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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산행기
*산행일자:2007. 1. 14일
*소재지 :충북단양/경북영주
*산높이 :1,439미터
*산행코스:천동매표소-민배기재-비로봉-연화봉-희방사-희방매표소
*산행시간:9시50분-16시(6시간10 분)
해발 1,400미터가 넘는 소백산을 오르내리고 나서 양지와 음지를 나누는 햇빛보다 더 극명하게 겨울 산을 추운 곳과 따스한 곳으로 가르는 것이 바람임을 알았습니다. 민배기재에서 비로봉에 올랐다가 다시 민배기재를 거쳐 연하봉에 이르기까지 2시간 남짓한 산행은 시베리아의 한기를 실고 남하한 북서풍이 능선 오른 쪽에서 세차게 불어와 바람막이가 전혀 없는 평원 길을 걷는 동안 엄청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능선에서 왼쪽 아래로 난 반대편 길은 바람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데다 남중한 태양이 한낮의 햇살을 고스란히 비춰주어 잠시 쉬면서 오수도 즐길 수 있겠다 싶을 만큼 따뜻하고 안온했습니다. 양지와 음지의 따뜻한 정도 차이는 바로 기온의 차이만큼만 느껴지지만 바람은 몸에서 열을 뺏어 가버리기에 바람 부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에서 느끼는 차이가 실제의 온도차를 훨씬 뛰어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화작가 이솝이 진작 저와 함께 한 겨울에 소백산을 올랐다면 태양보다 바람의 위력이 더 강한 곳도 있음을 배워 그의 우화내용 일부를 개작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우리의 감싸주는 햇빛정책에도 혼내주는 바람정책이 일부 가미되어야 보다 효과적이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같이 들었습니다.
아침9시50분 천동매표소에서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국립공원 직원들이 매표소입구에서 돈을 받는 대신에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를 건네 온 것은 올 들어 국립공원입장료가 없어지고 나서 시작된 새로운 변화로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없기에 정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매표소에서 천동쉼터에 이르는 길이 넓고 경사도 완만해 설산 산행을 즐기고자 소백산을 찾은 많은 분들이 오르내리가 편안했을 것입니다. 천동교와 신선교, 그리고 다래교 등 목재로 만든 예쁘장한 다리 6곳을 건너면서 이 다리들이 설원의 비로봉을 오르는 관문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0시34분 다래덩굴쉼터를 지났습니다.
천동계곡에 다소곶이 내려앉은 하얀 눈을 보고 직전에 하늘에서 정신없이 흩날렸을 흰눈을 연상하기 힘들었던 것은 현존하는 최적의 질서에서 지나가버린 최고의 무질서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아서였습니다. 계곡에 소북이 쌓인 눈과 하늘 높이 치솟은 낙엽송들에게서 한 겨울에도 제 자리를 지키는 우리 산하의 질서를 보았으며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계곡 물이 겨울 속에 숨어 있는 봄의 소리를 전해주는 이 자연의 순리도 함께 읽었습니다. 먼저 이 길을 밟은 사람들이 다져 놓은 눈길을 걸어 오르는 동안 막 쌓인 신설을 밟는 삽상함을 느낄 수 없었지만 뽀드득하고 나는 눈 밟는 소리가 어렸을 때 눈 덮인 시골 길을 걷던 때처럼 여전히 듣기에 좋았습니다.
11시17분 천동야영장에서 공원직원 몇 분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40대의 남자분과 20대의 남녀 젊은이들 모두 3명이 한조가 되어 산 오름에 나선 듯 했습니다. 이분들이 제일 애를 먹는 것이 공원 안에서 불법으로 취사를 하는 사람들을 단속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자, 산 속에서 취사를 금한지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삼겹살을 구워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 믿기 어려웠던 점은 소백산 국립공원 안에서는 어디서고 숙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당연 이곳 천동야영장도 폐쇄되었고 1977년 여름에 하룻밤을 머물렀던 국망봉에서 초암사로 내려서는 길의 석윤암도 바위 장 아래 잠자리를 모두 없앴으며 비로봉 바로 아래 건물도 주목감시초소일 뿐 잘 수가 없다 합니다. 설악산이나 지리산과는 달리 정상에서 산 밑까지 내려가는 모든 하산코스가 짧아 굳이 산속에서 자야할 이유가 없어서라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모든 산객들은 그저 얌전하게 이 산을 다녀만 가고 다른 짓은 일절 하지 말라는 데 있는 것 같아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소백산 옹달샘을 지나 나무계단 길에 오르자 소백산과 맞닿는 능선의 하늘이 질리도록 새파랗게 보여 냉기가 더할수록 겨울하늘이 더 파랗게 보이는 까닭이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12시35분 해발1,439미터의 비로봉에 올라섰습니다.
소백산 정상봉인 비로봉을 오르기는 이번이 여덟 번째지만 계속해 오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 산이 백두산을 닮은 작은 백두산인 소백산이기 때문입니다. 금강산을 흉내 낸 소금강은 도처에 즐비한데 소지리산과 소설악산이 하나도 없는 것은 선조들의 상상력의 빈곤에서 오는 또 하나의 쏠림현상이라고 생각해왔던 제가 지난 가을 한남금북정맥을 종주하다가 음성에서 소속리산을 만나 기쁘고 반가웠습니다. 그렇다면 백두산을 닮은 소백두산도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소백산이 바로 그 산이겠다 싶었고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이 함백산과 태백산을 미리 만들어 보았기에 소백산을 작은 백두산으로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겠다 싶었습니다. 이제껏 중국령 백두산의 연봉들을 서파능선을 따라 한번밖에 오르지 못한 제가 소백산이 백두산의 어디를 어떻게 닮았냐고 물어온다면 대답이 궁할 수밖에 없지만 백두산은 워낙 큰 산이기에 소백산이 닮은 백두산의 능선과 골짜기가 어디엔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최고봉인 백두산이 남녘땅에 자기를 닮은 소백두산을 하나도 만들지 않았대서야 어디 영봉으로 대접받을 수 있겠느냐 싶어서도 더욱 그러했습니다.
민배기재에 오르자 그동안 잠잠했던 바람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무섭게 휘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집 떠날 때부터 각오했던 바람이라 얼굴가리개등 단단히 채비를 한 덕에 견뎌낼 만 했습니다만, 전망이 뛰어난 정상봉인 비로봉에 올라섰어도 카메라가 얼어붙어 아무 것도 담아낼 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비로봉을 오르는 평원 길이 하얀 눈이 설화를 꽃피우는 설원이었으면 참 좋겠다는 기대를 안고 정상을 올랐지만 올 들어 한번도 큰 눈이 내리지 않아 작년 1월 덕유산을 오를 때보다 설량이 훨씬 적고 눈꽃도 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오름 길에서는 비스듬히 바람을 등지고 걸어 그래도 견딜 만 했는데 내림 길은 바람을 안고 가게 되어 정말 살을 에는 듯 했습니다. 입추의 여지없이 빽빽이 들어선 산객들로 주목감시초소안에서 틈 비비고 들어앉아 점심을 먹는 일이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아 포기하고 바로 밖으로 나와 연화봉으로 향했습니다.
12시46분 민배기재를 막 지나 작은 바위가 바람을 막아준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방금 지나온 비로봉 아래 평원 길이 지옥이었다면 이 곳은 지상낙원을 방불해 어서 빨리 자리비우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여러 분 있어 서둘러 점심을 들고 자리를 떴습니다. 점심 식사 중 벗었던 얼굴가리개를 얼마 가지 못해 다시 쓰고 나자 안경에 입김이 서려 결국에는 안경을 벗고 맨눈으로 1시간여 걸었는데 북서풍을 막아줄 바람막이가 전혀 보이지 않는 철쭉단지의 평원 길을 걷기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오름길에서 유난히 힘들어하는 한 후배는 강풍까지 더해진 이번 산행이 녹록하지 않은 듯 제1연화봉을 오를 때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13시40분 해발1,394미터의 제1연화봉 바로 아래 고개 마루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안부로 내려서는 계단 길 중간의 데크에서 되돌아본 비로봉이 그리 멀게 보이지 않아 희방사를 출발해 오름길의 이곳에서 바라다보았을 때 엄청 멀게 느껴졌던 4년 전과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마지막 삭풍은 안부에서 끝났고 연화봉으로 오르는 길은 그리 바람이 세지 않았습니다. 제우스신이 공들여 입혀준 하얀 눈옷이 모진 바람에 모두 벗겨지는 아픔을 참아내며 온 몸으로 삭풍을 막아준 벌거벗은 나목들 덕분에 봉우리 에돌기가 평원 길 걷기보다 한결 수월했습니다.
14시30분 해발1,383미터의 연화봉에 올랐습니다.
한동안 못 뵈었던 반가운 산악회 회원 분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나서 속주머니에서 체온으로 따뜻하게 덥힌 카메라를 꺼내 먼발치의 비로봉을 간신히 잡았는데 이 커트가 유일한 비로봉 사진이었습니다. 왼쪽으로 내려서는 하산 길이 급한데다 양지바른 능선 길은 눈이 거의 다 녹아 질퍽거렸지만 얼굴가리개를 벗고 안경을 다시 써 비로소 제 눈을 찾았기에 발걸음을 내딛기가 훨씬 쉬웠습니다. 연화봉 출발 40분 후에 다다른 희방깔닥고개에서 희방사로 하산하는 길은 경사가 더 급했습니다. 대부분이 돌계단 길이어서 조심해서 내려서느라 희방사에 다다르기까지 20분이 걸렸지만 천동계곡을 따라 오르며 보지 못한 장송들을 만나보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15시30분 신라의 고찰 희방사에 다다랐습니다.
6.25 전란 중 두건대사가 창건한 희방사 건축물이 소실되는 것을 지켜봤을 희방폭포는 자연이 빚어낸 비경을 아무런 손상 없이 그대로 간직해와 영남 제1의 폭포로 자리매김했음을 보고 예술은 유한하고 자연은 무한함을 배웠습니다. 창건한지 천사백년이 다 되가는 희방사와 바로 아래 높이 28미터의 희방폭포를 카메라에 담는데 또 다시 성공했습니다. 차도를 제켜놓고 탐방로를 따라 하산하면서 계곡을 덮은 하얀 눈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바위에 단단히 들러붙은 눈들을 웬만한 바람으로는 떼어내기가 불가능할 것이고 오로지 따뜻한 햇볕으로 녹여내야만 가능할 것으로 보여 역시 태양이 바람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6시 즈음에 희방매표소에서 하루산행을 끝냈습니다.
천동매표소를 지날 때 이제껏 박스 안에서 표를 팔아온 분들이 밖으로 나와 산객들에 아침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붕어빵에 붕어 없다고 누구하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듯이 얼마고 시간이 지나면 매표소에서 표를 팔지 않는다고 의아해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 분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이산을 찾는 이들에 표 대신에 정상등정의 꿈을 판다면 희망매표소로 이름만 바꿔달고 매표소는 그냥 놔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대했던 눈꽃들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소백산 특유의 칼바람에 정신이 번득 들어 긴장됐던 하루였습니다. 산본으로 돌아와 긴장 속에 하루 산행을 무사히 마친 후배친구와 함께 자축하는 술 몇 잔을 나누었습니다. 가슴속에 품고 온 소백산의 칼바람도 술잔 속에서는 찻잔의 태풍에 불과했기에 맥주 몇 잔으로 따뜻하게 가슴을 데울 수 있었습니다.
첫댓글 후배님 소백산에 다녀 오셨네요 웬만하여선 엄살떨지 않으실 후배님 글 읽으며 아마도 엄청난 삭풍이 모처럼 다시 찿아간 산님들을 고생을 시킨듯 합니다 정말 후밴님 산행기 읽을때면 늘 부러움이 있어요 어쩌면 그리도 글을 자연의 섭리와 조화 시켜 가면서 자연스럽게 훌륭한 글을 탄생을 시키고 있는지 늘 감탄 감탄의 결정체라는 생각을 합니다 바람이 태양보다 그 위세가 한 수 아래라는 이야기도 좋았고 그 몰아친 소백산 태풍을 방불케한 바람도 지인분과 함께 나누는 맥주잔 안에서 맥주잔 안의 태퐁에 불과하다는 말씀이 넘넘 좋습니다
후배님 이렇게 블러그 개설 하여 놓으시니 넘넘 편안하고 좋습니다 종종 놀러 올께요 그런데 기왕이시면 이곳 블로그에 사진 올리는것은 너무 편안하니 사진 몇컷 정도는 함께 싫어 주시면 더욱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늘 즐산 안산 이어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