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분쟁
[2003년 10월 15일 기사]국방일보
오늘날 전 세계에는 101개의 분쟁(紛爭)이 있고,
그중에서 84개의 분쟁은 오늘도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지역별로 보면 아프리카에 34개, 중동 13개, 아시아 20개, 러시아 10개, 유럽 15개, 미주 9개 등이다.
우리나라는 그중 6개 지역의 분쟁, 즉 소말리아·앙골라·서부 사하라·인도-파키스탄·그루지야, 그리고 동티모르에 평화유지군(PKF)을 파견해 부서진 교량을 보수하거나 건설하고 분쟁지역의 환자와 부상자에 대한 의료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분쟁세력 간의 정전을 감시하거나 분쟁지역의 평화를 유지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세계평화 유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들 분쟁의 원인은
서로 다른 민족 간의 불화와 증오가 가장 많고,
다음이 서로 다른 종교 간의 갈등이며,
세 번째 원인은 정쟁이나 분리 독립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종교 간 갈등이 원인이 된 분쟁은 31건이다.
아프리카는 이집트의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과 정부의 종교 분규, 나이지리아 내분, 알제리 분쟁 등 8개, 아시아 지역은 필리핀의 회교 원리주의 집단에 의한 분리운동 내전, 인도와 인도네시아 분리운동 등 9개, 중동 지역은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팔레스타인의 회교 간 종교전쟁, 이란·이라크의 내분 등 6개, 러시아 지역은 타지키스탄의 회교도
내전, 체첸,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 아르메니아 전쟁 등 4개, 유럽
지역은 북아일랜드의 기독교 신·구교도 간 내전, 보스니아, 불가리아, 키프로스 분쟁 등 4개로 전체 분쟁 중 3분의 1이 종교가 분쟁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종교는 인간의 존재 가치와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바람직한 생활과
올바른 인간관계의 방법을 제시해 준다.
종교학자 로저 M 키싱(Roger M Keesing)에 의하면 “종교는 자연 혹은 세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실존적 해답을 주고, 인간의 도덕과 사회질서를 유지시키며, 인간행위의 의미와 타당성을 부여하는 규칙으로 인간들의 삶과 죽음, 실패와 좌절, 그리고 질병 등의 취약성을 극복하는 능력을 부여한다”고 한다.
인간은 종교를 통해 인간다워지고 참다운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2600여 년 전 붓다는 이 세상에 나투어 인간의 생로병사, 즉 나서 늙고 병들고 마침내 죽고야마는 고통을 해결해 주기 위해 해탈의 방법을 제시했다.
먼저 탐진치(貪瞋癡)의 삼독심(三毒心), 즉 탐내고 성내며 어리석은 마음을 버리라고 했다.
대신 삼학(三學), 즉 생활의 계율, 고요한 마음, 마음의 지혜를 뜻하는
계정혜(戒定慧)를 배워 실천하라고 했다.
지혜를 얻은 자는 사섭법(四攝法), 즉 남에게 베푸는 보시(布施), 사랑스러운 말 애어(愛語),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이행(利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해 주는 동사(同事)로서 행복을 함께하라고 충언했다.
세상은 인과(因果)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지므로 착한 행위인 선업(善業)을 행하고, 남에게 인자한 자비심을 가지며, 남에게 이로운 이타행의 공덕을 쌓으라고 했다.
약 2000년 전 중동 팔레스타인 지역의 나사렛에 로마 총독부가 있었다.
총독은 빌라도(Pilate)였고 그의 앞에 예수가 불려나왔다.
그는 이미 현지의 유대교 교회에서 유대교 율법에 따라 성전을 모독하고 십계명을 부정한 중죄로 십자가에 의한 사형이 확정된 죄수로
총독 앞에서 최후 진술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구약의 원칙
‘눈에는 눈, 이에는 이’(The principle of an eye for an eye, a
tooth for a tooth)를 부정하며,
그 대신 정의의 법칙으로서 ‘새로운 사랑의 원칙(The new justice,
the principle of love)’을 주장한 것이다.
그의 주장은 사랑의 원칙은
“악을 악으로 보복하지 말라,
부상해도 저항하지 말라, 타인을 판단하지 말라,
잘못한 자를 사랑하라,
너의 적일지라도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예수는 이렇게 진술하고 있었다.
“이것을 위해 나는 태어났고,
이러한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총독 빌라도는 물었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빌라도의 질문은 인간 모두의 의문이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도 진실이 무엇인지 모른다.
진실을 증명코자 하는 것이 본질은 아니다.
그것은 정의(justice)인 것이다.
정의에 대한 열망은 행복에 대한 인간 열망인 것이다.
종교가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는 곳에는 종교의 배타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2000년이 지나도, 2600년이 지나도 인간은 예수와 붓다의 가르침의
진실을 아직도 모른다.
지구상에 아직도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이종인 jilee@kida.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