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낚으려다가
관악산 육봉을 중간쯤 오르다가 서둘러 내려와서 지하철 1호선에 몸을 실었다.
아무리 맘 좋은 택규라도 이발하고 물리치료 받고나서도 무려 30분 이상을 기다리면 마음이 좋을 리가 없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낚시터에 도착해서 열심히 물질할 시간에,
하릴없이 못생긴 친구 기다릴라치면 성인군자라도 짜증이 날법한 것은 자명한 터.
부지런히 달려왔건만 이 눔의 1호선 전철은 마냥 거북이다.
신호대기로 ‘잠시 정차, 서행’을 거듭하더니 급기야는 병점역에서 다 내리란다.
알고 보니 평택에 가려면 ‘천안’행을 탔어야 했다.
아무거나 급한 마음에 올라탔더니, 쯧...
33 낚시회 춘계 출조대회가 벌어진 둔포 ‘봉제지’는 사람들과 차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미 월척(31.12cm)을 낚아낸 승범이와 구두표, 버들잎 여러 수를 낚아 낸 ‘우짜짜 철근이’,
이를 부러워하는 자칭 33회 프로 조사인 세홍, 봉규, 우경, 정천은 이미 낚시 삼매에 빠져서
찌의 움직임에 시선고정하고 손만 슬쩍 내민다.
게다가 푸짐한 트로피와 상품에 이미 결전의 분위기가 팽팽하다.
자원 봉사를 자청한 완구, 종찬이도 이 분위기에 휩싸여 자못 진지하다.
승범이 월척을 구경하러 갔더니 33 낚시회장 세홍이가 낚싯대를 건네준다.
얼떨결에 승범이 코치를 받아가며 떡밥 끼우고 물에 던지는 연습도 몇 번했다.
승범이 지도 초보라서 낚시대만 잡아채면 바늘이 내 얼굴로 날아든다.
좌우측으로 날쌔게 Ducking Motion...
‘이 눔이! 붕어 낚기 전에 내 고운 얼굴에 바늘 꽂으라나?“
세홍이가 ‘찌’의 움직임을 가르쳐 준다.
‘예시’와 ‘본시’가 있단다.
그러다가 찌가 쑤욱 올라오면,
‘확’
낚아채란다.
의자도 없이 대충 쭈그리고 앉아서 찌가 까딱거리길래
‘에라’ 하고
‘확’ 했더니
이크!
낚싯대가
'휘청' 한다.
그 묵직한 손맛과 가슴이 철렁하는 느낌!
이어서 물 속에서
'파다닥'
검은 등허리가 물살을 튀긴다.
척 보기에도 월척!
쌩초보 낚싯대만 잡고 어쩔줄 모르는 데,
양 옆에서 우경이, 세홍이가 달려오고 저만큼에서 철근이, 정천이, 봉규가 벌떡 일어선다(부러워서...).
낚싯바늘도 뺄 줄 모르는 날 승범이가 도와준다.
월척이다.
문자 그대로 '선무당'이 그것도 첫 번째 낚아 올린 게...
완구 왈
"그 놈 눈 멀었나 봐라!"
파닥이는 놈 끌어안고 사진 찍고 악수하고...
왕초보 신났다.
날이 어둑해지면서 모두들 밥먹자고 일어서는 데,
또 한 번
'화악, 휘청, 이크, 푸드득...'
"야! 또또또..."
깜짝 놀라 달려 온 우경이가 끌어 올리다가는
고마
털퍼덕,
풍덩.
......
놓친 고기,
진짜 아름다웠다!(무쟈게 켰는 디...)
택규가 구어주는 손바닥만한 두툼한 목살에
맥주에 소주를 섞어 마시며
33 낚시회의 출범을 축하했다.
멀리 영동에서 특선 감자탕을 만들어서 오기도 하고.
애비와는 다르게(?) 점잖은 종찬이 늦동이 흥수 재롱까지 겹쳐서
흥겨운 저녁을 마치기도 전에,
철근이, 정천이, 봉규는 낚시터로 줄행랑이다.
하긴 쌩초보 두 놈이서 월척을 걷어 올렸으니
남에게 지고는 못 사는 녀석들 얼마나 조급헐꼬!
회장 세홍이의 승인을 받고 낚시터를 이탈, 둔포시내를 정찰(?)하고 다시 낚시대를 잡았다.
그놈의 큐대는 암만해도 손에 설다.
아무래도 내손에 카본 낚싯대가 제 격인가벼?
초여름을 넘어선 계절이 만들어 내는 바람에 물결은 조용히 넘실거리고
야광찌 초록색 불빛을 응시하노라면
문득,
내가 물결이 되고,
바람이 되고.
흐르는 물결에 초점을 두면
물은 가만히 있고
내가 흐른다.
바람따라 구름따라
그리고
세월따라...
도란도란
들려주는 연극영화과 출신 세홍이의
낚시 얘기,
멋진 해병 아버님 얘기,
넘어지고 일어서며 살아온 얘기에
고기들도 잠이 들었나 보다.
이미 목표를 달성한 승범이와
아예 포기(?)한 정천이는
낚시 보다는
방갈로 뜨끈한 아랫목에서
감자탕에 소주, 이어서 그림공부에 빠졌다.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 물가에 다시 앉으니
상쾌하고 조용한 기운이 온 몸을 휘감는다.
늘 이렇게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본격적으로 세월을 낚으며 생각 좀 하렸더니
일찍 일어난 붕어들이 연신 입질을 한다.
20여 수 가까이 낚아 올렸다.
세상 참 맘대로 안되는가 보다.
자타가 공인하는 '우짜짜' 철근이
지 닮은 시커먼 월척 참붕어를 낚아 올리며 이름값.
정천이가 밤새 잠 안자고 떡밥만 풀어 준 그 자리에서.
택규도 준치 한 수 올리고 싱글벙글
종찬이 아들 흥수도 내 옆에서 월척 잉어,
초저녁에 낚은 빠가사리로 행운상을 노리던 30년 경력의 우경이
실망의 빛이 역력하더니
3cm 송사리 옆구리를 걸어 올려 인기상을 굳혔다.
아침해가 붉은 얼굴을 내밀어
찬란한 황금빛을 흐뜨려 준다.
밤새 움츠렸던 몸들이 따뜻해지고
뱃속이 출출해지고 허리가 뻐근해 와도
월척의 꿈을 버리지 않는 33회 조사들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도 먼저 일어서지 않는다.
철근이가 32.57cm로 대어상, 왕초보인 내가 3회에 걸친 정밀계측결과 0.01mm 차이로 준우승.
春水滿四澤!
모내기를 위해서 물들을 가득 채운 평택 평야의 넓은 논에는
풍년을 바라는 농부의 활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계절은 여전히 갔다가 돌아오고,
사람의 할 일도 세월따라 그 자리에 있는 것.
잠시나마 계측결과에 마음을 쓰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세월을 낚으러 갔다가
또 욕심만 안고 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했다.
다음에는 낚지만 말고
버릴 것 먼저 버리고 와야겠다.
그러면 세월이 나를 낚을지도 모르쟎어?
첫댓글 쓰잘데기 없는 군바리 27년이 아깝도다! 지금이라도 문단에 데뷔하지 그래 구찌좋은 채 작가~~~ㅎㅎㅎ
와~ 택규 얘기 3번 나왔다.어린고기 놔주지 못하고 온것이 후회되네...
그려 나 버리면 안된다...ㅋㅋㅋ...
아무튼 새로운 조사의 출현이라...좋아 좋아..앞으로는 33 낚시회 공식 보도기자로 임명합니다.ㅋㅋㅋㅋ
자알 읽었네 . 어찌그리 글로도 그림을 잘 그리냐? 눈에 션하게 그려주어 고마우이. 근디 그 경험많은 둘리 도사님은 어찌된 겨? 그 옛날 참이니 떡이니 왈가왈부 하더니...
조사의 길로 들어선 차이조사 축하하옵고 앞으로도 자주 보길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