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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캄보디아 불교
1. 캄보디아의 승단
1.1. 개 요
1855년 이래로 1981-1991년 사이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곤, 캄보디아 불교 승단은 "머하니꺼이"(Maha Nikaya, 大派)와 "텀마윳"(Dhammayuttika Nikaya, 담마윳띠까 니까야: 法集派)의 두 종단으로 나눠졌다. "머하니꺼이"(대파)는 캄보디아 승려 대부분을 대표하는 종단으로 양 종단 중 주류적 종파가 되고 있다. 반면 "텀마윳"(법집파)은 왕실의 보호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규율과 태생적으로 태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유로 소수 군소종단으로 고립되어 있는 실정이다.(역주)
머하니꺼이 종단의 수장을 "성까리엇"(sanghreach: 산스끄리뜨 "sangha-raja", 僧王[승왕])이라 부르는데, 1980년대 종단 복원 이후로 이 종단은 정부측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주26) 때때로 머하니꺼이 종단의 고위직 승려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지지 발언을 하기도 하는데, 심지어는 야당 지지 승려를 구속시키라고 주문하기도 한다.(주27)
머하니꺼이 종단은 사원의 운용과 관련된 "재가 운영위원회"에 관료들을 위원으로 위촉하는데, 이들이 승려나 재가신자들이 사원을 중심으로 반정부 성향의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있다.(주28)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하니꺼이 종단 내에는 분파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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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캄보디아 및 태국의 불교 종단에 관한 번역사례가 아직 한국어권에는 드문 것으로 보인다. 간혹 "담마유티카"와 같이 빨리어 발음대로 음역한 사례만 눈에 뜨이고 의역한 사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온라인상으로만 한정한다면, 이러한 상황은 중국과 일본어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일단 첫 표현은 빨리어 발음에 따라 "담마윳띠까 니까야"로 표기했다. 크메르인들은 그냥 "텀마윳"이라고만 부른다. 참고로 태국인들은 이 종파를 "탐마윳"이라 부른다. 괄호 속의 한문 의역은 "크메르의 세계"가 첨가한 것이다. 빨리어 "dhamma"(담마)는 산스끄리뜨어 "dharma"(다르마)와 마찬가지로 "진리", "가르침", "의무"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침이나 교설을 의미하는 사례를 좇아 "法"(법)이란 글자를 선택했다. "yuttika"(윳띠까)는 "매달리다", "확고하게 묶는다", "끌어 안다" 등을 의미하는 어근 "yuj"(유즈)에서 파생된 말로, 산스끄리뜨어의 경우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요가"(yoga)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붙잡다"는 의미를 살려 "集"(집)을 선택했다. 한문 "集"은 "모이다"는 의미가 더 강한 말이지만 불교 용어인 "집착"에 이미 사용되고 있고, 잡을 "執"자가 일반인들에게는 보다 생경할 수도 있어서 모을 "集"자를 선택했다. "yuttika"의 마지막에 붙어 있는 "-ka"라는 접미사는 영어의 "er"과 같이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마지막의 "nykaya"(니까야)는 "집합" 혹은 "더미", "집단" 혹은 "종파"를 가리키는 말이다. "ka"와 "Nikaya"를 아울러서 물갈래 "派"(파)로 의역하였다. 이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진리(가르침에)에 확고하게 기반한 사람들의 종파"를 의미하니, "法集派"(법집파)라는 명칭이 과히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마찬가지로 마하니까야(Maha-nikaya)는 "큰", "위대한"을 의미하는 산스끄리뜨어 및 빨리어의 접두어 "maha"와 "집단"을 의미하는 "nikaya"가 결합한 것이기에 "大派"(큰 분파)로 번역하였다. 향후 캄보디아 불교를 전문적으로 다루게 될 경우엔 발음에 따를 경우엔 크메르어식으로 "텀마윳"과 "머하니꺼이"를 사용하고, 의역으로 할 경우엔 "법집파"와 "대파"라는 용어를 사용토록 할 것이다. 한편 현재 캄보디아 불교의 사찰 및 승려 90% 정도가 머하니꺼이 종단 소속이라고 한다.
(주26) Ian Harris 2001, pp.92-96.
(주27) Ian Harris 2001, pp.88-92.
(주28) Ian Harris 2001, p.95. |
1.2. 근대주의자와 전통주의자
캄보디아 승단 내의 근대주의자(modernists)와 전통주의자(traditionalists)에 대해서는 일찍이 1918년부터 그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주29) 넓게 보아 "근대주의자"란 불교에 대한 서구적 비판에 대하여, 현대의 세속적 학문과 상좌부불교의 경전인 빨리어 대장경을 함께 참조하면서, 철학 및 명상과 관련된 불교의 가르침을 재해석해 그러한 비판에 응답하고자 한 이들이다.(주30) 반면 "전통주의자"란 승원의 구전전통, 즉 집중적인 명상을 통해 "최고의 경지"를 획득하고, 공덕을 짓기 위한 종교적 의식에 중점을 두는 수행방법을 고수한 이들이다.(주31) 전통주의자들은 위빠사나(vipassana) 명상법에 대한 현대적 관심을 외래적인 것이라 하여 거부하면서, 빨리 대장경도 새롭게 연구, 번역, 해석하기보다는 그 문구들을 기계적으로 암송하고 암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주32)
머하니꺼이 종단의 대표적 근대주의자로는 머하 고사난다(Maha Ghoshananda[마하 고샤난다]: 1929-2007) 스님을 들 수 있디. 그는 캄보디아에서 오랜 기간 이 부문의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었다.(주33) 자신의 텀마위어뜨라(Dhammayatra[담마야뜨라]: 1992년 크메르루즈가 장악한 지역까지 걸어간 125마일의 평화의 행진) 프로그램 및 캄보디아 사회 변혁을 위해 승단의 영향력을 활용하는 방식을 통해, 마하 고샤난다 스님은 이전의 캄보디아 종교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종의 "참여불교"(Engaged Buddhism)의 바람을 일으켰다.(주34) 이러한 근대적 방식의 참여불교는 서양의 불교도와 NGO들에게는 상당히 친숙한 것으로, 이들이 마하 고샤난다 스님 및 여타 근대주의 지도자들은 이 방식을 차용해 지원과 모금활동을 이끌어냈다.(주35)
반면 캄보디아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머하니꺼이 종단의 보수주의자(전통주의자)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빨리어(Pali)와 크메르어로 된 다양한 발원문(기도문)과 논서들을 기계적으로 암송하며 세속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란(boran) 운동" 승려들에게 집중되어 있다.(주36) 보란운동은 대부분 빨리어에 대한 지식은 깊지 않은 편인데, 그 대신 종교적 위신력을 가졌다고 믿는 특정한 게송들과 경전을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암송하는 데 주력한다.(주37) 보란파 승려들은 이러한 게송들을 암송하는 공덕으로써 시주를 한 재가신자가 경제나 사회적 신분 면에서 즉각적인 복을 받게 된다고 가르친다.(주38) 훈 센(Hun Sen) 총리를 비롯한 캄보디아 정부의 많은 관료들이 보란파 사찰들을 후원하고 있어, 현재 보란파 사원들이 크고 화려한 장엄물들과 함께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주39) 또한 보란파 승려들은 "공동 참회"(group repentance) 의식의 효용성을 가르치는데, 모두 함께 빨리어 경전을 독송하는 가운데 이전에 지었던 나쁜 업장들을 소멸시키거나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주40) 이러한 의식들은 원래 신년 참회 의식에서 유래되어 발전한 것으로 캄보디아 사회의 특정 분파에서 매우 익숙한 것인데, 현재의 머하니꺼이 종단 승왕인 뗍 웡(Tep Vong, 텝봉) 스님도 이를 지키고 있다.(주41)
캄보디아의 텀마윳(법집파) 종단은 머하니꺼이 종단의 근대주의자와 전통주의자의 중간적 입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주42) 태국의 텀마윳 종단과 마찬가지로, 전통주의자들보다는 훨씬 더 빨리어 경전 연구와 그 지식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있다. 동시에 이들은 승려가 사회발전의 참여자로서 참가하는 참여불교의 입장은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학습과 명상, 그리고 시주한 속인들에게 공덕을 짓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전통적인 승원의 역할을 더욱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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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9) Ian Harris 2001, p.78.
(주30) Ian Harris 2001, p.78.
(주31) Ian Harris 2001, p.78.
(주32) Ian Harris 2001, pp.96-101.
(주33) Ian Harris 2001, p.79.
(주34) Ian Harris 2001, pp.79-83.
(주35) Ian Harris 2001, p.80.
(주36) Ian Harris 2001, pp.96-97.
(주37) Ian Harris 2001, p.97.
(주38) Ian Harris 2001, pp.96-101.
(주39) Ian Harris 2001, pp.96-101.
(주40) Ian Harris 2001, pp.96-101.
(주41) Ian Harris 2001, pp.96-101.
(주42) Ian Harris 2001, p.87. |
1.3. 청년승가운동
캄보디아 승단의 또 다른 분파로는 "청년 승가"(young monks) 운동이 있다. 정치적으로 매우 적극적인 성향의 이 단체는 주로 머하니꺼이 종단 소속 승려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현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공식적으로 내고 있기도 하다.(주43) "청년 승가"는 주로 프놈펜 인근 사찰 소속의 젊은 승려들로 구성되어 있다. 참여불교를 실천한 근대주의자들과 달리, 이들은 승단의 영향력을 사회 발전에 도움을 주는 데 사용하는 정도에 머물지 않고, 정부의 정책과 부정부패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1993년 유엔(UN) 감시 하의 총선이 실시된 이래로, 캄보디아의 승려들은 일부 원로 승려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투표에 참여해왔다. 비록 이들의 활동이 승단 내에서 큰 반향을 얻을 정도의 세력을 형성하진 못했지만, 일부 젊은 승려들은 의회정치에 관여하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승려들이 야당 인사인 삼 랑시(Sam Rainsy) 의원 및 그의 정당인 삼랑시당(SRP)과 연대하고 있다.(주44)
청년승가운동의 회원들은 프놈펜에서 집회를 조직하고 참여하여, 정부의 잘못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머하니꺼이 종단은 이러한 정치적 행동주의를 비난하고, 일부 승려들을 구속하라고 정부에 요청키도 했으며, 일부에 대해서는 승직을 박탈하기도 했다.(주45)
2. 크메르 민족주의와 불교
캄보디아 불교는 크메르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매체로서, 20세기에는 독립운동을 이끌어 주권국가로서의 독립을 쟁취하는 데도 공헌했다.(인용 각주 필요) 이웃한 상좌부불교 국가인 시암(태국)에 대한 문화적 충성도를 약화시켜 상호간 분리시키기 위해, 프랑스 식민 통치자들은 크메르어와 크메르 불교 연구를 강화시켜 어떤 면에서는 크메르 민족의 정체성을 육성시켰다. 프랑스는 캄보디아 내에 "빨리어 학교들"(Pali schools)을 개교하여, 승려들이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태국으로 가는 일을 막고자 했다. 하지만 이러한 크메르어 연구 거점들이 바로 캄보디아 민족주의의 탄생지가 되었다.
3. 캄보디아 불교의 특징
때때로 특정한 종교적 의례에 반드시 필요한 정족수를 메우기 위해 태국, 라오스, 버어마, 스리랑카 등지에서 상좌부(Theravada)의 승려들이 참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캄보디아 불교는 여타 불교 조직과 행정적 결연을 갖고 있지 않다. 캄보디아 불교는 1943년에 제정되어 1948년 개정된 법률에 근거하여 국가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왕정 시대에는 국왕이 승단을 대표했다. 시하누크(Sihanouk) 공의 경우, 심지어 국왕 자리를 자신의 아버지에게 양위하고 국가주석으로서 통치를 하던 시기에도 이 직위는 사임하지 않았다. 그는 양 종단의 승왕 및 고위 승직자들을 임명했다. 1970년 시하누크 공이 실각한 후에는 새로운 국가수반인 론 놀(Lon Nol) 장군이 이 역할을 승계했다.(주46)
캄보디아에서는 두 종단이 승려의 수계를 주고 있다. 이 중 주류는 90% 이상의 승려들이 재적되어 있는 머하니꺼이 종단이다. 이에 비하면 텀마윳 종단은 매우 규모가 작은 편이다. 텀마윳 종단은 캄보디아를 지배하기 위한 방편으로 1864년(1855년?) 태국에서 도입된 종단이다. 텀마윳은 왕실과 귀족들의 보호를 받았지만, 그 신봉자들은 지리적으로 프놈펜 인근에 한정되었다. 양 종단을 비교해보면 텀마윳 종단이 소속 승려들을 더 확실하게 관리하고 있다. 1961년 통계를 보면 머하니꺼이 종단이 약 2,700개 사찰에 52,000명 이상의 소속 승려를 갖고 있었고, 텀마윳 종단은 사찰 수 면에서 100개를 간신히 넘겼고 1,460명의 승려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1967년에는 캄보디아 내에 2,800개의 머하니꺼이 종단 사찰과 320개의 텀마윳 사찰이 존재했다. 텀마윳 사찰들은 주로 프놈펜에 가장 많은 수가 있었고, 그 다음은 밧덤벙(Batdambang), 스떵 뜨라잉(Stoeng Treng), 쁘레이 웨잉(Prey Veng), 껌뽀웃(Kampot), 껌뽕 톰(Kampong Thum) 순이었다.(주46)
각 종단은 고유한 위계질서를 갖고 있는데 각각 11단계로 구성된다. 하위의 7단계에 위치한 승려들을 "타나누끄럼"(thananukram[산˙빨: 타나느끄람, 태국: 타나누꼼])이라 부르고, 상위의 4단계에 위치한 승려들은 "라쩌꾼"(rajagana[산˙빨: 라자가나, 태국: 라차칸])이라 부른다. 라쩌꾼 지위의 경우, 머하니꺼이 종단에 총 35인이 있고, 텀마윳 종단에는 21인이 있다. 일반 승려들이 고위직인 라쩌꾼 계위에 오르기 위해선 적어도 20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주46)
캄보디아 불교의 주춧돌은 사찰("와트" 혹은 "파고다")과 승려들이다. 전통적으로 캄보디아의 마을들은 정신적 구심점인 5인에서 70인 이상이 상주하는 와트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전형적인 캄보디아 시골의 와트의 경우, 담장이 둘러쳐진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그 안에는 본당(성소)과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들, 그리고 회당과 주방, 여성 수행자(역주: 남방 상좌부에서는 여성에게 승직을 주지 않으므로 "비구니"란 용어가 없음)를 위한 공간, 연못 등이 위치한다. 지역 인구에 비례해 상주하는 승려들의 수도 달라진다. 불상 --- 혹은 간혹 진신사리 등의 유물 --- 을 모신 본당은 종교적 의례가 거행되는 곳으로 승려들만을 위한 공간이다. 승려와 속인들을 위한 강좌나 음식공양은 주로 회당에서 이뤄진다. 본당 주위로는 가족 단위로 화장된 유해를 안치한 탑(스투파)들이 서 있다. 또한 동네 꼬마들이 좋아하는 과일 나무와 야채를 키우는 정원도 전형적인 지방 사찰의 한 부분이다. 동쪽으로 나 있는 주 통로는 의식이 있을 때만 사용하며, 여타 출입로들이 다른 방향들로 나 있지만, 특별히 대문을 별도로 세우지는 않는다.(주46)
일찍이 스타인베르그(Steinberg)는 캄보디아 총인구 대비 승려의 비율에 대해 지적한 바가 있다. 1950년대 캄보디아 인구는 약 500만명이었는데, 4만명 정도의 행자 및 사미를 포함해 10만명 정도의 승려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높은 비율의 승려 수는 비교적 출가와 환속이 자유로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론상 16세 이상의 모든 캄보디아 남성은 승려로서 일정 기간을 보내야 했지만, 출가와 환속이 모두 개인의 선택에 맡겨졌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완전한 승려"(비구, bhikkhu)가 되길 원치 않았고, 대부분 1년 이내의 단기출가를 했다. 하지만 이러한 단기출가라 할지라도 그들의 부모들에게 대단한 공덕을 주는 일로 여겼고, 이 일은 너무도 중요해 부모님이 살아 생전에 출가하지 못한 이들은 부모의 장례식에서 출가하기도 했다. 통상 와트에는 여성수행자(사마니[samani])와 비쿠(남성 승려)의 두 부류가 존재한다. 수계 의식은 주로 4월 중순부터 7월 중순의 우기에 거행된다.(주46)

(사진) 바이욘사원에서 만난 여성수행자(돈찌)의 모습. ☜ 대형확대사진보기
일부는 영속적인 승려로 살아가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캄보디아의 불교 승려들은 영원히 승려로 남겠다는 맹세를 하지는 않는다. 전통적으로 이들은 매우 이른 나이에 출가를 한다. 심지어는 7세에 출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통상 행자가 되는 최소 나이는 13세이다. 비쿠가 되려면 적어도 20세 이상이 되어야 한다. 승려의 일상은 불교의 계율에 규정되어 있고, 와트에서의 생활은 엄격한 규율에 매여 있다. 비쿠는 주요한 10계 외에도 227개항의 계율을 준수해야 한다. 여기에는 불교도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5계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또한 승원생활의 5가지 금기사항도 있는데, (1) 오후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다, (2) [가무 및 영화나 TV를 포함하여] 오락을 즐기지 않는다, (3) 개인적 장신구를 착용하지 않는다, (4) 호사스런 침상에서 자지 않는다, (5) 돈을 만지지 않는다 등이다. 또한 승려들은 당연히 성적으로 금욕해야 하며, 모든 정치적 문제에도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승려들이 투표를 하거나 정치적 성향의 사무소를 개설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법정의 증인으로 증언하는 일도 저어한다. 승려는 성스러운 존재로 간주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속인들의 법률적 활동이나 공적 의무 바깥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현대와 들어와 이러한 관습은 일부 변화되고 있고, 심지어는 1980년대의 "캄푸치아 인민공화국"(PRK) 시대에도 일부 승려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적 활동을 하기도 했다.(주46)
여성들은 승려가 될 수는 없지만, 특히 미망인을 비롯한 나이든 여성들은 여성수행자(크메르어-돈찌, 태국어-메시)가 될 수 있다. 이들은 와트에 살면서 사찰 내의 일상적 일들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여성수행자들도 승려와 마찬가지로 삭발을 하고 눈썹도 면도한다. 이 여성들은 제의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음식 장만 등의 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주46)
참고문헌
- Bapat, P.V.; Takasaki, J.N. (1959), "Progress of Buddhist Studies in Ceylon, Burma, Thailand, Cambodia, Laos, Vietnam, China and Japan", in Bapat, V.P., 2500 Years of Buddhism, Delhi: Ministry of Information and Broadcasting, Government of India, pp. 370–83, http://www.buddhismtoday.com/english/world/figure/005-progress.htm, retrieved on 2007-06-29
- Rawson, Philip (1990), The Art of Southeast Asia, Thames & Hudson, ISBN 0500200602
- Harris, Ian (August 2001), "Sangha Groupings in Cambodia", Buddhist Studies Review (UK Association for Buddhist Studies) 18 (I): 65–72
- Harris, Ian (2005), Cambodi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ISBN 0824827651
- Rajavaramuni, Phra Prayudh Payutto (1984), "A Doubtful Fate of Laotian and Cambodian Buddhism", Thai Buddhism in the Buddhist World, Bangkok: Mahachulalongkorn Buddhist University, pp. 78–82
- Wyatt, David (2003), Thailand: A Short History,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ISBN 030008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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