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만큼 웬만한 건 많이 수출할수록 좋지만, 예외도 있다. 금이 딱 그렇다. 갖고 있으면 돈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물건이나 화폐하고도 바꿔준다는 점에선 달러보다 낫다. 달러와는 대개 가격이 엇박자로 움직이기 때문에 서로 보완작용도 한다. 올 초처럼 외환시장이 흔들릴 때는 든든한 외환보유액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처럼 변변한 금광 하나 없는 나라에선 늘 쓸 금이 모자라기 때문에 잠깐 내다 팔아봤자 곧 되사와야 한다. 그새 국제시세가 오르면 되레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올해, 우리는 금 수출국이 됐다. 올 상반기 수출한 금이 52.3t, 15억 달러어치다. 수입량(15.8t)의 세 배가 넘는다. 지난해 수출량(46t)도 훌쩍 넘어섰다. 올해 수출이 가장 많이 늘어난 품목이기도 하다. <중앙SUNDAY 7월 19일자 7면>
이 정도 양이면 대략 수출국 10위 안에는 든다고 한다. 금광에서 캐내는 금덩이라곤 한 해 200kg 남짓이 고작인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관련 공무원들이 내놓은 모범답안은 이랬다. “국제 시세보다 국내 금값이 싸진 데다, 국내 금 수요가 줄면서 남아도는 금을 수출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것뿐일까. 다른 속사정은 없을까.
물론 있다. 이 땅에서 금은 별난 취급을 받는 존재다. 대충 ‘돈도 아니고, 물건도 아닌 것’쯤 된다. 화폐처럼 쓰이지만 수입할 땐 관세(3%)를 물고, 사고팔 땐 부가가치세(10%)를 내야 한다. 게다가 금을 사들이는 지정 사업자는 부가세를 직접 특정 은행의 지정 계좌에 예치해야 한다. 금 거래는 워낙 탈세가 많다며 세무당국이 특별한 규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금이 많이 붙으면 최소한 세금만큼 물건값이 비싸진다. 이를 뒤집으면 세금을 떼먹을 수만 있다면 그만큼 이문이 남는다는 얘기다. 갑자기 금 수출국이 된 이면에도 이런 메커니즘이 작용했다. 어떤 물건의 국제시세가 급히 오르거나 원화가치가 급락하면 국내 시세와의 차이가 순간적으로 커진다. 올 상반기 국내 금값이 그랬다. 그랬더라도 세금을 정상대로 내고 수출했다면 1g(약 4분의 1돈)당 1000원을 남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때 등장한 게 ‘폭탄업체’들이다. ‘뒷금’을 모아 수출한 뒤 폐업하는 수법으로 세금을 떼먹었다. 1g당 약 8000원씩 남겼다고 한다. ‘뒷금’은 정식으로 세금을 낸 ‘앞금’과 달리 뒷구멍에서 몰래 사고파는 금을 말한다. 올 4~5월 국제 금값이 급등하면서 국내 금값도 돈당 20만원을 넘어서자 금을 팔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이런 ‘뒷금’ 거래가 극성을 부렸다. 뒤늦게 국세청이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국내 금값이 싸지고 수요가 줄면 언제든 이런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 허울뿐인 금 수출국에서 벗어나려면 금에 대한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금을 돈으로 대우하는 거다. 돈을 주고받는데 부가세를 물릴 이유가 없다. 탈세의 실익이 없으니 밀수도 줄고 거래도 양성화돼 세금도 더 많이 걷힐 것이다. 무역 마찰을 푸는 데도 좋다. 마침 한국에 큰 적자를 내고 있는 두 나라 중 미국은 세계 최대 금 보유국(8133t)이고 중국은 최대 생산국이자 5위의 금 보유국이다. 두 나라에서 금을 사면 그만큼 수입액이 느는 ‘착시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참에 외환보유액 중 금을 늘리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금은 달러보다 교환이 쉽다. 요즘처럼 달러의 지위가 흔들릴 때는 외환보유액으로서 금의 가치는 더 커진다. 쌀 때 사서 비쌀 때 풀면 국내 금 수급을 조절하는 효과도 있다.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14.3t, 약 4억 달러어치로 외환보유액의 0.2% 정도다. 미국은 이 비율이 70%, 독일은 60%가 넘는다. 다른 중앙은행들도 대개 10% 안팎을 금으로 쌓는다. 한국은행은 “채권과 달리 이자가 안 붙는다”는 핑계를 그만둘 때도 됐다. 금값 상승은 충분히 채권 이자를 감당하고 남는다. 금은 돈이다.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