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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존 왓슨은 훗날 그의 목회를 돌아보는 회고담에서 "오늘까지 내가 목사로 일하며 계속 설교할 수 있었던 것은 성도들의 사랑과 온유함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창립 3주년 주일을 맞아 부족한 자신의 목회함을 보아도 돌아보면 감사요, 감격이요,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무르익지 못한 말씀 선포에도 귀 귀울여 정성을 보여 준 성도님들의 인내와 온유함 덕분입니다.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믿음 하나로 걸어 왔던 지난 3년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성경에 있는 말씀대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도록 지켜주시며 이만큼 부흥케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또한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을 생각하며 지금 심경은 한분씩 업어주고 싶기도합니다. 지난 3년간 저는 여러분 안에서 다른 마음을 보았습니다. 돌아보면 92년도 진주에서 목회를 시작하여 십년을 한 것 보다 지난 3년에 더 많은 사랑을 여러분을 통해 구체적으로 받았습니다. 지난 주일 지나온 3년을 생각하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빈손으로 시작 하듯 아무도 없는 이 지하 공간에 집사님 기도하신 것처럼 믿음 하나로 시작했는데 하나님은 과분하게 넘치도록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지난 주 두장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하나는 우리교회 집사님 편으로 온 우리 교회가 매월 선교후원을 하고 있는 선교 편지입니다. 주위분들과 함께 나누기를 부탁해서 이시간 요약해서 전합니다. “ 주님 귀하신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을 섬길 수 있는 축복을 받은 이미경선교사입니다. 지난 번에 주신 도움 정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중략) 요즘은 흑인이면서 흰색 피부병을 가진 피터 소년을 위해 중점적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심장에 구멍이 뚫여 생명이 위험한데 수술비가 450만원이나 들기에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일단 입원시켰습니다. 뒷일은 아버지께 맡기고 수술을 시킬 것입니다. 피터가 주님을 영접한 후에 거리마다 병원마다 다니면서 자기가 만난 예수를 증거하여 그를 통해 구원 받은 무리가 다수인데 모두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해 주실줄 믿고 기도제목을 보내드립니다. 주위분들과도 이 소식을 나눠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기도 내용은 피터의 수술에 관한 모든 일들이 주님의 손길로 순적히 인도되되며 고아들과 함께 생활하며 양육하는 4군데 공동체인 쿠리시니, 우봉고, 음난디지, 쎈터에 거하는 40-50명의 청소년들의 영적성장을 위하여, 그리고 온 식구가 성령에 민감하고 충만하여 날마다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탄자니아 디르살렘에서 이미경 올림”
여러분께서 선교 헌금을 매달 매달 약속대로 주님께 드려서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며 나타내는 귀한분과 우리 교회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며 자부심마져 생깁니다. 우리가 선교하는 아프리카 탄자니아 이미경 선교사님의 가족과 사역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하나의 편지는 우리교회 20대 청년이 예배 후 주머니에 쑥 집어 넣어주은 것인데 제가 읽기가 좀 쑥스럽긴 해도 교회를 사랑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이 있고 또한 온유하심으로 들어주시는 여러분을 생각하며 읽어봅니다. “하나님의 영광중에 함께하신 목사님.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가 벌써 세 살이 되었네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것이 어려운 요즘 나날이 풍성해 지는 영은교회와 이끄시는 목사님을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삼년간 목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 삼십년 사십년 늘 함께해 주시고...(중략) 금식 하시는 동안 빈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채워짐을 믿습니다. 아자 아자 목사님 파이팅!!! ” 청년들이 취업하기도 어려운 때임을 보면서 교회를 이처럼 인자와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도하며 감사드리는 내용이라 더욱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리고 가만히 계산해 보니 앞으로 사십년을 함께하려면 곧 오십이 가까운 제가 장장 구십세까지 장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교회는 오케스트라와 같습니다. 믿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봉사도 헌신도 물질드림도 다양합니다만 한분 한분의 헌신이 모여 함게 주님을 높이고 자랑하고 사랑하는 연주를 해 냅니다. 한분 한분이 얼마나 귀하신지 모릅니다. 한문에 때론 깊은 철학이 숨겨져 있습니다. 말씀言자와 알知자의 반대말이 행할行자입니다. 언행이 일치됨을 향하여 자라가는 것이 인생 과정입니다. 지행합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파스칼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라고 말했습니다. 성경 역시 체험적인 앎, 삶으로 깨닫고 경험되어진 앎을 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행복은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디자인 되어 있습니다. 선한 삶을 마음먹었는데 그대로 살지 못하면 화나 자증이 속으로부터 생기기도 하고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인생은 일생동안 공사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몸에 삶으로 이루어 가는 과정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일평생 함께 지어져 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힘으론 안됩니다. 우리 인간은 태초에 하나님의 사랑을 져버리고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점점 멀어졌습니다. 아담의 마음에 평안이 깨어지고 두려움과 불안이 찾아 왔습니다. 삶의 권태가 오고 외로워졌습니다. 능력이 떠났습니다. 사랑이 점점 식어갔습니다. 기쁨을 잃어버리고 우울해졌습니다. 모든 슬픔과 저주가 찾아 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립지만 에덴엔 화염검이 쳐 있고 다시 들어갈 수 가 없었습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있는 땅을 경작하며 죄짐을 지고 고통가운데 살았습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사랑이 점점 줄어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문명의 발전이 왔지만 사랑이 없으니 모든 것이 없었습니다. 노아 시대가 그 절정기였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포악해졌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전혀 없는 인간의 죄 때문에 동물들과 기식하는 모든 것들까지 물로 심판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에 오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을 다 베푸셨습니다. 마지막 심판만 남았습니다. 2000년전 예수님은 이미 그때를 말세라고 말씀하시며 음란하고 악한 노아시대와 같은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타락한 땅에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친히 육체를 입고 하나님과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시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슬픔과 저주를 몸에 지고 십자가를 홀로 지셨습니다. 사랑이 없어 광야에 불뱀에 물려 영원히 죽게 된 인간에게 주를 바라보는자 마다 하늘로부터 거듭나는 살길이 열렸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위로부터 부어졌습니다. 충만했습니다. 믿는 자의 심령속에 사랑이 다시 부어졌습니다. 사랑은 힘이요 능력입니다. 죄악된 땅의 모든 슬픔과 절망을 이길 수 있는 힘입니다.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만남이 성령 안에서 다시 재기되었습니다. 예수 없이는 살수 없지만 예수님만 나와 함께 하시면 이 세상 어디에 갈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놀라운 힘이 심령들 안에 불길 같이 일어났습니다. 사랑만 있으면 모든 것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빼앗겨도 사랑만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으로 지음 받았기에 사랑 안에서 평생을 살아야만 참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오늘 본문에 주님의 중요한 명령은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이 위대한 본문을 다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 아가파테 알레루스”로 아가페 사랑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이기적이요 정욕적이요 탐욕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입니다. 주님의 사랑이요, 성령의 능력에 붙잡힌 사랑이요, 하늘사랑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바로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라는 말씀입니다. 많은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서로 무조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조건부 사랑이 아닌 무조건의 사랑 이것이 저와 여러분에게 분부하신 새 계명입니다. 구약의 사랑은 율법적인 사랑입니다. 그것은 전부 조건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형제의 허물을 일흔번씩 일곱 번까지 용서하는 것이 새 계명이요 새로운 사랑입니다. 사랑에 이유를 붙이지 않습니다. 그냥 무조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저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그분의 마음이 부어지며 그분의 영이 우리 안에 인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사랑이 나와야겠습니다. 그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여러분과 여러분 사이에 조건부 사랑이 자리 잡지 못하게 하고 무조건적인 아가페의 사랑이 넘치시길 축복합니다.
이 사랑은 먼저 사랑입니다. 너희가 서로 먼저 섬김으로 서로 사랑하라. 내가 누군데 이렇게 대우하는가?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이십니다. 하나님 사랑은 언제나 먼저 사랑입니다. 원수에게도 가까이 다가 가십니다. 말구유 밖에 못드려도 다시 하늘로 올라가지 않으시고 죄인들을 위해 기꺼히 피를 흘리시기 까지 오래 오래 참으시는 사랑입니다. 저는 지난 3년간 부족한 종과 우리 모두에게 한분 한분의 믿음의 동역자들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삶의 현장에 찾아 오셔서 필요를 채워 주시며 먼저 사랑으로 베풀어 주신 하나니님께 감사를 드립니다.개인적으로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께서 서로의 마음을 연락하고 잇대어서 우리의 손을 들어 주시고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무슨 자격이 있어 받은 것도 아닌 오직 주님의 먼저사랑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불변적인 영원한 사랑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랑은 가다가 변하고 없어져 버립니다. 성도 중에는 금방 좋아 못살다가 조금 지나면 금새 시들해 지기도 하는 영 종잡을 수 없는 애인형의 사랑이 있고 옛날 아씨처럼 온갖 고난을 함께 지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즐거워하며 자기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부인형 사랑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하여 쏟아 부어지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은 작아지지도 아니하며 중단되지도 아니하며 영원히 변하지도 않습니다. 빌1:6절 영원히 불변하는 말씀처럼 저와 여러분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합니다. 또한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그분께서 히 13:5절 말씀처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도 아니하고 떠나지도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될 줄 믿습니다.
인간의 불행이 어디에서 옵니까? 이 하나님의 사랑이 줄어들 때 온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로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탐욕의 인간 사랑이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과 멀어지는데서 기인합니다. 하나님 멀어지면 하나님 사랑에서 멀어집니다. 사랑의 공급을 받지 못하면 인간은 점점 이기적인 사랑을 하게 됩니다. 정욕적 사랑입니다. 교만한 사랑입니다. 남을 무시하고 자기만을 사랑하게 됩니다. 관계가 어려워집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이 생기며 반목 질시하게 됩니다. 변질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여 죄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힘조차 잃은 상처뿐인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려 하나님께서 사랑을 시작하셨습니다. 에덴에선 직접 아담을 사랑하시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제 2의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 안에서 상처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주님은 다리가 죄어 주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안고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연결되지 않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자신을 밟고 가도록 흙과 같은 삶을 살으셨습니다.
선배 목사님이 그 말씀을 하셨는데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주님처럼 누가 밟으면 밟히면서 목회하라는 것입니다. 즐거히 기꺼이 져주고 밟혀주며 겸손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보시다가 반드시 때가 되면 높이고 높인다는 것입니다. 인터넷 자유게시판에 참 겸손은 흙과 같다는 내용을 보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제목이 “내가 알게된 참 겸손”입니다. “겸손은 땅처럼 낮고 밟히고 쓰레기까지 받아들이면서도 그곳에서 생명을 일으키고 풍성하게 자라 열매 맺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더 놀란 것은 그동안 내가 생각한 겸손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나는 겸손을 내 몸 높이로 보았습니다. 몸 위족이 아닌 내 발 마큼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겸손은 내 발이 아니라 그 아래로 더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밟히고, 눌리고, 다져지고, 아픈거이 겸손입니다. 그 밟힘과 아픔과 애태움속에서 나는 쓰러진채 침묵하지만 남이 탄생되고 자라 열매 맺는 것입니다. 겸손은 나무도 물도 바람도 아닌 땅이었습니다.”
사람은 서로의 삶을 보고 자신의 인생을 공사해 갑니다. 상대의 행복을 보고 행복을 배우고 상대의 죽음을 보고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바울의 인생은 스데반의 순교적 죽음 앞에 꽃 피워낸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도 날마다 교회로 인해 눌림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면 아프고 병이납니다. 겸손의 생은 흙과 같아서 온갖 생명을 피워냅니다. 이것이 영적 법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던 사람을 쓰시기 전에 먼저 밑바닥으로 끌어 내립니다. 택함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430년 종살이를 경험하고야 출발했습니다. 모세의 40녀을 과야야의 무명을로 낯추었습니다. 낮아지고 처절해진 삶을 원망하지 않고 견뎌내면 마침내 복이 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고난을 당하시고야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그분께 무릎꿇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만 붙들면 삽니다. 그분의 겸손과 온유를 날마다 옷입는 저와 여러분이 되십시다. 그분이 그 흘리신 보혈의 피가 나를 정결하게 하고 깨끗하게 할 때 우리는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사랑이 떠나가고, 우거진 이 잡초 같은 이 잘못 된 사랑을 다시 정결하게 태워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음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양들의 문이라 했습니다. 인간의 죄로 인하여 모든 문이 닫혔을 때 주님이 오셔서 하늘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분이 서로 변하지 말고 우리 안에 계신 그분 사랑으로 인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우린 안되지만 그분이면 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그분은 하십니다.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 갈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신다고 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자 안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분 사랑으로 개척교회가 안되는 시대, 사람들이 큰 교회로 몰려드는 수평이동하는 추세에도 지하에서 비상할 수 있는 희망을 갖도록 이만큼 바퀴와 날개를 달아 주시고 계신 주님게 감사드립니다. 개척 3-5년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시기에 하나님께서 구심점을 만들어 주셔야 한 계단을 힘있게 올라갈 수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세상을 보면 참으로 점점 소망이 없습니다. 주장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느 하나 온전한 주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 분쟁하고 고통하며 싸웁니다. 이 세상 판단도 온전하지 않습니다. 해아래 세것이 없습니다. 지난 것이 다시옵니다. 인간은 바른 말만 하면 죽습니다. 기쁨이 죽고, 사랑이 죽고, 기분이 죽고, 무엇이든 죽습니다. 율법 율법 율법으로 인간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가 필요합니다. 사랑이 없는 자리에 의가 들어가게 됩니다. 정의라고 하는 것은 사랑이 없는 곳에 들어가서 온 생명을 고달프게 합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때 생명이 살아납니다. 가정도 교회도 민족도 회복됩니다. 인간은 도대체 사랑이 아니면 안통합니다. 모든 것의 근원이 사랑이며 거기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 사랑으로 사랑하면 성령 안에서 큰 소통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사랑은 변질되었지만 지금도 주님의 사랑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 생명력과 능력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놀라운 사랑입니다. 그 사랑으로 저와 여러분을 오늘도 사랑하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이 놀라운 진리, 이것은 영원한 생명이요, 기쁨이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우리 모든 인류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제 그분을 우리 구원의 주인으로 믿는 자는 혈동이나 육신으로 난자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난자가 되어 영원한 믿음의 반열에 속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가장 굳센 힘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 권세를 포기하고 인간에게 온유와 겸손으로 다가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힘입어 우리의 교만을 버리고 그의 사랑을 받아 들여 우리 마음 속에 사랑의 불꽃을 타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우리 뜻대로 살지 못합니다. 그분의 뜻을 묻습니다. 자원하여 헌신을 다짐하고 그분을 섬깁니다. 때론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며 그분과 함께 고통 당함을 선택합니다. 더 이상 힘으로 살기를 거부합니다. 우리 마음에 그분의 마음이 들어와 있기에 날마다 깨어 있는 영혼들은 성령의 강한 이끌림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증오와 잔인함 그리고 인간 이기심을 쳐부수고 승리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사랑이 있습니다. 교회에 하나님이 계시면 사랑이 있습니다. 가정에 하나님이 계시면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댓가를 지불해서라도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며 그분의 복의 통로, 은혜의 통로가 되기에 전력질투 해야만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는 사랑의 살을 살며 결코 마침표가 없는 그 영원한 사랑을 평생 노래하게 됩니다. 믿음도 떨어지고 소망도 끝나지만 사랑은 저 천국에 가서도 영원합니다.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은 인간이 들고 실천해야 할 가장 근원적 축복입니다. 찬송가 373장에 나타난 것처럼 교회나 가정이나 이 세상이나 “예수사랑” 나타내지 않으면 모두들 실망입니다. 사실 교회에서 아가페사랑을 하지 않으면 이미 본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인간 세상은 말씀 아래 놓여 흘러 가고 있습니다. 큰 물줄기를 인간이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세상은 점점 살기 힘든다는 표현에서 살기 무섭다는 세상으로 변해 갈 것입니다. 참 사랑 아가페적 사랑이 인간 안에서 식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든 인류 개개인과 모든 공동체는 예수님을 찾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찾습니다. 사랑은 불과 같습니다. 불 가까이 생명이 모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위해 살면 그분 사랑으로 우리는 거뜬히 이 땅의 삶을 이기며 건너갑니다. 예수님이 사랑입니다. 에수님을 높이고 그분을 자랑하고 그분을 뜨겁게 사랑할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송명희 시인의 시처럼 “예수를 위해 죽으면 그분으로 인해 살고/ 예수를 위해 잃으면 그분으로 인해 찾으며/ 예수를 위해 수고하면 그분으로 인해 상을 받고/ 예수를 위해 가난해 지면 그분으로 인해 부요해 지며/ 예수를 위해 고난을 받으면 그분으로 인해 영광을 얻게 됩니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하십니다. 그러나 또한 주 안에서 성령의 능력을 입은 성도들을 통해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도록 하십니다. 아가페 사랑입니다. 모든 인간은 바로 그 사랑에 목말라 있습니다. 예수님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바로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 명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인간의 이기적이요, 정욕적이요, 탐욕적인 사랑이 아닌 무조건적이며 기꺼이 자신을 내어 주는 먼저 사랑이며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분 사랑 만이 승리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 아래 서서 참된 그분의 제자로 나아가기에 우리 모두 주님 오시는 날까지 우리 자신의 사랑을 부인하고 그분이 말씀하신 바로 그 사랑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3년간 부족한 저희가 주님의 일하심을 목도할 만큼 이처럼 사랑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의 사랑은 늘 이기적이고 정욕적이며 탐욕이 넘치는 사랑입니다. 오늘도 이 사랑을 거부하고 저희 안에 계신 주님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게 해 주십시오, 무조건적이고 먼저 사랑하며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으로 이 힘든 세상에 주님 사랑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편지 되길 원합니다. 저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를 통해 주님이 드러 나시면 모든 것이 변하고 충만함을 누리며 행복해 질 줄 믿습니다. 저희를 허물고 심령마다 가정마다 교회마다 주님을 세우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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