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세 군데를 돌아보았다. 한산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그 무엇이 있나하고 살폈으나 없었다. 싼 공산품은 거의가 중국제였다. 특이한 것은 우리보다 먼저 간단한 의약품을 슈퍼마켓에서 쉽게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위장약, 치약(의약용), 모기기피제 스프레이, 낫또 등 몇 가지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주머니는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방에서 저녁 준비에 바쁘셨다. 올 때마다 간단히 먹든가 아니면 나가서 외식을 하자고 주문을 해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한번은 친구 셋과 함께 방문을 했을 때인데 아침을 먹고 관광을 나가면서 아주머니께 오늘 저녁은 친구들과 밖에서 먹고 들어오겠다고 저녁 준비하지 마시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대마도 곳곳을 렌트카로 돌아보고 저녁 식사 후 여덟 시가 넘은 시간에 돌아와 인사를 하러 응접실로 들어갔다. 깜짝 놀랐다. 응접실 긴 식탁에 음식이 하나 가득 차려져 있었다.
“이걸 다 어쩌나?”
“왜, 이렇게 늦게 돌아왔어?”
“저녁을 먹고 들어온다고 했어요.”
“그래? 그래도 들어와!”
그 밤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저녁을 두 번 먹었다.
위채로 건너와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였나? 아저씨내외분은 여기가 시골이니 외식을 해도 제대로 먹을거리가 없다는 생각에 저녁식사 준비를 다시 해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관광 후 늦어도 그냥 돌아왔다. 정말 고마운 분이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와인을 나누며 가라오케 반주에 맞추어 우리노래, 일본노래 엔카를 불렀다.
‘돌아와요, 釜山港에’
‘戀人이여’
‘因緣’
다음날 노인 두 내외분의 전송을 받으며 이즈하라에서 부산행 배를 탔다. 며칠 더 묵고 가라는 이국 노인들의 간청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집에 개 네 마리, 닭 열두 마리가 기다리고 있어 어쩔 수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요사이 부산, 이즈하라를 오가는 비행기가 있으니 건강이 회복되시면 꼭 부산 나들이를 한번 하시라고 했다.
만남은 소중한 것이다.
만남은 서로의 정을 확인하고 이어가는 것이다.
만남의 길이 멀고, 험할수록 서로의 정은 두터워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하나오카 하루오 아저씨 내외분은 본섬과 큐슈에 나가서 사는 자기 아들들보다 우리 내외를 더 좋아하신단다.
첫댓글 CQ,CQ,CQ 이젠 '방장', '풍백' 나오라, OVER! 여기는 대마도 끝!!!
사진으로 두분위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니 실제로 대하 듯 반갑도다. 차려진 음식을 보니 지난 일들이 새록 새록
머리속에 떠 오른다. 두분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