다. 이제는 인디 뮤직의 활성화와 인디 뮤직 수요층들이 많아진 덕택에, 라디오 에어플레이에서도 질좋은, 그리고 거대 기획사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은 음악들이 줄을 잇지만, 아직까지도 팝 뮤직을 심층적으로 다루는, 더해서 음악 비평을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프로그램은 몇 없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관할 정도.
이 런 가운데 <배철수의 음악캠프> 는 다양하고 심층화된, 그리고 세계 대중음악의 척도가 되는 팝 뮤직을 계속해서 방송하면서, 일회용 음악에 지나지 않은 대한민국 대중가요가 더는 넘쳐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 중심 축을 꽉 잡아주고 있다. 또한 끊임없는 게스트 뮤지션간의 토크,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무명 인디 뮤지션까지 덩달아 이름을 알리게 해줄 수 있는 일종의 알리미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작게나마 꾸미고 있지만, 음악 비평 대담을 시도하면서 1990년대 <골든팝스> 같은 팝 뮤직 및 음악 리뷰의 전성시대를 만들려고 한다.
패 션지 지큐 (GQ) 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것들’ 을 집계했을 때, <배철수의 음악캠프> 를 당당히 이름에 올려보냈다. 그들이 말하길, <배철수의 음악캠프> 는 “쓰레기처럼 밀려오는 우리나라 가요의 홍수 속에서, 그나마 우리들에게 들을 수 있는 노래를 제공해주는 고마운 프로” 라고 하였다. 물론 우리나라 대중가요를 무조건 ‘쓰레기’ 라고 치부하는 것은 상당한 곡해일지도 모르겠으나, 대개의 리스너들이 동감하지 않는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라도 없었으면, 우리는 라디오 에어플레이에서도 듣기 싫은 소음을 참아가며 살아갔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출처] 팝 뮤직의 마지막 안식처 - 배철수의 음악캠프|작성자 이근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