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일본에 있는 고구려 신사와 고구려 후손들 성씨.
고구려 유민들은 동경만 인근 오이소(大磯ㆍ어서오시오 라는 남한(南韓)의 방언에서 유래)해안으로 상륙하여 사이타마에 정착, 고려촌을 이루어 살아왔던 것이다.
다음은 (고구려의 후손인) '고려징웅' 씨가 한 말이다.
'자랑스러운 한민족의 후예임을 과시하기 위해 고마(高麗), 즉 '고려'라는 성을 지켜온다.',
'처음 만들어진 족보는 화재로 불타 없어지고 이 족보는 7백여 년 전에 새로 만든 것이다.
족보 첫머리에는 불의의 화재로 소실된 고구려 유품목록과 이를 애석해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1259년 화재로 고려(高麗, 고마)일가의 가계도와 각종 고구려 보물이 소실되자 흩어져 살던 고려 일족이 모여 다시 가계도를 작성했다.
이 때 복구작업에 참여한 성씨들이 고마이(高麗井), 아라이(新井), 아타라시(新), 혼조(本所), 간다(神田), 나카야마(中山), 가토(加藤), 요시카와(吉川), 후쿠이즈미(福泉), 오카노보리(丘登), 오노(大野), 시바키(芝木) 등이 참여한 점으로 미루어 이들 성씨도 고구려 후손일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신사 측은 '직계만 고려라는 성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고구려의 후손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약광이래 5백여년간 고구려인끼리만 혼인하면서 혈통을 유지했었다고 한다.
고려신사(高麗神社)에 하루 최대 17만명이 참배할 때도 있다고 한다.
고려신사 입구 (오른쪽에 한국의 장승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