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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06 - 살리에르의 슬픔
S#1. 강의실 앞 복도
강의시간에 맞춰 들어오는 학생들...
분주하게 오가는 학생들을 헤치며 걸어오는 채영, 민재. 빠른 둘의 발걸음...
이미 논쟁은 정점에 달한듯 보이는.
채영 : 바이휠로 해.
민재 : 캐터필러로 해.
[자막]
바이휠 로봇 : 바퀴가 두개짜리인 축구로봇.
캐터필러 : 바퀴가 탱크형태인 축구로봇.
채영 : 맨날 돌다 버그나는거 보면서 그러냐.
민재 : 바이휠보다 직진력은 훨씬 강해.
채영 : 수식이 복잡하잖아. 바이휠로 하자.
민재 : 너 머리 좋잖아. 그러니까 난 수식 걱정안해.
채영 : 제발 그 고집 좀 버려.
민재 : 지금까지 내 의견대로 해서 틀린적 있어?
채영 : 많지. 그러니까 바이휠!
민재 : 캐터필러!
둘 동시에 멈춘다. 강의실 문앞이다.
서로를 잠깐 노려보는 둘. 적대감은 아니고 상대방이 답답한.
채영 : (한숨쉬고) 잘가라.
민재 : 너도 잘가.
하고 둘 동시에 같은 강의실로 들어간다.
S#2. 강의실 내부
학생들이 분분이 자기 자리를 찾아앉는데.
그 중의 한 곳. 의자 몇 개를 걸쳐 누워서 정태가 잠이 들어있다. 가방은 베게처럼 베고.
그 옆을 화가 난 민재와 채영이 쿵쿵대며 들어와서 (정태는 못 보고)
결국 나란히 앉는다. 앉아서 각자 책을 꺼내면서도..
민재 : 캐터필러야.
채영 : 바이휠이지.
S#3. 동아리방
옥주, 낱말카드(사절지에 옥주가 쓴듯한 글씨) 하나씩 보이며 마이클에게 한글 공부 시키는 중이다.
테이블에 옥주 마이클이 마주보고 앉은 상황.
재명은 옆에서 턱을 괴고 앉아서 보는 중.
옥주 : ('운명'이라고 쓰인 낱말카드 보이며) 마이클 그럼 이건 뭐야?
마이클 : (자랑스럽게 읽는다) 운명!
옥주 : 글세 이게 무슨 뜻이냐구.
마이클 : 운명..운명..아이 돈 노. 재명. 힌트 해봐.
재명 : 음..옥주가 다른 대학에 갈 수도 있었어. 근데 카이스트에 왔어.
나 역시 다른대학에 갈 수 있었는데 카이스트에 왔어. 그래서 우린 만나게 된거지. 운명적으로.
마이클 : 왓?? (더욱 모르겠다는 얼굴)
옥주 : 재명아, 이건 운명하셨습니다 할때 그 운명이란 말야. 운명... 죽었다.
마이클 : 운명이 두 개야?
옥주 : 아이구 넘어가 넘어가. (다음 낱말카드 보인다 '천재'라는 단어다) 이건 뭐야.
마이클 : 천재. 천... 원. 싸우전.
재명 : 마이클 나를 잘 봐봐.
마이클 : 봤어.
재명 : 나는 천재야. 머리가 좋거든.
옥주 : 최재명!!
재명 : 왜? 맞잖아.
S#4. 강의실
칠판 앞에 서있는 이교수.
이교수 : 바이휠 로봇엔 구조적인 제약이 있어. 뭐지?
학생들 틈에 보이는 민재, 채영, 지원.
민재 : 지지점이 두군데라 불안정합니다.
이교수 : 유아기적 답변이지? 공학도 다운 답을 해봐.
민재 : (당황) 그러니까... (책 다급히 넘기며) 그 구조에는....
정태소리 : 논홀로노믹 콘스트레인트 제약이 있습니다.
이교수 : 맞았어.
하다가 보면 정태가 잠에서 깨어 부시시 일어나고 있다.
이교수 : 김정태. 너 거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너 이 수업 안듣잖아.
정태 : 죄송합니다. 깜박 잠이 들어서. 지금 나가겠습니다. (가방을 들고 일어서는데)
이교수 : 어차피 들어온 거 앉아 있어.
정태 : (다시 앉고)
이교수 : (칠판에 전공책 p.38의 맨 아래식을 쓰며) 바이휠 로봇의 기구학식이야.
여기서 입력은 두갠데 출력은 세 개가 돼버리지? 이건 제어 가능한걸까?
민재 : 불가능합니다.
정태 : (동시에) 가능합니다.
민재, 정태를 돌아본다.
정태 하품을 삼키고 있다.
민재 : (이교수 향해) 그건 다윈 일차방정식에서 식 두개로 변수 세갤 알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해가 없거나 무수히 많으니까 결국 제어 불가능하죠.
정태 : 이미 94년 다이나믹 피드백을 통한 제어기가 구현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민재 : 그렇지만 그 제어기를 바이휠 로봇에 적용시키는덴 문제가 있었습니다.
정태 : 그래서 안드레아 노벨이 완전한 제어기를 구현해버렸을걸요.
민재 : 그렇지만...에.. 그렇지만... (열심히 생각해보는)
이교수 : 이민재. 우리 얼마나 더 기다려야하지?
민재 : ...반론...없습니다.
이교수 : 김정태. 정확하게 지적했어. (칠판의 수식 가리키며) 여기 다시 보자.
S#5. 동아리방
마이클 혼자 게임을 하고 있는데..
들어서는 채영과 민재, 정태.
채영 : 정태 너 작년에 이 수업 들었었어?
정태 : 아니.
채영 : 근데 그런 걸 어떻게 다 알어?
정태 : 글세... (생각해보더니) 어디서 봤겠지 뭐.
민재 : (좀 기분이 언짢은 상태에서 책을 테이블에 던져놓고 대충 앉고)
마이클 : 정태오빠.
정태 : 형!
마이클 : 정태형. 천재라며?
정태 : 누가 그래.
마이클 : 옥주가 그랬어. 정태형 천재야. 지니어스.
정태 : 천재도 배고프다. 니들 점심 안 먹냐.
민재 : (불퉁하니) 너나 먹어. 머리도 나쁜 놈이 먹긴 뭘 먹겠냐.
채영 : 민재 삐졌다. 삐그륵 삐졌어. 어쨌거나 우리 로봇은 바이휠로 하는거다.
민재 : 캐터필러야.
채영 : 너 아까 정태 하는 말 못 들었어?
민재 : 들었어. 그래도 캐터필러야.
채영 : ..너 지금 반항하니?
민재 : 아니. 나보다야 천재의 말이 맞겠지. 그러니까 넌 정태랑 둘이 맘대로 만들어.
난 나 혼자 맘대로 만들 거니까. (일어나더니 나가버린다)
채영 : 어어. 민재 진짜로 삐졌나봐.
정태 : 아침을 못 먹어서 그래. 저 녀석 원래 배고프면 화내잖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마이클이 하던 게임을 구경하고 있다.
S#6. 석학의 집
민재, 오무라이스를 퍽퍽 먹고 있는데,
박교수소리 : 그거 맛있냐?
민재 고개 들어보면 박교수가 탐나는 듯 오무라이스를 내려다보고 있다.
민재 : 그냥 먹는 겁니다.
박교수 : 그래. 그게 문제야. (앞에 앉으며) 우리는 인공지능이란 것을 연구하고 있잖니.
그런데 그 인공지능이란 것을 무엇을 기준으로 연구를 해야하냔 말이지. 그거 이름이 뭐지?
민재 : 오무라이스요?
박교수 : 누님, 여기 오무라이스 하나 주세요. 인공지능.. 즉 사람이 아닌데 사람처럼 생각하는 지능이란 얘기잖아.
그런데 사람의 생각이란 것이 얼마나 정확하고 계측가능한 것인가..
민재 : (밥맛이 떨어져가고 있다)
박교수 : 맛이 있다.. 맛이 없다.. 그냥 배가 고파서 먹는다. 배도 안고프고 맛도 없지만 그냥 먹는다...
이걸 컴퓨터가 어떻게 구분을 하느냐... (그러다가 정지하더니 혼자 생각에 빠져든다)
민재 : (계속 먹어야하나 말아야하나..숫가락을 들고..)
박교수 : 이번에 프로젝트를 하나 시작해볼까 하는데 말이야. 자네 거기 참가해볼 생각없어?
민재 : 저는..
박교수 : GPS에 대한 거야. 어... GPS가 뭔지 알지?
민재 : 글로벌 포지셔닝 시스템 말입니까?
박교수 : 그렇지. 아는군. 그러니 자네가 하면 되겠네.
민재 : 죄송하지만 저는 전자학과인데요. 그리고 아직 학부생이라서..
박교수 : 틀렸어.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이런 식으로 한계를 정하고 핑계를 대는 건
머리가 나쁜 사람들이 하는 짓이야. 자네 머리 나쁘지?
민재 : ....
박교수 : 머리가 나쁘면 열정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자네 열정도 없지?
민재 : (완전히 밥맛을 잃어버리고 숫가락을 놓는다)
S#7. 처장실
이교수 : 박교수가요?
처장 : 예. 박교수도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하겠다고 하든데요.
이교수 : 아... 그렇지만 이번 건 저희 랩에서 몇 달 전부터 준비를 한건데.
처장 : 그게 키스텝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게 언제죠?
[자막]
키스텝(KISTEP) : 한국과학기술평가원
이교수 : 한달도 안남았죠.
처장 : 그걸 지금부터 준비를 하겠다고 하니...하아, 박교수 그 사람 머리가 좋은건지 배짱이 좋은건지..
이교수 : 지금...부터 준비를 하겠대요?
처장 : 아침에 와서 그렇게 말하든데요. 아무튼 과는 다르지만 같은 퍼지를 연구하는 분들이니까
좋은 라이벌이 될겁니다.
이교수 :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S#8. 박교수 연구실
남희, 인터넷으로 검색 중... 그러다 저쪽을 보면
마이클이 다른 컴퓨터 앞에 앉아서 혼자 킬킬대고 있다.
남희 : 논문은 다 찾은거야?
마이클 : 오우 다 했어요. 두시간 전에 다 했어요.
남희 : 그럼 지금 뭐 하는건데?
마이클 : 히히 누나. 이거 좀 봐요. 글래머 여자.. 비키니.. 이 여자 미스아메리카였대요. 운명하겠어요. 히히히.
남희 : 운명..해?
마이클 : 운명 몰라요? 죽는거요. 운명하게 멋있어요, 이 여자. 누나는 다 찾았어요?
남희 : ....아니 아직..
마이클 : 누나 그거 심플한건데 너무 오래 찾고 있어요. 누나 머리 나빠요. 내가 해줘요?
남희 : 됐어. 미스아메리카나 실컷 봐. (기분 나빠져서 모니터를 보며 마우스 조작하는)
마이클 : 이히히히. 이 여자도 운명하게 이뻐요.
S#9. 동아리방
문이 삐이걱 열리더니 박교수가 안을 들여다본다.
박교수 : 여보세요.
안에는 아무도 없어 보인다.
박교수 나가려다가 돌아보면...정태가 옆에서 자고 있다가 부시시 일어난다.
박교수 : 아 이거 자는 걸 깨웠구만.
정태 : (일어나며) 안녕하세요.
박교수 : 혹시 여기 박채영이라고 없나. 저번에 해킹대회에서 우승한 친군데..
정태 : 채영인 도서관 갔는데요.
박교수 : 아 그렇군... (돌아서 가려다가 다시) 혹시 GPS가 뭔지 아나?
정태 : 글로벌 포지셔닝 시스템 말씀하시는 겁니까?
박교수 : 그렇지 그렇지. (아예 들어와 자리잡으며) 맵매칭에서 말이야.
GPS만으로 되는데 INS를 쓰는 이유를 아나?
정태 : 글세요. GPS는 군사용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위성이 부정확한 신호를 보낼 수 밖에 없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INS나 맵매칭이 필요한 거 아닐까요.
박교수 : 오호...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
정태 : 김정탭니다.
박교수 : 정태군. 내가 말이지. 이번에 GPS 프로젝트를 하나 준비할까하는데
거기 참여해보고 싶은 생각없어?
정태 : 제가요?
박교수 : 왜 자신없어?
정태 : 저보다 교수님은 괜찮으십니까?
박교수 : 나? 내가 왜.
정태 : 이렇게 아무렇게나 연구원을 뽑으셔도 되는건가 하구요.
박교수 : 아...하하하하 사실은 말이지. 내가 우리 조교하고 내기를 했거든.
우리 조교가 그러더라구. 교수님 이 프로젝트를 할려면 연구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내가.. 아 연구원. 모으면 되지. 그러자 우리 조교.. 언제요?
그래서 나.. 오늘 중으로! 우리 조교... 아니 연구원을 어떻게 오늘 중으로 모아요?
나... 내기할까? 이렇게 된거야아.
그래서 말이지. 내가 오늘 중으로 연구원을 모아오면 짜장면을 사기로 했다 이 말이지. 하하.
S#10. 도서관 전경 낮
S#11. 도서관 내부 일각
민재 책상 앞에 앉아있긴 한데 멍청이 딴 생각을 하고 있다.
지원 책을 들고 지나가다가 민재를 보고는 옆에 와 앉는다.
지원 : 뭐해?
민재 : (괜히 앞에 놓인 책을 뒤적거리며) 공부하잖아.
지원 : 충격 받은거야?
민재 : 뭐가?
지원 : 아침 강의시간때. 정태한테 케이오 당한거.
민재 : (대꾸 안하고 책만 뒤지는)
지원 : 그런 애들 있어. 처음부터 80점에서 시작하는 애들.
우리 같은 사람은 기껏 30점에서 시작해서 죽자고 해도 겨우 70점인데..
그런 애들은 처음부터 80점이라구.
민재 : 내가 70점짜리로 보이냐?
지원 : 그것도 죽자고 했을 때 70점 아니니? 살리에르의 슬픔이지.
민재 : 살리에르?
지원 : 아마데우스라는 영화 안 봤어? 거기 살리에르 나오잖아.
아무리 해도 모차르트를 이길 수 없었던 사람.
(자기 책과 노트를 펴며) 살리에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야.
모차르트와 경쟁을 안하는거지. 모차르트같은 인간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민재 : ....
지원 : (책을 보며) 이 세상엔 살리에르가 99퍼센트니까 모차르트 땜에 너무 맘쓰지 마.
민재, 지원의 옆모습을 보다가 자기 책을 덮어 밀쳐버린다.
그 때 민재의 호출기가 울린다.
소리 : (호출기의)
민재, 호출기를 빼서 번호를 확인한다.
S#12. 이교수 랩
만수가 열몇장쯤 되는 디스켓을 들고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민재가 들어선다.
민재 : 형.
만수 : 아이구 민재야.
민재 : 왜 호출한거야.
만수 : 내가 널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는 줄 알지?
민재 : (짐작할만하다. 조용히 돌아서 나가려는데)
만수 : (얼른 잡더니) 이거 하나만 해주면 돼.
민재 : 뭔지는 몰라도 형, 아니되옵니다.
만수 : 일단 여기 앉아봐. 앉아서 내 사정을 좀 들어봐아. (억지로 앉히며) 우리 이교수님께서 말이야.
이번에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는 게 있으신데..
민재 : 형.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알지.
만수 : 그게 박교수님하고 경쟁이 붙게 생겼거든.
민재 : 우리 동아리 신입생 모집해야지. 회장 자리도 물려줘야지. 계절학기 마지막 과제에 매주 퀴즈 시험에..
만수 : 그래서 갑자기 우리 지능제어랩에 비상이 걸려가지구, GPS 자료를 오늘 중으로 다 정리를 하래는거야.
내일부터는 모의실험에 들어가야 된대요.
민재 : 지금 GPS라고 그랬어?
만수 : 그래그래. 그러니까아 넌 머리도 좋고 성격도 좋으니까아..
민재 : 틀렸어.
만수 : 게다가 미남이고..
민재 : 난 머리도 나쁘고 열정도 없어. 그러니까 다른 애를 구해봐.
일어나더니 나간다.
만수 : (그 뒤에 대고) 모의 실험에도 참가하게 해줄게. 민재야아.
문이 닫긴다.
만수 : 냉정한 놈. 너 다시는 나랑 아는 척도 하지마!!
S#13. 민재 정태의 방
정태 전화를 하고 있다.
정태 : 어. 하기로 했어. 뭐 GPS에 흥미가 있다기 보단 그 교수한테 흥미가 있다고 할까.
재밌잖아. 그 교수님.
민재가 들어선다. 대충 가방과 웃옷을 벗어 던지며 자기 책상으로 가는..
정태 : (민재에게 손 들어주며 전화 계속) 야야, 내가 채영이 너하고 같냐. 나야 뭐 다 놀며 즐기며 하니깐.
채영이 너야말로 좀 놀면서 공부해. 그러다 금방 늙어버린다.
민재 : (정태를 흘깃 보고 책을 챙기는)
정태 : 채영아, 우리 오랜만에 당구나 한 게임 칠까? 너 당구 처음 배울 때 완전 미쳤었잖아. 요즘 안 치지?
민재? (민재를 향해) 민재야 너 당구 안칠래?
민재 : 아니. 그럴 시간 없어.
정태 : 시간 없대. 어 그럼 내일 봐. 점심 같이 먹자.
전화를 끊고 보다 놓았던 만화책을 들고 침대로 가더니 벌렁 드러 눕는다.
민재 : (컴퓨터를 부팅하며) 너 개강이 내일모렌데 그렇게 놀아도 되냐? 공부하는 꼴을 못보겠다.
정태 : 안그래도 내일부터는 좀 바빠질 거 같다.
너 박교수님 알지? 내일부터 그 교수 프로젝트팀에 들어가기로 했어.
민재 : ... GPS?
정태 : 어, 너도 알어?
민재 : 너한테 같이 하재?
정태 : 응. 하하 그 교수 말이야. 다짜고짜 하는 말이..
민재 : 그래서 너, 하겠다고 했어?
정태 : 한다고 했지 뭐. 지능제어 쪽은 좀 공부해놓은 것도 있고. 재밌잖아. 그거.
민재 : (혼잣말처럼) .... 머리도 좋고.. 열정도 있고..
정태 : 뭐가?
민재 : 알 거 없어.
마우스로 파일 찾아내고.. 그러다가 다시 정태를 돌아본다.
정태는 만화책을 읽으며 낄낄 웃고 있다.
민재, 모니터를 보며 잠시 망설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윗도리를 집으며 나간다.
정태 : 어디 가?
대답 대신 문이 쾅 닫긴다.
S#14. 학교 건물 전경. 밤
그 중의 한 창문. 불이 켜져있다.
S#15. 이교수 연구실
이교수 컴 앞에 앉아 작업을 하는 중. 옆의 김밥을 하나씩 집어먹으며.
소리 : (노크하는)
이교수 :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네에..
민재가 들어선다.
이교수 : (그제야 보고) 웬일이니? 이 밤중에.
민재 : 저...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이교수 : (돌아앉으며) 뭔데.
민재 : 교수님 지능제어랩에 저를 좀 끼워주십시오.
이교수 : (살펴보다가) 거긴 석박사 과정 선배들이 연구하는 곳이야. 어제오늘 시작한 것도 아니고.
학부생이 갑자기 끼어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민재 : 아무거나 좋습니다. 심부름 복사. 청소도 하겠습니다. 옆에서 보고 배우게만 해주세요.
이교수 : ... 이유는?
민재 : 예?
이교수 : 이유가 뭐냐고. 갑자기 이런 부탁을 하는 이유.
민재 : ... 그냥..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이교수 : 확인?
민재 : 예. 제가 몇점짜리 인간인지.. 그런 걸..
이교수 : (보다가 좀 웃더니) 어쨌든 좋아. 대신 각오는 되있겠지?
민재 : 예 그럼요. 당장 시작할 수 있습니다.
S#16. 이교수 랩
만수 싱글벙글해서 커피 두잔을 들고 오며.
만수 : 너 진짜 성격 좋은 놈이야. 내가 너 장가갈 때 결혼식장에서 축사 해줄게.
신랑 이민재는 정말로 성격이 좋은 놈입니다. 신부는 그야말로 봉 잡은 겁니다.
민재, 컴 앞에 앉아서 옆에 자료를 쌓아놓고 타자를 치고 있다. 무뚝뚝한 얼굴이다.
만수 : 커피 마셔라 응? 마시면서 해.
민재 : (문득 손을 멈추더니) 형.
만수 : 왜? 뭐?
민재 : 형은 말이지. 하나님이 형한테 좋은 성격을 가질래. 좋은 머리를 가질래 하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거야?
만수 : 좋은 성격하고 좋은 머리?
민재 : 응.
만수 : 그야.. (생각해보더니) 거기 잘생긴 얼굴은 없냐? (귀엽게 눈을 깜박거려 보인다)
S#17. 아침. 카이스트 중앙로
교수의 차들이 출근을 하고 있고..
아놀드는 예의 그 멋진 폼으로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S#18. 동아리방
민재, 밤새 잠을 못자서 반쯤 감긴 눈으로 들어선다. 그러다 멈춰 안을 둘러본다.
테이블 위에는 먹다 놓은 과자봉지들과 일회용 컵들이 어지럽게 흩어져있고, 의자 하나는 엎어져 있고,
컴퓨터 근처에는 보다 만 신문들이며 만화책이 흩어져 있다.
민재, 한숨을 쉬더니 비닐 봉지 하나에 쓰레기들을 치우기 시작한다.
그때 들어서는 재명.
재명 : 어 형 일찍 왔네. 우리 회의는 열시부터 아니었나.
그러다가 말없이 치우고 있는 민재를 눈치채고는 좀 거든다.
재명 : 어제 채영이 누나랑 옥주랑 늦게까지 놀았거든.
놀았다기보다에 뭐랄까.. 인생에 대한 얘기를 좀 나누고...
민재 : 누가 제일 늦게 나갔어?
재명 : 어제밤에? 어.. 내가 제일 늦게 불 껐는데.
민재 : 제일 늦게 나가는 사람이 문 잠그기로 했지.
재명 : 아..맞다.. 잊어먹었다...
민재, 쓰레기봉지를 들고 나가려는데 채영이 들어온다.
채영 : 민재 안녕. 재명이 안녕.
재명 : 누나 안녕.
민재 : 오늘 회의 저녁 여섯시로 미루자. 다른 애들한테도 전해줘.
채영 : 왜애?
민재 : 일이 있어. 미안하다고 전해주고.. (나가서 문을 닫는데)
채영 : 미안하니까 바이휠로 하자.
민재 : (문을 다시 열더니) 캐터필러야. (문을 닫는다)
채영 : 쟤.. 오늘도 아침 못 먹었나..
소리 : (전화벨)
채영 : (받아서) 여보세요. 아 만수선배? 왜? 민재 금방 나갔는데.. (듣다가) 민재가 뭘 한다구?
S#19. 지능제어랩
박사과정의 동석이가 앞에 선 민재를 아래위로 훑어본다.
동석 : 많이 배우고 싶다고?
민재 : 예. 부탁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는)
만수 : (동석의 옆에 붙어서서) 불쌍한 것,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이 호랑이굴에 지발로 들어오냐..
동석 : 정만수. 프로그램 짜는거 어떻게 됐어?
만수 : 내가 누구야 형. (금방 목소리 팍 죽고) 당연히 못끝냈지.
동석 : (노려보면)
만수 : 지금 하러 가. 지금 한다구.
만수 컴퓨터 앞에 후다닥 가서 앉는다.
랩 안에는 그들 뿐 아니라 네명 정도의 다른 원생들이 각자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동석 : (디스켓을 하나 건네주면서) 일단 분위기 파악이 필요하니까 이거 먼저 읽어봐라. 그리고..
민재 : 그거 GPS 자료 정리한 거 아닌가요?
동석 : 그런데.
민재 : 그 내용이라면 잘 압니다. 못 믿겠으면 아무거나 그 내용 중에서 물어보셔도 됩니다.
동석 : 그래? 그럼. (다른 디스켓을 찾아서 건네주며) 이 안에 있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이 지도를 정리해봐.
(지도책을 내주며) 이거 국토개발원에서 받아온 지도니까 잘 보관하고.
민재 : 예. 감사합니다.
동석 : 내일 아침 10시까지 중간보고하고..
민재 : (씩씩하게) 예. 알겠습니다.
이교수소리 : 아니야. 아니야.
모두 돌아보면 이교수가 문 쪽에 팔짱을 끼고 서서 보다가.
이교수 : 동석아.
동석 : 네.
이교수 : 기초부터 가르치라고 했잖아. 너 처음 이 랩에 들어와서 뭐부터 했어?
동석 : 아.. 알겠습니다.
이교수 : 이민재.
민재 : 예.
이교수 : 너 자신이 몇점짜린지 확인해보고 싶다고 했었지?
민재 : 예.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이교수 : 그럼 잘 확인해보도록 해.
그러더니 이교수는 다른 원생이 작업을 하는 컴퓨터 앞으로 가서 살펴봐주고...
동석은 민재에게 넘겼던 지도와 디스켓을 다시 회수한다.
민재 : 이거.. 하지 말아요?
동석 : 니가 할 일은 따로 있다.
S#20. 중앙창고
동측기숙사 옆에 있는 위치. 일반 사무용품 부터 실험장비까지 구비된 대형 공간.
이 방을 알 수 있는 스케치... 안내문 등.. 그 위로 들리는..
민재소리 : A4용지 세박스 주세요.
직원 움직이는 동안 떨떠름하게 서있는 민재.
S#21. 복도
복사용지 세박스를 들고 걸어오는 민재. 무겁고 균형이 안 잡혀서 잠시 비틀거린다.
S#22. 박교수 연구실
박교수, 앞에 서있는 마이클과 정태와 남희에게 디스켓을 하나씩 나눠주며..
박교수 : 자아 이거 하나씩 갖고 가서 각자 프로그램을 짜봐.
남희 : 각자요?
박교수 : 그렇지. 각자 짜는거지, 그럼 둘이 셋이 손잡고 짜?
남희 : 그래도.. 저어.. 매일 한번씩이라도 모여서 함께 세미나도 하고 연구 방향도 정하고
그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박교수 : 얘기할 건 다 했잖아. 다 아는 얘길 뭐하러 시간 없애고 맨날 모여서 떠들어.
내가 평생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그 시간 맞춰 모이고 회의하고 그러는거라고.
남희 : 그래도.. (어떻게든 달래보려고 미소지어가며) 우리말에 좋은 말이 있잖아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박교수 : 으윽.. 그거 내 평생 가자앙 답답해하는 말이야.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니?
예를 들어서 축구시합을 보자고. 축구시합하는데.. (잠깐 멈추더니) 모두 몇 명이 뛰지?
정태 : 열한명입니다.
박교수 : 그래, 열한명이 몽땅 뭉쳐서 뛰어다녀봐. 그거 축구시합이 되겠어?
수비수는 수비를 하고, 공격수는 공격을 하고, 골키퍼는 골문 앞을 지키고..그래야 시합이 되는 거잖아.
우리나라 사람들..그 뭉치면 산다는 말땜에 몽땅 뭉쳐다니느라고
좀 삐뚜루 가는 사람들은 죄다 인간취급을 안해버린다고.
중고등학교? 죄다 뭉쳐서 똑같은 머리스타일. 똑같은 교복. 똑같은 시험과목에 똑같은 노래 듣고 있잖아.
대학교? 죄다 뭉쳐서 토플공부하고 영어상식 공부하고...
나머지 세사람 버엉해서 박교수의 엇가는 열변을 보고 있다.
박교수 : 그래서 나온 말이 모난 정이 돌맞는다.. 이거잖아.
정태 : 모난 돌이 정을 맞을걸요.
박교수 : 그렇지. 그래서 우리 나라에 천재도 없고. 영웅도 없는 거야. 내말 맞지?
S#23. 동아리방
채영 재명 마이클 옥주가 모여있다.
재명과 마이클은 컴퓨터의 껍데기를 뜯어놓고 뭔가를 작업 중.
채영과 옥주는 머리를 나란히.. 같이 여성잡지를 보는 중.
채영 : 우와. 이 옷 좀 봐라. 옥주 너 입은거랑 비슷하다야.
옥주 : 언니도 이런 옷 한번 입어봐. 폼 날거야.
채영 : 에헤... 이건 치마잖아.
옥주 : 언니 치마 하나도 없지.
채영 : 있어.
옥주 : 그럼 좀 입구다녀봐.
채영 : 근데 치마를 입으면 책상다리하고 앉질 못하잖아.
뛰지도 못하고, 아무데서나 잘 수도 없고, 민재를 발로 찰 수도 없고.
옥주 : 스타킹은 있어?
채영 : 작년에 하나 사긴 했는데.. 그게 어딨더라...
하는데 민재가 들어온다.
옥주 : 민재 오빠 왔다. 회의하자. 회의.
민재 : (재명과 마이클을 보고) 니들 뭐해.
재명 : 마이클이 집드라이버 새로 꼽아준다고..
민재 : 하지마. 건드리지 마. (둘을 컴에서 잡아뗀다)
마이클 : 아이, 형. 다 되가는데..
민재 : 놔둬. 내가 할게. 재명이 너 지난번에도 업그레이드 한다고 컴퓨터 하나 망가뜨려놨지.
재명 : 그거야 부속이 없어서 새로 만들다보니까...
민재 : 앉아. 앉아서 회의하자. 그건 내가 나중에 고쳐놓을게.
채영 : (그러는 민재를 가만 보고 있다가) 민재야.
민재 : 캐터필러로 할거야. 우리 로봇은.
채영 : 너 어제 몇시간 잤어.
민재 : 안 잤어. 왜?
채영 : 너 내일 퀴즈 시험 볼 거 공부 했어?
민재 : 이제부터 할거야. 왜애?
채영 : 그럼 또 밤새야겠네.
민재 : 난 천재가 아니니까. 그래서. 왜?
채영 : 너 이교수님 랩에 자원해 들어갔다며?
민재 : 그랬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채영 : ...아니야. 회의하자.
민재 : (회의노트를 펼치며) 우선 IC 칩을 사와야 하는데..
재명 : 나 내일 서울 가. 가서 사올게.
민재 : 맡겨도 되나? 지난번처럼 오락실 가서 잃어버리고 오는 거 아니지?
재명 : 어이.. 혀엉.
민재 : 그리고 컨트롤 시스템이 아직 불안정한 거..
채영 : 내가 리셋팅해볼게.
민재 : 언제까지? 리세팅한다고 있는 파일까지 지워먹으면 안돼.
채영 : ....이민재.
민재 : 왜.
채영 : 너 오늘 굉장히 못생겨 보이는 거 알어?
민재 : 뭐?
채영 : 못 생겼어. 심술단지 할아범같이 보인다구.
S#24. 밤 기숙사 전경
S#25. 민재 정태의 방
민재 들어온다.
정태는 자기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 작업을 하고 있다가 돌아보지도 않고..
정태 : 왔냐.
민재 : 웬일이냐. 니가 책상 앞에 앉아있고.
정태 : 어 박교수님 프로젝트..
민재 잠시 멈추었다가 정태의 뒤로 가서 본다.
정태 : 맵프로그램이야. 지도 주면서 한번 짜보라고 하시더라.
민재, 정태의 책상에 펼쳐져있는 지도책을 들어 본다.
정태 : (계속 마우스를 움직여 작업을 하며) 이 프로그램 교수님이 만드신 건데 아주 재밌어. 굉장해.
민재 : 이거.. 너보고 짜보래?
정태 : 어.
민재 : 다른.. 기초적인 건 다 알아? 프로그램에 대한 전반적인..
정태 : 그거야 주욱 한번 훑어봤지. (모니터 보며) 야아.. 그래 이렇게 되는 거였구나. 그렇지...
민재, 지도를 다시 놔주고.. 자기 책상으로 간다.
가방을 놓고 책을 꺼내다가 다시 정태를 본다.
정태는 아주 기분이 좋은 듯 모니터에 열중해있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며.
S#26. 기숙사 전경. 새벽
새벽... 날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다.
S#27. 민재 정태의 방
민재 책상 앞에서 두꺼운 원서에 노트들을 늘어놓고 퀴즈시험 공부 중이다.
졸고 있어서 고개가 점점 앞으로 꺽이다가 책상에 머리를 박을 뻔하고 다시 세운다.
옆의 물잔을 들어 마시다가 나머지는 머리 위에 쏟아 붓는다.
조금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면.. 정태는 자기 침대에서 아주 잘 자고 있다.
S#28. 강의실
퀴즈시험중이다. 칠판에는 문제가 하나 적혀있고.
이교수는 앞에서 오락가락하며 아이들을 보고 있고.
학생들은 모두 책상에 코를 박듯이 문제 풀이에 여념이 없다.
그 중에 민재. 눈이 침침한 듯 비벼대고 다시 시험지에 열중한다.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하나 건너 옆자리의 채영이 잠깐 그런 민재를 돌아본다.
민재는 뭔가를 쓰다가 다시 벅벅 지우고 있다.
S#29. 이교수 연구실
이교수가 학생들의 시험지를 들고 들어서다가 멈칫하여 본다.
이교수의 책상에 박교수가 앉아서 자료를 보고 있다.
이교수 : (헛기침하는)
박교수 : (고개 들어 보더니 책상 건너편의 의자를 가르키며) 어 선배님 오셨네. 앉으세요.
(하다가 자기 방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얼른 일어나 의자를 내주며) 제가 저리로 앉을게요.
(총총 책상을 돌아가는)
이교수 : (자리로 와 박교수가 보다 놓은 자료를 들어보는)
박교수 : 아 그거 심심해서 보고 있었어요. 근데 말이지요. 거기 중간에 좀 이상한 부분이 있던데...
이교수 : 남의 연구실에 와서 허락도 없이 남의 연구자료를 보는 건
좀 예의에 어긋난 거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박교수 : 아.. 그렇네요. (걱정된다는 얼굴)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요.
이교수 : 무슨 일로 오셨어요?
박교수 : 아 다름이 아니구요. ... 근데 잊어먹기 전에 그거 중간에.. (이교수의 손에 들린 자료를 잡으려는데)
이교수 : (멀리 치워버리는) 다름이 아니고...?
박교수 : 거기 연산부분이 좀 틀린 게 있던데...
이교수 : (흔들림없이 보고있는)
박교수 : 장비를 좀 빌릴려구요. 내일 애들하고 도로주행실험을 해볼까.. 하고 생각하다가
생각해보니까 장비가 없지 뭡니까.
이교수 : 벌써 도로 실험을 해본다구요?
박교수 : 예. 왜요?
이교수 : ..... (상체를 기울여 가까이하더니) 박교수.
박교수 : (자기도 가까이 당겨 앉으며) 네 선배님.
이교수 : 솔직히 말해봐요. 이 프로젝트 언제부터 준비한거죠?
처장님 말씀으로는 이번에 시작하는 거라든데...
박교수 : .... 솔직히 말하면... 3년전부터요.
이교수 : 3년전..
박교수 : 네. 틈틈이 짬짬이.. 혼자서.. 아무도 연구비 대주는 사람도 없이..
박교수를 보던 이교수의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떠오른다.
이교수 : 남들이 박교수를 천재라고 하지요?
박교수 : 그런 사람들이 가끔 있어요.
이교수 : 그럼 뭐라고 대답해요?
박교수 : 냅둬요.
이교수 : 그런 말 듣는 게 좋아서요?
박교수 : 천재라는 말을 들으면 편한 게 있어요.
이교수 : 이를테면?
박교수 : 넥타이를 안 매고 다녀도 남들이 저 놈은 저런 놈인가보다..하고 모른 척 해주거든요.
이교수 흐흐흐 웃기 시작한다. 박교수도 히히히 웃는다.
S#30. 석학의 집
진영 테이블에 커피를 놓아주며.
진영 : GPS요?
테이블에는 남희와 만수, 채영, 지원이 앉아있다.
지원은 노트를 펴고 공부를 하는 중.
남희 : 네. 그런 게 있어요.
진영 : 그게 뭔데요?
만수 : 글로벌 포지셔닝 시스템.
진영 : 그러니까 그게 뭐시냐고요.
미순 : (옆에 와 앉으며) 말하면 니가 알어? 넌 어째 궁금한게 그리 많냐. 그리고 정만수 너.
만수 : 네?
미순 : GPS가 뭐야?
만수 : 에에 그러니까 그것이 글로벌한 포지션을 알아내는 시스템이란 얘기지요.
미순 : 만수야.
만수 : 예?
미순 : 너 나중에 교수는 되지 마라.
만수 : 네.
미순 : 채영아 니가 설명해 봐.
채영 : 남희 언니가 해줘. 현재 여기선 가장 전문가잖아.
남희 : (테이블 가리키며) 이게 자동차에요. (컵 하나 들고) 이건 안테나. 저 전등이 인공위성이라구 쳐요.
(테이블 위에 컵을 탁 엎으며) 차 위에 안테나를 부착해요.
이 안테나로 (전등 가리키며) 저 인공위성에서 신호를 받아요.
무슨 신호를 받느냐. 이 도로에는 차가 막힌다. 그러니 저 도로로 가라. 이런 신호를 받는다 이거에요.
그 신호가 차안 모니터 지도에 나타나는 거지요.
미순 : 그런 장치를 한 차들은 지금도 있잖아.
남희 : 아직 부족한 점들이 많거든요.
미순 : 진영아.
진영 : 네?
미순 : 알았지?
진영 : 네에..
미순 : 그럼 우린 일하러 가자.
미순과 진영 아웃되고...
채영 : 남희언니, 정태는 어때?
남희 : 걔야 머리 좋잖아. 마이클도 그렇지. 박교수님 그렇지.
뭐랄까 난 거기서 이방인같아.
눈이 세개 달린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 들어간 눈이 두 개밖에 없는 장애인같은 기분. 알겠니?
채영 : 만수오빠. 민재는?
만수 : 말 마라. 내가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다. 가슴이 미어진다.
채영 : 왜?
지원 : (책을 보며 불쑥 끼어들어) 민재 걔, 정태가 박교수님 랩에 들어 간 거 알고 나서 이교수님 랩에 자원한거지?
채영 : 시간상 그렇게 되나. 그게 왜?
지원 : 그게 바로 살리에르의 비극이야. 절대로 모차르트를 무시할 수가 없거든.
채영 : 무슨 소리야?
남희 : (손목시계 보더니 벌떡 일어나며)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나 간다.. (나가고)
S#31. 이교수 지능제어랩
책을 한아름 들고 들어오는 민재. 겨우겨우 책을 떨어뜨리지 않고 테이블에 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 프로그램을 짜는 동석에게..
민재 : 다녀왔습니다. 목록대로 다 빌려왔는데요.
동석 : (보지도 않고 하던 일 계속) 문옆에 우편박스 있지?
민재 시선으로, 라면박스 두개에 그득 넘쳐나는 우편물.
동석 : (계속 보지않고 하던일 계속) 사물함에 정돈시키구 와.
민재 : 선배님.
동석 : (하던 일 계속) 나 이런일 할려고 온거 아닌데요, 그런말이라면 필요없어.
민재, 자존심 상해서 동석의 뒤통수를 무표정히 보다가 우편박스 들어올린다.
S#32. 로비 사물함 앞
민재, 박스안의 우편물을 사물함 안에 툭툭 던지듯이 챙겨넣고 있다.
우편박스, 하나는 텅 비어가고, 하나는 아직 그득히 담긴 상태.
저만치 박교수(빈손), 남희(노트북 안은), 정태(장비통과 케이블 안은) 마이클이 걸어나온다.
정태 : 여어 이민재.
민재 : (돌아보고 박교수에게 인사하고)
마이클 : 민재 형 우리 실험하러 간다.
민재 : 실험?
박교수와 남희는 먼저 가고...
정태 : 도로실험.
민재 : 아아..
정태 : 야 같이 가자. 너 아직 이 실험 못해봤지.
마이클 : 같이 가요. 운명하게 재밌을거에요.
민재 : 됐어. 가봐.
정태 : 하긴 차 안에 자리도 없겠다.
마이클 : 맞아요. 교수님 차 아주 작아요.
정태 : 그럼 간다. 수고해.
민재 : 어..
정태와 마이클 가고...
민재 남아서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편지를 몇통 더 집어넣다가..
갑자기 박스를 벽에 밀어붙이더니 뛰어간다.
S#33. 건물 현관 밖
뛰어나온 민재 두리번거리다가 보는 곳.
차 위에 안테나를 세운 박교수의 차가 주차장에서 출발해가고 있다.
멍해서 쳐다보는 민재.
그 민재를 이만치에서 오다가 멈춰서서 보는 이교수. 민재쪽을 보고 그리고 박교수의 차가 가는 모습을 본다.
민재는 힘이 죽 빠져서 다시 터덜터덜 돌아 들어가고 있다.
S#34. 캠퍼스 안
달리는 박교수의 차.
박교수 : (소리) 프로그램 띄워봐.
S#35. 박교수 차 안
박교수 운전을 하고 있고. 조수석의 남희 무릎 위에 놓여진 노트북.
시거잭에 인버터(변압기) 꽂혀있고, 그 선이 노트북으로 연결되어 있다.
장비통(라면박스 1/3 크기 정도임)과 노트북 역시 연결되어었다.
모니터에 프로그램 떠있다.
뒷좌석에는 정태와 마이클이 남희의 노트북을 보느라고 거의 앞으로 기울고 있고.
박교수 : (운전하며) 어때?
남희 : (모니터 보며) GPS, 맴매칭 신호 다 괜찮아요.
박교수 : 좀 더 빨리 달려볼까.
남희 : 교수니임..
마이클 : 좋아요 좋아요.
정태 : 시속 60 이상은 되야 하지 않나요?
박교수 : 그렇지 그렇지..
S#36. 캠퍼스 일각
박교수의 차가 속도를 내며 지나가는데
오토바이 옆에 서있던 아놀드, 그 차를 보더니.
아놀드 : 전산학과 박기훈 교수님. 지금 나한테 선전포고를 한거다 이거지.
S#37. 이교수 방
문을 빠끔이 열고 조심스레 들어서는 채영.
이교수 : 어서 와라.
채영 : 부르셨습니까?
이교수 : 그래. 거기 의자 당겨서 앉아봐.
채영 : (앉고..)
이교수 : 뭐 마실래?
채영 : (다시 발딱 일어나며)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이교수 : 고맙다. 거기 녹차 있을거야.
채영 : 네.
코너의 찻상쪽으로 가서 전기 포트에 물을 넣는데.
이교수 : 너 이민재하고 친하지.
채영 :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교수 : 그럼 민재는 아니란 얘기야?
채영 : 뭐 말로는 자기도 친하다고 그래요. 그런데 친하다고 그러면요.
좋은것만 말고 힘들거나 나쁜 일도 얘기해주고.. 엄살도 피고 서로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요.
저는 민재한테 그러는데 민재는 안그래요.
(하던 일 잊어먹고 다시 의자에 와 앉으며) 걔는요. 지가 무슨 캔디인줄 알아요.
캔디 있잖아요. 외로와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이러는거요.
이교수 :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요즘 민재 상황을 좀 아는 거 같구나.
그래 민재 왜 그런대니? 왜 갑자기 자기 점수를 확인하고 싶어진거야?
채영 : 점수요?
이교수 : 자기가 몇점짜리 인간인지 알고 싶댄다. 그러면서 내 랩에 자원 해 왔어.
채영 : (물끄러미 이교수를 보다가 끄덕이더니) 역시 그랬구나아...
S#38. 캠퍼스 일각
박교수의 차 옆에 남희 마이클 정태가 서서 보고 있고.
아놀드는 박교수에게 잔소리 하는 중.
아놀드 : 학교 내에서의 속도 제한에 대해선 아시지요?
박교수 : 알죠.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실험이었으므로...
아놀드 : 실험.. 좋지요. 수천번의 실험만이 열매를 맺는 것이다. 알지요.
박교수 : 아 하하 그러니까 이번엔 좀.. 봐주시면...
아놀드 : 그러나! 실험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과학의 발전이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목표는 하나. 인간을 위해섭니다.
박교수 : 인간... !
아놀드 : 그런데 이 위험한 실험을 이 아놀드가 지키는 캠퍼스 안에서 해요?
자전거로 오가는 아이들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대체 그 실험은 무엇을 위한 실험입니까?
박교수 : 훌륭합니다.
아놀드 : ...예?
박교수 : 방금 그 말씀. 바로 과학의 기본 철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놀드 : .....(헤벌레해지려고 하며) 그래요?
박교수 : 방금 뭐라고 하셨죠? 다시 한번만...
아놀드 : 아.. (인터뷰 하는 기분으로) 이 아놀드가 지키는 캠퍼스에서..
박교수 : 아니 그 전에..
아놀드 : 아.. 그니까.. 실험의 목적...그 부분을 말씀하시는거지요?
박교수 : 그렇죠. 바로 거기.
아놀드 : (헛기침을 하고..) 실험의 목적은 인간의 발전입니다. 아니 이게 아니었는데..
뒤에서 아이들이 한심해서 보고 있다.
S#39. 동아리방
민재, 컴퓨터의 뚜껑을 닫고 있다. 다 고치고 난 뒤이다.
채영이 들어오다가 그런 민재를 본다.
민재, 다 닫은 뚜껑을 툭툭 쳐보고 돌아서다가 채영을 본다.
민재 : 왔어?
채영 : 왔어.
민재 : 재명인 IC 칩 사왔나?
채영 : 아직 서울에서 안왔어. (자리 잡아 앉으며) 오늘 아침에 갔잖아.
민재 : 아 그게 오늘이었나... 오늘이 며칠이지?
채영 : 너 어제도 안잤니?
민재 : 나 자는데 너 왜 그렇게 관심이 많어? (컴을 부팅시켜보는)
채영 : 너.. 정태를 이기고 싶은거지?
민재 : ....(모니터만 노려보고 있는)
채영 : 너도 천재 소리가 듣고 싶은거야?
민재 : (울컥 하는 듯 쥐고 있던 마우스를 쳐내더니 잠시 있다가) 그런 게 아냐.
채영 : 그런 거처럼 보이는데?
민재 : ...맘대로 생각해.
채영 : 싫어. 내 맘대로 생각하기 싫어. 니가 생각하는 거 그대로 알고 싶어. 그러니까 얘기해줘.
민재 : (말없이 등을 보인 채 앉아있다가...) 너 그거 기억나니? 우리 고등학교 때.
수학시간에 선생님이 방정식 하나 내주시고 풀어볼 사람 아무나 풀어보라고 했던 거.
채영 : 김문철 선생님 말이야?
민재 : 그래. 그 문제 내줬을 때 정태는 결석이었어. 그 녀석 걸핏하면 결석하고 그랬잖아.
난 그 때 그거 풀어볼려구 이틀밤을 샜어. 결국 못했어.
채영 : 기억 나. 정태가 그거 풀었었다.
민재 : 전날 결석했던 녀석이 칠판의 문제를 한번 죽 보더니 그냥 걸어 나가서 푸는거야.
칠판 가득이... 한번도 쉬지 않고...
채영 : 맞어. 그때 칠판이 모잘랐었어. 그래서 보조칠판에까지 풀었잖아.
민재 : 그 때 생각했어. 세상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놈이 있고.
태어날 때부터 답안지를 보고 태어나는 놈이 있다고.
(돌아앉아 채영을 보고 멎적게 웃더니) 그래도 그때 생각엔 그랬어.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면 어쩌면 앞설 수도 있을거라구.
채영 : 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니?
민재 : 그런데 처음부터 불공평한건 끝까지 그런가봐. 이번 랩에서 벌어지는 것도 봐.
정태는 오늘 도로 실험을 하러 갔어. 난 그 시간에 우편물 정리하고 있었다.
머리가 좋은 놈은 운도 좋은거야. 처음부터 운이 좋아서 머리가 좋은거니까.
채영 : ...그래서.. 그래서 이제 노력같은 거 안하겠다는거야? 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내렸어?
민재 : ... (가만히 채영을 보고 있다가 빙긋 웃는다)
채영 : ??
민재 : 십년만.. 앞으로 십년만 더 노력을 해볼까 하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채영 : ...(같이 미소가 떠오르더니) 십년이 지나도 안되면?
민재 : 음.. 다시 십년이라고 생각하지 뭐.
왜냐면.. 왜냐하면..내가 정태보다 잘하는 건 노력밖에 없으니까.. (웃는다)
채영 : 으이그.. (테이블에 있던 종이컵을 민재에게 던지며) 너 머리 나쁜 거 맞어.
(다른 거를 또 하나 던지며) 니가 정태보다 잘하는 게 왜 그거밖에 없냐?
민재 : (던져오는 걸 피하고 받으며) 또 뭐가 있는데?
채영 : 숙제다 숙제. 니 힘으로 풀어봐. 이 둔재야.
S#40. 밤. 카이스트 전경
S#41. 밤. 연구실 복도
어둡고... 대부분 불이 꺼진 시간..
그 중의 박교수 연구실에 창문 혹은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S#42. 박교수 연구실
박교수의 의자에 마이클이 널부러져서 잠이 들어있다.
그리고 이쪽에서는 정태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를 계속 하고 있다.
목이 뻣뻣한지 목운동을 하고... 기지개를 켜고.. 다시 작업을 한다.
S#43. 지능제어 랩
이교수와 다른 연구원들.. 각자 자리에서 연구하고...
민재는 구석 테이블에서 복사된 것들을 분류 정리하고 있다.
이교수는 프린트된 자료를 읽다가 문득 시계를 본다.
이교수 :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자아 오늘은 이만하고 가서 쉬자. 쉬고 내일 계속하자구.
동석 : 요것만 인풋하면 되는데요.
이교수 : 끊어. 끊고 가서 자자고. 갈길이 머니까 체력관리들 해야지. 자아.
연구원들 컴퓨터의 마지막 저장들 하고.. 정리하고.. 분분히 일어서는 와중에
이교수 민재를 돌아본다.
이교수 : 이민재.
민재 : 예.
이교수 : 너 막내니까 남아서 여기 청소 싹 해놓고.
민재 : (씩씩하게) 예 알겠습니다.
이교수 : 그리고.. (들고 있던 자료를 주며) 이거 미국 GPS 학회에 제출했던거거든?
국내 학회서도 제출하래는데 한글번역본이 필요해. 번역 좀 해줄래?
민재 : 예 주세요. (받는다)
이교수 : (민재의 기색을 살피며) 시간 있어?
민재 : 오늘 밤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교수 : 이번 주말까지는 해줘야 하는데.
민재 : 알겠습니다. 안녕히 들어가십시오.
다른 연구원들 이교수와 분분이 인사를 하며 나간다.
이교수도 나가며 민재를 다시 한번 돌아본다.
만수 마지막까지 남아있다가..
만수 : (하품을 하며) 괜찮겠냐?
민재 : 걱정마시고 가서 편히 주무시지요. (책상 위를 정리하기 시작하는)
만수 : 그래 그럼 걱정 안하고 간다.. (문으로 가다가) 야 민재야. 내 비법 가르쳐줄까.
모두 가버리고 막내 혼자 남아서 청소할 때.. 그 처량함을 이길 수 있는 비법!
민재 : 그냥 일절만 해애.
만수 : 그래그래 우선 이 방을 무대라고 생각하는거야.
그리고 저 밖에는 수만의 관객이 날 보고 있다고 상상하는거라구.
민재 : (찡그려 보는)
만수 : (가운데로 나서며 가수의 폼을 잡고) 그리고 나는 스타야 스타.
저기 안보이냐? 오빠부대가 피켓을 흔들고 있잖냐. 정만수 오빠 싸랑해요오오.
그러더니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가며 책상 위의 몇가지를 정리한다.
그리고 춤스텝으로 문까지 가서 문을 열고, 공중으로 키스를 날리더니 우아하게 문을 닫고 퇴장한다.
민재 어이없어 웃다가 정리를 좀 하다가
문득 사방을 둘러보고는 진지한 얼굴로 자기도 춤동작을 몇 개 해본다.
S#44. 아침. 카이스트 전경
S#45. 박교수 연구실
들어서는 박교수와 서교수. 각자 종이커피를 한잔씩 들고 있다.
들어서보면 마이클은 어제밤처럼 여전히 박교수의 의자에 앉아 자고 있고.
정태는 컴퓨터 앞에 엎드려 자고 있다.
서교수 : 얘들 밤 샜나보네.
박교수 : 샌건 아니지. 자고 있잖아 지금. 어이 마이클. 김정태.
정태 부시시 일어난다.
정태 : 어 교수님. 오셨습니까? (비틀비틀 일어나더니) 저 잠시 세수 좀..
비틀비틀 나간다.
마이클은 요지부동.
서교수 : (의자를 끌어 앉으며) 저 녀석이야? 엠아이티에서부터 쫓아왔다는 애가.
박교수 : (대충 책상에 걸터앉으며) 어. 형은 얘 안가르쳤었나? 얘 거기서 유명했었는데.
서교수 : 아니 왜?
박교수 : 해킹대회 우승자였고. 피아노 독주회도 열었었어. 그 학교에서.
서교수 : 피아노?
박교수 : 원래 얘 부모님은 얠 음대에 보낼 생각이었대요.
서교수 : 그래? 그쪽이 더 화려했을텐데 왜 하필 이 우중충한 전산과로 왔대?
박교수 : 그게 이 녀석의 문제야. 뭘 하든 시작은 미쳐서 하는데 금방 재미가 없어지는 거.
그럼 또 딴거 미칠 거를 찾는거지.
서교수 : 어째 니 얘기를 하는 거 같다.
박교수 : 그치? 그렇지?
서교수 : 너 학교 때 하는 거 엄청 많았잖아. 밴드한다고 쫓아다니고 그림 배운다고 쫓아다니고..
박교수 : (생각해보더니) 내가 그림도 했었어?
서교수 : 생각 안나? 나한테 모델하라고 볼때마다 조르던 거.
박교수 : 내가?
서교수 : 너 알고 보면 아주 머리 나뻐. 그렇지?
박교수 : 아니 생각나. 맞어 나 그림 그렸어. 근데 그 때 나 잘그렸어? 형 보긴 어땠어?
S#46. 동아리방
민재, 잠이 부족한 상태로 들어와 대충 가방을 던져놓다가 보면 옆의 소파에서 정태가 잠들어있다.
무시하려다가 가서 툭툭 쳐서 깨운다.
민재 : 야야 일어나. 넌 침대 놔두고 맨날 여기저기서 퍼져 자고 그러냐. 야 김정태.
정태 : (돌아누우며) 냅둬. 좀.
민재 : 너 박교수님 랩에 안가? 벌써 열시야. (흔드는데)
정태 : (짜증내며 벌떡 일어나 앉더니) 냅두라니까. 내가 너같은 줄 알어!
민재 : ...(참으려다가) 나같은 게 뭔데?
정태 : 아 됐어. (다시 누으려는)
민재 : (옷깃을 잡아 일으키며) 나같은 게 뭐냐고.
정태 : (뿌리치는) 그 자식 그거 진짜 성질나게 하네.
민재 : 대답해봐 임마.
그때 채영이 들어오며.
채영 : 좋은 아침... (하다가 안의 분위기에 멈칫하여 눈치보는)
정태 : (잠이 깨고 있다) 뭘 알고 싶은거야?
민재 : 니가 생각하는 나같은 인간이란 게 어떤 거냐고. 너처럼 잠잘 때 못자고. 놀 때 못 놀고..
죽자고 벅벅 기어도 맨날 그 자리에서 빌빌대는 인간이란 뜻이야?
정태 : (민재를 바로 보더니) 넌 너를 그렇게 생각하냐?
민재 : 뭐가 어째?
채영 : (재빨리 그 사이로 끼어들며) 자아 아침 먹읍시다. 두분 다 아침 못 먹었죠?
(주머니를 뒤져 우유를 꺼내며) 여기 우유가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다른 주머니를 뒤지는)
정태 : (일어나며 민재를 향해) 널 보면 말야. 아주 속이 터져. 내 속이 터진다구!
민재 확 달려드는 것을 채영이 간신이 막아내며 아예 민재의 허리를 붙잡아 버린다.
채영 : 정태 너 나가. 나 너까지 못 붙잡어. 너 빨랑 나가!
정태 앞에 걸리는 의자를 발로 차며 나가버린다.
민재 부들부들 떨리는 기분.
채영 : 민재야 숨 셔. 숨 쉬고. 성질 좀 가라앉혀. 엉?
민재, 채영을 거칠지는 않게 뿌리치고 저만치 가서 등을 돌리고 선다.
채영 바닥에 떨어졌던 우유를 주워들고.. 민재의 눈치를 보며...
채영 : 니들 다 잠이 모자라서 그래. 그래서. 성질부터 나는거야.
민재 : ...
채영 : 그리구.. 오다가 이교수님 만났는데.. 너 지금 좀 오라셔.
민재, 묵묵히 서있다가 옷깃을 바로잡더니 나간다.
채영, 우유를 들고는 걱정스레 문을 본다.
S#47. 이교수 방
이교수 : 네에..
들어서는 민재. 꾸벅 인사를 한다.
이교수 : (민재의 기색을 보고는) 어제 잠 못잤니?
민재 : 좀 잤습니다.
이교수 : 그래? 그럼 다행이고... 너 이번 주말에 시간있니?
민재 : 예 별일 없습니다.
이교수 : 그래 그럼 나하고 같이 서울에 좀 가자.
민재 : 서울에요?
이교수 : 응 GPS 세미나가 열려. 거기 같이 가자고.
민재 : (믿기지 않아서) 제가요?
이교수 : 왜. 싫어?
민재 : 하지만..저.. 대학원 선배들도 있는데...
이교수 : 그 세미나에 제출할 내 논문, 지금 니가 번역하고 있잖아. 그러니 니가 갈 자격이 충분하지.
민재 : 아..그게..
이교수 : 그럼 가봐.
민재 : 예.. (어리둥절한 채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이교수 : 너 천재에 두가지 뜻이 있는거 알고 있니?
민재 : (보면)
이교수 : 하나는 하늘 천자를 쓰는 천재고. 또 하나는 얕을 천자를 쓰는 천재인데.
앞에 천재는 하늘이 준 재주를 가진 사람이란 뜻이고. 뒤에 천재는 얕은 재주란 뜻이야. 알고 있었어?
민재 : ..아..
이교수 : 우리가 공부하는 공학. 잘못하면 얕은 재주가 되기 쉬워.
그렇게 안될려면 사람 공부부터 해야된다. 너. 무슨 말인지 알어?
민재 : ...예.
이교수 : 알긴 뭘 알어. 내 말은 랩 청소를 잘 하란 뜻이야. 그게 다 사람 공부니까. (웃어보이는)
민재 : 예에. (자기도 좀 웃는)
S#48. 동아리방
민재 아직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들어서는데..
안에 모여있던 채영 재명 옥주 마이클. 와 왔다 왔어.. 떠들더니
옥주가 달려들어 민재의 잠바를 벗긴다.
마이클과 재명은 민재를 밀어 소파로 간다.
민재 : 왜 이래. 어어어.
옥주 : 오빠 지금부터 우리 하란대로만 해.
민재 : 뭐하는 거야.
마이클과 재명이 민재를 억지로 소파에 눕힌다.
옥주가 들고있던 담요를 민재에게 덮어준다.
옥주 : 오빤 지금부터 무조건 자는 거야 알았지?
마이클 : 알았지요?
민재 : 잠깐만... (일어나 앉으려는데)
재명 : (다시 눕히며) 형이 잠 못자서 괴로우면 우린 세배로 괴로워. 그거 좀 알아줘.
옥주 : 오빤 우리의 대들보고 큰오빠고 우리 동아리의 가장이잖아. 그니까 오빠 기분이 우리 기분이야.
그니까 일단 자고 원래의 오빠로 돌아와달라고.
민재 : 야 채영아. 이거 뭐야. 나 번역해야 될게..
채영 : 시끄러. 야 마이클 불 꺼라. 옥주는 커튼 치고.
마이클 : 예쓰 마담.
옥주 반대로 달려가고 마이클 불을 끈다.
어두워진 실내.
채영 : 너 기숙사 방에 넣어놓으면 또 뭔가 할거니까. 여기서 그냥 자.
너 우리한테 아주 중요해. 그니까 말 들어. 저녁까지 자.
다들 킥킥거리며 나간다.
채영 마지막으로 민재의 가방을 들고 나가며.
채영 : 이 가방은 압수야. 그리고 너 중간에 기어나오면 밖에서 망보다가 패줄거야.
문이 닫기고 조용해진다.
민재 일어나 앉으려다가 그냥 눕는다. 누워서 어두운 천장을 보다가 혼자 좀 웃는다.
그러다가 에이.. 돌아누워 눈을 감는다.
그렇게 조용하고 어두운 실내...
(시간경과)
민재 돌아눕다가 소파에서 떨어질 뻔하고 잠이 깬다. 부시시 일어나 앉는다.
S#49. 동아리방 밖 복도
민재 문을 열고 나와본다.
복도는 어두워져있고. 사방은 조용하다.
S#50. 건물 밖
현관을 나서는 민재. 어느새 어두워져 있는 캠퍼스.
민재 크게 심호흡을 하며 숨쉬기 운동을 해본다.
S#51. 민재 정태의 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민재.
타닥타닥 타자 치는 소리. 정태가 자기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 타자를 치고 있다.
정태 : (타자를 치며) 잘 잤냐?
민재 : 어.. (좀 쑥스러운 기분)
민재 자기 책상으로 가서 위에 있는 가방을 뒤적거리며 뭔가를 찾다가
어! 놀라서 다시 뒤진다.
정태 : 이거 찾는거야?
옆에 있던 논문..이교수가 주었던..을 들어보인다.
민재 한걸음에 다가와 받아들고..그러다 보면 정태의 책상 위에는 사전이 있다.
정태 : 아직 반도 못했어. 아무래도 영어는 내가 좀 딸리잖아. (기지개를 켜는)
민재 : ...왜?
정태 : 뭐가 왜야.
민재 : 뭐야. 화해하자는 거야?
정태 : 나하고 언제 싸운 적 있어?
민재 : (자기 책상으로 가며) 나만 보면 속이 터진다며.
정태 : 터지지. (하품을 하며 침대로 가는) 넌 말야. 일종의 콤플렉스야.
사방천지에 모든 일을 지가 다 할려고 들잖아. 가끔은 좀 이기적이 되보라고. (침대에 엎어진다)
민재 : (그런 정태를 보다가 의자에 앉아..괜히 논문을 뒤적이다가..)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정태 : (잠이 들어가는 목소리) 뭐..
민재 : 고등학교때 김문철 선생님 있었지.
정태 : 수학선생님?
민재 : 그 선생님이 방정식 내줬던 거 기억나? 니가 나가서 다 푼 거.
정태 : (바로 누우며) 으으 그거 생각도 하기 싫다.
민재 : 그 때 너 대단했어.
정태 : 말도 마. 나 그 문제 미리 알았었거든. 다른 반에서 내줬던 거 애들이 떠들어대서.
그래가지고 나 이틀이나 결석하고 그 문제에 매달려 있었잖아.
민재 : (돌아본다)
정태 : 이틀이 뭐야. 일요일까지 합하면 삼박사일동안 그 문제만 붙잡고 있었다.
나도 참 미쳤지. 결석까지 해가면서.. (하품..) 나 먼저 잔다..
민재 어이없어 정태를 보다가 허어. 실소가 나온다.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다.
S#52. 아침 강의실 앞 복도
분주하게 오가는 학생들 사이로 채영 오는데 뒤에서 민재 달려와 붙어 걷는다.
민재 : 암만 생각해도 캐터필러가 좋겠어.
채영 : 우린 친구지?
민재 : 그래 친구지.
채영 : 그러니까 바이휠로 하자.
민재 : 캐. 터. 필. 러.
채영 : (멈추더니 민재를 보고 심각하게) 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구나.
민재 : (역시 심각하게) 그런 거 같다.
채영 : 무사귀환을 축하한다.
민재 : 고맙다. 그래서 캐터필러.
채영 : 바이휠!
S#53. 강의실 건물 전경
민재 : (소리) 너 내 친구 맞어?
채영 : (소리) 친구 안해도 좋아. 바이휠!
민재 : (소리) 캐터필러!!
첫댓글 아.... 나는 몇점짜리일까? 다른 건 몰라도 모짜르트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