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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당시의 육사외도 [六師外道]
육사외도의 탄생배경과 개론
육사외도의 각각의 주장
부처님 당시의 유명한 종교철학사상은 불교와 브라만교 그리고 다양한 여러 신흥 철학사상가를 대표하는 육사외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중 브라만교는 이후 힌두교로 발전하였고 사람들에게 널리 인식되어지는 종교이기 때문에 여기에선 논외로 하겠습니다. 육사외도의 주장이 구체적으로 기록된 장아함경 제27권 사문과경沙門果經 에서 육사외도 각각의 주장을 첨부 하기만 하였습니다.
사문과경은 아버지 빔비사라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아자사셋투왕이 괴로워하다 부처님을 찾아뵙고 설법을 듣는 이야기가 실린 경전이며, 아자사셋투왕이 이전에 만나 대화를 나누었던 육사외도의 주장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담고 있어 매우 역사적으로 중요한 경전입니다.
1. 육사외도의 탄생배경과 개론
부처님께서 탄생하셨던 기원전 5, 6세기의 인도 종교 철학계는 마치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 버금갈 만큼 다양한 종교와 철학사상이 풍미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수많은 전쟁으로 공자를 비롯해서 정치와 사회제도에 관한 도덕적 이념을 중심으로 다양한 철학사상이 활발하게 전개 되고 있었다. 반면 같은 시기에 인도에서는 인간과 우주 만물에 대한 의문으로 궁극적인 진리의 해답을 얻기 위해 다양한 신흥 종교와 철학사상이 일어나고 이었다.[무심지덕=주])
이 말은 뒤집어 해석한다면 그때까지 유일한 종교이며 철학으로써 인도사회를 지배해왔던 전통 브라만교의 권위가 무너지고 새롭고 다양하며 혁신적인 종교와 철학사상이 등장했다는 뜻입니다.
이 시기이전까지 인도사회를 지배했던 종교인 전통 브라만교에서는 크게 세가지 정도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그들의 성전인 베다(Veda)는 하늘(梵天)의 계시에 의해 씌어졌다는 베타 천계주의, 또 신(梵天)과 인간의 중간자 역할을 하는 제사장 계급인 브라만(Brahman)계급이 최고라는 브라만 중심주의, 다음으로 신에게 제사를 올림으로써 인간의 길흉화복이 좌우된다는 제사만능주의가 그것이었습니다. 이같은 종교 사상과 전통들에 의해 아리안 족들이 원주민들을 지배하며 인도사회를 지탱해 왔지만 부처님께서 출현하셨던 기원전 5, 6세기에 접어들면 이런 전통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치 사회적 환경과 더불어 새롭고 혁신적인 종교 철학사상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 신흥 종교사상가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브라만교의 권위를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자유로운 사상가들이었습니다. 새로운 철학 사조를 이루었던 이들 사상가의 출신 계급또한 기존의 제사장 계급중심에서 탈피해서 무사계급, 평민, 심지어 노예계급까지 등장해서 자유로운 사상을 펼쳤습니다.
기존의 브라만교에서는 인간과 세계 만류는 브라만으로부터 나왔다는 전변설(轉變說)을 주장한 반면 이들 혁신 사문들은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물질적 요소로 파악하고 그러한 요소들이 취합하여 자연과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이 성립됐다는 적취설(積聚說)을 주창했습니다. 또 기존의 브라만교가 신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천착한 반면 이들 사문들은 현실생활 속에서 인생의 의의를 찾으려는 형이하학에 더욱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브라만교의 전통과 권위에 정면으로 맞서서 자유로운 사상들을 펼쳤습니다. 이들의 이같은 활약으로 인해 오랫동안 인도사회를 지배해 왔던 브라만적 전통이 쇠약해지고 그에 따라서 불교가 인도사회에서 보다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토양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당시의 이런 종교사상가들을 사문(沙門, Sramana)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정진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런 다양한 종교 사상가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62見이라고 분류되는 사상가들이며 이들을 더 압축해서 육사외도(六師外道)라고 하는 종교가들입니다.
즉 여섯 명의 이교도(異敎徒)라는 뜻인데 이 명칭은 불교에서 이들을 경계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이들 육사외도들은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이들 사문들의 새로운 사상과 활동은 기존의 브라만적 전통을 극복하고 다양하고 새로운 종교사상을 펼 수 있는 자유로운 사상풍토를 만드는데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도적 부정론 같은 주장을 편다거나 극단적인 유물론 등을 펴서 나쁜 영향을 끼친 것도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경전에 보면 외도(外道)의 잘못된 견해에 따르지 말라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2. 육사외도의 각각의 주장
다음에 나열하는 것은 육사외도에 대한 간단한 각론입니다.
=>로 된 단락은 "장아함경 제27권 사문과경"에서 발취하여 붙인 것이다.
① 아지타 케사캄발라[阿耆多翅舍欽婆羅, Ajita Kesakambalin]:
아지타는 단멸(斷滅)론자이자 유물론(唯物論)자입니다. 불교와 같이 물질적 구성의 최소 단위를 지, 수, 화, 풍(地水火風)의 사대로 보았습니다. 그는 이 사대(四大)만이 참된 실재이며 독립 상주(常住)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삶은 지수화풍의 사대원소가 결합한 것이며 죽음이라는 것은 이 사대원소가 각기 자기 자리로 흩어지는 것이므로 무(無)로 돌아간다고 보았습니다. 즉 사후(死後) 세계나 영혼 같은 것은 완전히 부정했습니다. 그러므로 현세도 없고 미래세도 없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윤회(輪廻)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선악(善惡)에 대한 과보(果報)도 없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도덕은 부정되는 것이겠지요. 이 현세의 삶이 최초이자 최후이므로 인간은 그저 즐기고 살아야 한다는 쾌락주의자이자 철저한 유물론자였습니다. 이러한 철학 사조를 인도철학에서는 순세파(順世派, Carvaka)라고 합니다.
=>“나는 또 어느 때 아기다시사흠바라에게 가서 ‘대덕(大德)이시여, 사람들은 코끼리, 말, 수레를 타고 병법을 익히며 내지 갖가지로 생업을 경영하여 다 현재에 과보가 있는 것처럼 이제 이 무리들은 현재에 도를 닦아 현재에 갚음을 얻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는 내게 대답했습니다. ‘四대(大)를 받은 사람은 목숨을 마치면 지대(地大)는 땅으로 돌아가고 수대는 물로 돌아가며 화대는 불로 돌아가고 풍대는 바람으로 돌아간다. 모두 무너지고 부숴져 모든 기관은 공(空)으로 돌아간다. 만일 사람이 죽었을 때에는 상여(牀輿)에 몸을 담아 화장장에 갖다 두고 불로써 그 뼈를 사르면 그것은 비둘기 빛처럼 되고 혹은 변해 재와 흙이 된다. 어리석은 이나 지혜 있는 이나 목숨을 마치면 모두 무너지고 부숴져 단멸법(斷滅法)이 되고 만다’고 하였습니다.
➁ 푸라나 카사파[富蘭那迦葉,不蘭迦葉, Purana Kassapa]:
푸라나 카삿파의 사상은 한마디로 도덕 부정론입니다. 노예출신이기도 한 푸라나 카삿파는 부처님과도 관련이 있는데, 그가 부처님과 신통력을 겨루어서 진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의 사상은 선악(善惡)의 구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멋대로 정의한 것이며 실제로 선악(善惡)이란 없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살생이나 도둑질이나 사음 등의 악행(惡行)을 저질러도 그것이 인간들이 임의로 정의한 개념이기 때문에 실제로 악행(惡行)을 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대로 보시와 방생 같은 선행(善行)을 행한다 해도 역시 그것은 인간의 관념이 낳은 것이지 절대적인 선행(善行)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같은 그의 견해는 자연히 업(業)이란 없는 것이며 업(業)에 대한 응보(應報)도 없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를 비롯해서 정통적인 종교에서 인정한 업보(業報) 사상을 전면적으로 부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길흉화복은 어떻게 결정될까요? 푸라나는 그것이 인과(因果)나 운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우연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나는 일찍 사문, 바라문에게 가서 이런 뜻을 물은 일이 있습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어느 때 부란 가섭에게 가서 ‘사람이 코끼리, 말, 수레를 타고 병법을 익히며 내지 생업을 경영하여 현재에 과보가 있는 것처럼 이제 이 무리 사문, 바라문들은 현재에 도를 닦아 현재에 과보를 얻는가.’고 물었습니다. 저 부란 가섭은 내게 대답했습니다. ‘왕은 스스로 짓거나 혹은 남을 시켜 짓게 하되 찍고 해치고 지지고 베고 하여 중생을 괴롭히고 걱정하고 울게 하거나 살생, 도둑질, 음탕, 거짓말, 담을 넘어 겁탈하기, 불놓아 태우기 따위로 도(道)를 끊어 악을 짓는다 하자. 대왕이여, 이와 같은 일을 행하더라도 그것은 악을 짓는 것이 아니다. 대왕이여, 만일 날랜 칼을 가지고 일체의 중생을 산적질하여 고기 더미로 만들어 세간에 가득하게 한다고 하자. 이것도 또한 악이 아니다. 또한 그 죄의 갚음도 없다. 항하(恒河)의 남쪽 언덕에서 중생을 칼로 죽여도 또한 그 악의 갚음은 없고 항하의 북쪽 언덕에서 큰 보시의 희를 열어 일체의 무리들에게 베풀어 사람을 이익 하게 하기를 고루 이익 하게 하더라도 또한 복의 갚음이 없다’고”
➂ 니간타 나타풋타[尼간咤若提子, Nigantha Nataputta]:
자이나교의 교주입니다. 자이나교는 당시 불교와 함께 흥성했던 종교입니다. 니간타 나타풋타는 깨달음을 얻은 뒤 '위대한 영웅'이라는 뜻의 마하비라(Mahavira)로 불려졌으며 자이나교의 교주로서 자이나교를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니간타 나타풋타는 산자야의 회의론을 극복하기 위해 상대주의(相對主義)적 인식론(認識論)을 수립하고 여기에 입각해서 이원적(二元的) 우주론을 제시했습니다. 자이나교에서는 영혼(Jiva, 命)은 물질(Pudgala)의 업(業)에 속박되어서 현실과 같은 비참한 상태에 빠졌다고 파악합니다. 그러므로 순결한 영혼인 지바를 끈적끈적한 물질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데 그 방법을 고행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이나교에서는 극심한 고행이 행해졌습니다. 심지어 고행을 하다가 죽게되면 성자로까지 추앙받았다고 합니다.
이들의 종교생활은 불살생(不殺生), 불도(不盜), 불음(不淫)과 같은 철저한 계율을 지키는 한편 철저한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그들은 살생을 엄격히 금했기 때문에 농사마저 짓지 않았습니다. 농사를 짓다보면 작은 곤충들을 죽이기도하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했습니다. 실제로 이들로 인해서 인도의 상업이 발달했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유명한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무소유를 철저히 실천하다 보니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알몸으로 고행을 하기도 했는데 이들을 나형외도(裸形外道)라고 불렀습니다. 후대에 와서는 흰옷을 입어도 된다는 백의파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 자이나교는 아직까지 인도에 신봉자들이 남아 있을 정도로 불교와 함께 크게 흥성했던 종교입니다.
=>“또 나는 옛날 어느 때 니건자에게 가서 ‘대덕이여, 마치 사람들이 코끼리, 말, 수레를 타고 내지 갖가지로 생업을 경영하여 현재에 과보가 있는 것처럼 이제 이 무리들도 현재에 도를 닦아 현재에 갚음을 얻습니까.’고 물었습니다. 그는 재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나는 일체 지(智)와 일체 견(見)을 가진 사람으로 모든 것을 알아 남김이 없다. 혹 다니거나 혹 머물거나 혹 앉거나 혹 눕거나 언제나 깨달아 남김이 없어 지혜는 항상 앞에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➃ 마칼리 고살라[末伽梨拘梨子,末伽利瞿舍利 Makkhali Gosala]:
숙명론(宿命論)자인 막칼리는 불교에서 말하는 이른바 사명외도(邪命外道)의 개조(開祖)입니다. 아지비카(Ajivika)라는 교단의 교조이기도 한 막칼리는 육사외도 가운데 자이나교와 유사한 교설을 펼쳤는데 교세에 있어서도 자이나교의 니간타 나타풋타 다음가는 유력한 종교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교설은 후에 자이나교에 흡수 통합되기도 했습니다. 막칼리는 일체의 구성요소로서 12원소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12개의 원소 가운데는 영혼도 포함되는데 인간의 영혼도 하나의 원소로 파악했던 극단적인 유물론자입니다. 또 막칼리 고살라는 인간 운명에 대해서 극단적인 결정론을 주장합니다.
생사(生死) 윤회(輪廻)하는 것은 불교의 경우에는 모두 인과(因果) 업보(業報)에 의한 것으로 보지만 막칼리 고살라는 아무런 원인도 없고 또 어떤 결과도 초래하지 않는다고 하는 무인(無因) 무연(無緣)론을 펼칩니다. 인간의 의지작용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며,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을 통해서 해탈(解脫)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8백 40만 겁을 윤회하는 동안 고(苦)가 저절로 없어져서 스스로 해탈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이처럼 막칼리는 인간이 자기 운명을 개척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막칼리 고살라는 의지(意志)의 작용을 부정한 최초의 사상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나는 또 어느 때 말가리구사리에게 가서 ‘이제 사람들은 코끼리와 말과 수레를 타고 병법을 익히며 내지 갖가지로 생업을 경영하여 다 현재에 과보가 있는 것처럼 이제 이 무리들은 현재에 도를 닦아 현재에 갚음을 얻는가 아닌가.’ 물었습니다. 그는 내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베풀음도 없고 주는 것도 없으며 제사의 법도 없다. 또 선악의 갚음도 없다. 금생도 없고 또 후생도 없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으며 하늘도 없고 조화도 없으며 중생도 없다. 세상에는 사문, 바라문의 평등한 행자(行者)도 없고 또한 금세 후세에 자신으로 증명을 짓고 남에게 두루 나타내는 것도 없다. 모든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다 이 허망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➄ 산자야 벨라티풋타[刪耶毘羅子, 散若夷毘羅梨沸, Sanjaya Belattiputta]:
산자야는 인식의 객관적인 타당성이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편 회의론(懷疑論)자입니다.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서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의 대표적인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산자야는 인도 철학사 가운데 최초의 회의론자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사후의 존재나 선악(善惡)의 과보(果報)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대답을 회피했는데 그의 이런 논법을 '뱀장어처럼 미끄러워 잡기 어려운 논의'라고 불렀습니다. 아무튼 이처럼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서 확정적인 지식을 주지 않으므로 그는 불가지론(不可知論)자로 불려집니다. 그래서 그는 인도 철학사상 처음으로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해 어떤 일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판단중지(epokhe)의 사상가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산자야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산자야의 문하에는 두 명의 뛰어난 제자가 있었는데 바로 그 유명한 부처님의 10 대제자 가운데 사리불과 목건련입니다. 이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는 250명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습니다.
산자야는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서 그만 피를 토하며 죽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두 제자는 불교 교단으로 들어와서 10대 제자로 활동하며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또 나는 옛날 어느 때 산야비라리자에게 가서 ‘대덕이여, 사람들은 코끼리, 말, 수레를 타고 병법을 익히며 내지 갖가지로 생업을 경영하여 다 현재에 과보가 있는 것처럼 이제 이 무리들도 현재에 도를 닦아 현재에 갚음을 얻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는 내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현재에 사문의 과보가 있느냐’고 물었으니 이렇게 대답한다. ‘이 일은 이와 같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르지도 않고 다르지 않지도 않다.’ 대왕이여, 현재에 사문에게 과보가 없느냐. 고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한 대답은 이와 같다. ‘이 일은 이와 같다. 이 일은 진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고. 대왕이여, ‘현재에 사문에게는 과보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는가.’고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한 대답은 이와 같다. ‘이 일은 이와 같다. 이 일은 진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➅ 파쿠다 캇차야나[迦羅鳩馱迦卯延, Pakudha Kaccayana]:
파쿠다는 인간을 구성하는 것을 일곱 가지의 요소(要素)로 보았습니다. 즉 지(地), 수(水), 화(火), 풍(風), 고락(苦樂), 생명(生命), 영혼(靈魂)의 7요소로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곱 가지 요소들을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즉 생명(生命)이라는 것도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의 요소이기 때문에 생명은 나지도 죽지도 않는 불생불멸(不生不滅)로 인식했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이란 문제를 놓고 볼 때 그는 죽이는 자도 없고, 살해되는 자도 없다는 주장을 폅니다. 즉 칼로 인간의 목을 자른다 하더라도 이것은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곱 가지 요소 사이로 칼이 지나 갈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곱 개의 요소는 상주(常住)하는 것이며 생명도 영원히 상주하는 하나의 요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저는 옛날 어느 때 바부타가전연에게 가서 ‘대덕이여, 사람들은 코끼리, 말, 수레를 타고 병법을 익히며 내지 갖가지로 생업을 경영하여 다 현재에 과보가 있는 것처럼 이제 이 무리들은 현재에 도를 닦아 현재에 갚음을 얻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는 내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힘이 없고 정신이 없는 사람은 힘도 없고 방편도 없다.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중생이 염착(染着)하고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중생이 청정하다. 일체 중생으로 목숨이 있는 무리는 모두 힘이 없어 자재(自在)를 얻지 못한다. 원수도 있을 수 없고 정(定)은 수(數) 가운데 정해져 있다. 이 六생(生) 중에 있어서 모든 고락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이 비판한 삼종외도============
부처님이 기원정사(祈園精舍)에 계실 때 이와 같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세가지 잘못된 견해를 가진 외도(外道)이(삼종외도) 있는데,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것을 올바르게(정확하게) 가려내어 추종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그러한 잘못된 견해를 따른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부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세가지 잘못된 견해란(삼종외도) 어떤 것인가.
===첫째, 어떤 사문이이나 바라문은 '사람이 이 세상에 경험하는 것은 괴롭든
즐겁든 모두 전생의 업에 의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숙명론자의 주장)
====둘째, 또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은 신의 뜻에 의한 것이다' 라고 한다.(신의론자의 주장 )
====세째, 혹은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다' 고 말한다 (무인무연론자의 주장)
===1=.나는 언제나 무엇이나 전생의 업에 의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숙명론자) 찾아가,
그 의견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었다.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그러면 사람을 죽이거나 도둑질하거나 부정한 성행위을 하고 거짓말하고
탐욕과 성냄과 잘못된 견해을 갖는 것도 모두 전생에 지은 업에 불과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 일을 해서는 안된다거나 이 일은 해야겠다는 의지도 노력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자제력도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정당한 사문 혹은 바라문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하고 비판했었다.
====2.=또 모든 것은 신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신의론자) 찾아가
' 만약 당신들의 주장대로라면 살생하는 것도 자재천의 뜻이고,
도둑질이나 부정한 성행위이나 거짓말을 하고 잘못된 견해를 을 갖는 것도 신의 뜻에 의한 것일게다.
그렇다면 이 일을 해서는 안된다거나 이 일은 해야겠다는 의지도 노력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자제력도 필요 없이 마음 내키는대로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정당한 사문 혹은 바라문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하고 비판했었다.
=====3.=그리고 인도(원인) 없고 연도(조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무인무연론자) 찾아가
' 당신들의 주장대로라면 살생하는 것에도 인과 연이 없고 도둑질하는 것에도 인과연도 없고
부정한 성행위하는 것에도 인과연이 없고 거짓말하는 것에도 인과연이 없고
잘못된 견해를 갖는 것에도 인과 연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에 인연이 없다고 한다면, 이일을 해서는 안된다거나
이 일을 해야겠다는 의지도 노력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자제력도 필요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정당한 사문 혹은 바라문이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비판했었다.
비구들이여 , 이것이 그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주장하는 사문이나 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비판이다.
만약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행동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부정되고 마침내는 커다란 혼란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와 같이 잘못된 견해을 잘 가려내어 버림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부처님은 올바른 이치로써 차근차근 설명하여 그들로 하여금 잘못된 견해을 버리고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셨다.==필수공부==
-외도에 빠지지 안도록 깊이 고찰하시고 이해 하시어 정도 수행으로 성불하시길 원합니다-
-무심지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