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도기행≫에는 약 60개의 성관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창원황씨, 안동권씨, 연일정씨 등이 조선후기 강화 지역을 대표하는 사족이라 할 수 있다.
창원황씨는 공조판서를 지내고 외적 격퇴에 공이 있는 황형(黃衡)이 월곶리에 정착하면서 그의 후손들이 강화에 살았다. 경기감사 황기, 전라감사 황치경, 호조판서 황신 등 많은 관리가 나오면서 강화의 대단히 유력한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안동 권씨는 영의정을 지낸 권철(權轍)이 아내의 고향인 강화를 자주 왕래하다가 선원면 연리에 정착하였다. 그의 아들이자 임진왜란 때의 도원수 권율도 만년에 강화에 들어와 살았다. 우의정을 지낸 정유성(鄭維城)은 선원면 독정촌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손자 정제두는 대학자로 이름이 높았다.
정유성은 영의정 권철의 딸의 자손이고, 전라감사 황치경의 딸의 아들이었으니, 연일정씨였던 그는 안동 권씨, 창원 황씨와 서로 인척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지역 내의 유력 가문과 통혼 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심도기행≫의 저자 고재형은 정유성, 정제두 선생의 묘가 있는 하일리를 ‘강화<江州> 제1구’라고 불렀다.
하현의 서남쪽은 골짝마다 그윽한데(霞峴西南谷谷幽),
재상이 예로부터 이 산중에 머물고 있네(山中宰相古今留).
두 정승의 집터와 세 정승의 무덤 있어(二公宅址三公墓),
이곳을 강화의 ‘제1구(第一區)’이라고 부른다네(云是江州第一區).
하일리를 강화의 제1구라고 부르는 이유는 두 정승의 집과 세 정승의 무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두 정승은 정제두와 최규서를 말하며, 세 무덤은 정유성 ? 정제두 ? 권개의 무덤이라고 주석에서 밝히고 있다.
아울러 하곡 정제두 선생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즉, “하곡(霞谷) 정제두(鄭齊斗)는 도촌 정유성의 손자이다. 집터가 이곳에 있는데 여러 번 조정에서 불렀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고향에 은거하면서 도학을 온전히 성취하였으며 오조에 걸쳐 국태로(國太老)의 학자, 하곡(霞谷) 선생이라고 불리었다.”고 했다.
이어서 정제두가 “거처하는 초가집은 비바람을 막지 못하여서 유수 민진원(閔鎭遠)이 평소에 선생을 공경하였기 때문에 집을 지어주었다.”고 하였으며, 고재형이 강화도를 기행할 당시에는 “그의 후손인 참판(參判)을 지낸 정원하(鄭元夏)가 와서 살고 있다.”고 하였다. 정원하는 이건창, 홍승헌, 이건승 등과 교유하였으며, 만주 회인현으로 들어가 독립운동을 하였다.
첫댓글 우리의 역사 올려주신 거사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셔요
거사님께서 좋은 글을 올려 주셔서 역사공부를 많이했습니다 참으로 거사님의 역사 실력은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