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로제 형!
2010년 열두 폭 째 달력, 12월이네요.
계절의 풍경처럼 편안한 마음...
느림보 거북이를 생각하게 돼요. 정말 토끼를 이기고 싶었던 게 아니라 느리게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것을 즐기고 있었던 거래잖아요. Slow Life.
마아가렛 할머니의 인생 모토 Don’t Panic! It’s Organic!
다시금 새겨보며 올 한해를 마무리 하고 싶네요.
머지않아 다시 꼭 보고 싶기도 하구요.
형이야말로 It’s Organic! 그 자체 아녜요.
진국, 토종, 오리지널... 그런 자연스러움이 형 매력이라 끌리는 거겠지요.
곧 뵈요.
뉴질랜드에서 동생이.

택시 창에서 바라본 뉴질랜드 사회
(114회) 03/12/2010 백 동흠
Don’t Panic! It’s Organic!
Celebrate ninety years of living !
You are invited 90th Birthday Celebration…
No presents, cards,etc.
Please donate to fund for school gardening…
Light refreshments provided.
Musos, instruments, music welcome…
See you, Margaret .
마아가렛 할머니께서 구순 잔치 초대장을 보내 주셨다. 이민 초기 같은 골목에서 7년여 살면서 만나 맺은 인연이 이렇게 계속 이어져서 좋다. 은퇴한 영어 선생님으로 우리 가족에게 개인 지도를 해 주셨던 분! 아내가 어머니가 얼마 전 돌아가셨다고 하자 선뜻 “그러면 내가 네 엄마가 되어 줄께”라고 해 주셨던 분. 10 년 전 팔순 잔치에도 초대받아 뜻 깊은 시간을 보냈던 게 어제인 듯싶은데 세월이 참 빠르다.
선물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가능하면 도네이션해주면 좋고… 기본 음식은 준비됐으니…이야기하고 즐겁게 춤추고…신나는 음악 속에서…
시간은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장소는 사시는 지역 소셜 클럽 RSA Hall에서. 시간 되는대로 와서 만나고 먹고 마시고 춤 한번 추고 사진도 찍고…
참 자연스런 시간의 나눔이다. 절로 공감이 느껴지고 흐뭇해진다.
Don’t Panic! It’s Organic!
60여 년 동안 나를 지켜준 생활의 모토는 다른 게 아녀.
“Don’t Panic! It’s Organic!” 바로 이 말이지.
조바심 내며 안달복달하지 말고 침착하게 살아봐!
자연의 흐름에 따라 인생을 천천히 순리대로 사는 거야!
그러면서 천연 자연식 먹고 살다 보니 어느덧 90살이 되어 버렸더라고.
생활 속에서 그 진솔한 삶을 일궈내며 살아가시는 환경보호 운동가다우시다. 이름 하여 Eco-activist Margerat 할머니. 그래서 2008년에 큰 상을 받으셨다. Auckland 2008 Gardener of The Year! 넓은 집 앞 뒤뜰에 가보면 온갖 꽃나무에 싱싱한 야채 과일나무들이 풍성하다. 매일 자식처럼 물주고 손봐주고 가까이 하다 보니 적당한 운동도 되어 건강해 좋지, 천연 자연식 푸성귀와 과일들을 매일 먹으니 30 여 년 동안 의사한테 가본 적이 없으시단다. 또 한 가지 일 주일에 한 두 번씩은 소셜 클럽에서 댄스를 추신다구요. 대단하지요. 그래서 이번 구순 잔치에도 무려 12시간 동안 음악 밴드에 맞춰서 축하객들과 춤을 추시려고 큰 트렁크 가방에 여러 벌의 파티복과 원피스들을 가져 오셨다. 우리 부부를 맞아 반갑게 껴안는데 팔순 잔치 때와는 또 다른 그윽함과 흥겨움이 가득 넘쳐 난다.
홀로선 커다란 인고의 소나무 한 그루! 많은 이들이 그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서로 정담을 나누고 90 년 세월의 솔바람 한 솔기를 음미하며 들이킨다. 참 좋다. 다 나눔의 결실이 아닌가. 아직도 커뮤니티에서 무료 영어 강습을 하신다니 내가 가진 것 즐겁게 나누는 것이 참 좋아. 영어에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아직도 이렇게 나눌 수 있으니 고마운 일이지. 할 일이 있다는 게 아직은 더 살으라는 거지. 누군가를 위해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나의 것을 나누면서 산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사람은 능력으로 사는 게 아니라 역할로 사는 거라 하지 않은가. 그러기에 할머니 문하생들이 참 많이도 다녀간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을 가르쳤고, 그 엄마에 그 딸을 가르쳤으니 가족들의 선생님이 된 것이다. 아들딸까지 우리 네 식구도 마찬가지다.. 46년째 같은 집에 사시는 동네 어르신으로 지역의 터줏대감이자 Organic Ambassador로서 참 보기에도 좋다. 목수였던 남편이 지은 집에서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난 뒤에도 35년 이상을 혼자 살아가고 계시니 하늘나라에서 남편도 즐거워하실 것 같다.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황혼 녁. 이 세상이라는 터전에서 무엇을 뿌리고 열매 맺는지, 그 결실의 내용에 따라 인생의 황혼 녁이 달리 다가오는 것 같다. 그 결실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농부가 씨 뿌리고 결실을 거두는 수확의 추수이다. 물질적으로 현실의 곳간을 채우는 1차원적 추수이다. 또 하나는 하늘의 곳간에 쌓는 추수이다. 내 주머니를 비워낼수록 풍성해지는 추수이다. 손이 필요한 이웃에게 나의 물질과 달란트를 나눔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면서 서로의 마음속에 감사의 씨앗을 하나 둘 심어가는 마음의 농사이다. 그러고 보면 마아가렛 할머니께서는 90 연세를 살아오시면서 참 많이도 나누며 살아오신 것 같다. 나 혼자만의 생활이 아니라 서로에게 배움을 나누고, 즐거움을 나누고, 감사를 나누고… 그래 마음을 얻은 사람들이 참 많이도 와서 축하도 해주고 포옹도 해주고… 할머니 옆에 잠깐만 있어도 왠지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다. 잘 들어주시고 맞장구쳐 주시는 공감 능력이 좋아서 충분히 이해 해주실 것 같아서이다.
혹여 나 사는 게 바쁘다고 광을 채우는 1차원적 추수만 하고 있다면 추수의 차원을 높여도 볼 때가 아닌가 싶다. 마아가렛 할머니처럼 나이 들어갈수록 자기를 비우고 곳간을 비우는,
그래서 마음을 얻는 추수는 풍요롭고 평화롭고 아름답다.
마아가렛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내 마음 곳간에 가득 채워 담아 본다.
Don’t Panic! It’s Organic!
백동흠(프란치스코)

한국에서 자동차회사 연구소에서 일하다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고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잔잔한 글을 뉴질랜드 타임즈에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