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의 웃음이 슬픈 이유
"겟어웨이(The Getaway)"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에서 1972년도에 만든 영화다. 당대 최고의 인기 스타였던 스티브 맥퀸과 알리 맥그로우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짐 톰슨의 원작을 월터 힐이 각본하고 샘 페킨파 감독이 작업했다. 70년대 대표적인 범죄 액션물로 뒤이어 대형 액션물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큰 영향을 끼친 영화이다. 1993년도에 리메이커 되었는데 이때는 로저 도널드슨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당시 미국의 유명배우인 알렉 볼드윈과 킴 베이싱어가 각각 남녀 주연을 맡았다. 미남미녀인 이들 주인공은 촬영 중에 결혼하여 부부의 연을 맺은 것으로도 유명세를 탔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닥 멕코이(알렉 볼드윈 분)는 죄수를 탈출시켜 주는 대가로 돈을 받기로 하지만 함정에 빠져 철장신세가 된다. 그의 아내 캐롤(킴 베이싱어 분)은 남편의 친구이자 두목인 베논(제임스 우즈 분)에게 닥의 보석을 위해 부탁한다. 베논은 그 조건으로 캐롤을 유혹하고, 베논의 도움으로 닥은 보석된다. 닥은 몇 몇의 동료(?)와 함께 팀을 구성하여 은행을 턴다. 그 과정에서 동료를 결국 살해한 닥은 베논을 찾아간다. 그러나 닥은 아내가 자신의 보석을 위해 부정을 저지른 것을 베논에게 듣게 되어 분노하는데 아내는 그런 베논을 총으로 쏴버린다. 살인과 은행털이로 쫒기는 부부는 서로에 대한 사랑만은 변함없음을 확인하고 거액의 돈과 함께 이들이 이상향이라고 믿는 멕시코의 국경을 향해 간다. 결국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고 이들은 무사히 국경을 넘는다. 영화의 주제곡인 "나우 앤 포에버(Now And Forever)"가 애잔하게 들려오고 차가 먼지를 내며 자유롭게 달리는 장면으로 이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가 주목을 받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정도의 폭력의 노출도 문제가 되었고, 이전 영화들이 대부분 남자 중심의 극단적 절망과 폭력을 그렸다면 이 영화는 주인공과 아내의 미묘한 감정의 대립이 마지막까지 관객을 사로잡는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기타연주에 맞춘 주제곡도 오랫동안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정작 이 영화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다른데 있다. 이전에 서부영화에서 보여준 권선징악[勸善懲惡], 즉 보안관이나 정의의 사도가 언제나 악당을 무찌르고 사회의 혼란을 바로잡는 것으로 끝났다면 이 영화는 살인과 은행을 턴 범인이 잡혀 철장신세를 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도리어 자유로운 삶을 향해 유유히 나아가는 것으로 끝났다는 데 있다. 즉 세상에 정의란 없고 갈등의 원인인 돈을 차지하려고 서로를 죽이고, 그리하여 돈을 차지한 자가 마치 자유와 꿈을 이룬 것 같은 결말의 영화, 그런 영화의 효시[嚆矢]가 된 것이다. 트럭기사와 부정한 돈으로 유쾌한 거래를 하고 국경을 넘으면서 목적을 이룬 것처럼 끝났다는 것 자체가 화제였다. 요즘 영화에서야 이야기 거리도 되지 않지만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에 익숙하지 않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결말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필자는 비록 리메이크된 영화를 보았지만 묘한 여운에 한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지난주는 진보당 의총에서 석 달을 끌어오던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제명이 부결되었다. 스스로 국민의 기대와 희망을 배신해버린 결과라며 당의 중진들이 책임을 통감하고 당직에서 물러났다. 당대표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진보가 갈 길을 잃었다"고 탄식하며 국민에게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당원들의 도미노 탈당도 계속되고 있다. 대선승리의 전략으로 야권연대를 모색하던 민주당도 분명한 선을 긋고 있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실망은 이미 도를 넘어 분노를 다 표출하지 못하는 슬픔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해 이석기 의원의 웃음 띤 얼굴을 보고 필자는 왜 거의 20년 전에 본 영화 "겟어웨이"가 생각나는 것일까. 영화가 이렇게 끝나도 되는 것인지 한동안 고뇌하며 당황했던 당시의 불쾌감이, 명명백백한 부정을 범하고도 도리어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으며 "정의의 승리"라며 의총을 당당히 나서는 그의 모습에서 왜 다시 느껴지는 것일까. 계속되는 불볕더위와 심판의 오심에 얼룩진 런던올림픽 소식만으로도 충분히 버겁고 슬픈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