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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집결지 : 2009년 8월 9일(일) / 7호선 도봉산역대합실(10시)
▣ 참석자 : 12명 (기세환, 김용우, 김정남, 김종화, 나창수, 이경식, 이원무, 이재웅, 전작,
최근호, 한양기, 한천옥)
▣ 동반시 : “여름에는 저녁을 / 오규원”
▣ 뒷풀이 : 두부김치와 생맥주 및 콩국수 / “그 여자네 집”(뻐스주차장 근처)
8월은 타오름달, 하늘에선 해가, 땅 위에선 가슴이 타는 정열의 달이다.
도움쇠는 한 달만의 산행이다. 7호선 도봉산역 대합실에 10시 정각에 12인의 산사람들이 모였다. 근호가 참석하여 반가웠지만 위윤환 대장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서운하다. 집이 가까운 나 혼자만이 마을버스를 타고 모두 전철을 타고 왔다. 시간이 어김 없는 모임이다. 한 달 전에도 모였지만 그때는 폭우가 쏟아져 입산금지가 되었고 견산(見山)과 심산(心山)만 하고 노래방에서 가볍게 뒤풀이를 하고 헤어진 아쉬움이 있었는데 오늘은 맑고 화창한 날씨라 작심하고 온 듯하다.
가깝지만 마음이 급해 10분이면 가는 거리지만 40분 빨리 나오는데 동네에 오는 손님을 홀대(?)할 수 없다는 마음이 들어 이 총장에게 전화를 해서 문어를 사갈 예정인데 가져오는 산우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반색을 하며 반긴다. 그러면 5분 쯤 늦겠다고 하고 창동 농협 하나로마트에 가서 제주산 삶은 문어를 사고 나오는데 칠레산 홍어가 눈에 뛴다. 그래! 반색의 고마움에다 먹자고 하는 등산인데 홍어도 한 봉지. 홍어는 삼환표 홍어와 전작표 홍어무침이 좋았고 하나로표 홍어는 별로 환영을 받지 못 했으나 먹지 않으면 다음에 회무침으로 가져가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가 때맞춰 와줘서 5분 전에 도착. 가고 싶은 코스가 있는지 물으려는데 김종화 회장님이 지도를 나눠주면서 산행기와 시 낭송을 부탁하는데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은 잘 듣지 않아도 회장님의 말은 잘 듣는 모범생 아닌가. 일단은 거북바위까지 가서 거북바위 밑의 샘물을 마시고 자리를 펼 예정으로 힘차게 출발. 나 원장과 나의 교감이 맞지 않아 나 원장이 홍어 한 접시를 샀다. 항상 먹을거리를 많이 싸오는 고마운 산우다.
올라가는데 인산인해다. 산에서도 바다를 볼 수 있다니... 도봉산은 일요일의 탐방객이 3만 명이라는데 한국의 어느 산을 가도 이런 숫자는 나올 수가 없다. 설악산의 단풍이 절정인 10월 첫 주 입산객의 수도 실제로 이렇게 많지 않다. 산만 쳐다보고 가는 방문객과 실제 입산객은 구분되어져야 하는데 도봉산의 경우 모두 입산객이므로 참으로 대단한 수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은 항상 그렇다. 간단히 소개해보면 의정부 방향에서 시작하면 사패산과 사패능선, 회룡계곡, 송추계곡과 송추폭포, 포대능선과 Y(와이)계곡, 임 수석이 좋아하는 다락능선과 원도봉계곡, 배추흰나비봉, 말바위, 물개바위, 자운봉, 신선대, 뜀바위, 에덴바위, 주봉(柱峰), 병풍바위, 칼바위, 생태계보존구역인 도봉계곡, 용어천계곡, 거북바위와 거북샘, 오봉과 오봉능선, 여성봉, 도봉주능, 우이암과 우이남능선, 이경식 산우가 단골로 즐기는 물이 많아 계곡물이 춤추며 흘러간다 해서 무수골(舞水), 마당바위, 눈썹바위 등 명색이 별호가 도봉별곡인 도움쇠가 모르는 많은 능선과 계곡, 봉우리에 이르기까지 암릉미와 계곡미는 설악에 못지 않다는 것이 도움쇠의 생각이다.
원도봉계곡을 지나 민초샘을 거쳐 포대능선으로 오르는 길의 가을단풍은 별미다. 지하철 1.7호선이 닿는 곳이라 모든 산객이 접근하기가 쉽다. 어쨌든 난 도봉산이 참 좋다. 하여 난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가 보다. 딸들이 졸업하고 취직을 한 곳이 삼성동과 양재동이라 출퇴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애들은 그쪽으로 이사를 가자는데 난 이곳이 좋다. 그곳이 싫은 게 아니다. 불암, 수락, 북한, 도봉산. 네 산의 중간에서 20년을 넘게 살아왔다.
부동산의 투자가치는 그쪽이 낫겠지만, 산이 있는 이곳이 더 좋다. 다행스럽게 마나님도 내 쪽에 무게를 실어주니 고맙다. 친구들과 형제들이 그쪽에 살아도 이쪽을 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산행을 즐기며 산행을 건강의 방편으로 여기는 남편의 건강이 최고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애들에게 그와 같은 명분으로 설득한다.
참석회원의 수가 12명이니 인해를 이룬 상태에서는 선두와 끝이 보이지 않으면 일행을 잃기 쉽다. 어린애만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어른도 잃어버린다. 내가 향도를 맡기로 하고 갈림길마다 산우들을 챙기며 올라가면서 첫 번째 쉬는 장소로 물이 많이 흐르는 문사동(問師洞)의 너른 바위를 생각했는데 이경식 산우가 더웠는지 갑자기 작은 마당바위 부근에서 옆의 계곡으로 빠진다.
이런 과정에서 이원무 산우를 잃었다. 산객이 많아 혼잡한 산행에서는 선두에서 일행을 모두 챙기는 것이 쉽지 않다. 본인이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애들처럼 배고픈 미아가 되기 쉽다. 겨울이면 춥기까지 하다. 유의하고 조심하자. 서로 신경이 쓰이고 나중에 연락하고 기다리는 것도 민폐다. 본인이 미안해하는 것도 좋을 일이겠는가.
물가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나 원장의 홍어가 나오고 수박도 나온다. 계곡물은 차고 맑다. 땀을 식히고 천천히 올라가면서 이원무 산우와 통화를 했는데 이정표가 곳곳마다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현재의 자기 위치를 정확하게 모르니 답답하다. 관음암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거북샘에서 요기를 할 때 내려오면 10분 거리라 그렇게 하기 바랬으나 거북샘에서 다시 통화하니 내려가고 있단다.
관음암까지 가려면 능선을 하나 넘어야 한다는 멍청한 등산객의 말에 힘들어서 포기하고 내려가고 있다니 나도 맥이 풀린다. 내 말보다 멍청한 등산객의 말을 더 믿는가 싶어 서운하다. 관음암이 힘들면 주봉 아래의 사거리에서 기다리다가 내가 잘 아는 샛길로 오면 5분이면 오는데. 어쨌든 거북바위 옆의 너른 터를 잡고...
여기까지 썼을 때 김대중 전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었다.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만감이 교차하는 듯 가슴 전체가 아려왔다. 누구나 그 분에 대한 소회가 없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학교의 선배이다. 그 분의 공과에 대하여는 말들이 많지만 국장기간에는 묻어두고 추모하자. 사람은 누구나 오고 간다. 거인도 오고 가지만 우리 같은 소인에 비해 그들의 족적은 오래 기억된다.
내가 아는 고교 선배 한 분은 음주가무의 시간에는‘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한다. 그는 이 노래를 그 분의 ‘성가(聖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이 노래가 그 분과 관련된 노래라고 굳게 믿고 있기에 그러는 것이다. 그 분에 비해 나는 너무 좁게 살았다는 자괴감에 쌓여 있다. 왜 좁아터진 한반도에서 머리 터지게 싸우고 살았는지, 건설업만을 고집하고 살았는지 후회스럽다. 해외로 나가서 포부를 맘껏 펼치고 살았어야 했다.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도 진출했어야 했다. 백의종군의 심정으로 다시 시작하련다.
싸 온 문어와 안주거리, 각종 과일들을 펼쳐놓고 즐거운 덕담들이 오고 간다. 기 전회장은 자기가 회장였던 시절에도 내가 상왕처럼 행동했다고 불만어린(?), 그러나 결코 밉지않는 조크를 자주 하나 내 기억은 항상 그의 의견을 존중했다고 기억한다. 나의 지나친 자신감과 말투 등이 그의 눈에 그렇게 비춰졌나 보다. 나도 반성할 테니 이제 그만 노여움을 푸소서.
먹으면 내려간다는 불문율이 오늘도 발동한다. 나는 관음암까지 올라 도봉의 연봉을 보여줄까 했는데 오늘은 여기서 접어야했다. 읽기, 쓰기, 말하기에 서툰 나의 시 낭송에도 마지막 박수는 나온다. 산행기를 쓰면서 생각하니 단체 증명사진을 찍지 않았다. 이원무 산우가 없어서 성원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모두의 가슴에 있었나 보다.
오던 길로 내려가서 뒤풀이장소를 물색하는데 배부른 고기 종류보다 두부김치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자는 의견에 마침 내가 아는 시원한 집이 있어 그리로 안내했다. 이름하여‘그 여자네 집’이다. 그 여자가 누구냐고 한양기 산우가 묻는다. 그 여자는 외출했고 이 여자만 있다고 아주머니가 답한다. 아주머니는 하도 그 물음을 많이 들었는지 거침 없이 답이 나온다.
한양기 산우는 오늘 도봉산행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뒤풀이 장소만 마음에 든다고 아주머니에게 아첨(?)을 부리는데 산행을 주도한 집행부가 민망하고 미안한 마음이었을 거다. 어쨌든 어렵지 않게 산행을 마무리 하고 일찍 집에 오니 마나님이 반색하며 반긴다. 역사상 가장 빠른 귀가라고. 덕분에 가족 모두 즐거운 만찬을 즐겼다. 고맙다! 산우들아 오늘 하루도 즐거웠다.
다음 번 제116회 산행은 삼성산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삼성산은 여러 번 가본 곳이라 산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고 가을의 첫 자락에서 오르는데, 오늘 이재웅 산우의 전갈에 의하면 참석회원이 적다고 걱정이다. 지난 불암산행 때 6명이 최저였는데, 이번에는 신기록을 세울 것 같단다. 항상 헌신적으로 애를 쓰는 그를 위해서라도 많이 참석하기 바란다. 도움쇠는 처가의 제사풍습에 따라 갈 수 없는 형편이다. 그들은 제사를 낮에 산소에서 지내는 풍습이 있다. 제사 자랑이나 제사 흉은 보지 않는다지 않는가. 동서들 중 유일하게 고향이 같다고 나를 아껴주시던 장모님의 기일이니 필히 참석해야 한다. 김 회장님과 이 총장에게 미안하다. 즐거운 산행이 되시길 빌면서...
< 2009년 8월 20일 김정남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