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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BS드라마 서울1945 동호회 원문보기 글쓴이: 시사논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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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유 (1905~1944) |
KBS 역사왜곡 드라마에서는 함흥 파업 연대가 1940년이지만 실제 연대는 1936년이었다. 그리고, 역사왜곡 드라마에서처럼 함경도 헌병부대가 진압한 것이 아니라, 경기도 경찰 32명이 경성에서 온 주동자 이재유 한 명을 검거함으로 종결되었다.
1936년 12월25일 이재유의 마지막 검거는 경기도경찰부의 다나카 고등과장을 우두머리로 한 경찰 32명이 농부, 장돌뱅이, 노동자, 학생으로 꾸며 잠복한 작전의 결과였다.
그러면 역사왜곡 드라마에서 동혁 일행이 휴계소 헛간 창문으로 탈출하는 장면 모델은 무엇이었는가?
이재유는 1934년 1월 이순금의 집에 들렀다가 체포되지만 용변을 본다고 속인 다음 화장실 창문을 깨고 도망쳤다. 불과 며칠 뒤 다시 붙잡힌 이재유는 3월에 간수가 조는 틈을 타 서대문경찰서에서 달아나 정동 미국영사관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잡혀 경찰에 인계됐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탈출을 모색하던 이재유는 마침내 4월13일 탈출에 성공해 2년 반 동안의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이 탈출 과정은 비상한 계책의 승리였다. 밥알을 짓이겨 족쇄에 넣어 모양을 본뜬 뒤 우유통 뚜껑으로 열쇠를 만들어 족쇄를 풀었다. 탈출하던 날 저녁을 남겨 이질환자에게 주고, 그 환자가 한밤중에 간수를 졸라 화장실에 간 사이에 당당하게 경찰서 정문을 빠져나왔다.
탈출 직후 이재유가 숨은 곳이 트로이카의 협력자인 경성제대 교수 미야케의 동숭동 관사였다는 점도 화제가 됐다. 이재유는 마루 밑에 굴을 파고 38일 동안 숨어 지내다 미야케가 체포되자 다른 아지트로 옮겼다. 경찰이 아지트를 덮치는 등 추격을 계속하자, 이재유와 이관술은 1935년 1월 양주군 공덕리(현재 서울 창동)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활동을 재개했다. 남부지방의 수해 이재민으로 위장한 둘은 경상도 사투리까지 써가며 신분을 완벽하게 숨겼다. 당시 신문은 “대경성 지하에 숨은 이재유를 잡을 일이 까마득하다”며 치안당국의 답답함을 전하기도 했다. 이재유는 본적지 조사를 나온 경찰에게 태연하게 엉뚱한 이름을 불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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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군에서 농부 행세를 하며 조직 확대를 꾀하던 이재유는, 1936년 12월 그가 파견한 인물이 이끌었던 함흥의 파업을 조사하던 경찰에 꼬리를 밟혀 생애 마지막으로 검거된다. 체포 당할 때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저항해 함께 살던 이관술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줬다. 이재유는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뒤에도 조선말 사용금지 반대, 수감자 처우 개선 등을 주장하며 옥중투쟁에 나섰다.
KBS 역사왜곡 드라마에서는 문동기가 러시아 물을 먹은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인물 이재유는 철저한 국내파였다.
토착 사회주의자로도 평가받는 그는 소련 등지에서 들어와 코민테른(국제공산당) ‘배경’을 내세웠던 이들이 대중 위에 군림하려 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KBS 역사왜곡 드라마에서는 문동기가 러시아군 선발대로 함흥에 오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인물 이재유는 해방 이전(1944년)에 이미 고인이 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