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공동어시장에서의 야간작업
밤 10시가 조금 지나서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차가 멈춰선 곳은 부산공동어시장. 처음에는 다음 날 새벽 4시부터
일정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새벽시장에서는 크게 할 일도 없고, 일도 그리 힘들지 않다고 해서 급히 일정을 변경했습니다.
심야에 하역작업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또 혹시라도 기자들이나 방송카마레가 몰려와서 주변 분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자원봉사 차원에서 어시장 체험을 하겠다는 순수한 의도가 희석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준비해간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고무장화를 신고 11시부터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처음 주어진 일은 양육작업으로,
생선상자를 부두로 내리는 작업이었습니다. 부두로 하역된 생선상자를 리어카에 실어서 선별작업을 하는 곳으로 나르는 일이었습니다. 한두해 농사를 지어본게 아니라서 리어카 정도야 대수롭지 않게 끌 수 있겠다고 자신했지만 생각처럼 만만한게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중심을 잘 잡지 못해 몇 번이나 기우뚱거리기도 했습니다. 조금 지나니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부두에서의 야간작업은 크게 둘로 나뉘어 졌습니다. 양육작업과 선별작업으로, 후자는 생선을 크기에 따라 고르는 일을 말합니다. 후자는 주로 아주머니들이 하시는데, 선사에서 노임을 부담한다고 합니다. 시간당 임금은 대략 8,000원 정도. 야간작업을 하는 것에 비하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분들은 아마도 저의 일하는 품새를 보고 속으로는 혀를 끌끌 찼을 것입니다.
금영 53호. 작업에 투입되었던 어선의 이름입니다. 어선은 크게 선망어선과 쌍끌이어선, 외끌이어선, 트롤어선 등으로 구분되는데, 금영 53호는 선망어선이었습니다. 3,400상자의 고등어와 잡어를 잡아서 출항한 지 이틀만에 부산항에 입항했다고 했습니다. 성어기 떄면 1만 상자의 고기를 잡아서 만선의 깃발을 내걸고 입항한다는데, 요즘은 어시장 경기도 많이 위축된 편이라고 했습니다.
경기가 얼어붙은 것은 공동어시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루 약 20척의 어선이 입항하여 10만 상자 정도의 생선이 경매에 붙여져야 그나마 일하는 맛이 나는데, 요즘은 그 절반 정도라고 합니다.
공동어시장 김형일 판매과장님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산에 밀려 일본 수출길도 막히는 바람에 더욱 애로가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삼치의 경우 1상자에 6만원 하던 것이 3~4만원 정도에 경매된다고 합니다.
1시간 반 가량이 지나 자정이 지나자 제 손에 갈고리가 쥐어졌습니다.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어선에서 부두로 운반되는 고기상자를 종류별로 분류해서 쌓는 일이었습니다. 조기, 삼치, 잡어 세 종류의 고기상자 중에서 제게는 잡어상자를 고르는 일이 주어졌습니다. 조기와 삼치는 '비싼' 생선이라서 초보자에게 맡기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습니다.
모든 일이란게 그렇듯이 욕심을 내고는 싶지만 맡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조기의 경우엔 90마리 1상자이면 40~50만원 정도이고, 200마리 1상자도 7~8만원 정도 나간다고 합니다. 반면에 사료용으로 주로 쓰이는 잡어는 1상자에 1만원도 나가지 않는다고 하니,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잡어상자라도 분류하는 일을 시켜준 것만 해도 고마웠습니다.
쌍끌이어선의 본선은 대개 바다에 떠있고 운반선만 며칠 간격으로 입항을 한다고 합니다. 제가 작업을 한 세일 69호는 운반선으로, 그날 4,300상자의 고기를 싣고 입항을 했습니다. 어획량은 성어기의 절반 정도였고, 그 중 잡어가 1,300상자였습니다.
처음에는 갈고리가 고기상자에 잘 찍히지 않고 미끄러져 몇 상자를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했습니다. 다른 분들 보기에 민망하기도 했고, 작업에 방해가 된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야간에 4시간 가량의 체럼을 통해 옷에 배인 비린내를 맡으며 땀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습니다.
일이 끝나니, 새벽 3시 무렵이었습니다. 공동어시장과 항운노조 관계자들과 악수를 하는데, 김형일 과장님이 귀한 덕담을 해주셨습니다.
공동어시장에서 30년 동안 일하면서 소위 말하는 유력 정치인들이 와서 30분 이상 실제로 일을 하고 가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다들 사진만 찍거나 방송카메라 앞에서 흉내만 내고 갔습니다. 처음에는 김 장관님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처음엔 사실 귀찮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미리 알리지도 않고 와서 새벽까지 몸을 움직여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 처음에 너무 속좁게 대한 것 같아서 오히려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2007. 1. 17
출처 :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