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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텡 게르의 귀향
-목 차-
1. 줄거리와 영화화된 계기
2. 시대적 배경
3.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지위
4. 현대와 법정판결 비교
5. 결론
6.참고문헌
1. 줄거리와 영화화된 계기
1542년 4월, 툴루즈 지방의 작은 시골 마을 아르티갓트(Artigat). 부유한 두 농가의 12세 신부 버뜨랑 롤(Bertrande de Rols: 나이탈리 바이 분)과 13세 신랑 마르탱 게르(Martin Guerre: 버나드-피에르 도날듀 분)의 결혼식이 마을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다. 하지만 결혼식 이후 5년 동안 마틴은 부부 생활이 원만하지 못해 놀림거리가 된다. 다행히도 이 어린 부부에게 아들 샹시가 태어나 자연스럽고 가정적인 질서가 잡히는 듯 하지만 마틴은 뚜렷이 들에서 일하기를 싫어하며, 자신의 4명의 누이를 포함해 여자들을 혐오하며, 아내 버트랑을 자주 무시하나 아들에게는 작은 관심을 가진다. 쉽게 자극되는 고약한 성질의 그는 자주 아버지에게 화를 낸다. 옥수수 더미가 없어졌을 때, 그의 아버지가 그를 도둑으로 몰아 세우자 그는 고향을 떠난다. 버트랑은 집을 나간 남편의 소식을 전혀 듣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도 유혹을 물리치고 수절을 하며 8년의 세월이 지나간다.
그 사이 마틴의 부모는 비탄으로 죽고 버트랑은 시백부되는 피에르 기어(Uncle Pierre Guerre: 모리스 베리어 분)의 밑에서 마틴의 누이들과 그 가족의 새로운 가장이 된 아들들에 둘러싸여 지내게 된다. 8년 동안의 정숙한 생활과 힘든 일이 버트랑을 하녀의 위치로 전락시킨다. 그러던 어느날, 마르탱 게르(Arnaud de Tihl: 제랄드 드빠르듀 분)가 돌아온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던 것에 대해 용서를 빈다. 그날 밤, 버트랑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더욱 인간적이며 재미있는, 그러면서도 사랑을 할 때 그녀가 듣기 좋아하는 말을 잊어버리지 않는 새로운 남편을 발견한다.
마틴은 그의 아저씨 곁에 거처를 정하고 훌륭한 일꾼이 된다. 9개월 후 딸이 태어난다. 기어의 땅에서는 결코 그토록 풍작을 거둔 적이 없었다. 그렇게 평안히 3년이 지나간 어느날, 마틴은 그의 아저씨에게 자신의 권리내에서 그가 부재했었던 동안 자신의 땅에서 거둔 이익을 요구한다. 그의 부모가 죽은 이후로 그는 법적 상속인인 것이다. 피에르 게르는 분노와 탐욕으로 격해져서, 그가 없는 동안 자기가 베뜨랑드와 아들 샹시를 돌보와 준 것을 고마워하지 않는다고 그를 비난한다.
얼마 후 스페인으로 가던 한 병사가 그 마을에 들려, 마틴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 그에 의하면 그는 전쟁 중 마틴 기어를 만났는데 마틴은 폭탄에 맞아 다리가 잘려 나갔으며, 지금의 마르탱 게르는 아르노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재산 분배의 요구로 피에르 기어는 그가 자기 조카가 아니라고 들고 나서 사건은 법정으로까지 가게 된다. 가족, 친척들 마을 사람들이 다 동원되어 증언을 한다. 진짜 마르탱이라는 사람과, 아니라는 사람이 나뉘어져 법정은 최종의 판단을 그의 아내에게 내리도록 한다. 남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내이기 때문이다. 베르트랑드는 단호히 자기 남편이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법정에서 마르탱이 무죄라는 판결이 난 마지막 순간에 진짜 마르탱이 증인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아르노는 사형에 처해지고 베르트랑드는 진짜 남편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것은 실제 이썼더 사건으로 다시 이 사건의 담당이었던 순회판사 Jean de Coras가 ‘잊을수 없는 판결' 이란 제목으로 기록해둔 문서가 이 영화의 모체가 된다. 이 문서는 비슷한 시기 미국의 여류 사학자 Nataltie zenon David에게도 읽혀지고 나탈리는 이 사건을 소설로 재구성 하기 시작했다.
나탈리가 책을 쓰던 중에 마침 프랑스에서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나탈리는 다니엘 비뉘감독에게 연락을 취해 서로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주고 받으며 동시에 영화와 책 작업을 진행한다.
1982년 다니엘 감독의 영화가 먼저 발표되고, 이어 1년 후인 1983년에 나탈리의 책이 출간된다.
2. 시대적 배경
영화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 남부의 경우 1530년대 중반에 프로테스탄트 전도사들이 프와 백작령에서 선교활동을 하였고, 1556년에는 제네바 출신의 목사 앙트완 카페가 프와를 거쳐 마르탱게르의 고향인 아르티가에 당도했다.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의 조사에 의하면 1560년 이전의 남부 프랑스 농촌 촌락에도 프로테스탄티즘이 상당히 깊숙이 침투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를 한번 보고는 가톨릭과 개신교 곧 프로테스탄티즘의 대립을 다룬 영화라고 하기엔 어려운 점이 있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트적 요소들을 곳곳에서 찾아볼수는 있다.
베르트랑드와 가짜 마르탱이 부부관계를 갖기 전에 언뜻 나타나는 베르트랑드의 행위에서 찾을수 있는데 이 장면에서 베르트랑드는 십자가를 치운다. 이것은 베르트랑드가 개신교로 개종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3. 당시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지위
앙시앵레짐은 프랑스어로 '옛 제도'를 의미하나 일반적으로 프랑스 대혁명 이전의 제도를 말한다. 16~17세기의 부르봉 왕가 체제이며 왕권신수설에 바탕을 둔 군주제다.
앙시앵레짐 아래에서 가족 제도 및 가족문화를 지배한 것은 가부장 제도이다. 가부장제도의 가장 큰 희생자는 여성으로서, 앙시앵레짐 하의 여성은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 라기 보다는 아버지나 남편의 부속물에 불과했다.
여성의 운명은 출생에서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손에 좌지우지 되었으며 결혼 후에도 가부장 적이고 경제적이며 권위적인 부부관계로 인해 내밀한 관계는 맺기 못한 채 남편에게 철저히 복종하며 살아야 했다. 이때문에 16세기 라블레 등의 소설 작품이나 17세기 희극 작품들에서는 남편과 사별한 과부의 생활이 즐겁고 유쾌한 것으로까지 묘사된다.
또 프레시외즈 라고 불리던 17세기의 지적인 젊은 귀족 여성들 중에는 정략 결혼에 대한 반감으로 결혼자체를 거부하고 심지어 육체적 결합이 배제된 정신적인 사랑만이 아름답고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새겨나기도 했다.
이는 곧 정략결혼과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배우자 관계에 억눌린 당시 여성들의 상황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아니라 18세기 귀족 사회에서 성행했던 성적 방종, 이른바 ‘리베르티나주 libertinage' 풍속또한 가산과 혈통의 보존을 위한 정략결혼이 빚어낸 불가피한 보상물로 볼수있는 축면이 적지 않았다.
앙시앵레짐 하의 여성 억압구조는 여성을 ‘죄악의 장본인인 이브’의 딸로 파악하는 기독교 문화와, 가부장의 권위와 국왕의 권위를 동일시한 절대왕정에 의해 지지,강화되었는데 이러한 구조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것은 교권과 절대왕정에 반기를 든 계몽주의 시대부터이다.
4. 역사와 영화, 소설속의 베르트랑드
베르트랑드는 어린나이에 시집을 와서 성 불능의 남편과 불행한 결혼 생활을 보낸후 종적을 감춘 남편으로부터 짧지 않은 세월을 버려졌다가 남편을 사칭한 사기꾼에게 속아 정조를 잃은 가련한 여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데이비스가 소설속에서 되살려낸 베르트랑드는 정조와 여자로서의 평판을 중요시하고 전통적 가치에 충실한 여인이면서 동시에 확고한 독립심과 재빠른 현실감각, 그리고 곤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지를 지닌 여인이다. 또한 아르노와 베르트랑드는 사기꾼과 희생자의 관계가 아니라 “창안된 결혼”과 예기치 않은 사랑을 매개로 한 공모자의 관계였다.
데이비스는 아르노와 베르트랑드의 결혼이 “창안된 결혼”임을 전제한후 양자가 자신들의 결혼을 정당화 할 근거로 숙고했으리라 추정되는 비밀결혼의 전통과 프로테스탄티즘의 확산 양상을 사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결국 『마르탱 게르의 귀향』은 소설이 “과거의 목소리를 통해 엄격히 점검”되었다는 데이비스의 자부심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기도 하고 역사서술에 있어 “어디에서 재구성이 끝나고 창안이 시작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게도 한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결국 사료 그 자체의 역사적 진실에 대해 정당한 의문을 제기하게 하는 해결할수 없는 불확실성이 놓여있음을 강조하고있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 나온 이후에 이 영화를 거의 모방한 『써머스비』라는 영화가 나왔는데, 이 영화들에서 여주인공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볼수있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의 베르트랑드와 『써머스비』의 로렐은 가짜 남편을 맞아들이고 그에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3백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은 여인의 주체성과 자의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영화 『마르탱 게르의 귀향』의 베르트랑드는 남편의 아저씨이자 어머니와 재혼한 새아버지인 피에르 게르의 책동을 거부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여인으로 그려지지만 『써머스비』의 로렐은 처음에는 자신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각오하는 적극적인 여인으로 나온다. 전자의 베르트랑드는 중세의 여인상을 구현하며, 후자의 로렐은 또 다른 역사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여주인공 처럼 강인한 미국의 여인상을 대면한다.
또한 공동체적 생산양식의 시대에 마르탱의 구향은 베르트랑드의 환희에 앞서 마을과 집안 전체의 행복이고 기쁨이지만 개인화된 근대사회를 배경으로 한 써머스비의 귀환은 로렐이라는 한 여인의 인생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5. 현대와 법정판결 비교
시대배경이 현대였다면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을것 이라고 생각된다. 요즘이라면, 아니 신교가 들어오기만 했어도 오히려 아내와 아이를 무시하고 헌신짝 버리듯이 하는 마틴에게 죄값이 돌아가고도 남을것이라고 본다.
오늘날의 법정에서 이런 가짜 소동은 쉽게 잠재워질수 있다. '지문'이나 '혈액'또는 '유전자'감정등 여러가지 과학적 증거에 의한 판별법에 의해 가쩌 마틴기어는 이런 시도조차 할수 없을지 모른다. 지금까지도 지상 최고의 명판결로 손꼽히고 있는 솔로몬의 판결도 유전자 감정 하나면 간단하게 끝날수 있을정도다.
가짜 마틴기어가 한 잘못의 실체는 거짓말 하나뿐 이었다.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해서 진짜 마틴기어와 그의 재산을 가로채려고 했다면 그 거짓말은 '사기죄'가 될수 있다. 가짜 마틴기어가 자신이 진짜 마틴기어라고 법정에서 거짓말을 한 것은 국가의 공정한 사법작용을 방해한 '위증죄'로 평가될수 있다. 그러나 거짓말한 마틴기어를 일짜감치 교수형에 처한 프랑스 사회에서도 여전히 거짓말은 공기처럼 많이 떠돌고 있을것이다. 사람은 하루에 200번 가까이 거짓말을 한다는 말도 들린다. 8분에 한번씩 거짓말 하는 셈이라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말인지 조차 알기 어렵다. 거짓이라고 생각하는것이 진짜이고 진짜라고 생각하는것이 거짓일지 모른다. 장자가 나비인지 나비가 장자인지를 알수 없듯이 말이다.
6. 결론
역사를 보는 기준은 시대가 만드는 것이다. 올바른 기준인가를 논하는 곳조차 절대적으로 객관적일수는 없다. 올바른 기준이라는 것도 시대의 대세에 따라 변하기 ?x문에 시대마다 제각각 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베르트랑드는 강한 여자다. 자신의 행복을 쟁취할 줄 모르는 여자였다면, 즉 시대의 대세에 휩쓸려 구교적인 믿음에 얽매여 있었다면 아노드가 맨 처음 세탁장에 나타났을때 이상한 낌새를 보이며 그를 거부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몰라도 그녀는 마틴의 아내이기 때문에 그가 마틴이 아님을 곧바로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자에게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리고 시대를 완전히 속이기 위해 이 행복을 온전히 자기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녀는 법정을 속일 계획을꾸미고 대담하게도 자기 손으로 고소장을 낸 것이다. 그와 법앞에서 떳떳하게 사랑하기 위해서. 그러나 진실은 밝혀지고 말았고 남편보다도 내밀했던 그와 법정에서 잠깐 마주친 눈및에서 그녀는 그의 뜻을 읽는다.
그리고 그의 뜻대로 마틴에게 용서를 구한다. 아노드 역시 베르트랑드를 공으로 생긴 아내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임을 알기때문에 그녀와 그의아이가 자신과 함께 교수형에 처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베르트랑드의 마음인들 마틴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을까.. 쉽게말해 눈앞에서 사라져?Z으면 싶은 꼴보기 싫은 남편이었을 텐데 말이다.
결론적으로 영화 『마르탱 게르의 귀향』은 중세에 있었던 정말로 기이한 이야기인 ‘마르탱게르 사건’을 재현하여 관객의 역사적 호기심을 고취시켰다.
그렇지만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가 지적한 대로 영화는 ‘16세기 민중의 행위 동기들’ 즉 예를들면 당시 사람들이 재산만큼이나 진실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지와 같은 문제를 전달하는데 성공하지 못했고 특히 아내의 이중 전략과 재판관의 내적 갈등이 약화됨으로써 역사기록과 동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와에도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충분한 역사적 전후관계나 사회구조등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하고 게르 집안이 바스크 족이라는 사실과 농촌 마을의 시대적 흐름도 반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완벽할 정도로 고증이 잘된 작품으로 영화의 소재를 역사적 위인이 아닌 보통사람에게 취해서 역사영화 소재의 폭을 넓히는데 기여했다고 볼수 있다.
6. 참고문헌
* 김기봉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2000. 6 푸른역사 p.259-278
* 차용구 『로마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돌아오다』 2003. 11 푸른역사 p.241-267
*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 양희영 옮김 『마르탱 게르의 귀향』2000. 3. 지식의 풍경
*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 연구소 『프랑스,하나 그리고 여럿』 2004. 4 (주)도서출판 강
p.445-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