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대강좌 9강 - 1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諸佛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
我弟子等 講論三藏 唯願三寶 爲作證明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隅 我今聞見得受持 願解如來眞實意
더위도 이제 한풀 꺾이고 燈火可親之節이 돌아왔습니다. 공부하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옛 사람들이 늘 이야기하지요.
수행자로서 계절을 따질 것은 아니지만, 특히 이 가을에는 결실의 계절이니까 우리 개인적으로도 또 우리 불교 전반적으로도 뭔가 결실을 좀 거둬야 하는 그런 계절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법화경을 공부하면서 이 법화경 안 에도 앞으로 流通. 경전을 유통 시키는 널리 전법하고 포교하는 그런 이야기가 많이 등장을 합니다.
경전에는 서론ㆍ본론ㆍ결론. ←이렇게 셋으로 나누면 그 결론을 뭐라고 표현 하는가 하면 “유통분” 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불교의 결론은 결국은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이 널리.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가 돼서 진리의 가르침을 통해서 지혜롭게 살고 현명하게 살고,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과 이익을 한껏 누리도록 하는 그런 운동을 벌리는 것이 유통이고, 또 불교의 결론이거든요.
그래서 불교행사를 끝낼 때도 사홍서원이 있는데 더욱 더 정진하자.
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불교를 전파하자. 이런 내용으로 우리가 읽을 수가 있습니다. 요즘 불교가 어느 때 없이 위기에 처해있고, 법난의 시대에 처해 있다. 또 어떤 박해의 시대에 처해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저는 정화불사에도 참석을 해서 대법원 난입 사건 때 한 달간 형무소 생활을 했고, 또 그 후에 12, 7법난도 겪었고 그랬습니다만, 그 때는 철이 없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지금처럼 이렇게 절박한 상황으로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요즘에 와서 그때 정화 때보다도 또 12, 7법난 때보다도 더 위기의 시대이고 법난의 시대라고 느껴져요.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물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勢를 결집하고 또 불교인의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참 좋은 일입니다. 저도 그 더운 날 힘들었지만 참석을 해서 역시 통참의 의지를 표현을 했습니다만, 그런 것들도 필요하지만 또 그런다고 다른 종교에서 정부에서 당장에 요구사항을 들어주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현 정부에 무슨 수장으로 있다손 치더라도 그렇게 쉽게 들어지겠나? 이것은 사실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입장이기도 해요.
이럴 때 우리가 취해야 할 가장 바람직한 자세가 무얼까? 이것이 중요하지요. 그것은 결국은 우리들의 보다 더 깊은 정진. 힘찬 노력. ←이것을 가일층 하는 수밖에 달리 다른 길이 없다. 그리고 또 부처님의 이 가르침이 참으로 진리라면, 정말 이것이 바른 이치라면 우리가 널리 전파를 하고 포교를 해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가르침을 전해서 불교인이든 비불교인이든 아니면 타 종교인이든 관계없이 모두가 정말 바른 이치를 이해하고 배우고 이해하고 깨달아 가지고 바른 이치대로 살자고 하는 것이 불교이지, 무슨 불교 어떤 단체에 가입을 해서 우리 단체가 커지고 세가 확대 되자고 하는 그런 뜻은 아니거든요.
부처님은 늘 그랬습니다. 당신의 제자를 많이 두는 것이 소원도 아니고, 또 불교의 어떤 세력이 커지는 것을 소원으로 생각하거나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사실은 聖人으로서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요는 당신이 깨달으신 진리가 정말 참 이치다. 바르고 참된 이치라고 하는 것. 거기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바른 이치를 깨닫고 살 때 사람으로 태어남 보람이 참으로 있고 이익이 있고, 보다 더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전하려고 하는 그 마음이지 결코 다른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런 어려운 시기를 봉착을 해서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세상에 바른 이치가 보다 더 널리 전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정말 바르게 살도록 정직하게 살도록 존재의 이치. 존재가 가지고 있는 그 이치 그대로. 존재의 실상에 맞는 삶을 살도록 해주는 것. 이것입니다. 무슨 불교의 세력을 키우자는 것이 아니고, 정말 바른 이치를 깨우쳐 주자고 하는 것. 그것이거든요.
바른 이치를 알면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없고, 타종교라고 해서 그렇게 박해를 한다든지 비하를 한다든지 또 무시를 한다든지 지역, 지역마다 사찰이 무너져 라고 끊임없이 기도를 한다든지 하는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른 이치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불쌍하게 생각하고 무지몽매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서 어떻게 하더라도 우리는 세상과 사람이 살아가는 어떤 존재의 바른 이치를 깨우쳐 주자고 하는 그런 마음 자세로 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결국은 우리가 열심히 한편 정진하고 열심히 전법하고 포교하는 그것뿐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저런 법난과 박해가 우리에게는 큰 약이 됩니다. 또 우리가 약으로 수용을 해야 됩니다. 결코 독이 아닙니다. 정말 좋은 약입니다. 큰 보약입니다. 우리는 보약으로 받아 들여서 우리정진을 가일층 배가 시키고 전법과 포교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서 부처님의 진리의 가르침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도록 하는 그런 노력에 박차를 가하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할 줄 믿습니다.
이 법화경 안에도 권지품에 가면 뒤에 나옵니다. 거기에 가면 ‘법화경의 가르침이 과연 제대로 먹혀들까? 받아들여질까? 이런 위대한 진리를 오히려 삿되다고 비방하지는 않을까?’해서 그 당시 박해를 받고 비난을 받은 그런 예들이 사실은 많이 있었습니다.
대승불교운동이라는 것이 사실은 쉬운 것이 아니었어요.
저는 “법화경과 유마경이 대승불교 운동의 선언서다.”라고 명명을 하는데요.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해서 운동을 일으켰을 때 참으로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견디고, 정말 바른 진리를 사람들에게 깨우쳐줄 것인가? 그런 문제도 이법화경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때에 우리가 정말 마음으로 깊이깊이 다져야할 것은 끊임없이 정진하고 또 정진한 것을 한 만치, 뭐 얼마만치 해야 나눈다가 아닙니다. 돈을 100원 벌었으면 100원 희사할 수 있어요. 1년 중노릇하고 1년 불교공부 했으면 1년 중노릇하고 1년 불교공부 한 만치, 전파 할 수 있습니다. 꼭 뭐 큰 도를 툭툭 터트려 가지고 그 때야 비로소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만치, 우리 힘 자라가는 만치만이라도 널리 전하려고 하는 그런 마음을 새삼스럽게 굳게 굳게다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우리가 법화경을 공부하면서, 제가 옛날에 천축사 선원에서 지낼 때, 거기는 관례가 정초에 법화경기도를 하더라고요. 그 때 안진오 스님이 번역한 한 가지가 나왔었는데 그 한글 본을 가지고 1주일을 24시간 계속 돌아가면서 독송을 했습니다. 끊어지지 않고 계속했어요. 그래서 스님들은 시간, 시간, 시간 배정에 맞춰서 참여를 하고 그랬어요.
그래 제가 1주일을 참석을 하면서 독송을 했는데요. 그 전에 강원을 나와 가지고 선방에 올라가기 적전에 시간이 좀 있어서 법화경을 혼자 보긴 봤어요. 그 다음에 두 번째 본 것이 천축사 선방에서 번역본을 가지고 읽었는데, 그 때 읽으면서 늘 궁금해 했던 것을 누가 염화실 카페에서 문자로 물어왔어요. 그것이 똑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문제였습니다. 뭔 가하니 법화경 안에서 계속 법화경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 이 법화경은 무엇이며 그 안에서 말하는 법화경은 무엇인가? 이것이 궁금하다고 누가 쪽지로 물어왔더라고요.
제가 천축사에서 1주일간 법화경을 독송을 하면서 늘 궁금해 했던 점이 그것입니다. 전번에 제가 한 번 이야기한 적은 있습니다. 이 시간에 이야기한 적은 있는데 왜 법화경 안에서 법화경을 설했다. 법화경을 설한다 어쩐다 법화경이야기가 나오나? 그러면 거기에 나오는 법화경은 무엇이며 우리가 지금 들고 있는 이 법화경은 무엇인가? 이것이 사실은 중요한 문제지요.
우리가 반야를 이야기할 때도 “文字般若.” “實相般若.” ←이렇게 합니다.
사실은 경전은 문자반야입니다. 문자로 된 지혜의 가르침입니다.
이것을 무시할 수 없지요. 그런데 진짜 반야. 진짜 지혜는 문자가 아니잖아요. 종이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 정말 실상반야. 반야의 실체에 대해서 우리가 부정을 못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있거든요.
境上施爲渾大有(경상시위혼대유)라고 해서 이 지구상에 가득히 있는 겁니다. 내 의식이 미치는데 까지 꽉 차 있는 것이 실상반야입니다. 마찬가지로 법화경이라고 하는 것도 물론 이것은 문자법화경입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이 교재는 문자법화경이지요. 그런데 거기서 법화경 안에서 “법화경” “법화경” 법화경을 설했다.
법화경을 설해서 어떻게 했다. 사람을 제도했다. 법화경이 경중의 왕이다. 하는 그런 가르침은 결국은 실상법화경. 그 말입니다.
“實相妙法蓮華經” 우리가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항상 문자로 된 경전을 가지고 앞에 놓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이면에 實相妙法. 정말 모든 존재의 진실한 모습을 늘 이야기하는 겁니다. 진실한 모습을 늘 이야기하는 거라고요. 그 진실한 모습은 모든 존재의 진실한 모습. 實相妙法.
그것은 이 문자로 표현될 것도 아니고, 문자도 아니고 종이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무슨 산천초목도 아니거든요. 아니면서 바로 그 자리에 함께 존재하는 것. 그것이 “실상묘법”이거든요. 그것이 실상법화경입니다.
문자법화경과 실상법화경이 나눠지면서 둘이면서 또한 둘이 아니고, 둘이 아니면서 또한 둘이고, ←이런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읽으면서 저도 상당히 궁금해 했어요. 법화경 안에서 법화경을 설했다고 하니,
‘그 법화경은 따로 있는가?’ 늘 그렇게 생각 했어요. 따로 있지요. 그것이 좀 허물을 띤 말이지만 따로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실상이니까요.
진리의 실체를 두고 하는 소리이기 때문에 그래서 거기서 법화경을 말한다. 그럼 이제 그 實相妙法을, 문자가 아닌 실상묘법을 우리가 간단하게 표현하면 법화경에서는 최소한도 “사람이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이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實相妙法입니다. 이것이 진짜 실상법화경입니다. 진짜 법화경이라고요. 그러면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그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 “문자법화경.” 경전으로 된, 책으로 된 이법화경입니다.
그러면 이해하겠지요? “사람이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이 사실은 물론 문자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말이고 문자일 뿐이지 그 사실은 따로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관계로 우리가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거기 질문 쪽지에도 길게는 설명을 못하고 간단하게는 했습니다만, 이해를 했는지 아니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참을 忍자에 대해서 제가 말씀을 드렸는지 모르겠는데요.
우리 “無生法忍” 그렇게 해요. 불교의 진리는 생사해탈이 최종목표니까 그것을 말할 때 “생사가 없는 진리” 참을 忍자를 써놓고 진리라고 표현한다고요. 참을 忍자를... 그래 왜 참을 忍자를 써놓고 진리라고 표현하는가?
제가 또 늘 그것이 궁금했었어요. 유마경을 보다가 유마경 疏에 그런 설명이 있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왜? “진리를 참을 忍자로 표현”했나?
진리라고 하는 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숨어 있다 이겁니다. 참는다고 하는 것은 뭐냐?
누가 병고를 앓고 있다. 병고를 앓고 있지만 참고 있으니까, 표현하지 않으니까 그 아픈 것이 나타나지 않지요. 그러나 그 아픈 사람에게는 너무나 확실한 존재입니다. 아픔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확실한 겁니다.
그렇게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보는 것이지요.
그와 같이 생사가 없다고 하는 이치는 우리가 생사가 있는 눈으로 보니까 모든 것이 생사가 있지요. 부처님도 생사가 있고 조사 스님도 생사가 있지요. 그런데 생사가 없는 눈으로 보면 정말 생사가 없거든요.
그것이 생사해탈의 경지인데요. 그것 어떻게 표현이 안 되지 않습니까?
표현이 안 됩니다. 석가모니도 죽었고 달마도 죽었고 용수 마명도 다 죽었고... 그것 밖에 우리 눈에 안 들어온다고요. 그러니까 아픈 사람이 아픈 것을 참고 있으면 아픈 것이 눈에 안 들어오는 것과 똑 같은 겁니다.
생사가 있는 눈으로 보니까 전부 생사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요.
사실은 생사가 없는 이치가 분명히 있는데 그것이 숨어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표현한다고 참을 忍자를 쓴답니다. 경전에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저는 왜? 참을 忍자를 썼는가? 그것도 일종의 비유인데 그 당시 사람으로서는 그냥 그렇게 하면 다 그 속뜻이 다 이해가 됐든가 봅니다. 그래서 그렇습니다. 그래 진짜 법화경이라는 것도, 이 문자법화경 말고 진짜 법화경이라는 것도 그렇게 참을 忍자와 같이 다 너무나 확실하고 분명하고 크게 존재하면서도 그렇게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고 하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진짜라고 하는 것. 그것 때문에 문자도 이렇게 방편으로 동원이 돼서, 또 언어도 방편으로 이렇게 동원이 돼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 것. ←이렇게 우리가 이해를 하면 크게 틀리지 않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妙法蓮華經 第四卷 授學無學人記品 第九
오늘은 수학무학인기품 9번째 품입니다.
법화경은 다른 이름으로 “수기경”이라고 제가 말을 했는데요.
수기에 대한 것이 많지요. 첫째 “아난 수기장”입니다. 아난존자가 수기를 받는 대목이지요. 저 앞에 10대 제자 반열에 오른 사람으로서 수보리ㆍ사리불ㆍ목건련 4대 성문에 들 만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이 뒤에 나와 있습니다. 學과 無學. 배우는 도중에 있는 사람. 또 다 배운 사람. 그런 사람들이 수기를 받는다 그래요. 첫째는 “아난 수기장”입니다.
1. 爾時 阿難 羅睺羅-而作是念 我等 每自思惟 說得授記 不亦快乎
이시 아난 라후라 이작시념 아등 매자사유 설득수기 불역쾌호
그때에 아난과 라후라가 이러한 생각을 하대 ‘우리들이 매양 스스로 思惟하되, 가령 수기를 얻게 되면 또한 유쾌하지 않겠는가? 우리하고 비슷한 다 사람들이 수기를 받았는데, 호명해서 수기를 다 받았는데 우리만 빠졌네. 아, 내가 누군가? 부처님시자 제일 오래 했고, 또 부처님경전을 내가 제일 잘 외우고, 아, 라후라가 또 누구야? 보통 인물이 아닌데 이 두 사람, 사실 상당히 중요한 인물인데 끝까지 이름을 안 부르네, 시간은 거의 끝나는데... 끝나기 전에 우리 이름을 거명을 해서 수기를 주면 얼마나 좋겠나?’ 아주 조마조마한 그런 순간이었던가 봐요. 그러니까 不亦快乎아? 참으로 유쾌하지 않겠는가? 두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2. 卽從座起 到於佛前 頭面禮足 俱白佛言
즉종좌기 도어불전 두면예족 구백불언
못 참고 그만 일어나서 부처님 앞에 이르러서 頭面禮足하고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3. 世尊 我等 於此 亦應有分 唯有如來 我等所歸 又我等 爲 一切世間
세존 아등 어차 역응유분 유유여래 아등소귀 우아등 위 일체세간
天人阿修羅 所見知識 阿難 常爲侍者 護持法藏 羅睺羅 是佛之子
천인아수라 소견지식 아난 상위시자 호지법장 라후라 시불지자
若佛 見授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者 我願 旣滿 衆望 亦足
약불 견수아뇩다라삼먁삼보리기자 아원 기만 중망 역족
세존이시여, 우리들이 여기에서 亦應有分이라호니, 또한 수기를 받을만한 分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이지요. 그러니까 오직 如來께서는 우리들이 귀의할 바고, 또 우리들은 一切世間 天人阿修羅의 所見知識이다.
다 안다 이 말입니다. 걸핏하면 라후라 찾고, 걸핏하면 아난존자 찾고, 그래서 이 대중들에게 다 얼굴이 팔려있고 알려진 그런 사람들인데, 봅시다.
阿難은 常爲侍者가 되어서, 항상 시자가 되어서 護持法藏. 부처님 법장을 호지하고, 羅睺羅는 부처님의 아들이다. 숨겨놓은 아들도 아니고 다 소문난 아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만약 부처님이 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 無上正覺에 대한 見授. 수기 주는 것을 입게 된다면 (見=입는다.) 우리들의 願이 이미 만족하고 대중들의 바람도 또한 만족할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 아난존자. 라후라 떼거리가 많아요. 두 사람이 일어나니까
‘옳다 됐다 하고 우리 그냥 한번 힘 싣자.’ 하고 2000명이 자리로부터 일어납니다.
4. 爾時 學無學 聲聞弟子 二千人 皆從座起 偏袒右肩 到於佛前 一心合掌
이시 학무학 성문제자 이천인 개종좌기 편단우견 도어불전 일심합장
瞻仰世尊 如 阿難 羅睺羅 所願 住立一面
첨앙세존 여 아난 라후라 소원 주립일면
그 때에 學無學 聲聞弟子 二千명이 곧 자리로 쫓아 일어나서 偏袒右肩하고 부처님 앞에 이르러서 一心合掌하고, 瞻仰世尊하되 세존을 우러러보면서 阿難과 羅睺羅의 所願이다. 아난과 라후라의 소원이다. 아난과 라후라는 대장으로 모시는 우리 형님인데 이 우리 형님에게 수기 안 주는 부처님 크게 좋은 꼴 못 볼꺼요 하는 그런 식으로 2000 명이나 일어나서 데모를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약간 현대적으로 제가 强譯을 한 것이지요. 소원이라 하고 住立一面이라. 한 쪽에 떡 2000명이나 섰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난 라후라가 턱 앞에 서 있고... 그랬는데
5. 爾時 佛告阿難 汝於來世 當得作佛 號 山海慧 自在通王如來 應供
이시 불고아난 여어래세 당득작불 호 산해혜 자재통왕여래 응공
正遍知 明行足 善逝 世間解 無上士 調御丈夫 天人師 佛世尊 當供養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 당공양
六十二億諸佛 護持法藏然後 得 阿耨多羅三藐三菩提
육십이억제불 호지법장연후 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그 때에 부처님이 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阿難에게 告하사대, 그대는 來世에 當得作佛호대 號는 山海慧 自在通王如來ㆍ應供ㆍ正遍知ㆍ明行足ㆍ善逝ㆍ世間解ㆍ無上士ㆍ調御丈夫ㆍ天人師ㆍ佛世尊이라. 山海慧 自在通王. 우리 108참회할 때 나오는 이름이지요?
마땅히 62억 모든 부처님을 供養해서 法藏을 護持한 연후에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고, 그러니까 法藏을 護持한다라고 하는 이 말을 특별히 놓은 것은 아난존자는 부처님 설법을 다 기억하고 있다가 결집할 때 그대로 송출을 다 해서, 녹음기처럼 송출을 해가지고 그것을 뒷사람들에게 전부 전해주는 불교의 최고 공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난존자가 아니 했어도 누가 해도 했겠지만, 그러나 아난존자가 했기 때문에 그 덕으로 이 법화경도 우리에게 전해졌고, 만 중생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해졌기 때문에 부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고, 이렇게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法藏護持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6. 敎化二十千萬億 恒河沙 諸菩薩等 令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교화이십천만억 항하사 제보살등 영성아뇩다라삼먁삼보리
二十千萬億 恒河沙 모든 보살들을 교화를 해가지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하리라.
7. 國名 常立勝幡 其土淸淨 瑠璃爲地 劫名 妙音徧滿
국명 상립승번 기토청정 유리위지 겁명 묘음변만
나라 이름은 常立勝幡. 항상 승리의 깃발이 꽂혀있는. 나라 이름이 아주 근사 하지요? 항상 승리의 깃발이 꽂혀있는 常勝幡이고, 其土가 淸淨해서 瑠璃로 땅이 돼서 겁의 이름은 妙音徧滿이다.
8. 其佛壽命 無量千萬億 阿僧祗劫 若人 於千萬億 無量阿僧祗劫中
기불수명 무량천만억 아승지겁 약인 어천만억 무량아승지겁중
算數校計 不能得知 正法住世 倍於壽命 像法住世 復倍正法
산수교계 불능득지 정법주세 배어수명 상법주세 부배정법
그 부처님의 수명은 無量千萬億 阿僧祗劫이다. 만약 사람이 千萬億 無量阿僧祗劫 중에 算數校計로 산수로 계산한다 하더라도 不能得知라.
다 알 수가 없다 그랬어요. 正法의 住世는 수명보다 倍가 되고, 像法이 세상에 머무는 것은 정법이 세상에 머무는 것의 倍나 오래 갈 것이다.
9. 阿難 是 山海慧 自在通王佛 爲十方 無量千萬億 恒河沙等諸佛如來
아난 시 산해혜 자재통왕불 위시방 무량천만억 항하사등제불여래
所共讚歎 稱其功德(소공찬탄 칭기공덕)
아난아, 이 山海慧 自在通王佛이 十方 無量千萬億 恒河沙 모든 부처님여래의 함께 讚歎하는 바며, 그 功德을 칭찬하는 바가 된다.
이렇게 해서 아난존자에게 수기를 줬습니다. 주는 장면이 좀 특이 하지요.
저 앞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는데 부처님이 수기를 주는 형식이고, 여기는 2000명을 데리고 나가서 앞에 서서 “줄 거요? 안 줄 거요?” ←이런 식으로 약간 그런 모습을 보여서 받는... 이러나저러나 수기를 받았으니까 잘 된 것이지요.
10. 爾時世尊 欲 重宣此義 而說偈言(이시세존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10 번은 重頌으로서 거듭하는 것이니까 이것은 생략을 하겠습니다.
첫댓글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_()()()_
고맙습니다. _()()()_
바쁘신 중에도 녹취 올려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實相妙法蓮華經... . _()()()_
대원성님! 고맙습니다..._()()()_
고맙 습니다._()()()_
實相妙法蓮華經 ..._()()()_
聞ㆍ思ㆍ修.....대원성 님! 수고하셨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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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유통!> 불교의 결론은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을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진리의 가르침을 통해서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며,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과 이익을 한껏 누리도록 ---/<존재의 실상에 맞는 삶!> 바른 이치를 이해하고 배우고 깨달아서 바른 이치대로 살자고 하는 것이 불교!
문자법화경과 <실상(實相)법화경--사람이 부처님이다--이 사실이 實相妙法--無生法忍 --생사가 없는 진리!>/하나는 1등하고 하나는 꼴찌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聞ㆍ思ㆍ修 3解를 필수적으로---
我等得善利 稱慶大歡喜 歸命無上尊 南無 實相妙法蓮華經!!!/오늘도 無上甚深微妙法門 공부 잘하고 갑니다. 항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妙法蓮華經 敎菩薩法 佛所護念>法喜合掌 一心觀佛_()()()_
亦識本願 진정 願하는 것이 무엇일까. 수리수리마하수리수수리사바하 수리사하수리수수리사바하 수리수리마하수리수수리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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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생사가 없는 이치가 분명히 있는데 그것이 숨어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표현한다고 참을 忍자를 쓴답니다....나무묘법연화경
머나먼 타국에서 큰스님법문 [법화경] 복습할수 있게해주신 법우님 정말감사드립니다.. 꼭 성불하세요...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
감사합니다.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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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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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ㆍ思ㆍ修. 듣고는 思惟하고, 사유하고는 닦아라. 감사합니다..._()()()_
문사수....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행동하라.. 행동.. 오직 행할뿐.. _()()()_
부처님법 많이듣고 그 뜻을 바르게 생각하고 여법하게 수행하여 속히 석가모니부처님과 같아지도록 해야겠습니다.나무석가모니불_()()()_
聞ㆍ思ㆍ修. 듣고는 思惟하고, 사유하고는 닦아라.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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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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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나무묘법연화경-
감사합니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바른 이치(眞理)를 전하고,배우고 이해하고 깨닫게 하여, 바른 이치대로 살게 하는 것이 불교,존재가 갖고 있는 그 실상의 생활을 살게 해 주자는 것...
지금 같은 위기, 법난시기에 바른이치를 모르면 타종교를 박해.... 법난과 박해가 큰 보약... 그 보약을 잘 받아들여서 열심히 정진 .전법, 포교에 노력을 박차는 기회를 삼아야.......
실상 법화경은 " 사람이 부처님 "..... 忍? 생사가 없는 眞理. (眞理? 유마경 소에 진리는 엄연히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숨어 있다. 生死가 없다고 하는 이치는 우리는 있는 눈으로 보니까 생사가 있고, 생사가 없는 눈으로 보면 정말 생사가 없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문자 반야와 실상 반야
문자 법화경과 실상 법화경
아난,라후라;2000명과 함께 수기
아뇩다라삼막삼보리(최상의 깨달음)을 得,成,立 세가지 표현이 있네요.
聞-思-修해야 법문이 내 것이 된다
남에게 욕을 들으면 저절로 자꾸 생각이 드는 데 좋은 법문을 듣고는 다시 생각안하면 내 것이 안된다
나무 묘법연화경
감사합니다. _()()()_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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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 묘법연화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