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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머문 바 없이 마음이 나면 곧 부처님의 행
그러니까 우리 잘 아는 應無所住 而生其心 머문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 그랬죠.
그런데 우리 마음은 사실은 그렇게 생겨먹었어요.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마음이 나게 금 생겨먹었어 본래 우리 마음이 그렇게 생겼는데 우리는 어디에 매이기를 좋아하고 조금만 내 어떤 안목으로 가치가 있다 좋다 요런 정이 생기거나 판단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만 거기에 머물려고 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마음의 본래의 모습에 위배되는 역행하는 그런 삶을 대게 살아요.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오는 거죠.
問 如何是世諦닛고
어떤 것이 세상진리입니까
師云 說葛藤作什麼오
뭐 그런 세상진리 갈등이죠. 아주 얽히고설킨 그런 이야기를 왜 하려고 하느냐
本來清淨이어늘
따지고 보면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고 또 그 어지러운 것을 시시비비하고 따지고 옳다 그러다 하고 그래서 얽히고설킨다 하더라도 내면에 있어서는 본래 청청이다 이거야 본래청청 하거늘
何假言說問答이리오
뭐 하려고 말을 빌려가지고 문답을 하느냐
할 게 없지 않느냐
但無一切心하면
다만 일체마음이 없을 것 같으면
即名無漏智니라
그게 샘이 없는 지혜다
우리는 그저 들을 때뿐이고 어느새 새어나 버리고 없죠.
항상 새나가는 거야 그만 그런데 無漏가 되어야 하는데 새지 안하야 되는데
샘이 없는 지혜가 되어야하는데 일체심이 많으니까 온갖 마음이 많으니까 그만 전부 그저 새로운 것 받아들이고 새로운데 기웃거리고 그러다보니까 금방 공부한 것도 다 어디로 새나가버리고 새나가버리고 세상에 뭐 기웃거려야 되고, 살림 살아야 되고, 이것저것 계산해야 되고, 분별해야 되고 그러다보면 그동안 공부 잘한 것 다 새나가버리고 그러잖아요. 그게 불교에서 무류니 유류니 하는 그런 말들이 그런 뜻입니다. 일체마음이 없을 것 같으면 無漏智가 된다. 샘이 없는 지혜다
汝每日行住坐臥와
그대가 매일 행주좌와
一切言語에
그리고 일체언어 온갖 말 참 많죠.
우리 일상생활 가운데 먹는 것 보다 말하는 것이 더 양이 많아
잠자는 것보다도 오히려 말이 양이 더 많은 것 같아
참 말이 중요하지도 하지만은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서 양적으로 시간적으로 이렇게 보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但莫著有為法하면
다만 유위법에 집착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出言瞬目이 盡同無漏니라
유위법 무위법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유위법은 조작이 있는 법, 조작이 있는 일들, 조작이 있는 이치
무위법은 조작이 없는 것, 저절로 그러함, 자연, 저절로 그러함을 무이라 그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무의자연이란 도교이야기하고는 불교의 무위하고는 좀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은 그야말로 그런 자연하고 관계없이 내마음속에서 정말 자연과 유사한 자연과 똑같은 그런 조작이 없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라고 할 수 있겠죠. 그것을 제대로 알아서 유위법에 집착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말을 하거나 눈을 껌뻑이거나 뭐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전부 무류하고 또 같다 무류 법하고 똑같다 이것입니다.
如今末法向去에
근래에 말법에 대해서
多是學禪道者가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흔히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皆著一切聲色하나니
온갖 소리와 사물에 집착한다 이거여
참선을 한다고 하면서 어떤 소리와 사물에 집착을 하는 경우가 많다
何不與我心고
어찌 나로 나와 함께 내 마음과 함께 하지 못하느냐 이런 뜻입니다
성색에 집착하지 아니하는 그런 마음이죠.
心同虛空去하며
마음이 허공과 같아져버릴 것 같으면
如枯木石頭去하며
마치 바싹 마른나무와 같고 돌멩이와 같아진다.
살아있는 사람이 그렇게 하면 그건 완전히 그렇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무심하다 이런 말이죠. 일이 없는 사람
如寒灰死火去하야사
塞灰가 아니고 寒灰입니다 찰 한자가 흙토가 아니고 점 두개 찍은 寒찰 한자가 있죠. 요즘 추운계절에 대한 소한하는 寒자
如寒灰死火去 차가운 재와 죽은 불과 같이 그렇게 하야사
方有少分相應이니
이게 완전한 도는 아니야 枯木石頭 寒灰死火去
차가운 식은 재 불이 다 꺼져가지고 식은 재와 같이 그렇게 마음이 되는 게 방편이기는 해요 중간과정이지 그래야 바야흐로 조금 상응 할 수 있다 이런 말입니다. 조금 도에 가까워 질 수 있다. 어째 던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어느 정도 좀 가까워질 수 있다 이런 말입니다. 대게 세속적인 것을 우리가 有 모든 것이 있다 산도 있고 물도 있다
그런데 거기서 한 단계 높이 올라가면 산도 아니고 물도 아니다 없다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전부 없는 걸로 표현 되잖아요 그게 부정이야 그게 뭔고 하니 여기 枯木石頭 寒灰死火 꺼진 불과 같고 식은재 같은 그런 어떤 정신상태 이걸 한고비 넘으면 그때 제대로 모든 것을 다 긍정하는 부정을 넘어서 대부정을 넘어서 대긍정이 살아나는 그런 단계죠. 그게 이제 말하자면 활발발한 정말 부처로써의 어떤 삶이 그때 제대로 전개되는 거라
부처님도 세속생활을 했죠. 그러다가 6년 고행을 했는 것은 고목과 같고 석두와 같고 한회사화와 같은 그런 생활이었다면 그리고 나서 깨닫고 나서는 열심히 중생제도를 위해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인생을 살았어. 아주치열하게 세속에 왕자노릇 할 때보다도 열배 스물 배 더 아주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다고요 말하자면 그게 제대로 대긍정으로 다시 돌아온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세속적인 차원으로 살다가 그다음에 불교공부를 하면서 세상의가치가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세속적인 차원에서 좀 초탈하는 그런 정신으로 가서 그다음에는 열심히 그 훌륭한 법을 열심히 전파하고 포교하고 전법하는 거기에 누구보다도 앞장 쓰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아주치열하게 인생을 싸는 것 이게 이제 코스라고요 불교적인 삶의 코스라
심우도 잘 아시죠. 그림 다 기억하고 있죠. 처음에는 말하자면 소를 찾느라고 열심히 정진을 했지만은 나중에 소를 찾아가고 소가 완전히 다 흰 소가 되어버리고 그리고 소도 없어져버리고 사람도 없어진 둥그런 그림만 원만 하나있죠 그리고는 수수입정이라 해가지고 시장으로 다시 내려가는 거라 산을 내려가서 시장바닥에 들어가서 시장사람들을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는 그런 걸로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그게 코스라 인생을 제대로 사는 데는 이제 그런 코스로 살아야 정상적으로 사는 것이고 가장 가치 있게 사는 것이고 성인의 삶이다 그렇게 보는 거죠.
돈을 열심히 벌죠. 처음에는 그리고는 주머니에 얼마가 들었든지 간에 주머니에 들어온 돈은 말하자면 자기의 성공이라면 그것을 쓰는 거야 자식을 주던지, 누굴 주던지, 어디다 희사를 하던지, 자선단체에 다 내놓던지 그렇게 결국에 쓰게 된다고 그러니까 죽을 때 한 푼도 안남기고 쓰고 갈 줄 알면 이게 제일 잘 산사람이야 한 푼도 안남기고 죽은 뒤에 뭐 송장을 갖다버리든지 태우든지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몫이라 죽은 사람은 아무 상관이 없어 그 까짓것 내버려두어도 상관없어 귀찮아서도 태우고 처리 할 거니까 그것 염려 할 일이 아니라고 아이고 내죽은 뒤에 어떻게 처리해주어야지 화장할 돈이라도 나두고 가야지 그것은 천만의 말씀 절대 잘 못 생각하는 거야 화장할 돈 하나도 안남기고 가도 다 태워줘 어떻게 태워도 다 태워주더라고 어떻게 처리해도 다 처리 해줘 철저히 쓰고 갈 줄 알면 이게 참 그 사람 제대로 사는 사람이야
부처님도 팔십 생애동안까지 당신이 번 돈 달달 끓어 쓴 거여 사실은 그게 죽는 순간까지 순타라고 하는 사람에게 법문해주고 그러면서 갔잖아요. 세속의 어떤 삶의 모습이나 수행을 통해서 중생제도 해가는 부처님의 모습이나 그게 그림으로 그려보면 똑 같아 심우도의 그림이나 일체가 다 그 코스는 같아요. 요는 돈이냐 도냐 요 차이야 ㄴ하나 차이라고 허~허 ㄴ하나차이지 코스는 똑 같아 돈 버는 일 돈 벌어서 모아가지고서 그걸 사회에다 주던지 자식에게 주든지 아니면 투자를 해가지고 더 크게 해서 주던지 어째든 자기는 주고 가니까 이제 불교공부를 하는 것도 역시 코스라 이게 열심히 우리가 공부하고 공부한 만치 남에게 베풀고 어떻게 하더라도 좋은 이치 진리의 가르침을 전해줄려고 하는 그런 과정들 이것들이 아주 너무 똑 같아요.
若不如是면
만약 이와 같이 아니하면
他日盡被閻羅老子拷爾在하리라
타일에 모두들 염라대왕이 너를 때리면서 고문 할 것이다 그랬어요.
겁나네요. 이것 돈 열심히 벌어라 는 뜻이라 벌어서 잘 쓰라는 뜻이라
돈을 벌든지 도를 벌든지 하여튼 벌기는 벌어야 할일이라
爾但離卻有無諸法하면
그대들이 다만 有無諸法하면 있다 없다 하는 우리정신이 이런 치우친 소견 이것만 일단 떠나는 것 이걸 떠나는 것이 아주 급한 문제예요. 우리가 자꾸 옳다 그러다 내 나름대로 알량한 내 저울대, 알량한 내 잣대를 자꾸 재어가지고 그러다 옳다 그러다 이렇게 하는데 그것을 떠나버려라 그대들이 다만 이어 떠나버려라 무엇을 有無諸法 있다 없다하는 온갖 이런 가르침들을 떠나버릴 것 같으면
心如日輪이 常在虛空인달하야
마음이 태양이 항상 허공에 항상 쩍 이렇게 떠가지고 환하게 이렇게 비추는 것과 같다 우리는 조금 친하다든지 나하고 이런 혈연관계 무슨 인연관계 무슨 관계 무슨 관계 이런 것이 되면 거기에 맞추어서 치우쳐가지고 보는 거야 세상도 치우쳐서 보고 사람도 치우쳐서보고 그러니까 제대로 못 보는 거지 태양이 마치 하늘이 떠가지고 골고루 환히 위에서 밑으로 내려다 비추듯이 그렇게 평등하게 볼 줄 알아야 그 마음이 제대로 된 마음인데 참 그게 어렵죠. 알기는 알면서도 그런 마음 쓰기가 어디 쉬나요.
그러나 이제 그래야 그게 옳다 하는 말만이라도 귀로 귀전으로 한번 지나가는 것도 대단히 큰 공덕이고 다행한일이야 이런 소리 평생 가서 한번도 못 듣고 사는 사람들 많아요. 맨날 마음비우고 제삼자입장에서 어쩌고저쩌고 하지만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말을 자꾸 들어야 돼 들어가지고 내가 혹시 치우치는 것은 아닌가? 내 자식이라고 치우치고 보는 것은 아닌가?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자식에 대한 정은 정이지 정 있다고 틀린 것을 옳게 보면 그건 안 돼지 옳은 것과 그런 것을 보데 정은 정대로 그렇게 두고 보라는 것이지 정마저 없애라는 뜻이 아니잖아요. 그런 소리하면 큰일 날 소리지 말도 안돼는 소리지 부처님도 그렇게 하지는 않아
여기 서울서 서정 강의를 하는데 서장에 보면 자식이 죽었는데 몇째 아들 어떤 처사가 죽었어. 그래가지고 막 통곡을 했다는 소리를 이제 편지로 대혜스님에게 쓰는데 대혜스님이 그랬어. 아니 자식이 죽었는데 애비가 슬퍼하지 않으면 그게 어디 애비냐고 이렇게 사정없이 이야기하는 거야 그게 옳은 거야 자기 가족이 죽었으면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슬퍼하고 통곡해야 그게 정상적인 사람이다 그런 정이 없어 라는 것이 아니라 정은 있되 옳고 그런 것은 바로 볼 줄 알아야 된다. 이런 말이죠.
자식이 잘못 했으면 사정없이 꾸짓되 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거지
光明이 自然不照而照니
광명은 저절로 비추지 안이하면서 비추고
不是省力底事아
이것이 힘을 드는 일이 아닌가.
그러니까 힘이 어디에 치우쳐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힘이 완전히 들린 힘이 하나도 안 들고 세상을 보는 그런 일이다
到此之時하야는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을때
無棲泊處라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
即是行諸佛行이며
곳 모든 부처님이 행한 것을 행하는 것이다
便是應無所住하야 而生其心이니
곧 응당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는 것이다
자식이라고 해서 정은 정대로 가고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런 것은 그런 것이고 정에 치우쳐서 잘못된 행동도 옳게 본다면 應無所住 而生其心 아니라는 거죠 간단하잖아요. 크게 어려운 말이 아니잖아요
此是爾清淨法身이며
이거이야 말로 그렇게 마음이 되었을 때 이것이야 말로 그대의 청정 법신이여
名為阿耨菩提니라
최상의 깨달음이다
최상의 깨달음이 별 것 있나요 마음이 어디에 유와 무 그랬죠.
爾但離卻有無諸法 그대가 있다 없다 하는 이런 모든 법에서 떠나버릴 것 같으면 태양과 같다 우리마음이 태양과 같아가지고 골고루 비친다 이거여 내가 미워하는 어떤 논이라고 해서 미워하는 사람의 논이라고 해서 안 비치나요. 태양은 그런 게 없어 그와 같이 미워하는 사람이라도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내 자식이라고 해서 그런 것은 그런 것이고 이렇게 볼 줄 아는 그런 마음이 되면 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그 마음 내는 것이고 그것이야 말로 청정법신이여 툭 터진 몸이다 이 말이야 툭 터진 마음의 법신자리다 그것이 아뇩보리여 최상의 깨달음이다
若不會此意하면
만약에 이러한 도리를 알지 못할 것 같으면
縱爾學得多知하며
비록 그대가 많이 배워가지고 많이 알아
學得多知 아는 게 너무 많아
勤苦修行하며
아주 고생고생해서 수행하며
草衣木食이라도
풀로써 옷을 해 입고 나무로써 밥을 삼아먹는다 하더라도 그런 고행을 산중에서 한다 하더라도
不識自心이라
자기 마음의 본래 생긴 모습을 알지 못하는 거여
사람은 마음하나 가지고 사는데 마음도리 제대로 알아야 그게 현명한 삶이고, 지혜로운 삶이고,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것이고, 행복하게 인생을 사는 거라 마음가지고 사는 거여 사람은 결국 그러니까 마음이 어떻게 되어먹었는가 마음 생겨먹은 것을 제대로 알아야 돼 너무 우리마음은 알고 보면 부자야 비록 몸은 거지생활 한다 하더라도 마음의 아주 풍요로움을 제대로 알면 더 이상 부자가 없을 정도로 풍요로운 것도 또한 우리마음이고 그래서 不識自心이라 아무리 고행하고 뭐 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이치 모를 것 같으면 자기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
盡名邪行이오
다 삿된 행위다
삿된 행위라고 하는 것이 마음의 이치를 모르니까 엉뚱하게 가서 요행수 바라고, 요행수 빌고 그러는 거지 그게 사사하게 사는 거죠. 盡名邪行이라 그랬잖아요. 다 이름을 삿된 행위라고 한다. 이치 알면 빤한데 그 이치를 모르니까
定作天魔眷屬이니
이것은 결정코 天魔眷屬을 지어 것이다
마구니 天魔라고 하는 것은 밖에 있는 마구니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표현을 밖에 있는 마구니 이야기가 많으니까 그걸 天魔眷屬이라 하늘 마구니의 권속이 된다. 그래가지고 그런 것 요상한 것만 찾아다니는 거야 불교를 통해서 요상하게 된 사람들이 아주 많아 불교를 안 믿으면 차라리 괜찮겠는데 불교에 접하다가 딴 길로 들어서니까 정법으로 들어서지 않고 요상한데로만 자꾸 관심을 기울이니까 무슨 요행수 일확천금하는 무슨 그런 수가 없을까 어디 가서 기도하면 기도 조금만 하면 일확천금한다하더라 해가지고 소원하나 이루어진다고 하는데는 그냥 이 추운겨울에도 물밀듯이 들어서는 거여
자기가 목표하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어떻게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어떤 공을 들이면 그게 이루어질 것인가 이것을 연구를 해야지 이것을 연구안하고 가서 요행수만 바라고 그냥 그렇게 하는 거여 참 문제가 많은 거죠 그런 것들이 우리가 전부 기도불교 그러는데 기도라는 것은 경전에 한마디도 없어 내가 다 찾아보아도 우리가 필요해서 만든 불교가 기도불교야 부처님 불교에는 기도불교가 없어요. 조사스님 불교에도 기도불교가 없어 그래서 경전에 찾아보니 기도라는 말이 없어 요즘은 인터넷으로 전산화되어가지고 30초면 대장경 전부 다 찾아버려 팔만대장경안에 기도라는 낱말이 있는가. 없는가. 찾는데 30초도 채 안 걸려 지금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잖아요. 기도라는 말이 없더라고 야~ 내가 놀랬어.
우리가 중간에 만든 거라 호국불교라는 것도 불교에 본래 그런 것이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만든 불교야 그것도 호국불교호국불교 나라를 보호하는 불교 불교에는 니민족 내민족 없어 누구나 다 아껴주어야 할 생명이고 누구나 다 일본놈들이 나쁜놈이라서 그렇게 쳐들 온 것은 나쁜 것은 틀림이 없어 그래도 그 놈마저도 그 생명을 보호해 주어야해 우리는 나를 헤치려고 한 사람까지도 생명으로 생각을 하고 보호를 해주어야 되는 것이 본래 불심이라
너무 우리가 이기심에 젖어있는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일는지는 모르지만은 그러나 부처님의 마음은 본래 그렇다는 것 우리가 못 따라가더라도 부처님의 마음은 그런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돼 그래서 보살계에도 보면 부모를 죽인사람까지도 용서하라 이랬거든 용서할 사람 세상에 누가 있어요. 그런데 부모죽인 사람까지 용서하게 되어있고 우리나라를 뺏으려고 하는 일본놈도 다 용서 하도록 되어 있어
그래서 내가 가끔 말씀드리지만은 사명대사나 서산대사가 승병 몰고 그렇게 저항하고 무기 만들어가지고 저항하는 것은 이건 민족주의자고 호국불교적인 불교관점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지 부처님은 그래 안했어요. 부처님도 부처님당시에 자기나라 다 잃어버렸어 자기민족 다 죽었다고 그런데 그 많은 제자들 동원해가지고 창 칼 들여가지고 같이 가서 싸우자 이렇게 했어야 옳지 서산사명씩이라면 그러나 부처님은 그렇게 안했더라고 가비라성이 부처님당시에 없어지잖아요. 석가족도 그때 뿔뿔이 다 흩어져 수십만이 죽었어. 그 참 아주 비참한 그런 광경을 부처님 당시 때 보았어. 스스로 그렇게 아주 불우하고 불행한사람이라 부처님이 세상에서 제일 불우한분이라 어려서 고아 되었지 나라 잃었지 살아생전에 나라 잃었지 석가족 뿔뿔이 다 흩어졌지 그런 불행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그게 다 부처님은 그렇게 뭐 다 생명을 평등하게 보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돌려서 생명을 헤치지 않도록 자기 법력으로 그렇게 못 하면은 할 수 없는 거야 물러선 거라 결국 물러섰거든 두 번은 그 사람을 설득 유리왕이라고 그 사람을 설득시켜서 물러서게 했지만은 세 번째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그 사람의 어떤 나라를 뺏고자하는 야욕을 도저히 잠재울 수 없어서 물러서버렸어 부처님도 뭐 사람마음 못 돌리는 것은 못 돌리는 것이지 모든 사람마음 돌릴 수가 있나요 안돼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이런 삿된 행위라고 하는 것 天魔眷屬이라고 하는 것 이런 것들을 우리가 알기는 알고 내가 따라가느냐 못 따라 가느냐는 그다음 문제인데 일단 알고 보면 따라가는 일도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합니다.
如此修行하면
이와 같이 수행할 것 같으면
當復何益이리오
마땅히 다시 무엇이 유익하리오.
삿된 행을 따라갈 것 같으면 그렇다 이말입니다.
여기 아주 좋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有無 상대적이고 차별적인 그런 관계에 대해서 우리가 치우치지 않고 이것을 중도정견이라 그래요. 치우치지 않고 볼 줄 아는 그 마음 참 쉽지는 않는데 자꾸 훈련을 해야 돼 자꾸 이런걸. 들어가지고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바로 볼 줄 아는 것 그런 마음을 자꾸 훈련을 함으로 했어 삿된 행을 우리가 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삿된 행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다른 사사한 그런 것도 있지만 어디에 치우친 것이 다 삿된 행이라 치우쳐버리는 것 이것이 꼭 옳다 이것은 꼭 틀렸다 이렇게 보는 것
誌公이 云 佛은
지공화상이 말하기를 부처님은
本是自心作이어늘
본래 자기마음이 지었거여
저 앞에서 내가 서두에 말씀을 드렸죠. 달마스님도 일체 사람이 모두 부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바로 가리켜줄려고 이 땅에 왔다 여기 지공화상도 그랬어. 본래 자신이 만든 거여 부처라는 게
那得向文字中求리오
그런데 뭐 우리가 부득이 해서 문자를 가지고 참 고인이 이런 문자를 남겨놓았어니 문자에 의지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듣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렇다고 문자를 보는 이 사실 이 당체지 문자는 부처가 아니야 우리가 문자를 보고 옳다 그러다 좋다 나쁘다 하는 이 사실이야 활발발한 지금 살아있는 이 모습 이게 부처라고 그러니까 그걸 문자 안에서 구하려고 하면 안돼
饒爾學得三賢四果와
설사 그대가 삼현 이것은 십주, 십행, 십회향이것을 三賢(삼현)이라고 그래요
그 다음에 십지 四果(사과)라고 것도 금강경에도 나오는 수다원 사과 아나한 아라함 이런 등등 온갖 불교수행하면 어느 단계 올라간다. 어느 단계 어떻게 된다. 그런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
十地滿心이라도 也秖是在凡聖內坐라하니라
凡聖內坐라 법무인 성인 안에 다 있다
이것은 뭔 말 인고 하닌 凡聖內坐라고 하는 말은 바로 우리를 두고 하는 소리라
우리가 범부도 되고 성인도 돼 때로는 성인노릇도 잘 해요 사실은 우리가 뭐 항상 중생노릇만 하는 것이 아니야 아주 관세음보살 이상으로 관세음보살 행동하는 경우도 있어 때로는 아주 뭐 무지막지한 범부일 때도 있는 거라 하루 중에 그게 다 있어 그래서 사성육범 대게 그렇게 10가지를 이야기 하는데 그걸 좀 부연하면은 삼천 일념삼천 한 순간의 우리의 삶속에 삼천가지의 차별된 삶이 거기에 존재할 수 있다 그렇게도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멀쩡하게 사람이지만은 부처노릇도 가능하고 보살노릇도 가능하고 성문 연각도 가능하고 지옥아귀축생인도천도아수라도 가능한 거야 뭐든지 될 수가 있는 그런 것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래서 凡聖內坐라 요게 이제 사명이니 사관이니 십지니 뭐 등각 묘각이니 하는 것도 전부 현재 우리 모습 속에 다 있다 라고 했으니
不見道아
보지 못했는가.
諸行無常이라 是生滅法이니
모든 것은 다 항상 하지 안이해
고정불변하지 않는다 이 말이여 늘 변화무상한 도리다
是生滅法이다 생하고 멸하고 생하고 멸하고 잇다가 없고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성장하고 중년이 되었다가 다시 늙어지고 그리고 또 죽고 다시 태어나고 이게 세상의 본 모습이라
勢力盡箭還墜라
화살을 쏘아가지고 하늘로 올리면 한참 힘이 있는데 까지 올라가다가 또 떨어지듯이
招得來生不如意하리니
여생에 여의치 못함을 초래 한다
爭似無為實相門에 一超直入如來地리오
세상사에 있어서 요걸 이제 諸行無常이라 생멸법이니
요걸 경전에 있는 말을 약간 인용을 하고 조사스님의 말씀을 인용을 하면서 사실은 거기에 밝히고자 하는 도리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는 세상사는 전부 무상하고 생멸하는 법이고 세력도 화살도 올라갔다 내려오고 결국은 변화무상한 것이라 여의치가 못 하다 爭似無為實相門에 一超直入如來地 어찌 무의 실상문에서 여기 무위 나왔네. 무의 실상문에서 한 번 뛰어서 여래지에 들어가는 것만 같겠는가.
그러니까 인생사 세상 다 이렇게 변화무쌍하니까 실상의 도리를 깨달아가지고 여래의 경지를 누려라 그 말입니다. 그것은 이제 그동안 전심법요 같은데서 는 최상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왔듯이 실상문이니 여래지니 하는 것이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들의 현재 보고 듣고 하는 이 작용 이 삶이다 그 사실을 아는 거예요 그 사실을 알면 영원한 생명도 거기 있어요. 거기서 크게 벗어나 잇는 것이 아니라고요
금은 예를 들어서 보면 어떤 모양이던지 금은 모양을 가지고 있어 그런데 그 모양이 금은 아니야 금을 가지고 반지를 만들었던지 비녀를 만들었던지 아니면 금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양이지 금은 아니라고 모양과 금은 결코 둘이야 둘이 아이야 참말로 하나라고 그런데 우리는 모양만 보는 거야 일단 모양을 보는 거지 금을 볼 줄 몰라 그래서 가짜 금에도 속는다고 가짜를 가지고 금처럼 해놓아도 속는 거야 모양을 보니까 우리 안목은 거기 까지라 금은 볼 능력이 없어 그런데 그게 결국은 한가지거든 그러니까 실상이니 여래지니 하는 것도 금의성질과 같은 것이고 우리가 지금 이렇게 무상한 인생을 사는 이 허망한 삶이 결국은 실상이고 여래지다 금 모양이 무엇이 되었든 지간에 그것은 언제든지 바꿀 수가 있는 거지 변화무상한거야 제행무상 시생멸법이고 세력지전환추라 외형은 그렇다고 외형은 언제나 그래요 그런데 그런 외형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사실은 알고 보면 또 실상이고 영원히 변치 않는 실상이고 여래지라고요 무위실상이고 여래지라 금의 모양은 끊임없이 변하지만은 금 자체는 결코 변하지 않고 그러니까 현재 우리 생멸하는데서 무생멸 생사해탈을 보아야 돼 생멸하는 곳을 떠나가지고는 딴 데서 볼 찾을 길이 없어 금 모양 무슨 모양인든지 간에 그 모양 안에서 금을 찾아야지 그 모양 떠나버리고 금을 찾을 길이 없듯이 우리가 생로병사 하는 여기에서 불생불멸을 찾아야 돼 여기 있어 생멸속에 있다고 불생불멸이
요런, 이치가 참 어려운 것이고 참 납득이 안 되는 것이면서 경전에는 끊임없이 그 얘기를 해놓았잖아요 끊임없이 그 얘기를 해놓았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부처님이나 석가 달마도 어떤 도인도 다 열반에 들었고 생멸해갔어 그러나 그들은 불생불멸을 누리고 보고 깨닫고 살다가 간 사람이야 그건 그분의 문제라고요 그러니까 금은 어떤 모양을 가지고 있던지 간에 금의 일이야 다른 어떤 동이나 철의 문제가 아니라고 이것은 불교에서 제일 이야기 많이 되는 것이면서 또 제일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고 그러습니다
為爾不是與麼人일새
그대들 이러하지 못한 사람을 위일세
須要向古人建化門하야 廣學知解로다
모름지기 古人建化門을 향해서 널리 알음알이를 배운다.
그러니까 앞에서 설명한 그런 경지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 때문에 할 수 없이 古人建化門이라고 하는 것은 옛날사람들이 교화하기 위해서 건립한거라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래서 만들어 놓은 것 그래서 이제 실습 해놓은 온갖 가르침 그런 뜻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경전을 공부하고 어록을 공부하고 뭐 이래 부딪쳐보고 저래 부딪쳐보고 이생각도 해보고 저 생각도해보고 좌선도해보고 기도도해보고 뭐 온갖 방편을 다 동원하는데 궁극적으로 이러한 이치를 아는 것이고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이간이 이미 가지고 있는 그런 아주 고귀하고 존귀한 그것을 우리가 깨닫기 위한 것이고 또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들도 결국은 그것을 일깨우려고 하는 것이지 그외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다 그렇게 이해를 하면 됩니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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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혜성님, 감사히 읽고 갑니다. ()^^*
자혜성님, 고맙습니다._()()()_
실상문이니 여래지니 하는 것이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들의 현재 보고 듣고 하는 이 작용 이 삶이다 ...고맙습니다. _()()()_
凡聖內坐라! 법무와 성인이 내 안에 다 있다.
모셔 갑니다
마하반야바라밀()()()
諸行無常이라 是生滅法이니라.ㅡ 늘 변화무상한 도리....._()()()_
삼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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但無一切心하면 即名無漏智니라.........
應無所住 而生其心.............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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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_()_
나무아미타볼 관세음보살 _()_ _()_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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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