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염
이금환
목요일 오전부터 갑자기 배가 더부룩하다는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상비약으로 사다놓은 까스활명수를 한 병 마셨다. 평소에 더러 설사를 하면서 “나는 장이 좀 약한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소화기를 튼튼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잠시 더부룩한 배는 “곧 괜찮겠거니”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아랫배 쪽에서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났다.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여!”
차마 민망해서 흉내도 내기 어려울 만큼 쏟아졌다. 먹은 것의 2배, 아니 3배, 어쩌면 그 이상으로 쏟아졌다.
“간장이 녹아서 쏟아져 내리는 것일까, 아니면 몸속의 물들이 실개천처럼 장으로 흘러들어 큰 폭포를 이루어 쏟아져 내리는 것일까?”
“일단 밥을 먹지 말자!”
이렇게 마음을 먹고 한 끼, 두 끼 만 하루 동안 식사를 거르고도 멈추질 않아 설사 때문에는 가본 일이 없는 병원엘 드디어 갔다.
원장 선생님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열이 있습니까?”
“잘 못 느끼겠습니다.”
“약간의 미열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혹시 구토가 나거나 미식거립니까?”
“아니요.”
“어지럽지는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두통은 없나요?‘
“괜찮습니다.”
“건강하셔서 잘 못 느끼나 봅니다.”
원장 선생님은 2-3분 동안 충분히 묻고, 들은 후에 짧게 “네에”라는 말을 하고는 결심이 섰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바이러스 때문입니다!”
“제가 참고로 바이러스에 관한 것을 한 장 뽑아 줄 테니 잘 읽어보세요.”
원장님 바로 옆에 있는 레이저프린터에서 부드럽게 종이 한 장이 흘러나왔다.
“호흡기 바이러스 관리”라는 타이틀이 붙은 종이를 건네주었다. 집에 가서 읽어보라는 뜻인지 읽을 시간은 따로 주지 않고, 바이러스에 대한 설명을 듣느라 눈으로 훑어보니 세 개의 큰 단락으로 이루어진 문서였다.
‘일반 마스크의 역할, 코로나19와 다른 바이러스와의 초기증상 구별, 대처방법’
바이러스가 무엇이고, 바이러스는 아직 완전한 치료제도, 백신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우리 몸의 면역력으로 이겨나가는 길 밖에 없다고 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았던 범주의 바이러스에 관한 설명을 충분히 들었다. 그리고 처방전을 받아들고 나와 약국으로 갔다. 평소에 인사를 건네면서 지내는 약사님이 물었다.
“어디가 안 좋으세요?”
“설사가 아주 심합니다. 마치 속에서 전쟁이 난 것 같습니다.”
“열은 없으시구요?”
“네에”
“장염이시네요.”
“한 5-6일쯤 약 드시면 나을 거예요.”
“네에, 감사합니다.”
약을 받아들고 와서 일단 약을 먹었다. 5-6일을 채워야 된다는 듯이 약을 먹어도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것도, 설사도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하루 쯤 지나니까 속은 편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끓는 소리가 나고, 설사에도 변화가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열었다.
“대전 23번째 확진자, 장염으로 둔산내과, 산들약국 방문”이라는 기사가 떴다.
“어, 장염!”
왜 원장님은 나에게 <호흡기 바이러스 관리>라는 문서를 주었을까?
“혹시 나도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의심한 거야?”
공직에 있는 아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세뇌시키듯이 말을 했다.
“지금 만약에 내가 코로나 걸리면, 나는 역적이 되고, 무조건 2주간 격리되고, 특히 나는 폐기능이 약해서 한 번 걸리면 다른 사람보다 더 치명적이니 자가 격리 당한 것처럼 지내고, 꼭 만나야 될 사람이 아니면 만나지 마요. 워낙 만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불안해요.”
장에서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바이러스가 계속 증식하면서 나의 장을 갉아 먹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니 아이들 말로 “노답”이었다.
“아닐 거야, 내가 만난 사람들은 한정 되어 있으니까. 내가 얼마나 ‘안전안내문자’로 보내주는 지침을 따라서 손 씻기와 마스크 쓰기를 잘 실천하고 있는데.......”
그래도 스멀스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불안감은 감출 길이 없었다. 아내, 딸, 교회 성도들, 내가 만난 사람들의 삶이 혹시 나 때문에 보름 정도 완전히 멈추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 무게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 나 혼자 당하는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굴비처럼 줄줄이 나와 엮인 사람들의 삶이 모두 묶여버리면 절대로 안 되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쳤다.
“설령 코로나19가 내 몸에 침투 되었다고 하더라도 아닌 척하면 되지 않을까?”
영화 속 대사가 떠올랐다. 사람이 숨길 수 없는 것 세 가지가 있는데 “사랑, 가난, 기침”이라고 하던 대사가 떠올랐다. 내가 숨기려고 하면 나의 아내, 나의 딸, 우리 교회 성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생명, 나아가 전 국민의 생명을 놓고 목사가 은폐질 하려고한 아주 불량한 검은 양심이 TV와 신문을 도배하지 않을까?
“맞아, 어떤 경우에도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야!”
“만약 열이 오르면 당연히 검사를 받아야지!”
“만약 기침이 나오면 당연히 검사를 받아야지!”
가끔 뺑소니 사고 기사를 보면서 이렇게 스스로 다짐하는 것처럼 다짐했다.
“만일 내가 자동차 사고를 낸다면 어떤 경우에도 도망가려고 하지 말고, 먼저 신고전화부터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응급처치를 하면서 구조대가 올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리자!”
오늘 아침 아내와 딸이 출근을 하고 혼자 밥을 먹으면서 TV를 켜고 채널을 넘기다가 “아는 형님”이라는 프로를 보게 됐다. 평소에는 한 번도 시청하지 않았던 프로인데, 곽도원이라는 영화배우가 눈에 들어와 어떻게 노는지 보려고 채널을 그대로 두었다.
무명시절 연극을 할 때의 일화를 문제 형식으로 소개했다.
연극연습을 하는 날인데 연습시간에 늦게 되었는데, 늦으면 엄청 혼나는 시절이었다고 한다.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그래도 그냥 넘어가 주기도 했는데, 자신이 늦은 이유는 너무 황당한 이유라서 도저히 아무도 이해를 안 해줄 것 같아서 거짓말을 할까 말까 속으로 이리저리 재다가 그냥 솔직하게 얘기를 했다고 한다.
“오다가 코끼리가 탈출한 것을 보다가 늦었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한다. 곽도원이 그 말을 하자 평소에 가장 착하고, 말이 없던 형이 제일 크게 화를 냈었다고 한다. 아프리카나, 동남아 오지도 아니고 서울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을 했으니 누가 믿었겠는가?
드디어 연습이 끝나고 저녁을 먹으려고 15명의 단원이 모두 식당으로 갔는데 마침 9시 뉴스 시간이 되어 코끼리가 탈출한 소동이 뉴스에 나와 “어이없는 변명”이 사실로 밝혀졌다고 한다. 진실이 밝혀지는 그 순간 곽도원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한다.
드디어 5일째 되는 날 나의 배에서 전쟁이 끝났다.
“나, 코로나19 아닌 것이 맞는 것 같다.”
빨리 코로나19가 지나가 모든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아침이다.
이금환
금산출생, 큰사랑교회 담임목사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졸업(M.Div).
저서 : 마음으로 나누고 싶은 속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