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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은 우리 국문학계의 거목이신
"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이시다.
서정주 시인이 나고 자란 고창은 그리 큰 산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유명한 고찰인 선운사와 도솔암이 있으며,
산과 바다가 잘 어우러진 곳이며
철따라 동백꽃이 피고 지고 고즈넉한 산길을 따라 걸어가면
나즈막한 고갯길마다 신화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런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자란 시인은 어릴적 보고 듣고 자란
서민들의 애환과 한이 서린 삶의 이야기들을 향토적인 문체로 잘 표현하였다.
그저 한낮 어느 촌로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말 신화적인 이야기,
(街談港說 )을 시인은 독자들이 실제
사실적으로 있었던 일인 냥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다.
선운사에 봄날 동백꽃이 피고 지면
가을 서늘한 기운이 둘때면 상사화(꽃무릇)가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질마재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고갯길엔
서정주님의 말처럼 많은 신화가 만들어지고
또 그 이야기들은 마을로 내려와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 거리가 되었나보다.
국화옆에서 란 시로도 유명한 서정주 시인은 이런 신화속에 자라서
우리 문학사에 길이 빛낼 아름다운 작품을 쓰도록 한
산실인 것이기도 하다.
고창하면 나에겐 문학적인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또 한가지 그 곳에서 나고 자란 한 녀석이
나에게 너무나 크나 큰 상처와 안좋은 추억을 안겨준 곳이기도 하다.
그런 기억들을 제쳐두고 " 질마재 신화" 를 다시 한번 읽어보자.
- 시인과 나 -
질마재 신화 - 서정주 -
1. 신부
-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져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버렸습니다. 문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을 누곤 못쓰겠다며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 밤 모양 그대로 초록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께를 가서 뚝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재로 내려앉아버렸습니다.
2. 해일
- 바닷물이 넘쳐서 개울을 타고 올라와서 삼대 울타리 틈으로 새어 옥수수밭 속을 지나서 마당에 흥건히 고이는 날이 우리외할머니네 집에는 있었습니다. 이런 날 나는 망둥이 새우새끼를 거기서 찾노라고 이빨 속까지 너무나 기쁜 종달새 새끼 소리가 다되어 알발로 낄낄거리며 쫓아 다녔습니다만, 항상 누에가 실을 뽑듯이 나만 보면 옛날이야기만 무진장 하시던 외할머니는, 이때에는 웬일인지 한 마디도 말을 앉고 벌써 늙은 얼굴이 엷은 노을빛처럼 불그레해져 바다 쪽만 멍하니 넘어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왜 그러시는지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만, 그 분이 돌아가신 인제는 그 이유를 간신이 알긴 알 것 같습니다. 우리외할아버지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고기잡이 하시는 어부,로, 내가 생겨나기 전 어느 해 겨울의 모진 바람에 어느 바다에선지 휘말려 빠져 버리곤 영영 돌아오지 못한 채로 있는 것이라 하니, 아마 외할머니는 그 남편의 바닷물이 자기 집 마당에 몰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도 못 하고 얼굴만 붉어져 있었던 것이겠지요.
3. 소자(小子) 이생원네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
- 소자 이 생원네 무우밭은요, 질마재 마을에서도 제일로 무성하고 밑둥거리가 굵다고 소문이 났었는데요. 그건 이 소자 이 생원네 집 식구들 가운데서도 이 집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이 아주 센 때문이라고 모두들 말했습니다.
옛날에 신라(新羅) 적에 지도로대왕(智度路大王)은 연장이 너무 커서 짝이 없다가 겨울 늙은 나무 밑에 장고(長鼓)만한 똥을 눈 색시를 만나서 같이 살았는데, 여기 이 마누라님의 오줌 속에도 장고(長鼓)만큼 무우밭까지 고무(鼓舞)시키는 무슨 그런 신바람도 있었는지 모르지. 마을의 아이들이 길을 빨리 가려고 이 댁 무우밭을 밟아 질러가다가 이 댁 마누라님한테 들키는 때는 그 오줌의 힘이 얼마나 센가를 아이들도 할수없이 알게 되었습니다. ― 「네 이놈 게 있거라. 저 놈을 사타구니에 짚어 넣고 더운 오줌을 대가리에다 몽땅 깔기어 놀라! 그러면 아이들은 꿩 새끼들같이 풍기어 달아나면서 그 오줌의 힘이 얼마나 더울까를 똑똑히 잘 알 밖에 없었습니다.1)
4. 눈들 영감의 마른 명태
- <눈들 영감 마른 명태 자시듯>이란 말이 또 질마재 마을에 있는데요. 참, 용해요. 그 딴딴히 뼈다귀가 억센 명태를 어떻게 그렇게는 머리끝에서 꼬리끝까지 쬐금도 안 남기고 목구멍 속으로 모조리 다 우물거려 넘기시는지, 우아랫니 하나도 없는 여든 살짜리 늙은 할아버지가 정말 참 용해요. 하루 몇십리씩의 지게 소금장수인 이 집 손자가 꿈속의 어쩌다가의 떡처럼 한 마리씩 사다 주는 거니까 맛도 무척 좋을 테지만 그 사나운 뻐다귀들을 다 어떻게 속에다 따 담는지 그건 용해요.
이것도 아마 이 하늘 밑에서는 거의 없는 일일 테니 불가불 할 수없이 신화(神話)의 일종이겠읍죠? 그래서 그런지 아닌게아니라 이 영감의 머리에는 꼭 귀신의 것 같은 낡고 낡은 탕건이 하나 얹히어 있었습니다. 똥구녘ㅇ께는 얼마나 말라 째져 있었는지, 들여다보질 못해서 거까지는 모르지만······.
5. 당산나무 밑 女子들
- 질마재 당산(堂山) 나무 밑 女子들은 처녀때도 새각시 때도 한창 壯年에도 연애(戀愛)를 아조 썩 잘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처녀때는 친정부모 하자는대로, 시집가선 시부모가 하자는대로, 그 다음엔 또 남편이 하자는대로, 진일 마른일 다 해내노라고 겨를이 영 없어서 그리 된 일일런지요? 남편보단도 그네들은 응댕이도 훨씬 더 세어서, 사십에서 오십 사이에는 남편들은 거의가 다 뇌점으로 먼저 저승에 드시고, 비로소 한가해 오금을 펴면서 그네들은 戀愛를 시작한다 합니다. 朴푸접이네도 金서운니네도 그건 두루 다 그렇지 않느냐구요.
인제는 房을 하나 온통 맡아서 어른 노릇을 하며 동백(冬柏)기름도 한번 마음껏 발라보고, 분(粉)세수도 해 보고, 김(金)서운니네는 나이는 올해 쉬흔 나이지만 이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이뻐졌는데, 이른 새벽 그네 방(房)에서 숨어 나오는 사내를 보면 새빨간 코피를 흘리기도 하드라구요. 집 뒤 당산(堂山)의 무성한 암느티나무 나이는 올해 칠백(七百)살, 그 힘이 뼈쳐서 그런다는 것이여요.
6.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한 먹오딧빛 툇마루가 깔려 있었습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떼로 날이날마닥 칠해져 온 것이라 하니 내 어머니의 처녀 때의 손때도 꽤나 많이는 묻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그것은 하도나 많이 문질러서 인제는 이미 때가 아니라, 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닦이어져 어린 내 얼굴을 들이비칩니다.
그래, 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따로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은, 이 외할머니네 때거울 툇마루를 찾아와, 외할머니가 장독대 옆 뽕나무에서 따다 주는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 합니다. 외할머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비치어 있는 이 툇마루에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7. 姦通事件과 우물
- 姦通事件이 질마재 마을에 생기는 일은 물론 꿈에 떡 얻어먹기같이 드물었지만 이것이 어쩌다가 走馬燈 터지듯이 터지는 날은 먼저 하늘은 아파야만 하였습니다. 한정없는 땡삐떼에 쏘이는 것처럼 하늘은 웨-하니 쏘여 몸써리가 나야만 했던 건 사실입니다.
「누구네 마누라허고 누구네 男丁네허고 붙었다네!」 소문만 나는 날은 맨먼저 동네 나팔이란 나팔은 있는 대로 다 나와서 <뚜왈랄랄 뚜왈랄랄> 막 불어자치고, 꽹가리도, 징도, 小鼓도, 북도 모조리 그대로 가만 있진 못하고, 퉁기쳐 나와 법석을 떨고, 男女老少, 심지어는 강아지 닭들까지 풍겨져 나와 외치고 달리고, 하늘도 아플 밖에는 별 수가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픈 하늘을 데불고 家畜 오양깐으로 가서 家畜用의 여물을 날라 마을의 우물들에 모조리 뿌려 메꾸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한 해 동안 우물물을 어느 것도 길어 마시지 못하고, 山골에 들판에 따로 따로 生水 구먹을 찾아서 渴症을 달래어 마실 물을 대어 갔습니다.
8. 上歌手의 소리
- 질마재 上歌手의 노랫소리는 답답하면 열두 발 상무를 짓고, 따분하면 어깨에 고깔 쓴 중을 세우고, 또 喪輿면 喪輿머리에 뙤약볕 같은 놋쇠 요령 흔들며, 이승과 저승에 뻗쳤습니다.
그렇지만, 그 소리를 안 하는 어느 아침에 보니까 上歌手는 뒤깐 똥오줌 항아리에서 똥오줌 거름을 옮겨 내고 있었는데요. 왜, 거, 있지 않아, 하늘의 별과 달도 언제나 잘 비치는 우리네 똥오줌 항아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붕도 앗세 작파해 버린 우리네 그 참 재미있는 똥오줌 항아리, 거길 明鏡으로 해 망건 밑에 염발질을 열심히 하고서 있었습니다. 망건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털들을 망건 속으로 보기좋게 밀어넣어 올리는 쇠뿔 염발질을 점잔하게 하고 있어요.
明鏡도 이만큼은 특별나고 기름져서 이승 저승에 두루 무성하던 그 노랫소리는 나온 것 아닐까요?
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
그 애가 샘에서 물동이에 물을 길어 머리 위에 이고 오는 것을 나는 항용 모시밭 사잇길에서서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동이 갓의 물방울이 그 애의 이마에 들어 그 애 눈썹을 적시고 있을 때는 그 애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갔지만, 그 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조심해 걸어와서 내 앞을 지날 때는 그 애는 내게 눈을 보내나와 눈을 맞추고 빙그레 소리 없이 웃었습니다. 아마 그 애는 그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을 수 있을 때만 나하고 눈을 맞추기로 작정했던 것이겠지요.
9. 신발
- 나보고 명절날 신으라고 아버지가 사다 주신 내 신발을 나는 먼 바다로 흘러내리는 개울물에서 장난하고 놀다가 그만 떠내려 보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내 이 신발은 벌써 邊山 콩등 밑의 개 안을 벗어나서 이 세상의 온갖 바닷가를 내 대신 굽이치며 놀아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어서 그것 대신의 신발을 또 한 켤레 사다가 신겨 주시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용품일 뿐, 그 대용품을 신고 명절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그래, 내가 스스로 내 신발을 사 신게 된 뒤에도 예순이 다 된 지금까지 나는 아직 대용품으로 신발을 사 신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 그대로 있습니다.
내가 여름 학질에 여러 직 앓아 영 못 쓰게 되면
내가 여름 학질에 여러 직 앓아 영 못 쓰게 되면 아버지는 나를 업어다가 山과 바다와 들녘과 마을로 통하는 외진 네갈림에 놓인 널찍한 바위 위에다 얹어 버려 두었습니다. 발가벗은 내 등때기에다간 복숭아 푸른 잎을 밥풀로 짓이겨 붙여 놓고, 「꼼짝 말고 가만히 엎드렸어. 움직이다가 복사잎이 떨어지는 때는 너는 영 낫지 못하고 만다」고 하셨습니다.
누가 그 눈을 깜짝깜짝 몇천 번쯤 깜짝거릴 동안쯤 나는 그 뜨겁고도 오슬오슬 추운바위와 하늘 사이에 다붙어 엎드려서 우아랫니를 이어 맞부딪치며 들들들들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게 뜸할 때쯤 되어 아버지는 다시 나타나서 홑이불에 나를 둘둘 말아 업어 갔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고스란히 성하게 산 아이가 되었습니다.
10. 李三晩이라는 神
- 질마재 사람들 중에 글을 볼 줄 아는 사람은 드물지마는, 사람이 무얼로 어떻게 神이 되는가를 요량해 볼 줄 아는 사람은 퍽이나 많습니다.
李朝 英祖 때 남몰래 붓글씨만 쓰며 살다 간 全州 사람 李三晩이도 질마재에선 시방도 꾸준히 神 노릇을 잘하고 있는데, 그건 묘하게도 여름에 징그러운 뱀을 쫓아내는 所任으로섭니다.
陰 正月 처음 뱀 날이 되면, 질마재 사람들은 먹글씨 쓸 줄 아는 이를 찾아가서 李三晩 석 字를 많이 많이 받아다가 집 안 기둥들의 밑둥마다 다닥다닥 붙여 두는데, 그러면 뱀들이 기어올라 서다가도 그 이상 넘어선 못 올라온다는 信念 때문입니다. 李三晩이가 아무리 죽었기로서니 그 붓 기운을 뱀이 넌들 행여 잊었겠느냐는 것이지요.
글도 글씨도 모르는 사람들 투성이지만, 이 요량은 시방도 여전합니다.
11. 단골 巫堂네 머슴 아이
- 세상에서도 제일로 싸디싼 아이가 세상에서도 제일로 천한 단골 巫堂네 집 꼬마둥이 머슴이 되었습니다. 단골 巫堂네 집 노란 똥개는 이 아이보단 그래도 값이 비싸서, 끼니마다 읃어먹는 물누렁지 찌끄레기도 개보단 먼저 차례도 오지는 안 했습니다.
단골 巫堂네 長鼓와 小鼓, 북, 징과 징채를 늘 항상 맡아 가지고 메고 들고, 단골 巫堂 뒤를 졸래졸래 뒤따라 다니는 게 이 아이의 職業이었는데, 그러자니, 사람마닥 職業에 따라 이쿠는 눈웃음- 그 눈음을 이 아이도 따로 하나 만들어 지니게는 되었습니다.
「그 아이 웃음 속엔 벌써 영감이 아흔 아홉 명은 들어앉았더라.」고 마을 사람들은 말하더니만「저 아이 웃음을 보니 오늘은 싸락눈이라도 한 줄금 잘 내리실라는가보다」고 하는 데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이놈의 새끼야. 이 개만도 못한 놈의 새끼야. 네 이놈 웃는 쌍판이 그리 재수가 없으니 이 달은 푸닥거리 하자는 데도 이리 줄어 들고 만 것이라······」단골 巫堂네까지도 미침내는 이 아이의 웃음에 요렇게쯤 말려 들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아이는 어느 사이 제가 이 마을의 그 敎主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어언간에 그 쓰는 말투가 홰딱 달라져 버렸습니다.
「······헤헤에이, 제밀헐 것! 괜스리는 씨월거려 쌌능구만 그리여. 가만히 그만 있지나 못허고······」저의 집 主人- 단골 巫堂 보고도 요렇게 어른 말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쯤 되면서부터 이 아이의 長鼓, 小鼓, 북, 징채를 메고 다니는 걸음걸이는 점 점 점 더 점잖해졌고, 그의 낯의 웃음을 보고서 마을 사람들이 占치는 가지數도 또 차차로히 늘어났습니다.
12. 까치마늘
- 옛날 옛적에 하누님의 아들 환웅님이 新婦깜을 고르려고 白頭山 중턱에 내려와서 어쩡거리고 있을 적에, 곰하고 호랑이만 그 新婦깜 노릇을 志望한 게 아니라, 사실은, 까치도 그걸 志望했던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곰허고 호랑이가 쑥허고 마늘을 먹으면서, 쓰고 아린 것 잘 견디는 사람되는 연습을 하고 있을 때, 사실은 까치도 그 옆에 따로 한 자리 벌이고 그걸 해 보기로 하고 있긴 있었지마는, 쑥은 그대로 먹을 수가 있었어도, 진짜 마늘은 너무나 아려서 차마 먹지를 못하고 안 아린 까치 마늘이라는 걸로 代用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곰만이 혼자 잘 참아 내서 덩그렇게 하누님의 며느리가 되었을 때, 너무나 쓰고 아린 걸 못 참아서 날뛰어 달아난 호랑이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한테도 대들고 으르렁거리게 되었지만, 까치는 그래도 못 견딜 걸 먹지는 안 했기 때문에, 말씨도 行動擧止도 아직도 상냥한 채로 새 사람이 보일 때마다 반갑고도 안타까와 짹짹거리고 가까이 온다는 것입니다. 새 손님이 어느 집에 올 氣味가 보일 때마다, 한 걸음 앞서 날아와선 짹짹거리지 않고는 못 견딘다는 것입니다.
까치 마늘은 陰三月 보리밭 속에 겨우 끼어 꽃이 피는데, 하늘빛은 어느만큼 하늘 빛이지만, 아주 웃기게 가느다란 분홍줄이 거기 그어져 있었습니다. 이건 물론 까치하고 아이들것이지요만 무엇이 보고싶기사 女中 三學年짜리만큼 무척은 보고 싶은 것이지요.
13. 분지러 버린 불칼
- 여름 하늘 쏘내기 속의 천둥 번개나 벼락을 많은 질마재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무서워하지 않는 버릇이 생겨 있습니다.
여자의 아이 낳는 구멍에 말뚝을 박아서 멀찌감치 내던져 버리는 놈하고 이걸 숭내내서 갓 자라는 애기 호박에 말뚝을 박고 다니는 애녀석들만 빼놓고는 인젠 아무도 벼락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이 되어서, 아무리 번개가 요란한 궂은 날에도 삿갓은 내리는 빗 속에 머윗잎처럼 자유로이 들에 돋게 되었습니다.
邊山의 逆賊 具憺百이가 그 벼락의 불칼을 분지러 버렸다고도, 甲午年 東學亂 때 古阜 全琫準이가 그랬다고도 하는데, 그건 똑똑히는 알 수 없지만, 罰도 웬놈의 벌이 백성들한텐 그리도 많은지, 역적 구담백이와 전봉준 그 둘 중에 누가 번개치는 날 일부러 우물 옆에서 똥을 누고 앉았다가, 벼락의 불칼이 내리치는 걸 잽싸게 붙잡아서 몽땅 분지러 버렸기 때문이라는 이야깁니다.
그렇지만 삿갓을 머윗잎처럼 쓰고 쏘내기 번갯불 속에 나설 용기가 없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은 하나 둘 셋 넷에서 열까지 그들의 숨소리를 거듭 거듭 되풀이 해서 세며 쏘내기 속의 그 천둥이 멎도록 房에 들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덜, 아홉, 열」그렇게 세는 것이 아니라 「한나, 만나, 청국, 대국, 얼기빗, 참빗, 호좆, 말좆, 벙거지, 털렁」그렇게 세야 하는 것인데, 이 셈법 이것은 李朝 때 胡좆인놈들이 무지무지하게 처들어와서 막 직딱거릴 때 생긴 거라고 해요. 「淸國 大國놈 한나 만나서 호좆 말좆에 얼기빗 참빗의 건절(巾節)이고 무어고 다 소용도 없이 되고, 치사한 權力 벙거지만 털렁털렁 지랄이구나」아마 그쯤 되는 뜻이겠지요. 한나. 만나. 청국. 대국. 얼기빗. 참빗. ?좆. 벙거지. 털렁·····.
14. 소박꽃 時間
- 옛날 옛적에 中國이 꽤나 점잖했던 시절에는 「수염 쓰다듬는 時間」이라는 시간단위가 다 사내들한테 있었듯이, 우리 질마재 사람들에겐 「박꽃 때」라는 시간단위가 언젠가부터 생겨나서 시방도 잘 쓰여져 오고 있습니다.
「박꽃 핀다 저녁밥 지어야지 물길러 가자」말 하는 걸로 보아 박꽃 때는 하로낮 내내 오물었던 박꽃이 새로 피기 시작하는 여름 해으스름이니, 어느 가난한 집에도 이때는 아직 보리쌀이라도 바닥 나진 안해서, 먼 우물물을 동이로 여나르는 여인네들의 눈에서도 간장(肝臟)에서도 그 그득한 순백의 시간을 우그러뜨릴 힘은 하늘에도 땅에도 전연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혹 흥부네같이 그 곁보리쌀마져 동나버린 집안이 있어 그 박꽃 시간의 한 귀퉁이가 허전하게 되면, 강남서 온 제비가 들어 그 허전한 데서 파다거리기도 하고 그 파다거리는 춤에 부쳐 「그리 말어, 흥부네. 오곡백과도 상평통감도 금은보화도 다 박꽃 열매 바가지에 담을 수 있는 것 아닌갑네」 잘 타일러 알아듣게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박꽃 시간은 아직 우구러지는 일도 뒤틀리는 일도, 덜어지는 일도 더하는 일도 없이 꼭 그 순백의 금질량(金質量) 그대로를 잘 지켜 내려오고 있습니다.
15. 말 피
- 이 땅 위의 장소(場所)에 따라, 이 하늘 속 시간에 따라, 情들었던 여자나 남자를 떼내버리는 方法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읍죠.
그런데 그것을 우리 질마재 마을에서는 뜨근뜨근하게 매운 말피를 그런 둘 사이에 쫘악 검붉고 비리게 뿌려서 영영 정떨어져 버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모시밭 골 감나무집 설막동(薛莫同)이네 과부(寡婦) 어머니는 마흔에도 눈썹에서 쌍긋한 제물향이 스며날 만큼 이뻤었는데, 여러해 동안 도깝이란 별명(別名)의 사잇서방을 두고 전답 마지기나 좋이 사들인다는 소문이 그윽하더니, 어느 저녁엔 대사립문에 인줄을 늘이고 뜨근뜨근 맵고도 비린 검붉은 말피를 쫘악 그 언저리에 두루 뿌려 놓았습니다.
그래 아닌게아니라, 밤에 燈불 켜 들고 여기를 또 찾아 들던 놈팽이는 금방에 정이 새파랗게 질려서 「동네 방네 사람들 다 드러 보소······ 이부자리속에서 정들었다고 예편네들 함부로 믿을가 무섭네······」한바탕 왜장치고는 아조 떨어져 나가 버렸다니 말씀입지요.
이 말피 이것은 물론 저 신라적 김유신(金庾信)이가 천관녀(天官女) 앞에 타고 가던 제 말의 목을 잘라 뿌려 정떨어지게 했던 그 말피의 효력(效力) 그대로서, 李朝를 거쳐 일정초기까지 온것입니다마는 어떨갑쇼? 요새의 그 시시껄렁한 여러 가지 離別의 방법들보단야 그래도 이게 훨씬 찐하기도 하고 좋지 안을갑쇼?
16. 지연승부(紙鳶勝負)
- 「싸움에는 이겨야 멋이라」는 말은 있습지요만 「져야 멋이라」는 말은 없사옵니다. 그런데, 지는 게 한결 더 멋이 되는 일이 陰曆 정월 대보름날이면 이마을에선 하늘에 만들어져 그게 1년 내내 커어다란 한 뻔보기가 됩니다.
勝負는 끈질겨야 하는 거니까 山海의 끈질긴 것 가운데서도 가장 끈질긴 깊은 바다 속의 민어 배 속의 부레를 끄내 풀을 끓이고, 또 勝負엔 날카론 서슬의 날이 잘서 있어야 하는 거니까 칼날보다 더 날카로운 새금파리들을 모아 찧어 서릿빨같이 자자란 날들을 수없이 만들고, 승부는 또 햇빛에 비쳐 보아 곱기도 해야 하는 것이니까 고은 빛깔 중에서도 얌전하게 고은 치자(梔子)의 노랑 물도 옹기솥에 끓이고, 그래서는 그 승부의 鳶실에 우선 몇 번이고 거듭 번갈아서 먹여야 합죠.
그렇지만 선수(選手)들의 연 자새의 그 긴 연실들 끝에 매달은 연들을 마을에서 제일 높은 산 봉우리 우에 날리고, 막상 승부를 겨루어 서로 걸고 재주를 다하다가, 한 쪽 연이 그 연실이 끊겨 나간다 하드래도, 승자는 「졌다」는 탄식(歎息)속에 놓이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해방(解放)된 자유의 끝없는 항행(航行)속에 비로소 들어섭니다. 산봉우리 우에서 버둥거리던 연이 그 끊긴 연실 끝을 단 채 하늘 멀리 까물거리며 사라져 가는데, 그 마음을 실어 보내면서 「어디까지라도 한번 가 보자」던 전 신라(新羅) 때부터의 한결 같은 유원감(悠遠感)에 젖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을의 생활에 실패해 한정없는 나그네 길을 떠나는 마당에도 보따리의 먼지 탈탈 털고 일어서서는 끊겨 풀려 나가는 연같이 가뜬히 가며, 보내는 사람들의 인사말도 「팔자야 네놈 팔자가 상팔자구나」이쯤 되는 겁니다.
17. 마 당 房
우리가 옛부터 만들어 지녀 온 세 가지의 방 - 온돌방(溫突房)과 마루방 중에서, 우리 도시(都市) 사람들은 거의 시방 두 가지의 방 - 온돌방하고 마루방만 쓰고 있지만, 질마재나 그 비슷한 촌(村)마을에 가면 그 토방(土方)도 여전히 잘 쓰여집니다. 옛날엔 마당 말고 토방이 또 따로 있었지만, 요즘은 번거로워 그 따로 하는 대신 그 토방이 그리워 마당을 갖다가 대용(代用)으로 쓰고 있지요. 그리고 거기 들이는 정성이사 예나 이제나 매한가지지요.
음(陰) 칠월 칠석 무렵의 밤이면, 하늘의 은하(銀河)와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우리의 살에 직접 잘 배어들게 왼 식구(食口) 모두 나와 딩굴며 노루잠도 살풋이 부치기도 하는 이 마당 토방. 봄부터 여름 가을 여기서 말리는 산과 들의 풋나무와 풀 향기는 여기 저리고, 보리 타작 콩타작 때 연거푸 연거푸 두들기고 메어 부친 도리깨질은 또 여기를 꽤나 매끄럽겐 잘도 다져서, 그렇지 광한루(廣寒樓)의 석경(石鏡)속의 춘향(春香)이 낯바닥 못지않게 반드랍고 향기로운 이 마당 토방. 왜 아니야. 우리가 일년 내내 먹고 마시는 음식(飮食)들 중에서도 제일 맛 좋은 풋고추 넣은 칼국수 같은 것은 으레 여기 모여 앉아 먹기 망정인 이 하늘 온전히 두루 잘 비치는 방. 우리 학질(瘧疾) 난 식구가 따가운 여름 햇살을 몽땅 받으려 홑이불에 감겨 오구라져 나자빠졌기도 하는, 일테면 병원 입원실이기까지도 한 이 마당 방. 부정(不淨)한 곳을 지내온 식구(食口)가 있으면, 여기 더럽이 타지 말라고 할머니들은 하얗고도 짠 소금을 여기 뿌리지만, 그건 그저 그만큼한 마음인 것이지 미신(迷信)이고 뭐고 그러려는 것도 아니지요.
18. 알묏집 개피떡
- 알뫼라는 마을에서 시집 와서 아무것도 없는 홀어미가 되어 버린 알묏댁은 보름사리 그뜩한 바닷물 우에 보름달이 뜰 무렵이면 행실이 궂어져서 서방질을 한다는 소문이 퍼져, 마을 사람들은 그네에게서 외면을 하고 지냈습니다만, 하늘에 달이 없는 그믐께에는 사정은 그와 아주 딴판이 되었습니다.
음(陰) 스무날 무렵부터 다음 달 열흘까지 그네가 만든 개피떡 광주리를 안고 마을을 돌며 팔러 다닐 때에는 「떡맛하고 떡 맵시사 역시 알묏집네를 당할 사람이 없지」모두 다 흡족해서, 기름기로 번지레한 그네 눈망울과 머리털과 손 끝을 보며 찬양하였습니다. 손가락을 식칼로 잘라 흐르는 피로 죽어가는 남편의 목을 추기었다는 이 마을 제일의 열녀(烈女) 할머니도 그건 그랬습니다.
달 좋은 보름 동안은 외면(外面)당했다가도 달 안 좋은 보름 동안은 또 그렇게 이해(理解)되는 것이었지요.
앞니가 분명히 한 개 빠져서까지 그네는 달 안 좋은 보름 동안을 떡 장사를 다녔는데, 그 동안엔 어떻게나 이빨을 희게 잘 닦는 것인지, 앞니 한 개 없는 것도 아무 상관없이 달 좋은 보름 동안의 연애(戀愛)의 소문은 여전히 마을에 파다하였습니다.
방 한 개 부엌 한 개의 그네 집을 마을 사람들은 속속들이 다 잘 알지만, 별다른 연장도 없었던 것인데, 무슨 딴손이 있어서 그 개피떡은 누구 눈에나 들도록 그리도 이뿌게 했던 것인지, 머리털이나 눈은 또 어떻게 늘 그렇게 깨끗하게 번즈레하게 이뿌게 해낸 것인지 참 묘한 일이었습니다.
19. 소 망(똥간)
- 아무리 집안이 가난하고 또 천덕구러기드래도, 조용하게 호젓이 앉아, 우리 가진 마지막껏 - 똥하고 오줌을 누어 두는 소망 항아리만은 그래도 서너 개씩은 가져야지. 상반(上盤)녀석은 궁(宮)의 각장 장판방에서 백자(白磁)의 매화(梅花)틀을 타고 누지만, 에잇, 이것까지 그게 그 까진 정도(程度)여서야 쓰겠나. 집 안에서도 가장 하늘의 해와 달이 별이 잘 비치는 외따른 곳에 큼직하고 단단한 옹기 항아리 서너 개 포근하게 땅에 잘 묻어 놓고, 이 마지막 이거라도 실천 오붓하게 자유(自由)로이 누고 지내야지.
이것에다가는 지붕도 휴지(休紙)도 두지 않는 것이 좋네. 여름 폭주(暴注)하는 햇빛에 일사병(日射病)이 몇 천(千)개 들어 있거나 말거나, 내리는 쏘내기에 벼락이 몇 만(萬)개 들어 있거나 말거나, 비 오면 머리에 삿갓 하나로 응뎅이 드러내고 앉아 하는, 휴지 대신으로 손에 닿는 곳의 흥부(興夫) 박잎사귀로나 밑 닦아 간추리는 - 이 한국(韓國)「소망」의 이 마지막 용변(用便) 달갑지 않나?
「하늘에도 별과 달은 소망에도 비친답네」
가람 이병기(李秉岐)가 술만 거나하면 가끔 읊조려 찬양해 왔던, 그 별과 달이 늘 두루 잘 내리비치는 화장실(化粧室) - 그런 데에 우리의 똥오줌을 마지막 잘 누며 지내는 것이 역시 아무래도 좋은 것 아니겠나? 마지막 것일라면야 이게 역시 좋은 것 아니겠나?
20. 신선(神仙) 재곤(在坤)이
- 땅 위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재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가 있었습니다. 성한 두 손으로 멍석도 절고 광주리도 절었습니다마는, 그것만으론 제 입 하나도 먹이지를 못해,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에게 마을을 앉아 돌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 하나를 특별히 주었습니다.
「재곤이가 만일에 제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人情)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이 벌(罰)을 면치 못할 것이다.」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끼니의 밥과 추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갑무년(甲戊年)이라던가 을해년(乙亥年)의 새 무궁화(無窮花) 피기 시작하는 어느 아침 끼니부터는 재곤이의 모양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일절(一切)보이지 않게 되고, 한 마리 거북이가 기어다니듯 하던 살았을 때의 그 무겁디 무거운 모습만이 산 채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 속마다 남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줄 천벌(天罰)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거듭 바뀌어도 천벌(天罰)은 이 마을에 내리지 않고, 농사(農事)도 딴 마을만큼은 제대로 되어, 신선도(神仙道)에도 약간 알음이 있다는 좋은 흰수염의 조선달(趙先達)영감은 말씀하셨습니다. 「재곤이는 생긴 게 꼭 거북이같이 안 생겼던가. 거북이도 鶴이나 마찬가지로 목숨이 천년(千年)은 된다고 하네. 그러니, 그 긴 목숨을 여기서 다 견디기는 너무나 답답하여서 날개 돋아나 하늘로 신선(神仙)살이를 하러 간 거여·····」
그래 「재곤이는 우리들이 미안해서 모가지에 연자맷돌을 단단히 매어달고 아마 어디 깊디 바다에 잠겨 나오지 안는 거라.」마을 사람들도 「하여간 죽은 모양을 우리한테 보인 일이 없으니 조선달 영감 말씀이 마음적으로야 불가불 옳기사 옳다.」고 하게는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두루 그들의 마음속에 살아서만 있는 그 재곤이의 거북이모양 양쪽 겨드랑에 두 개씩의 날개들을 안 달아 줄 수는 없었습니다.
21. 추사(秋史)와 백파(白坡)와 석전(石顚)
- 질마재 마을의 절간 선운사(禪雲寺)의 중 백파한테 그의 친구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만년(晩年)의 어느 날 찾아들었습니다.
종이쪽지에 적어온 「돌이마(石顚)란 아호(雅號) 하나를 백파에게 주면서,」
「누구 주고 시푼 사람 있거던 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백파는 그의 생전 그것을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아껴 혼자 지니고 있다가 이승을 뜰 때, 「이것은 추사가 내게 맡겨 전(傳)하는 것이니 후세(後世)가 임자를 찾아서 주라.」는 유언(遺言)으로 감싸서 남겨놓았습니다.
그것이 이조가 끝나도록 절간 설합 속에서 묵어 오다가, 딱한 일본(日本) 식민지(植民地) 시절에 박한영(朴漢永)이라는 중을 만나 비로소 전해졌는데 석전 박한영은 그 雅號를 받은 뒤에 30年 간이나 이 나라 불교(佛敎)의 태종정(太宗正) 스님이 되었고, 불교의 한일합방(韓日合邦)도 영 못 하게 막아냈습니다.
지금도 선운사 입구(入口)에 가면 보이는 추사가 글을 지어 쓴 백파의 비석(碑石)에는 「천기대용(天機大用)이라는 말이 큼직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추사가 준 아호「석전(石顚」을 백파가 생전에 누구에게도 주지 않고, 이 겨레의 未來永遠에다 가만히 유언으로 싸서 전하는 것을 알고 추사도 「야! 단수(段數) 참 높구나!」탄복한 것이겠지요.
22. 석녀(石女) 한물댁의 한숨
- 아이를 낳지 못해 자진(自進)해서 남편에게 소실(小室)을 얻어 주고, 언덕 위 솔밭 옆에 홀로 살던 한물댁은 물이 많아서 붙여졌을 것인 한물이란 그네 친정(親庭) 마을의 이름과는 또 달리 무척은 차지고 단단하게 살찐 옥(玉)같이 생긴 여인이었습니다. 질마재 마을 여자들의 눈과 눈썹 이빨과 가르마 중에서는 그네 것이 그 중 단정(端正)하게 이뿐 것이라 했고, 힘도 또 그 중 아마 실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 바람부는 날 그네가 그득한 옥수수 광우리를 머리에 이고 모시밭 사이 길을 지날 때, 모시 잎들이 바람에 그 흰 배때기를 뒤집어 보이며 파닥거리면 그것도 「한물댁 힘 때문이다.」고 마을 사람들은 웃으며 우겼습니다.
그네 얼굴에서는 언제나 소리도 없는 엣비식한 웃음만이 옥(玉) 속에서 핀 꽃같이 벙그러져 나와서 그 어려움으론 듯 그 쉬움으론 듯 그걸 보는 남녀노소(男女老少)들의 웃 입술을 두루 위로 약간씩은 비끄러올리게 하고, 그 속에 웃 이빨들을 어쩔 수 없이 잠깐씩 드러내놓게 하는 막강(莫强)한 힘을 가졌었기 때문에, 그걸 당하는 사람들은 힘에 겨워선지 그네의 그 웃음을 오래 보지는 못하고 이내 슬쩍 눈을 돌려 한눈들을 팔아야 했습니다. 사람들뿐 아니라, 개나 고양이도 보고는 그렇더라는 소문도 있어요. 「한물댁같이 웃기고나 살아라.」모두 그랬었지요.
그런데 그 웃음이 그만 마흔 몇 살쯤하여 무슨 지독한 열병(熱病)이라던가로 세상을 뜨자, 마을에는 또 다른 소문 하나가 퍼져서 시방까지도 아직 이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한물댁이 한숨 쉬는 소리를 누가 들었다는 것인데, 그건 사람들이 흔히 하는 어둔 밤도 궂은 날도 해어스럼도 아니고 아침 해가 마악 올라올락말락한 아주 밝고 밝은 어떤 새벽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네 집 한 치 뒷산의 마침 이는 솔바람 소리에 아주 썩 잘 포개어져서만 비로소 제대로 사운거리더라고요.
그래 시방도 밝은 아침에 이는 솔바람 소리가 들리면 마을 사람들은 말해 오고 있습니다. 「아하 저런! 한물댁이 일찌감치 일어나 한숨을 또 도맡아서 쉬시는구나! 오늘 하루도 그렁저렁 웃기는 웃고 지낼라는가부다.」고······
23. 來蘇寺 大雄殿 丹靑
- 내소사 대웅보전 단청은 사람의 힘으로도 새의 힘으로도 호랑이의 힘으로도 칠하다가 칠하다가 아무래도 힘이 모자라 다 못 칠하고 그대로 남겨놓은 것이다.
내벽(內壁) 서쪽의 맨 위쯤 앉아 참선(參禪)하고 있는 선사(禪師), 선사 옆 아무것도 칠하지 못하고 너무나 휑하니 비어둔 미완성(未完成)의 공백(空白)을 가 보아라. 그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대웅보전을 지어 놓고 마지막으로 단청사(丹靑師)를 찾고 있을 때, 어떤 해어스럼제 성명(姓名)도 모르는 한 나그네가 서(西)로부터 와서 이 단청을 맡아 겉을 다 칠하고 보전(寶殿) 안으로 들어갔는데, 문(門) 고리를 안으로 단단히 걸어 잠그며 말했었다.
「내가 다 칠해 끝내고 나올 때까지는 누구도 절대로 들여다보지 마라.」
그런데 일에 폐는 속(俗)에서나 절간에서나 언제나 방정맞은 사람이 끼치는 것이라, 어느 방정맞은 중 하나가 그만 못 참아 어느 때 슬그머니 다가가서 뚫어진 창(窓)구멍 사이로 그 속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나그네는 안 보이고 이쁜 새 한 마리가 천정(天井)을 파닥거리고 날아다니면서 부리에 문붓으로 제몸에서 나는 물감을 묻혀 곱게 곱게 단청해 나가고 있었는데, 들여다보는 사람 기척에
「아앙!」
소리치며 떨어져 내려 마루 바닥에 납작 사지(四肢)를 뻗고 늘어지는 것을 보니, 그건 커어다란 한 마리 불호랑이었다.
「대호스님! 대호스님! 어서 일어나시겨라우!」
중들은 이곳 사투리로 그 호랑이를 동문(同門)대우를 해서 불러댔지만 영 그만이어서, 할 수 없이 그럼 내생(來生)에나 소생(蘇生)하라고 이 절 이름을 내소사라고 했다.
그러고는 그 단청하다가 미처 다 못한 그 빈 공백을 향해 벌써 여러 백년(百年)의 아침과저녁마다 절하고 또 절하고 내려오고만 있는 것이다.
24. 풍편(風便)의 소식
- 옛날 옛적에도 사람들의 마음은 천차만별(千差萬別)이어서, 그 사람 사이 제 정(情)으로 언약(言約)하고 다니며 사람 노릇하기란 참으로 따분한 일이라, 그 어디만큼서 그만 작파해 버리고 깊은 산으로 들어와 버린 두 사내가 있었습니다. 한 사내의 이름은 「기회(機會) 보아서」고, 또 한 사내의 이름은 「도통(道通)이나 해서」산의 북쪽 동굴(洞窟)속에 자리잡아 지내면서, 가끔 어쩌다가 한 번씩 서로 찾아 만났는데, 그 만나는 약속 시간을 정하는 일까지도 그들은 이미 그들 본위(本位)로 하는 것은 깡그리 작파해버리고 , 수풀에 부는 바람이 그걸 정하게 맡겨 버렸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바람이 북녘에서 불어와서 산골짜기 수풀의 나뭇잎들을 남쪽으로 아주 이쁘게 굽히면서 파다거리거던, 여보게, 「기회 보아서!」자네가 보고 싶어 내가 자네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줄로 알게.』이것은 「도통이나 해서」가 한 말이었습니다.
『아주 썩 좋은 남풍(南風)이 불어서 산골짜기의 나뭇잎들을 북쪽으로 멋들어지게 굽히며 살랑거리거던 그건 또 자네를 만나고 싶어 가는 신호(信號)니, 여보게 「도통이나 해서!」그때는 자네가 그 어디쯤 마중나와서 있어도 좋으이.』이것은 「기회 보아서!」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회 보아서」와 「도통이나 해서」가 그렇게 해 빙글거리며 웃고 살던 때가 그 어느 때라고. 시방도 질마재 마을에 가면, 그 오랜 옛 습관은 꼬리일망정 아직도 쬐그만큼 남아 있기는 있습니다.
오래 이슥하게 소식 없던 벗이 이 마을의 친구를 찾아들 때면 『거 자네 어디 쏘다니다가 인제사 오나? 그렇지만 풍편으론 소식 다 들었네.』이 마을의 친구는 이렇게 말하는데, 물론 이건 쬐끔인 대로 저 옛것의 꼬리이기사 꼬리입지요.
25. 竹 窓
- 대수풀이 바람에 서걱이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우리들 귀엔 「비밀입니까/비밀이라니요/내게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내 비밀은 떨리는 가슴을 통해서 당신의 촉각(觸覺)으로 들어갔습니다.」한용운(韓龍雲)스님의 <비밀>이라는 詩句節을 소곤거리고 있는 것 같이만 들리는데, 新羅 사람들 귀엔 그런 추상(抽象)일 필요까지도 없는 순 실토(實吐)로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니 하는, 숨긴 사실을 막 집어내서 폭로하고 있는 소리로만 들렸었읍지요. 신라 경문왕(景文王)은 마누라가 너무나 밉게 생겨서, 밤엔 뱀각씨(閣氏)들을 가슴 위에 널어 놓아 핥게 하고 지내다가설라문 쭈빗쭈빗한 짐승 업보(業報)로 긴 당나귀 귀가 되어 복두幞頭)로 거길 가려 숨기고 지냈는데, 이걸 혼자만 알고 있는 복두쟁이 놈이 끝까지 가만있지를 못하고, 죽을 때 대수풀로 가서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한마디 소근거려 놓았기 때문에 대수풀이 그 다음부터는 그렇게 소근거린다든지 그런 실담(實談)의 폭로 소리였읍죠.
일이 이리 어찌 되어 내려오다가 창(窓)을 대쪽으로 역어 매는 습관은 생긴 겁니다. 「비밀입니까/비밀이라니요/내게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한용운 선생님이 맞았어요. 결국 고러초롬 주장(主張)하기 위해서지요.
방안의 주장을 위해서뿐이 아니라, 밖에서 느물고 오던 호랑이라든지 그런 것들의 침략의 비밀도 민감하디 민감한 여기 울리어선 다 모조리 탄로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니······. 탄로나는 것이사 호랑이라고 해서 겁 안 내고 견딜 수만도 없는 것이니·······.
26. 걸 궁 배 미
- 세 마지기 논배미가 반달만큼 남았네.
네가 무슨 반달이냐, 초생달이 반달이지.
농부가(農夫歌) 속의 이 구절을 보면, 모 심다가 남은 논을 하늘에 뜬 반달에다가 비유했다가 냉큼 그것을 취소하고 아무래도 진짜 초생달만큼이야 할소냐는 느낌으로 고쳐가지는 농부들의 약간 겸손하는 듯한 마음의 모양이 눈에 선히 잘 드러나 보인다. 그러나,
이 논배미 다 심고서 걸궁배미로 넘어가세. 하는 데에 오면
내가 무슨 걸궁이냐, 무당음악(巫堂音樂)이 걸궁이지.
하고 고치는 구절은 전연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이 걸궁배미라는 논배미만큼은 하나 에누리할 것도 없는 문자(文字) 그대로의 무당의 성악(聲樂)이요. 기악(器樂)이요. 또 그 ?창(唱)인 것이다. 그 질척질척한 검은 흙은 물론, 거기 주어진 오물(汚物)의 거름, 거기 숨어 농부의 다리의 피를 빠는 찰거머리까지 두루 합쳐서 송두리째 신나디 신난 무당의 음악일 따름인 것이다.
그리고, 걸궁에는 중들이 하는 걸궁도 있는 것이고, 중의 걸궁이란 결국 부처님의 고오고오 음악, 부처님의 고오고오 춤 바로 그런 것이니까, 이런 쪽에서 이걸 느껴보자면, 야! 참 이것 상당타.
27. 심사열고(深思熱考)
- 백순문(白舜文)의 사형제는 뱃사람이었는데, 을축년(乙丑年) 봄 풍랑(風浪)에 맏형 순문이 목숨을 뺏앗긴 뒤 남은 삼형제는 심사숙고(深思熟考)에 잠겼습니다.
심사숙고는 그러나, 그걸 오래 오래 하고 지내 보자면 꼭 그것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어서, 큰 아우 백관옥(白冠玉)이는 술로 그 장단(長短)을 맞추었던 것인데, 이 사람은 술도 가짜 술은 영 못 마시는 성미(性味)라, 해마다 밀주(密酒)를 담아서는 숨겨두고 찔금찔금 마시고 앉았다가 순경(巡警)한테 들키면 그 때마다 벌금(罰金)만큼 징역(懲役)살이를 되풀이 되풀이해 살고 나와야 했습니다. 둘째 아우 백사옥(白士玉)이도 그 긴 심사숙고의 사이, 마지못해 사용한 게 술은 술이었지만, 그래도 백사옥이 술은 眞假를 까다롭게 가리지도 않는 것이어서 아무것이나 앵기는 대로 처마셨기 때문에 罰金條로 또박또박 징역살러 갈 염려까지는 없었지마는, 그놈의 惡酒毒으로 가끔 거드렁거리고, 웃통을 벗고 덤비고, 네갈림길 넓적바위 같은 데 넓죽넓죽 나자빠져 버리고 하는 것이 흉이었습니다.
이 두 형에 비기면, 막내 아우 백준옥(白俊玉)이가 그의 심사숙고 사이에 빚어 두고 지내던 건 좀 별난 것이어서 우리를 꽤나 잘 웃깁니다. 백준옥이는 그가 난 딸아이가 볼 우물도 좋고 오목오목하게 생겼대서 「오목녀」하고 이름을 붙이고, 또 석류(石榴)나무를 부엌 옆에도 하나, 문간에도 하나 두 그루나 심어 꽃피워 가지고 지내면서, 언제, 어떻게, 남의 눈에 안 띄이게 연습시킨 것인지, 한동안이 지내자, 이 집 웃음과 아양을 왼 마을에서도 제일 귀여운 것으로 만들어 「아양이라면이사, 암, 백준옥이네 아양이 이 하늘 밑에서는 제일이지 제일이여.」가 되고만 것입니다.
그렇기사 그렇기는 했지만서두, 이런 그들의 심사숙고는 그들의 일생동안 끝나는 날도 없이 끝없이 끝없이만 이어 가다가, 또 다시 그들의 아들딸들 마음속으로 이어 넘어갈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해 어느 날, 그 석류꽃 아양 집 - 그 백준옥이네 집 아들 하나가 그 두 대(代)의 심사숙고의 끝을 맺기는 겨우 맺었습니다. 그집 식구(食口)들 가운데서도 유체얼굴의 눈웃음의 아양이 좋은 아들 백풍식이가 바닷물을 배로 또 부리기 시작하기는 시작했습니다. 멀고 깊은 바다 풍랑(風浪)에 죽을 염려가 있는 어반(漁般)이 아니라, 난들목 얕은 물인 조화치(造化峙) 나룻터의 나룻배 사공을 새로 시작한 것입니다.
28. 침향(沈香)
- 침향을 만들려는 이들은, 산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 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 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겨 넣어 둡니다. 침향은, 물론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이 잠근 참나무 토막들을 다시 건져 말려서 빠개어 쓰는 겁니다만, 아무리 짧아도 2~3백년은 수저(水底)에 가라앉아 있은 것이라야 향(香)내가 제대로 나기 비롯한다 합니다. 천년(千年)쯤씩 잠긴 것은 냄새가 더 좋굽시오.
그러니, 질마재 사람들이 침향을 만들려고 참나무 토막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내다가 육수(陸水)와 조류(潮流)가 합수(合水)치는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은 자기(自己)들이나 자기들 아들딸이나 손자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더 먼 미래(未來)의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후대들을 위해섭니다.
그래서 이것을 넣는 이와 꺼내 쓰는 사람 사이의 수백(數百) 수천(數千)년은 이 침향 내음새 꼬옥 그대로 바짝 가까이 그리운 것일 뿐, 따분할 것도, 아득할 것도, 너절할 것도, 허전할 것도 없습니다.
29. 꽃
- 꽃 옆에 가까이 가는 아이들이 있으면, 할머니들은
「얘야 눈 아피 날라. 가까이 가지마라.」고 늘 타일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피어나는 산과 들의 꽃들을 이쁘다고 꺽기는 커녕, 그 옆에 가까이는 서지도 않고, 그저 다만 먼 발치서 두고 아스라이 아스라이만 이뻐해 왔습니다.
그러나, 꼭 한 가지 例外가 있긴 있었습니다. 그것은 딴 게 아니라, 누구거나 즈이집 송아지를 이뻐하는 사람이, 그 송아지가 스물 넉 달쯤을 자라서 이제 막 밭을 서먹서먹 갈 만큼 되었을 때, 그때가 바로 진달래꽃 때쯤이어서, 그새 뿌사리의 두새로 자란 뿔 사이에 진달꽃 몇 송이를 매달아 두는 일입니다.
소 - 그것도 스물 넉 달쯤 자란 새 뿌사리 소만은 눈 아피도 모른다 해서 그리해 온 것이었어요.
30. 대흉년(大凶年)
- 흉년의 봄 굶주림이 마을을 휩쓸어서 우리 식구들이 쑥버물이에 밀껍질 남은 것을 으깨 넣어 익혀 먹고 앉았는 저녁이면 할머님은 우리를 달래시느라고 입만 남은 입속을 열어 웃어 보이시면서 우리들 보고 알아들으라고 그 분의 더 심했던 대흉년의 경험을 말씀하셨습니다.
「밀껍질이라도 아직은 좀 남었으니 부자(富者) 같구나. 을사년(乙巳年) 무렵 어느 해 봄이던가, 나와 너의 할아버지는 이 쑥버물이에 아무것도 곡기(穀氣) 넣을 게 없어서 못자리의 흙을 집어다 넣어 끄니를 에우기도 했었느니라. 그래도 우리는 씻나락까지는 먹어 치우지는 않했다. 새 가을 새 추수(秋收)를 기대려 본 것이지······. 그런데 요샛것들은 기대릴 줄을 모른다. 씻나락도 먹어 치우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들이 그리 살다 죽으면 귀신(鬼神)도 그 때는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낼 것이고, 그런 귀신 섬기는 새 것들이 나와 늘면 어찌 될 것인고······」
31. 소 × 한 놈
- 왼 마을에서도 품행방정(品行方正)키로 으뜸가는 총각놈이었는데, 머리숱도 제일 짙고, 두 개 앞이빨도 사람 좋게 큼직하고, 씨름도 할라면이사 언제나 상씨름밖에는 못하던 아주 썩 좋은 놈이었는데, 거짓말도 애누리도 영 할 줄 모르는 숫하디 숫한 놈이었는데, 「소 × 한 놈」이라는 소문이 나더니만 밤 사이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저의 집 그 암소이 두 뿔 사이에 봄 진달래 꽃다발을 매어 달고 다니더니, 어느 밤 무슨 어둠발엔지 그 암소하고 둘이서 그만 영영 사라져 버렸다. 「사경(四更)이면 우리 소 누깔엔 참 이뿐 눈물이 고인다.」 누구보고 언젠가 그러더라나. 아마 틀림없는 성인(聖人) 녀석이었을거야. 그 발자취에서도 소똥 향내쯤 살풋이 나는 틀림없는 성인녀석이었을거야.
32. 金庾信風
- 新羅 善德女王이 여자라고 업신여기고 역적(逆賊)놈의 새끼들이 수군거리고 있다가 마침 밤하늘에 유성(流星)이 흘러내리는 걸 보고 「궁중(宮中)에 떨어지더라, 여왕(女王) 때문에 나라가 망할 징조다.」파다한 소문을 퍼뜨려 대단히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국민들의 마음을 편안치 못하게 하고 있었을 때, 김유신이 역시 밤하늘에 불붙인 짚 제웅을 메달은 종이 연(鳶)을 날려 올리며 「그 고약한 별이 내려왔다 무서워서 다시 올라간다. 보아라!」널리 왜장을 치게 해 감쪽같이 그 국민의 불안(不安)을 없이해 버렸다는 이야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들어 있어 책 볼 줄 아는 사람은 두루 다 잘 알지만, 우리 질마재에서 똥구녁이 찢어지게 가난한 미련둥이 총각 녀석 하나가 종이연이 아니라 진짜 매 발에다가 등불을 매달아 밤하늘에 날려서 마을 장자(長子)의 쓸개를 써늘케 해 그 이뿐 딸한테도 장가를 한번 잘 든 이야기는 아마 별로 잘 모르는 모양이기에 불가불 여기 아래 아주 심심한 틈바구니 두어 자(字) 적어 끼워 두노라.
마을에서도 제일로 무얼 못 먹어서 똥구녁이 마르다가 마르다가 찢어지게끔 생긴 가난한 늙은 과부(寡婦)의 외아들 황(黃)먹보는 낫놓고 ㄱ(字)도 그릴 줄 모르는 무식(無識)꾼인 데다가 두 눈썹이 아조 찰싹 두눈깔에 달라붙게스리는 미련하디 미련한 총각 녀석이라, 늙은 에미 손이 사철 오리발이 다 되도록 마을의 마른일 진일 다 하고 다니며 누렁지 찌꺼기 사발이나 얻어다가 알리면 늘 항상 아랫목에서 퍼먹고 윗목 요강에 가 똥누는 재주밖에 더한 재주는 없던 녀석이었는데, 그래도 음양(陰陽)은 어찌 알았는지, 어느 날 저녁때 울타리 개구녁 사이로 옆집 장자네 집 딸 얼굴을 한 번 딱 디려다보고는 저쪽에선 눈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그만 혼자 상사병(相思病)에 걸리고 말었것다.
「오매 오매」불러서
「믓 헐레?」하니
「오매 나 매 한 마리만 구해다 주소.」해서, 논매주기 밭매주기 품삵 앞당겨 간신히 그것 한 마리를 구해다가 주었더니, 그건 방 아랫목 횃대에다 단단히 못 도망가게 매달아 놓고,
「오매 오매 나 피모시 한 묶음만 또 구해다 주소.」해서, 또 그것도 이리저리 알탕갈탕 구해다 주었더니 그걸로는 가느스름하게 새끼줄을 길게 길게 꼬아 서리어 두고,
「오매 오매 이번에는 말방울 하나허고, 대막가지 단단한 놈으로 한 개허고 창호지(窓戶紙) 한 장허고, 초 한 자루만 냉큼 가서 구해다 주소.」 해서 그것도 미리 괄괄 어찌 어찌 때워 맞춰 겨우 겨우 구해다가 주었더니 그 대막가지는 쪼개어 굽혀 포개고, 그 초는 그 속에 든든히 박아 꽂고, 그 창호지는 거기 둘러싸아 덩그랗게 등(燈) 하나를 만들어서 놓고는, 아까 그 횃대의 매를 갖다가 한쪽 발에 아까의 그 말방울을 잘랑잘랑 달고, 그 바로 밑에 아까의 그 종이등을 안 떨어지게 또 잘 매달아 놓고, 그러고는
「오매 오매 나 흙 말이여. 황토흙 말고 아조 까만 찰흙으로 잘 골라서 한 소쿠리만 또 파다 줄란가.」해서 또 그것도 자식 하자는 대로 또 그렇게 해 주었더니, 연석은 다음엔 또 「오매 오매 부엌 물독에 가서 바가지로 물을 퍼다가 그 흙을 잘 좀 이겨 주소.」하는 것이다.
그러고 해가 졌는데, 연석은 또 오매를 부를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아무 소리 없이 후다닥딱 우아fot두리 입은 걸 몽땅 벗어 내팽개쳐 버리더니 와르르르 그 개어 논 뻘흙 옆으로 다가가서 왼 몸뚱이를 두 눈주먹만 내놓고는 까맣게 까맣게 흙탕으로 번지르르 칠하고 나서는 아까 그 피모시 줄 끝에 매하고 방울하고 같이 매단 종이등에 부싯돌로 불을 덩그랗게 붙여 밝히고, 그것을 모두 두손에 감아쥐고 뒷집 장자네 집 대문(大門)간 큰 감나무 위로 뽀르르르 다람쥐새끼같이 기어올라갔다.
「장자야! 장자야! 너 저녁 먹었냐? 아마 벌써 먹었을 테지? 장자야 너는 내가 누군지 내 소리만 듣고 아직 모를 테지만 인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면 잘 알게 되야. 나는 딴 사람이 아니고, 누구냐 하면 바로 하눌님의 사자(使者)다! 되창문 좀 열어보아라, 나를 보고 싶거든 어서 냉큼 그 되창 좀 열고 보랑게.」
되창문은 아무리 시시한 일에도 멋대로 열라고 있는 것인데, 요만큼한 소리면야 그 야 열릴 수밖에.
장자가 되창문을 여는 것이 보이자, 연석은 손에 검어쥐고 있던 매를 하늘에 풀어 날렸네. 아 장자 눈귀가 제아무리 밝은들 하늘로 올라가는 불하고 방울소리밖에 무얼 보고 또 들어?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연석은 아주 썩 점잖게 또 한마디 했지.
「장자야 내가 하눌님 사자랑 건 인제 네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응게 알 테지만, 일이사 딴 벌것 아니고, 왜 느이 앞집에 미련둥이 황먹보 있지? 말이사 바로 말이지만 그 사람이 아직 때를 못 만나서 그렇지 인제 두고 봐라, 쓰기는 크게 쓸것잉게. 어러말 할 것 믓 있냐? 왜 너의 집 큰가시네 딸 있지 안냐? 그 가시내를 덮어놓고 황먹보한테 주어라 주어! 어기면 하눌에서 큰 벌(罰)이 있을 줄을 알렷다!」
그래 그 하눌로 날아 오르는 불에, 그 방울소리에, 이 먹보의 이 한마디가 서로 잘 어울려 가지고, 이때만 해도 너무나 지나치게 사람들의 마음이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이던 때라 놔서 장자는
「예.」
하고, 그 이뿐 딸과 그 잘 여무는 논밭과, 좋은 요이부자리에, 살림 세간을 주어 그 먹보를 사위 삼았다는 이야기인데, 글쎄 어쨌었는지 우리 두 눈으론 똑똑히 보지 못해서 뭐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서두, 하여간에- 저 김유신의 삼국유사 속 이야기가 이렇게 번안(飜案)되어 내려온 걸 들어 보는 건 꽤 재미가 있다.
사족(蛇足)
-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우리의 언어도 변하고 사라져 버리고
우리의 조상이나 부모세대들이 사용하던 말들과 사용하던
우리네 굴곡진 삶의 도구들까지도 사라지면서
우리 신세대들이 보면 이해 못할 고어(옛말)로 쓰여서 함축적으로
표현된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부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모르는 옛말들이 많이 있지만, 그 것을 곱씹어 보면
어릴적 우리 조부들이 쓰시던 말들이 우리가 어린시절에
쓰던 말처럼 새롯이 생각나고 과거의 향수를 느끼게 된다.
지금의 언어로 고쳐쓴 책들도 있지만, 그래도
원본에 있는 옛말로 쓰여진 것이
그 시대의 정서를 잘 표현해주고 정감이 있지 않은가 ~
나만이 그런가요? ㅎ 어쨌거나 질마재 신화는 좋은 작품이다.
여러분들도 한번 다시 읽어보면, 꿈많고 미래에대한
부푼가슴을 안고 살았던 학창시절이 생각나지 않을까 ~
- 유월 하순에 시인과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