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내가 잡았던 우리 엄마의 손은 여느 엄마와 마찬가지로 곱고 예뻤다. 그 고운 손으로 우리들 머리를 곱게 빗어주시고 어루만져 주시기를 좋아했던 어머니.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지난날의 일일뿐이다.
단단한 돌맹이처럼
혹은 질긴 고목나무의 껍질처럼.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가뭄에 땅이 갈라진 것처럼.
지진으로 땅이 움푹 패인 것처럼.
여기저기 온통 갈라진 손.
움푹 패여 들어간 손. 이것이 지금의 우리 엄마 손이다.
손가락 마디마다 굳은살이 박혀 보기만 해도 징그럽고, 만지면 나무껍질처럼 거칠거칠하고, 전혀 여자의 손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아니, 전혀 여자의 손이 아닌 우리 어머니의 손에 대해 별 생각 없이 지내던 어느날 어머니의 손에서 고생의 흔적을 발견하기 시작하였던 것은 철이 든 요즘에 들어서다.
우리 어머니의 그 손은 항상 따뜻함과 정성이 가득 들어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손이었다. 지금도 따뜻함과 정성이 가득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시는 것은 변함이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의 손이 옛날과 많은 차이가 날뿐이지 그 손은 여전히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의 손이다.
그 분의 새까만 손과 나의 하얀 손을 바라보면서 나는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곤 한다. 어머니의 거칠어진 손을 한참 바라보고 마음 아파해 있으면 어느새 내 눈에는 눈물이 괴여 주책없이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어색함을 모면하려는 마음에서 나는 어머니께 수없이 질문을 한다.
" 손이 왜 이리 변했어. 손이 왜이리 거칠어. 로숀 좀 바르지? 손톱 손질도 좀 하고……."
내가 수없이 똑같은 말을 반복해 질문하여도 어머니는 대답이 없으시다.
우리 엄마는 사정상 아빠와 헤어지시고 우리 육 남매를 혼자 키우신다. 우리 육 남매를 키우느라 여러 힘든 일도 마다 않으시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맨 손으로 시멘트도 만지시고, 벽돌도 날으시고. 남자들이 한다는 막노동 등 무슨 일이든 닥치는대로 덤비신다. 어머니는 이제 여자로서의 인생이 아닌 집안의 가장으로, 엄마로 모든 역할을 다해내느라 오늘도 쉼이 없으시다. 그런 어머니의 생활의 흔적이 손을 그토록 낡을 대로 낡아버리게 했다는 걸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어머니의 고우셨던 손이 하루하루 망가지실 때마다, 우리 육 남매의 성장 또한 날로 더해가고 그 때마다 많은 뒷바라지를 해야만 하는 어머니는 더욱더 힘들어 지신다. 이제는 어머니를 편히 쉬게 하고싶은데……. 정말 이제는 어머니의 손을 더 이상 망가지게 해서는 안되는데…….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장애물이 우리인 것 같아 매우 죄송스럽다.
사실 한 때 나는 어머니의 손과 친구 어머니의 손을 비교하면서 어머니의 손이 친구들 앞에 무심코 보여질 때마다 잘 안보이는 곳 어디론가 숨기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그리고 엄마를 미워했다. 굳이 저토록 극성스럽게 일하지 않아도 먹고는 살수 있을 텐데 엄마의 지나친 욕심이 미웠다. 꾸밀 줄 모르는 외모로 항상 머리는 부시시한 아줌마 퍼머, 땀내 나는 몸배바지, 손톱에 끼인 까만 때 등. 이런 것들에대한 불만으로 나의 언행은 늘 퉁명스러웠고, 이런 나의 행동을 어머니는 결코 너그럽게 봐주는 법이 없다.
"너는 맏딸이니까. 항상 어른스럽고, 마음이 넓어야한다. "는 이유로 무섭게 매를 드시며 나의 이런 행동에 대해 이해하려들지도 않으시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새 울기도 했다. 늘 어수선한 우리 집. 먹을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듯한 우리 동생들. 그 속에서 맏딸의 역할을 강요받으며 자라는 나의 생활은 불편하고 원망 투성이였지만, 그나마 어머니의 손에서 어머니를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는 너느러움이 조금은 살아있는 듯하여 감사하다.
하루하루가 힘든 생활 속에서 우리 어머니는 자신만의 시간도, 여유도 가지시지 못한채 그 어떤 힘든 일들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참아내시며 다 하셨기에 우리 육남매를 이렇게 건강하고 반듯하게 키우셨을 수 있다는 것을. 요즘 세상에 혼자인 자식도 힘들다며 고아원에 맡기고 친척집에 맡기고, 버리고 한다는데 우리 어머니는 우리들을 정말 사랑하시며 억척스럽게 우리들을 키우신다. 옛날에나 있을 법한 인생을 우리 엄마는 오늘을 사신다. 나날이 힘든 하루 속에서 많이 아파도 하시고 힘드셨겠지만 우리 육남매의 밝은 모습을 보시고 웃음을 보이신다. 세상의 모든 어머님들도 자식들을 위해 할 수 있다고 하시지만 우리 어머니와는 많이 다르리라.
비록 아름답지 못한 손이라지만, 비록 예쁘지 못한 손이라지만, 그래서 처음엔 창피하고 미웠던 손이지만 이제는 세상 사람들에게 다 보여주고 자랑하고플 만큼 우리어머니의 손이 자랑스럽다.
겉에서 보기엔 비록 징그럽고, 초라한 손이지만 어머니의 그 손에서 배어나오는 사랑과 푸근한 따뜻함을 변함없이 우리 육남매는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난 다짐한다.
어머니의 손을 원래대로 돌려 놓을 수는 없지만 행복한 손으로 만들어 드리겠다고…….
지금은 어머니가 많이 힘드시지만 나중에 우리들이 크면 꼭 어머니의 손이 행복한 손이 되어 있을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