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동경 제작과정
도자기의 소성
고려시대의 미술은 통일신라시대의 미술을 계승하고 송(宋)의 세련된 미술 양식을 받아들이면서 발달하였으며, 국가적인 불교의 장려로 승려들과 문벌귀족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불교미술에 있어서 불화(佛畵)가 전시대를 통틀어 가장 발달하였고, 불상·석탑 등은 이전 시기에 비해 소박하고 지방색이 강항 형태로 변화하였다. 특히 상감청자(象嵌靑瓷)를 비롯한 고려청자나 동경(銅鏡) 등에 표현된 화려한 무늬와 섬세한 공예기법에서 고려 귀족미술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무신집권 이후 귀족세력의 몰락과 함께 귀족미술은 쇠퇴하고, 여기에 원(元)을 통해 들어온 화법이나 건축의 영향 등 양식에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기도 하였지만 전체적으로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장려로 불화를 비롯한 불교미술이 발달하고, 청자나 은입사(銀入絲) 공예 등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미술문화가 발달하였다면 조선시대에는 유교문화의 정착으로 양반위주의 미술 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공예 건축 등의 실용적인 미술이 발달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이들이 이전 시기보다 훨씬 확대되었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선후기에 들어와 백자와 같은 도자공예와 나전칠기 등의 목칠공예가 더욱 발달하고, 향교·서원을 비롯한 성곽·궁궐·관아 등 실생활과 관련된 건축이 발달한다는 점도 특징적인 면이다. 또한 양반생활 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반영한 미술작품도 많이 만들어졌다.
고려동경
우리나라에서 청동거울[銅鏡]의 사용은 청동기시대의 다뉴경(多鈕鏡)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원삼국시대 이후로는 중국 청동거울의 영향을 꾸준히 받게 된다. 중국에서 청동거울의 사용은 기원전 약 2000년경으로 소급되며 시대별로 독특한 무늬를 표현하였는데 수당대(隋唐代) 이후에는 실생활과 관련된 세련된 무늬가 선호되었다. 이러한 중국의 청동거울은 우리나라에도 시대별로 유입되어 발달된 주조기술을 바탕으로 정교한 형태의 청동거울이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청동거울의 제작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고려시대로서 그 종류와 수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통일신라시대에도 당경(唐鏡) 계통의 거울이 보이고 있으나 그 수가 적어서 일본에서 다량으로 출토되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하지만 고려 동경은 출토지나 출토상태 또는 제작지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복잡한 양상을 띤다.
고려 동경은 제작지역에 따라 중국 수입품과 국내 제작품으로 크게 구분되며, 국내제작품은 다시 제작방법에 따라 도안이나 의장의 일부분을 본따거나 변화시켜서 다시 만든 방제경(倣製鏡)과 그대로 틀을 떼어내 다시 부어낸 재주경(再鑄鏡)으로 나눌 수 있다. 거울의 형태는 원형(圓形), 방형(方形), 화형(花形), 능형(菱形) 등으로 정형화되었으나 손잡이가 달린 병경(柄鏡), 매달아 늘이는 현경(懸鏡) 등과 같은 색다른 거울도 많이 보인다.
쌍봉보상화무늬거울 /통일신라시대8∼9세기
출토지가 알려진 몇 안되는 통일신라시대의 청동거울로 백동으로 주조된 능화식(菱花式)의 팔릉(八稜) 거울이다. 안쪽에는 봉황무늬[鳳凰文]와 보상화무늬[寶相花文]를 대칭되게, 바깥쪽에는 당초무늬[唐草文]와 나비무늬[蝶文]를 번갈아 배치하고, 중앙의 꼭지자리에는 연꽃무늬[蓮花文]를 형상화하였다. '당경(唐鏡)→신라경(新羅鏡)→일본 평안경(平安鏡)'으로 이행되는 과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포도무늬거울 /고려시대10~12세기
포도무늬거울[海獸葡萄文鏡]은 당경(唐鏡)의 영향으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 들어와 크게 유행한다. 해마포도무늬거울[海馬葡萄文鏡]·서수포도무늬거울[瑞獸葡萄文鏡]·천마포도무늬거울[天馬葡萄文鏡]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보통 백동으로 주조되며 원형(圓形) 거울이 가장 많다. 안팎으로 포도(당초)무늬와 짐승무늬가 일정한 간격으로 볼륨있게 배치되어 있다.
포도무늬거울
안팎으로 포도(당초)무늬와 짐승무늬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는 포도무늬거울[海獸葡萄文鏡]이다. 포도무늬거울 가운데 볼륨이 높지 않고 무늬가 뚜렷하지 않은 것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거울을 방제(倣製) 혹은 재주(再鑄)하였을 가능성이 많은데, 여기의 것은 재주경(再鑄鏡)일 가능성이 있다.
청동보상화무늬거울
'금'명거울 /고려시대11~12세기
거울 중앙에 '金'자가 새겨진 8엽의 꽃모양[花形] 거울이다. '金'자는 당시 중국 동북지방에서 흥기했던 여진족의 금나라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금경(金鏡)을 비롯한 북방민족의 청동거울은 무늬나 형태가 단순하여 퇴화한 듯한 인상을 준다.
쌍물고기무늬거울
청동거울에서 물고기무늬[魚龍文]는 보통 잉어가 파도위로 튀어 오른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여기에는 등용(登庸)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즉 출세나 부귀공명을 상징하는 길상(吉祥)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처럼 손잡이거울[柄鏡]에서 쌍으로 등장하여 생동감있게 묘사되는 예가 많다.
청동민무늬거울 /고려시대10∼14세기
별다른 무늬가 없으나 전체적으로 연푸른 색조를 띠고 있어 단아한 인상을 준다. 전체적인 모양이 꽃모양을 이루는 능화식(菱花式)의 걸이거울[懸鏡]이다.
출저:기독교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