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온통 꽃 천지 입니다.
창 밖에 피어있는 저 꽃을 보세요.
추운 겨울동안 칼바람 속에서 견디지 않았다면 저런 탐스런 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겨울이 있기에 봄이 오고 봄이 가야만 여름이 올 수 있습니다.
이런 자연의 변화 속에 자연의 섭리에 맞게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살아갑니다.
음지에서 자라는 식물은 음지의 조건에 맞게,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하는 식물은 또한 그 자연의 섭리에 맞게 살아갑니다.
바다 속에서 사는 물고기는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에는 모두 같은 모습일 것 같아도 바다 깊숙이 살아가는 물고기는 높은 수압을 적응하고자 납작한 모습을 하고, 어떤 것은 몸에서 형광물질을 생산하여 빛을 발
산하여 어둡고 침침한 바다 속을 적응해 살아갑니다.
들에 나가 보면 그 곳 들에도 이름모르는 많은 꽃들이 피어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꽃들은 모두 그 꽃 나름대로 불리는 이름이 있고, 특색이 있고, 색깔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하나하나 꽃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뿐, 분명 그 꽃에는 제 나름의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바람이 불어 파르르 떠는 꽃은 볼 수 있지만 바람 불지 않아도 파르르 떨고 있는 꽃들도 있습니다.
우리들 시각으로 바라보니 단지 꽃이로구나 하고 생각하고, 우리들의 편견으로 바라보니 그 꽃의 이름도 기억할 수 없고 그 꽃의 특색이나 나아가 하소연도 우리가 알아볼 수 없을 뿐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의 시각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다보면 사소한 오해도 생기고 서운함도 생깁니다.
여러분이 이 병영생활 2년 동안 자신의 삶을 뒤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동료에게도 관심을 갖고 주어진 2년을 뜻있고 슬기롭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어느 부부가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하여 주유소에 들어왔습니다.
주유소 직원이 기름을 넣으면서 앞 유리를 닦아 주었습니다.
직원이 일을 마치자, 남편은 "유리가 아직 더러우니 한 번 더 닦아 줘요"라고 말했습니다.
직원은 알겠다고 대답하고 다시 앞 유리를 닦으며 혹시 자신이 보지 못한 벌레나 더러운 것이 있는지 자세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직원이 일을 마쳤을 때 남편이 화를 냈습니다.
"아직도 더럽군! 아니 당신은 유리 닦는 법도 몰라요? 한 번 더 닦아주세요!"
직원은 또다시 빠뜨린 곳이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보면서 유리를 닦았지만 어디에도 지저분한 곳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더 크게 화를 내며 말했지요.
"유리창이 여전히 더럽군! 주인에게 말해서 당신이 내일부터 이곳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해야겠어. 내가 여태까지 보아 온 유리 닦는 사람들 중에 당신은 가장 엉터리야!"
화가 난 남편이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아내가 손을 내밀어 남편의 안경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휴지로 깨끗하게 렌즈를 닦아서 다시 남편의 얼굴에 씌워 주었습니다.
남편은 그제야 무엇이 잘못된 줄을 알고는 얼굴을 붉히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고, 비로소 깨끗하게 잘 닦여진 앞 유리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물을 논할 때 자기 시각으로, 자기 논리로만 보곤 합니다.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다보니 때로는 자기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남이 잘못된 것으로 섣부르게 판단하고 말해버림으로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곤 합니다.
우리가 파란안경을 쓰고 사물을 보면 모든 게 파랗게 보입니다.
또한 노란안경을 쓰고 보면 이번에는 노랗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신이 파란색 안경을 쓴 걸 모른다면 이세상이 보이는 데로 모든 게 파랗다고 생각하고 바르게 보는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주장하겠죠.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는 돌고 있는데.......”
천동설이 정설로 여겨지던 시절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가 감옥으로 끌려가며 한 탄식입니다.
정의는 언제나 강한 자의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의는 밝혀진다는 일화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단점을 말을 하기에 앞서 한번 쫌 자신의 시각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그럼 파랗게 보이는 강물은 정말 파란색일까요?
석가모니부처님은 열반을 통해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시기 바로 전에 “이 세상은 마음다운 것이며 인간의 목숨은 감미로운 것이다. 내 다비는 재가자들이 알아서 할 것이니 너희들은 부지런히 수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에 의지하라.
진리에 의지하고, 진리를 스승으로 삼아라.
진리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리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부처님이 45년간을 설법전도 하시고 80세 되시던 해 음력2월15일 열반에 드실 때 하신 유명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의 열반 교훈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이날을 열반절이라 합니다.
모든 사찰에서는 출가자는 물론 재가자들도 밤을 새워가며 열반에 대한 기도로 용맹정진 합니다.
위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자등명 법등명에 대한 말은 곧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여라. 그리고 너희들은 내 가르침을 중심으로 서로 화합하고 공경하라.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이다. 육신은 여기서 죽더라도 깨달음의 지혜는 살아있을 것이다. 내가 간 후에는 내가 말한 가르침이 곧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덧없다. 게을리 생활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고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나시고 길에서 사시다가 길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한나라에 제일가는 왕족 중 태자로 태어나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자랐습니다.
총명하고 인정도 많았으며 사색을 즐기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부귀를 버리고 그 분은 출가를 했습니다.
존경하는 아버지 정반왕의 만류도 뿌리치고 사랑하는 아내 아소다라와 아들 라훌라의 정도 끊어버리고 출가를 합니다.
그리고 6년이란 긴 세월을 수행과 고행으로 보내시고 깨달으신 후 45년간을 불쌍하고 우매한 우리중생을 위하여 계도하시다가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그 분의 족적을 따라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 한 마디 전해드리겠습니다.
이 말씀은 법집요송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을 이기고자
거친 말, 악담을 마구 퍼붓는다.
진실로 이기려는 사람은 많은 말보다는
차라리 침묵을 지키나니,
참는 마음은 분한 마음을 이길 수 있고
선행은 악행을 이길 수 있으리라.
분한 마음을 안고 있는 사람이여,
그대 속에 고통과 괴로움이 함께 하며
불길 같은 마음에 사로잡힌 사람이여,
끝내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느니라. (법집요송경)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하겠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자기의 부귀영달만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해코지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의의 자기표현이 아닌 상대의 나쁜 말이나 심지어는 없던 거짓으로 말을 만들어내 그럴듯하게 각색한 후 소문을 퍼뜨립니다.
속된 말로 중상모략을 한다는 말입니다.
좋은 말은 쉽게 사그라지지만 나쁜 말은 하루 밤에도 천리를 갑니다.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말입니다.
그래서 옛 성현들은 세척의 칼보다 세치의 혀가 더 무섭다고 입 조심 할 것을 단속을 했습니다.
또한 모든 남자는 세 뿌리를 조심해야합니다.
물건을 훔칠 수 있는 손과, 여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그리해서 한번 잘못사용하면 평생을 헤어날 수 없는 여기계신 모든 분이 하나씩 가지고 있는 고추 그리고 한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입입니다.
말은 이사람 저사람 옮겨지는 사이에 큰 거짓말이 되어 때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이 됩니다.
본래의 본 의미는 없어지고 터무니없는 말로 발전하여 곤혹스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누군가 한사람이 동내처녀 영자가 냇가에서 발을 씻는 것을 우연히 보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하면 그 소문은 처음에는 영자의 종아리가 예쁘다는 소문으로, 더 나아가 영자와 누가 물레방앗간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하다가 종래에는 영자가 애를 배서 해산을 했다는 식으로 말은 이리저리 옮겨지는 사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려집니다.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란 말도 있지만 우리는 말을 뱉기 전에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신중히 생각하며 말을 해야겠습니다.
그렇다고 요즈음은 PR시대인데 사람들 앞에서 침묵만 지키면 종종 손해도 볼 수 있습니다.
말을 가려서 하라는 뜻이지 말을 하지 말란 말이 아닙니다.
얼마 전 책에서 읽었습니다.
금붕어가 어항 안에서는 3천개 정도의 알을 낳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1만개 정도 낳습니다.
열대어는 어항 속에서 자기들끼리 두면 비실비실 하다가 종래에는 죽어버리지만 천적과 같이 두면 힘차게 잘 살아 갑니다.
여러분 호두를 아시죠?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파는 것이 호두과자입니다.
처음에는 천안 근처 산에는 호두나무가 많아 천안휴게소에서 팔던 것을 이제는 전국 각 휴게소에서 거의 팔고 있습니다.
안흥 찐빵이란 게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그곳 출신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강원도 횡성에 있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입니다.
몇 년 전에 그곳 빵을 만들어 파는 기술이 우리나라 모 재벌의 눈에 띄어 그 회사에서는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을 안흥 찐빵 판매전략으로 연수를 시킨답니다.
하여튼 그 안흥 찐빵이 유명해 지니 원조니, 진짜니, 정말원조니 하여 그 동내에는 수십여 집이 모두 찐빵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빗나갔습니다만 이 호두란 것은 호두와 밤을 서로 부딪쳐야 풍성한 열매를 맺고 보리는 겨울을 지나지 않으면 잎만 무성할 뿐 알곡이 들어차지 않습니다.
태풍이 지나가야 바다에 영양분이 풍부하고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져야 대기가 깨끗해집니다.
평지의 기름진 땅보다 절벽이나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꽃이 더 향기롭습니다.
늘 따뜻한 곳에서 자란 나무보다 모진 추위를 견딘 나무가 더 푸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고통도 있고 기쁨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고통은 기쁨의 한 부분입니다.
여러분뿐만 아니라 정치가, 돈 많은 재벌들, 인기로 살아가는 연예인도 또한 저도 모든 사람이 고통이 없는 기쁨의 날만 살고 싶어 합니다.
고통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살아온 길을 돌이켜보면 몇날며칠 밤을 잠 못 들고 노심초사하며 때로는 내가 더 살아갈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만큼의 큰 고통도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보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희미해지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은 우리들에게 우리스스로가 이겨낼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을 준다고 합니다.
고통을 이겨냄으로써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남모르게 큰 고통으로 고민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 고통 훌훌 털고 웃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〇 기억하면 좋은 글
1. 받는 기쁨은 짧고 주는 기쁨은 길다.
2. 두 도둑이 죽어 저승에 갔는데,
한 도둑은 남의 재물을 훔쳐 지옥엘 갔고,
다른 도둑은 남의 슬픔을 훔쳐 천당에 갔다.
3. 먹이가 있는 곳엔 반드시 적이 있고,
영광이 있는 곳엔 상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