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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手記)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을 글로 기록한 것을 뜻합니다.
문학의 한 쟝르로 따지자면 수필에 속한다고 보면 됩니다. 어머님들이 오후에 집안 일 하시면서 라디오에서 읽어주는 편지 사연 들으시죠? 때론 깔깔 웃기기도 하고, 어떤 때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게도 만드는 라디오 편지 사연. 이것이 바로 수기입니다. 수기를 잘 쓰는 방법은 직접 겪었던 일을 생동감있게 전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굳이 화려한 수식문구가 필요할 것도 없고, 틀에 얽매일 것도 없습니다. 독자를 자신의 사건 속으로 몰입시킬 수만 있다면 그 수기는 성공한 글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흐름을 잘 짜줘야 합니다. 요즘 학생들에게 작문은 가장 어려운 숙제 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 참으로 어렵고도 괴로운 일이지요. 하지만 것도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너무 잘 쓰려고, 너무 멋진 글을 쓰려고 애를 쓰다보니 이리저리 꼬이고 어려워져서 결국 자신이 의도한 알맹이는 사라지고 온갖 수식어만 난무하는 애매한 글이 되고 말지요. 알맹이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글을 쓰는 것, 어렵게 여겨지지만 밑그림을 잘 그려놓고, 중간중간 손을 잘 보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일단 가장 중요한 알맹이를 잘 정해야 합니다. 모든 글에는 말하고자 하는 모티브가 있어야 하니까요. 예를 들어 락이란 친구가 구피를 키웠던 경험담을 글로 쓰려고 합니다. 수조 안에서 팔랑거리며 헤엄치는 지느러미의 자태도 너무 아름다웠고, 번식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었지요. 하지만 실제로 구피를 키우면서 치어도 받아보니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실망감이 밀려들었습니다. 애써 낳은 자신의 새끼를 눈 앞에서 잡아 먹어버리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으니, 처음 구피를 키워보는 락에게는 이만저만 충격이 아니었을겁니다. 그래서 락은 구피 사육 수기의 알맹이로 '탄생의 신비에 이은 냉엄한 생존' 으로 정했습니다. 새끼 손가락만한 물고기가 종족 보존을 위해서 한 달 동안 수태를 하고, 몇 미리짜리 작은 생명을 낳는 신비로운 광경, 하지만 태어난 새끼는 곧바로 냉엄한 생존의 지옥에 직면하여 자신을 낳아준 부모의 입을 피해 이리저리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광경. 구피를 키워본 사람은 누구나 겪어본 상황이지만, 락이란 초보 친구의 시선에 이끌리면 또 다른 흥미와 재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랑이야기에 웃고 우는 것이 '사람'이란 관객이니까요. 수기의 시작은 구피 치어를 기다리는 락의 심정을 담담하게 풀어갑니다. 락은 이미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는 아빠이므로, 자신의 아이를 기다리던 심정과 치어를 기다리는 심정을 비교합니다. 아내의 불룩했던 몸태와 수조에서 헤엄치는 구피의 자태도 오버랩 시켜봅니다. 예전에 tv에 자주 나왔던 '구피'라는 댄스가수팀의 이름과도 비교해봅니다. 이런 과정들은 알맹이로 가는 수순이며 글의 앙념이 될 것 입니다. 무턱대고 구피가 예뻐서 사다 키웠는데 새끼 낳고 잡아 먹어서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고 쓰면, 읽는 사람을 끌어드릴 수 없겠지요. 본 게임에 앞서 오픈 게임이 있듯이, 알맹이가 나오기 전에 양념을 깔아주는 겁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락의 기대감을 그려갑니다. 새끼치어가 나오면 어떤 먹이를 먹여야 할까, 치어는 얼마나 작을까, 태어난 치어는 구피처럼 생겼을까. 아님 지렁이처럼 생겼을까. 구피는 1년 밖에 못산다는데, 얼마나 크면 처음 새끼를 낳을 수 있을까, 새끼는 숫놈이 많을까, 암놈이 더 많을까. 처음으로 물고기 새끼를 본다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점점 고조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작은 어항 앞으로 달려가 어미의 배를 살피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곧바로 구피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락의 취미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아내에게도 호들갑을 떨어댔고, 물고기라면 그저 좋다고 날뛰는 다섯 살배기 딸내미는 이미 아빠와 함께 새끼고기를 고대하는 구피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도대체 언제쯤 예쁘고 귀여운 치어를 볼 수 있을까요. 작은 기적을 기다리는 희망이 락의 가정에 솔솔 무르익어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 준비를 하던 락이 구피 어항을 살피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과기 아래 이상한 벼룩 같은 것이 툭툭 튀어다닌 것을 발견하게 된 겁니다. 물벼룩 같기도 하고, 작은 벌레 같기도 한 것이 구피 숫컷을 피해 이리저리 튀어다니는 겁니다. '어라, 저게 뭘까?' 유심히 살피던 락은 깜짝놀라고 말았습니다. 어제까지 불룩하던 구피 암컷의 배가 날씬해져있고, 눈 앞에서 도망다니던 그 물벼룩은 끝내 구피 숫놈에게 먹혀버린 겁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생명의 탄생을 이처럼 허무하고 가슴 아프게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락은 출근도 미룬채 살아남아있는 구피 치어 몇 마리를 구조하기 위해 난리를 치게됩니다. 뜰채와 국자와 숫가락을 들이밀면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몇 미리짜리 새끼들을 구조하는데 아침 시간을 써버립니다. 꼭 살려야 한다고, 꼭 살리고 싶다고 되뇌이면서, 이제 막 잠에서 깨서 구경온 딸내미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 대목에서 락은 그 당시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뜰채를 넣고 치어를 건지다가, 옆에서 얼쩡거리는 어른 구피들을 다 건져내서 화장실에 버리고 싶었던 마음, 어제까지만 해도 하늘거리는 지느러미가 아름답게만 보였던 숫컷의 모습이 마치 식인상어처럼 보였던 심정, 한 없이 안스럽게만 보이는 물벼룩 같이 생긴 새끼 구피를 지키고 싶은 마음. 오래도록 기다렸던 만큼, 락에게는 그 한 마리 새끼 구피가 너무나 소중하고 안스러웠던 것이지요. 이후 락은 이런저런 공부를 합니다. 난태생 고기는 새끼를 잡아먹는 다는 것, 새끼를 잘 살리기 위해서는 출산이 임박한 어미를 부화통에 넣어야 하거나 혹은 수초가 무성한 어항에서 자연출산을 시켜야 한다는 것, 구피는 한 달에 한 번 새끼를 낳는 다는 점과 한 번 수정을 하면 여러 차례 출산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피쉬클럽에 가면 누군가가 친절하게 잘 도와준다는 것. 기껏 일 년 남짓 살면서 새끼만 죽도록 낳다가 가는 구피 암컷이 측은하기도 하고, 여러마리의 암컷을 몽땅 임신시키는 것도 부족해서 여기저기 껄떡대고 다니는 구피 숫놈이 밉기도 하고, 죽어라 도망다니다가 어미나 애비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간 새끼 구피의 모습이 악몽처럼 남았습니다. 그래서 락은 수초도 공부하게되고, 새끼를 잡아먹지 않는 고기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고, 쾌적한 어항을 관리하는 방법과 고기에 맞는 환경, 조명과 레이아웃, 이산화탄소와 질산염, 호기성 박테리아와 ph가 뭔지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락의 수기는 그 시점에서 마무리됩니다. 구피 치어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놀랍고도 냉엄한 본능의 현실에 충격을 받았고, 그 뒤에 더 많은 고기를 키워보고 싶은 욕망이 이글거리게 되었지요. 그리고 피쉬클럽을 알게되었고, 또한 오늘 날까지 즐겁게 물고기를 키우며 잘 살고 있었답니다. 예를 들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군요.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수기는 생동감있게 사건의 감흥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락의 수기는 가장 극적인 부분, 새끼 구피가 성어들에게 먹히는 충격적인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또한 그 충격이 취미생활의 기폭제가 되는 과정도 세세하게 묘사했을 것입니다. 물론, 중간중간 양념도 잘 곁드리려 애쓸 것이구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밑그림, 글을 쓰기 전에 이런 모든 내용을 하나의 종이에 간략하게 기술해놓고 제대로 조합을 한 다음 거기에 살을 붙이는 형태로 글을 써가면 훨씬 수월하며 짜임새 있는 수기가 될 것 입니다. 막연하게 비어있는 모니터나 백지에 글을 채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즐겁고 체계있는 글쓰기가 되겠지요.
네이버 fishclub카페의 고성민(rock5555)님의 글을 퍼온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