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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공업단지의 태동70년대는 우리고향 신늪에도 대변화가 찾아왔다.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을 두고신부사오동을 떠나야하는 숙명으로 다가온다. 그간 농사 지으면서 형제들과 오손도손살아온 세월이 한꺼번에 없어지는 그날이 올지는 아무도 몰랐다.다만 장동에서 할마이산으로 이어져 광평으로 가는 길이 시원하게 뚫리고 있었다.구미가는 길이 더 없이 편한줄만 알았다.설마 우리 동네가 구미공단편입 되리라고 생각하는 이는 별로 없는듯 했다.구미공단의 원조인 한국코오롱공장이 들어서고 , 매호동 뒤에는 선산섬유가 들어와서우리동네 사람들도 취직도 하고 좋은 일로만 받아 들였다.서서히 장동들이 없어지고 , 비산가는 길에도 큰 변화 생기고 있었다.구미공단에 편입되다 .어느날 신부사오동이 구미공단에 편입된다는 것을 알았을때는 너무 늦었고알았어도 어쩔수 없었지만,청청벽력같은 이 현실앞에 우리마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형제부모는 뿔뿔이 흩어저서 대구로 구미 아포,선산,고아, 강건너 양호동으로심지어는 김천으로 부산으로 헤어지는 아픔을 맛볼 줄이야!!오호 통재라!! 고향잃은 슬픈일은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을 줄이야!!가슴이 산산이 부서지는 아픔을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공동묘지도 없어지고그토록 애닯게 지었던 농사! 그리고 나무 한그루 풀한포기 정이 들지않은 곳이 어디 있을까?그간에 이웃에서 수십년을 살았던 정든 사람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눈뜨면 보였던 반티산 !!낙동강앞 반티산 그리고 앞개 ~동네앞의 넓디넓은 수많은 농지들!올듬붕,무디미의 능금밭! 평생 가물지 않아 동네분들이 다아 사용했던 샘가!신늪중앙통에 윗점빵 , 아랫점빵! 매호동 넘어가는 상여집! 어디 한곳에정이 들이 않은 곳이 있을까???데모를 했지만 중과부적으로 신부사오동은 어느새 KBS연속극 드라마로애틋함을 전해주었지만 그 시절은 영원히 사라지고 추억으로만고향 신부사오동은 남아있다.구미국가산업단지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구미국가산업단지(龜尾國家産業團地)는 경상북도 구미시와 칠곡군에 위치한 국가산업단지로, 전자·반도체 산업의 중점 육성을 중심 목적으로 하여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섬유나 가정용 전자제품 생산이 중점이 되었지만, 삼성전자 등의 휴대전화 생산 단지가 들어서면서 반도체·디지털 산업이 주로 육성되었다. 삼성전자나 LG전자와 필립스 사가 합작하여 설립한 LG필립스LCD, 하이닉스, 도레이새한 등의 기업을 중심으로 중소기업과 연대하여 형성되어 있다. 지대가 주변과 비교할 때 비교적 평탄하고, 단지를 관통하는 낙동강을 수원으로 하여 하루에 33만톤 이상의 물을 공급하고 있어 공업단지로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2005년에 단일 산업단지 최초로 300억불 수출을 달성하였으며, 이는 대한민국 수출액의 11퍼센트, 무역 수지 흑자액의 84퍼센트에 해당한다. 제1단지는 총면적이 10.4㎢로 1973년에 완공되었으며, 섬유, 전자 산업이 들어서 있다. 제2단지는 2.3㎢로 1983년에 완공되었고, 주로 반도체산업과 전자산업이 입주해 있다. 1992년에 완공된 제3단지는 면적이 4.8㎢로 첨단전자산업이 들어서 있다. 입주 업종은 일반 전자 공업 및 연관 공업, 반도체 및 기타 중요 산업체로 비공해 업종이어야 하며, 수출업체는 우선권을 주도록 되어 있다. 2006년말에 조성이 완료된 제4단지는 디지털 산업 단지 및 외국인 기업 전용 단지로 조성되었다. [편집] 추진 경위 및 조성 연혁
[편집] 구성[편집] 제1단지제1단지는 면적 10.4평방킬로미터로 구미국가산업단지에서 가장 큰 규모로, 입주 업체 또한 469개소로 가장 큰 규모이다.[1] 제1단지의 조성은 제2단지가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순조로운 개발과정을 거친데 비해, 한국전자공업공단이 주도한 전자단지와 경상북도가 주도한 일반단지 모두 토지 수용이나 조성 과정에서 순조로운 과정을 거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반단지 제1공구의 경우 주민 스스로가 공단 유치 활동을 벌이고, 경상북도가 지원하여 전자단지보다 2년 이상 빠르게 조성이 시작되었다. 이후 일반단지 제2공구와 전자단지 제1·2공구가 조성되기 시작하였고, 대부분이 평탄한 대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전자단지 제1공구에는 단지 조성과 함께 행정 편의를 위해 공단 청사, 세관, 우체국, 은행, 통관 등을 함께 입주시켜 투자분위기를 고조시켰고, 1972년 5월 31일에 조성이 완료되었다. 이후 1973년 9월 30일에 전자단지 제2공구가 완공되었으며, 제3공구도 조성되었다. [편집] 제2단지1973년의 제1차 유류 파동은 제1단지 입주 업체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고, 당시 입주 예정이던 삼성전자를 비롯한 여러 업체들은 불경기를 이유로 입주를 포기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부가가치가 높은 전자공업의 육성이 강하가 요청되었다. 1974년 상공부는 구미공단 입주 업체에 대한 조세 감면을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한다는 방침을 발표하고, 전자업종을 포함한 40개 수출전략산업을 집중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1976년에는 제1단지의 낙동강 건너편인 임수동, 황상동, 구포동 일대에 제2단지의 조성을 결정하였다. 제2단지는 1977년 7월 19일에 착공하였으며, 당초에는 1980년까지 완공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공사기간 도중 경기침체와 물가상승 등으로 투자 여건이 악화되는 등 악재가 작용하면서 예정보다 10개월 늦어진 1981년 10월 10일에 일부 미조성지구를 남겨둔 채로 마무리되었다. 총 조성 비용은 114억여 원이었다. 제2단지 조성과 함께 시작된 기업 유치를 통해 금성사를 비롯해 국내 최초의 컴퓨터 생산 업체인 동양나이론과 반도체 업체 등이 입주하였다. 유치 활동에는 정부가 국민투자기금을 통해 대지매입비를 융자하고, 대도시에서 이전·입주시 법인세·소득세·재산세·취득세·등록세 등을 일정 기간 동안 면제해주는 등의 혜택을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제2단지는 1986년까지 대부분의 업체가 입주하였다. [편집] 제3단지제2단지를 조성하던 중인 1979년 5월 21일, 정부는 첨단산업의 지속적 육성과 공장 용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제2단지 남쪽에 추가로 제3단지를 개발하기로 고시하였다. 그러나 이후 불경기 등의 악재로 인해 계획이 수 차례 변경되고, 조사도 늦어져 1986년부터 본격적인 조성이 시작되었다. 제3단지는 제1·2단지의 입주 기준보다 완화된 조건이 제시되었고, 그와 함께 특혜도 축소되었다. 제3단지에는 삼성코닝, 금성사, 삼성전자 등이 입주하였다. |
첫댓글 우리 마실의 가슴아픈 역사... ㅠㅠㅠㅠ 잘 봤습니다.
고향을 잃어버린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리움이 아득~
고향의 추억을 그렇게 세밀히 묘사해 주시니 늘 놀랍고 고맙네.
친구와 함께 했던 장동, 장찰도, 그리고 장동에서 신늪 넘어가는 길이 꿈속에서나 그리고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