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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26일 화요일 흐리고 바람 불다
▲ 익숙한 얼굴을 만나면 잠시 멈춰 서서 그들을 기다려 함께 걷기도 한다 ⓒ2005 김남희
어이없는 마음을 가다듬고, 짐을 꾸려 숙소를 나선다. 산 위의 작은 마을들 사이를 통과하는 오르막. 해발고도 1270m의 알토 데 산 로께(Alto de San Roque)에 오르니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나가려고 고군분투하는 성 야곱의 조각이 서 있다. 8시. 알토 데 포이오의 바에서 아침을 먹으며 잠시 휴식. 가는 길에 야생 산딸기를 파는 집이 있어서 한 봉지 사 먹으며 또 쉬었다.
흐리고 바람이 부는 데다 길은 계속 초롱의 구릉지대와 숲을 통과해 걷기에 너무나 좋은 날. 초록이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발은 여전히 무겁다. 오늘 하루 사이에 물집이 5개나 새로 잡혔다. 잠시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고, 발가락들을 탐색해본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발들아, 내 발들아. 이제 제발 진정해다오. 너희들이 아무리 반란을 해도, 난 이 길을 가야만 한단다.
신부복을 입은 순례자가 내 앞을 스쳐간다. 그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 지팡이를 짚고 걸망을 메고 이 길을 걷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마을의 작은 성당마다 들러서 미사도 참석하고, 유럽의 젊은이들과 불교에 대해 이야기도 하면서, 그렇게 걷는다면, 이 길이 얼마나 풍성해질까. 난 그 멋진 스님들을 모시고 가이드 할 준비도 되어있는데!
정오가 안 돼 트리아카스텔라 도착. 다음 알베르게까지는 14km를 더 가야하기에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이곳 알베르게는 인터넷도 없고, 부엌도 없고,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는다. 넘치도록 있는 거라고는 오직 파리들뿐. 동네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얼굴 가득 덤벼드는 파리떼들.
▲ 초가로 이엉을 얹은 이 멋진 건물은 소시지나 햄을 말리는 훈제 창고이다 ⓒ2005 김남희
2005년 7월 27일 수요일 열 두 번 비 내렸다 그친 날
오늘 쓴 돈 : 엽서 2 + 코코아 0.9 + 빵 0.8 + 숙소 3 + 저녁 4.7 = 11.4유로
오늘 걸은 길 :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 - 페레이로스(Ferreiros) 32km
비가 내린다. 비 오면, 마음이 먼저 젖는다. 차갑고 습한 물방울들에 조금씩 몸이 젖어가고, 안경에 어린 물방울로 인해 눈앞이 흐릿해지고, 비릿한 물내음이 코끝에 감겨올 무렵이면, 내가 닦아놓은 마음의 길들은 이미 아득해지고 멀어진다. 비 오면 배낭을 내려놓고 싶어진다. 가던 길 멈추고 싶어진다. 정착하고 싶어진다.
배낭 덮고 잠바 꺼내 입고 걷는 길. 길에는 나오코와 나 둘 뿐. 아직 아침이 오지 않은 새벽길은 어둡다. 핀틴(Pintin)에 도착해 아침을 먹었다. 오늘 길 위에는 계속 빗방울이 듣다가 멈추고 다시 듣기를 계속한다. 12시가 못 돼 바르바델로(Barbadelo) 도착. 이곳 알베르게가 1시에 문을 연다기에 더 가기로 결정하고 9km를 더 걸으니 페레이로스(Ferreiros). 침대가 22개뿐인 이곳 알베르게에 15, 16번째로 도착했다. 찬물에 몸을 씻고, 빨래하고 나니 3시. 다시 또 비가 내리고 있다. 이제 산티아고까지는 99km를 남겨놓았다.
2005년 7월 28일 목요일 흐린 후 개다
▲ 성야곱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 스페인 순례자들. 해발고도 1270m의 알토 데 산 로께 ⓒ2005 김남희
발가락의 물집을 터트려가며 걷듯 삶의 물집들도 하나하나 터트리고, 땀에 전 옷을 빨아 말리듯 내 삶의 젖은 곳들도 드러내어 말리고, 밤마다 새로운 곳에 몸을 누이듯 내 마음도 어느 한 곳에 두지 말고 늘 어딘가로 가볍게 옮겨 다녔으면….
휴식 없이 4시간을 걸어 9시 20분에 곤잘(Gonzal) 도착. 바에서 오믈렛 샌드위치와 카모마일 차로 아침을 먹었다.
흐린 하늘 사이로 잠시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나왔다. 그 빛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옥수수밭이, 밀밭이, 소나무 숲길이 너무 어여뻐 열심히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야 알았다. 메모리칩 없이 찍었다는 걸. 아쉬워하는 나를 보며 나오코가 말한다. "괜찮아. 나중에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야."
한 번 가버린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니, 한 번 가버린 것은 이미 사라진 것이다. 그뿐,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사랑도, 청춘도, 맹세도, 가버리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지금 내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내 곁을 스치는 사람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 생생한 감정도 지나가면 그 뿐,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사라진 것들이 남기고 간 흔적과 상처, 그것들이 또 내 삶을 이끌어오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 온 거겠지. 그러니 나는 사라진 것들의 흔적으로 퇴적된 사람.
오늘도 함께 걷고 있는 쥬느비에브와 로만을 만났다. 벌써 한 달째 함께 걷고 있는 두 사람. 두 사람과 헤어지기가 무섭게 나오코가 묻는다. "쥬느비에브와 로만 무슨 사이야? 쥬느비에브는 캐나다에 애인이 있잖아." 잠시 대답을 망설인다. 세상에 숨길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술에 취한 것과 사랑에 빠진 거라고 했던가. 쥬느비에브는 몰라도, 그녀를 향한 로만의 사랑은 이미 눈빛에 다 담겨있다.
"나도 모르겠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하기 어려워. 살다보면 애인이나 남편이 있어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잖아. 어떤 사람들은 사랑 없이 부부라는 이름을 평생 유지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새롭게 찾아온 사랑을 믿고 오래된 약속을 깨기도 하잖아. 어느 쪽이 옳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의 사랑에 대해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전에 난 사랑 없이 부부라는 틀을 유지해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비겁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남자와 여자의 사이에 뜨거움이 사라진 공간을 책임감과 약속, 의리와 믿음 같은 것들이 채워낸다면, 그게 더 용기 있는 삶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일 수도 있음을 믿는다. 쥬느비에브가 어떤 삶을 선택하든 그녀가 선택한 삶에는 책임이 따르고, 희열뿐 아니라 고통도 따르리라는 것. 그것만이 내가 경험으로 알고 있어, 말할 수 있는 전부이다.
오늘따라 길 위에 가족 단위의 순례자들이 많이 보인다. 어린 아이가 있는 가족들을 볼 때마다, 거리 위에 꽃잎처럼 날리는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에게도 아이가 있었으면 하는 헛된 욕망이 솟는다.
▲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를 가리키는 표지석 ⓒ2005 김남희
나에게 아이가 있다면…
잠든 아이를 안고 바다로 가고 싶다.
머루알 같은 눈을 또르르 굴리며 아이가 깨어날 때
그 눈 가득 푸른 바다가 걸어와 잠겼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이렇게 넓고 깊은 품이 있어 거기 기대어
길 없는 길의 끝까지 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 아이가 있다면…
아이와 함께 사박사박 걸어 강으로 가고 싶다.
강물에 손을 담그고, 여린 발목도 담그게 해서
우리는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것을,
사랑도, 삶도 흐르고 흘러가버리는 것이기에
매 순간을 마지막 날처럼 살아가야 하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 아이가 있다면…
작은 새의 목젖처럼 부드러운 아이의 손목을 잡고 산으로 가고 싶다.
가슴을 팔딱거리며 높은 고개도 넘게 하고
구를 듯 넘어질 듯 고갯길도 내려오게 해
삶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는 것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나에게 아이가 있다면…
밤처럼 검은 빛깔의 코트를 입혀 밤의 거리로 나가고 싶다.
깊은 밤 푸른 적막의 한 가운데에 깨어있어,
밤이 깊어야 쏟아져 나오는 별을 바라보며
어떤 사랑은 보이지 않아도 평생을 함께 하는 것임을,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이 와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나에게 아이가 있다면…
내 어깨 위에 목마를 태워 초원으로 가고 싶다.
푸른 초원 위에 아이와 함께 양 팔을 벌리고 누워
말없이 품안으로 안겨오는 하늘을 담고,
여린 풀들을 흔들고 가는 바람소리를 들으리라.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 나무와 풀들을 바라보리라.
그리하여 삶이란 결국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가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 울창한 숲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 ⓒ2005 김남희
1시 반.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 도착. 마을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는 이미 가득 찼다. 사설 알베르게로 이동해 짐을 푼다. 빨래를 널고 있자니 마음이 흔들린다. 바람에 날리는 빨래를 보면 나도 빨랫줄에 거꾸로 매달려 저렇게 헹구어지고 싶다는 욕망이 든다. 아기옷부터 고무줄이 늘어난 어른의 속옷까지, 온 가족의 빨래가 함께 널려 있는 걸 보면 나도 저렇게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가족이 있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밤이 내리고 있다. 내 고단한 어깨 위로.
2005년 7월 29일 금요일 비 오고 해 나고 다시 비 오고 또 해 나고...
오늘 쓴 돈 : 아침 3 + 차 0.8 + 점심용 빵, 음료 1.5 + 1.96 + 숙박 3 =10.3유로
오늘 걸은 길 : 팔라스 델 레이(Palas del Rei) - 리바디소 도 바이소(Ribadiso do Baixo) 26.5km
비에 젖은 숲에서는 살아있는 것들의 냄새가 난다. 살아서 싱싱한 것들의 풋내. 비릿하고 촉촉한 냄새. 젖은 숲에 들어서면 나무들은 아직 제 모습을 감춘 그림자로 서 있고, 그 나뭇가지 위 어디에선가 숲의 정령들이 어깨를 옹송거리고 모여앉아 젖은 날개의 물방울을 털어내고 있을 것만 같다. 날개를 치며 날아오르는 정령의 뒷모습이라도 눈에 밟힐까 싶어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젖은 숲에서는.
새벽 5시가 좀 넘어 길을 나서면 거리는 늘 어둡다. 이렇게 어두운 거리를 나선 건, 서울에 살 때 바위를 타러가던 주말뿐이었다. 그때 잠든 내 방을 흔들던 전화기 속의 짱짱한 선배 목소리. "아직 자고 있는 건 아니지? 얼른 나와." 늘 겁먹은 채로 머뭇거리고 주춤거리던, 스스로를 의심하며 도망갈 궁리만 하던 나를 격려하고, 질책하며, 믿어주며, 이끌던 선배. 내게 바위 타는 즐거움을 가르쳐준 형은 이제 없다.
그토록 사랑하던 산에 흰 가루로 묻힌 형이 못다 오른 산을 지금 다른 형들이 오르고 있다. '같은 곳에서 두 번 사고 안 난다'는 말만을 의지한 채 초조히 남편을 기다리고 있을 연미언니를 생각해본다. 나는 그렇게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어디선가 그렇게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내 발걸음은 무거울까, 가벼울까. 지금 키르키즈스탄의 큰 바위벽을 오르고 있을 선배들을 위해 잠시 기도를 올리고 다시 걷는다. 아직도 숲은 어둡고 깊다.
다시 비가 내린다. 멜리데(Melide)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오코와 합류해 뜨거운 차를 마시며 잠시 몸을 말린다. 메세타에서는 태양이 내 의지마저 활활 불태워 재로 만들더니 갈리시아에서는 비가 이렇게 또 마음을 적신다.
오는 길에 검게 잘 익은 산딸기를 땄다. 한 봉지 가득! 쪼그리고 앉아 길가에 자라는 야생 민트잎도 땄다. 알베르게에 와서 민트차를 끓이고 산딸기를 접시에 담아 사람들과 나누었다. 탄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기쁘다.
여기 리바디소 도 바이소(Ribadiso do Baixo) 마을의 알베르게는 정말 예쁘다. 강가 바로 옆에 자리한 돌집에는 잔디가 깔린 넓은 정원이 딸렸다. 잔디에 드러누워 물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자니 여기가 천국 같다. 이 알베르게를 '최고의 알베르게' 목록에 올려놓는다.
하루에도 열두 번 해가 나왔다 들어갔다 비가 내렸다 멈췄다, 정원으로 달려가 빨래를 널었다 걷었다, 날씨가 마치 하루에 열두 번 바뀌는 변덕스러운 내 마음 같다.
여기서 만난 독일인 부부 소니아와 우벤. 열 네 살 딴 딸과 함께 산티아고를 걷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 케테 콜비츠의 원화를 소장하고 있다는 그들. "난 걷기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이 길에 섰어"라는 남편에 비해 부인 소니아는 이렇게 간단하게 말한다.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서야." 이 길의 끝에서 복잡한 마음이 정리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내가 선정한 '최고의 알베르게' 리스트에 올라간 리바디소 도 바이소 마을의 알베르게 ⓒ2005 김남희
2005년 7월 30일 토요일 흐림
▲ 안개 낀 새벽길을 걸어가고 있는 나오코 ⓒ2005 김남희
그렇게 묻기 시작했을 때 쉐리를 만났다. 그녀는 캐나다에서 온 중년의 여인이었다. "카미노에 왜 왔어요?" 내 당돌한 물음에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어. 나를 위한 선물로. 그리고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 내 영혼의 소리 말이야" "들었어요?"
"그랬던 것 같아. 메세타를 걸을 때였어. 내가 들은 건 이런 속삭임이었어. 네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걸 믿어라.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한 깨달음이었어. 그러니까 내게 필요했던 건 결국 확신이었던 거야. 내가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가 원하는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 그게 필요했던 거고, 카미노는 내게 그걸 주었어."
그녀가 내게 물었다. "너는 왜 카미노에 왔니? 뭘 찾고 있어?"
"난 걷는 걸 좋아해요. 내게 걷기란 명상 같은 거죠. 카미노를 걷겠다고 생각했을 때만 해도 내 안에 어떤 간절한 질문 같은 건 없었어요. 그런데 카미노를 걷는 동안 내 안에서 계속 질문 하나가 맴도는 걸 발견했어요. 그 질문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와 이어지는 거였어요. 길의 끝에서 내가 뭔가 결정을 내려야만 할 때 카미노가 그 답을 줄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답을 찾았어?" "아니. 못 찾았다고 생각했어요. 내일이면 산티아고에 도착하는데, 마음은 여전히 어지럽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불안했어요."
▲ 산티아고를 걷다가 사망한 순례자의 무덤. 지나가던 순례자들이 남겨놓고 간 메모와 사진, 꽃들. 나도 어느 마을에서 수녀님께 받았던 목걸이를 풀어 그곳에 남기고 왔다 ⓒ2005 김남희
800km를 걸어오는 동안 나는 내내 한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건 생각지도 못했던 아주 간절한 그리움이었다. 그 익숙하면서 생경한 감정이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저 홀로 커가고, 깊어가는 걸 나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야 했다. 그리움이 간절해지는 만큼 내 안에 상처로 남아 있던 한 얼굴이 흐릿해져가는 것도 보았다.
카미노는 내게 답을 줄까?
나는 두렵고 불안했다. 길의 끝에 서면, 내가 이토록 그리워한 사람에게 달려갈 수 있을까?
그게 내가 원하는 걸까? 달려가서 내게 남는 게 뭐가 있을까? 어쩌면 꼭 그가 아니어도 되는 건지도 몰랐다. 나는 단지 배낭을 내려놓고 싶은 건 아닐까. 어딘가에 정착해서, 아이를 갖고, 그 아이를 낳아 키우며 늙어가는 삶. 난 그걸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
길을 걷는 내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카미노가 주기를 기대했다. 산티아고까지의 남은 거리를 말해주는 표지판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길의 끝이 다가올수록, 나는 되돌아가고만 싶어졌다. 나는 아직 아무 것도 결정할 수가 없는데,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 수가 없는데, 이렇게 끝이 다가오다니… 울고만 싶어지던 날들이었다.
쉐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 나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카미노가 내게 답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답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다만 외면하고 있었을 뿐. 어쩌면 우리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대답은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직 찾아내지 못했거나, 혹은 답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일 뿐.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 어떤 길도, 어느 누구도, 신조차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는 없기에 귀 기울여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는 것 뿐.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한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그토록 망설이고 불안해했던 건 내가 간절히 원하지 않기 때문인 것을, 아직은 배낭을 내려놓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을. 그렇다면 계속 내 길을 가는 것만 남은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은 어느새 맑아져 있었다.
▲ 가던 길에 멈춰 서서 지도를 들여다보는 순례자의 다리 ⓒ2005 김남희
여기까지 800km..."너 참 장하구나!"
다음날 산티아고에 들어서려던 예정을 바꾸어 40km를 넘게 걸었다. 몸은 지쳐가고 있었지만 더 이상 발은 무겁지 않았다. 산티아고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판을 보는 순간 왜 눈물이 났을까. 그 모든 지독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삭이고, 삭이고, 또 삭이며 여기까지 잘도 걸어온 나. "너 참 잘했어. 참 장하구나." 꼭 끌어안고 입 맞춰주고 싶은 어여쁜 나였다.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12시간을 걸어 산티아고에 들어섰을 때, 광장에 우뚝 솟은 성당을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성당은 지금까지 본 어떤 성당보다 아름다웠다. 내가 여기까지 800km를 걸어왔기 때문일까. 잠시 광장 한 가운데에 망연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성당 옆 호텔에 짐을 풀었다. 오늘 같은 날, 수십 명이 머무는 알베르게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지난 40일간, 아니 유럽에 들어온 이후, 단 한 번도 '독방'을 가져본 적이 없던 나에게 오늘만은 혼자만의 공간을 주고 싶었다. 혼자서 침묵 속에서, 하루를, 지난 한 달의 여정을, 순례의 끝을, 마감하고 싶었다.
기다리는 사람 눈치 보는 일도 없이 천천히 몸을 씻고, 한 벌 뿐인 여벌의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부딪칠까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싱글 침대에 드러누워, 노트북의 볼륨을 올려 비탈리의 샤콘느를 들으며 이 글을 쓰는 지금. 눈물이 날 것 같다. 국토종단을 끝내고 나서는 오히려 담담했던 것 같은데 여긴 남의 땅이어서 일까. 이렇게 감상적이 되는 건. 지금 누군가에게 전화해 그의 축하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산티아고 방문을 기념해 세운 조형물 ⓒ2005 김남희
2005년 7월 31일 일요일 맑음
아침에 순례자 협회 사무실로 가 증서를 받았다. "Camino de Santiago"를 걸었다는 증서. 사무실을 나와 성당으로 갔다. 천 년 전부터 이곳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성당으로 가 제단 뒤의 산티아고 상을 끌어안는 게 전통이라고 했다. 지난 천 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끌어안았을 산티아고 상에 손을 올려놓고, 기도를 올렸다.
"여기까지 무사히 오도록 지켜봐 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의 제 삶을 지켜봐 주셨듯이 앞으로 남은 제 삶도 지켜봐 주시겠지요. 늘 제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온전히 제가 가고 싶은 길, 가야 할 길을 향해 망설임 없이 걸어갈 수 있도록 하소서. 그 가운데서도 이웃과 나누며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미사 중인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찬송가를 부르는데, 그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 차가운 조각을 끌어안을 때 내 기분은 이상했다. 순례자들을 위한 특별미사에서 "생 쟁 피에드 포르에서 걸어온 한 명의 코리아노"라는 말을 들었을 때, 눈물이 흘렀다. 천 년 동안 서 있었을 성당의 기둥에 기대어 나는 오래 울었다.
이렇게 내 인생의 한 기회가 왔다가 갔다는 것. 무언가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것을 예감하던 시간이었다. 이제 다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무나 붙잡고 울고 싶었고, 내가 지은 모든 죄를 고백하고 싶었고, 내가 한 모든 어여쁜 일들도 말하고 싶었고, 내 가슴 속에 터질 듯 가득한 희열과 서러움과 행복과 슬픔을 표현하고만 싶었다.
▲ 순례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기우는 저녁해를 받으며 서있는 대성당 ⓒ2005 김남희
이제 "Camino de Santiago"는 끝이 났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새로운 삶의 길이 여전히 내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나 이 삶의 순례자인 것을. 어디로 가는지, 언제 이 길이 끝나는지, 계속 혼자서 가야 하는 건지,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지도 모르는 채 순례를 하고 있는 지구 위의 순례자.
이 삶의 순례의 길에서 내 영혼이 목말라하고 갈구하는 것. 그것을 찾아 나는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오는 데 서른다섯 해가 걸렸다. 이제 며칠 후면 나는 서른여섯이 된다. 정말이지 올해만큼은 그 날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다. 왠지 올해에는 내가 그 축하를 받을 자격이 되는 것만 같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포옹
성당에서, 성당 앞 광장에서, 광장의 카페에서, 정든 얼굴들과 마주칠 때,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 껴안고 입을 맞춘다. 그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뜨거운 포옹과 가장 따뜻한 입맞춤이다.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서로를 안아주고, 축복하고, 함께 기뻐한다. 우리가 이곳에서 서로에게 느끼는 연대감. 그건 세상에서 가장 진하고 아름다운 일체감이다.
우리가 서로 알고 있기 때문일까. 지난 한 달간, 혹은 두 달간, 어떤 이들에게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 여기까지 오기 위해 우리들이 흘려야 했던 눈물과 땀과 외로움과 잠 못 들던 밤을. 뜨거운 햇살에 익어가던 몸과 언제나 물집투성이었던 발바닥. 시큰거리고 부어올랐던 무릎을 끌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걸어온 지난 시간.
우리가 찾아 헤맸던 광장의 분수대와 지친 몸을 누일 반 평의 공간과 외로움을 나눌 익숙한 얼굴. 서로에게 해주던 마사지와 서로를 위해 요리했던 한 끼의 더운 밥. 새벽별에 의지해 숙소를 나서던 이른 새벽부터 여전히 태양이 이글거리는 늦은 오후까지 길을 가며 만났던 수많은 얼굴들. 그 사이 정들어 눈물 흘려가며 끌어안는 얼굴들.
우리가 길 위에서 나눈 건 딱딱한 빵과 무릎 연고와 물 한 모금만은 아니었다. 그것들이 서로의 손에서 손으로 오가는 동안 우리 마음의 빗장도 열리고 있었다.
우리가 그 먼 길을 걸었던 건 단지 길의 끝에 서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이 길 위에서 우리가 배운 것. 모든 것이 흘러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가진 것은 영원히 순간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우리는 모두 사랑하고 나누고 연대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귀한 몸이라는 것을, 카미노는 우리에게 말없이 가르쳐 주었다.
또 우리가 배운 것들.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지상의 모든 존재들이 다 귀한 목숨이라는 것을, 이 세상에 이유 없이 오고 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살면서 중요한 것들은 우리가 집 안에 남겨두고 온 것들이 아니라 우리 영혼 안에 있는 것들이라는 것.
우리가 길 위에 남겨두고 가는 것들. 우리가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망과 미련,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불안.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오해. '세상의 끝'에서 신발을 태우며, 옷을 태우며 우리가 태우고 싶었던 것은 우리 안의 욕심과 오만과 거짓들이었다.
이제 우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많은 것을 길 위에 남긴 채 조금은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이 길 위에 뿌려졌던 땀과 눈물, 무수한 상념과 웃음을 뒤로하고, 우리가 있었던 자리, 우리가 있어야만 하는 곳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면, 일상으로 돌아가면, 우리들은 빠르게 이 길을, 길 위에서의 추억을, 외로웠던 시간을, 잊어가겠지. 사위어가는 겨울날 오후의 햇살처럼. 하지만 아주 잊어버리지는 못하리라. 우리가 나누었던 뜨거운 포옹과 따뜻한 입맞춤을. 삶의 희열이 파도처럼 밀려와 온 몸과 마음을 적시던 여름 오후의 한 순간을. 그리고 그 순간의 기억으로 우리에게 남은 삶을 버텨 가리라.
어느 날 갑자기 삶이 낯설어질 때, 이곳을 떠올리며 화들짝 놀라는 날이 찾아오기도 하겠지. '그래. 한 때 내게도 그토록 풍성했던 시간이 머물렀지. 그때 그 길 위에서 나는 다짐했었지. 돌아가면 더 깊이 사랑하고, 더 많이 나누고, 더 크게 웃으며 살리라, 이 생을 마음껏 누리리라 다짐했었지.'
▲ 잠시 주인은 사라지고 그가 놓고 간 가방과 지팡이만 광장을 지키며 서 있다. 산티아고 광장
그 먼 기억을 떠올리며 흘러가는 것들을 붙잡기 위해, 잊혀지던 것들을 되살리기 위해 매달리겠지. 우리는 어쩌면 끝없는 시도와 변화에 대한 갈망으로 인해 아름다운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 그건 살고, 사랑하고, 나누고, 기뻐하며, 고통 속에 성장하는 것.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매 순간을 영원처럼 살아가리라.
Buen Camino! (좋은 길이 되기를!) Chao, my fellow Pilgrims! (안녕, 나의 동료 순례자들이여!)
남은 이야기들
성당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을 만났다. 가톨릭 성지 순례 중인, 캐나다에 사시는 세 분들. 나를 보자마자 가방에서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꺼내 손에 쥐어주신다. "한국말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라며 바보처럼 울먹이는 나. 장하다고, 참 잘했다고 거듭 칭찬해주시는 분들 앞에서 마구 어리광을 부리고만 싶어졌다.
순례자를 위한 정오미사에서 앤디를 만났다. "그동안 고생했어. 무사히 여기까지 온 걸 축하해"라며 나를 꼭 안아주는 앤디의 포옹이 따뜻하다. 우리는 성당 근처의 카페에서 차를 나눈다.
"이 길을 걷기 전에 나는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어. 엄마는 살아 계시지만 난 별로 사랑을 받지 못했거든. 나는 평생 동안 엄마의 사랑을 갈구해 왔어. 간절히. 근데 이 길을 걷는 동안 그런 갈망이 사라졌어. 아마도 자연이 나를 치유한 것 같아. 나는 그동안 기치료를 하며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었지만 정작 치유가 필요했던 건 나였던 거야. 지금 내 안엔 더 이상 사랑받고 싶다는 열망은 없어. 이제 엄마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광장 옆 골목에서 닐스크리스티안을 만났다. 우리는 뜨겁게 포옹하고 광장 옆 카페에서 차를 나누며 산티아고에 도착한 것을 서로 축하했다.
"전에 나는 어떤 의미에서 종교적 근본주의자였어.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성격의 단어 하나하나까지 다 믿고, 기독교만이 유일한 종교라고 믿었던 것 같아. 적어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었어. 너도 알다시피 우리 할아버지까지 대대로 목사였잖아. 하지만 이 길을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내 안에 뭔가 변화가 일어났어.
너도 그렇고 앤디도 그렇고 나에게 다른 종교에 관해, 또 기독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줬어. 중요한 건 예수의 가르침대로 사는 거지, 성경의 문자가 아니라는 것.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똑같이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걸 배웠어. 난 아직 어려서 이 길을 통해 뭔가 내 인생의 답을 구하고자 했던 그런 간절한 질문은 없었어. 하지만 나는 배웠고, 많은 걸 느꼈고, 변했어. 덴마크에 돌아가면 그전의 나와는 많은 면에서 달라질 것 같아."
"기독교는 성경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증거하는 그 분을 믿고, 전통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 전수하는 그 분을 믿고, 교회를 믿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선포하는 그 분을 믿는 종교"라고 한스 큉이라는 신학자가 말했다. 닐스크리스티안은 이제 진정한 종교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에 만나면 그가 성큼 커져 있을 것 같아 그 만남이 기대된다.
모든 것이 흘러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아무 것도 붙잡을 수는 없다는 것. 그 슬프고 명확한 사실이 나를 깨어있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힘.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한낮의 햇살에 달아올랐던 거리를 식히는 밤. 어둠이 내리는 광장에 서서 지금 이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내 안에 막막한 슬픔이 치밀어 오른다. 그리고 그 슬픔을 넘어서는 남은 생에 대한 열정. 인생은, 삶은, 현재는, 단 한 번, 순간뿐이기에 슬프고 아름다운 것.
▲ 스페인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악단,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관광객들 ⓒ2005 김남희
2005년 8월 2일 화요일 맑음
▲ 오늘, 길의 끝으로 가고 있는 내 마음도 저 하늘처럼 맑고 푸르다 ⓒ2005 김남희
"안녕, 남희. 좋은 아침이야. 오늘 기분이 어떠니? 그동안 네가 해준 모든 것에 대해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고, 나와 함께 걸어주고, 나와 함께 밥을 먹어주고, 언제나 좋은 정보들을 나눠준 그 많은 일들에 대해! 나에게 있어 네가 없는 카미노는 상상할 수가 없어. 이 길 위에서 너는 내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었어. 정말 정말 너를 무척 그리워하게 될 거야.
하지만 더 아름다운 것들을 보기 위해, 너처럼 좋은 사람들을 또 만나기 위해 나도 내 길을 가야겠지. 부디 몸조심하기를 바라. 그리고 너무 지치도록 걷지는 마. 언젠가, 어디에선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사랑을 담아 나오코"
엽서 한 장 쓰지 못한 나는 작은 기념품만 선물로 건네며 "편지 쓸게"라고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짐을 맡기고 숙소를 나서니 7시 반.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지팡이를 짚은 순례자가 산티아고 광장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인다. 저절로 그에게 미소가 지어졌다. 저이도 내가 겪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게 될까.
산티아고를 빠져나오니 참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유칼립투스와 참나무가 빽빽한 좁은 흙길. 길이 마음에 든다. 뒤이어 나타난 순례자들의 수다가 귀에 걸려 그들을 먼저 보내고 떨어져 걷는다. 오랜만에 사람들과 떨어져 걷고 있으니 참 좋다.
산티아고에 도착했으니 순례는 끝이 난 셈인데 이렇게 다시 걷는 이유는 '세상의 끝'에 가기 위해서이다. 대부분 순례자들은 산티아고에서 순례의 끝을 맺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일부는 다시 90km를 걸어 피네스테레(Finesterre)로 향한다. 피네스테레는 그 옛날 로마 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던 곳이다. 순례자들은 그곳 세상의 끝에서 그동안 신고 온 신발을 태운다고 했다. 나는 지금 길의 끝으로 가고 있다.
11시 반. 폰테 마세이라(Ponte Maceira) 마을 통과. 어여쁜 마을이다. 뒤로는 숲에, 앞으로는 강에 둘러싸여 있고 집들은 주홍색 기와를 얹었다. 마을로 진입하는 돌다리는 14세기에 지어졌다. 그림 속 풍경 같은 마을이라 돌다리 위에 멈춰 서서 한참을 눈을 두었다.
길을 걷는 내내 기분이 복잡한 기분이 나를 휘감고 있다. 산티아고에 도착해 사흘을 머문 후 다시 걷는다는 게 낯설기도 하고, 다시 걸을 수 있어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흘만 걸으면 끝난다는 생각에 안도가 되기도 하고…. 분명한 건 오늘 걷는 길이 무척 아름다운 길이라는 거다. 급하지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 계속 이어지는 숲길… 압도하지 않는 풍경이 눈과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12시 반. 마침내 오늘의 목적지인 네그레이라(Negreira) 마을이다. 여기 알베르게에는 2층 침대가 아닌 싱글 침대가 각 방에 8개씩, 딱 16개 침대뿐이다. 훌륭한 시설에 박수를 보내고, 마지막 남은 신라면을 끓여 저녁으로 먹었다. 한동안 매운 맛을 잊었던 혀가 놀라고 있다.
숙소에서 로만을 만났다. 쥬느비에브 없이 혼자 걷는 그를 보니 조금은 쓸쓸해 보인다. "혼자 걸으니 외롭니?"라고 물으니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그녀가 몹시 그립지만, 어차피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거였으니까." "지금 주느비에브는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있을 거야"라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로만.
프랑스의 르푸이에서부터 1500km를 걸어온 로만. 그 길의 대부분을 쥬느비에브와 함께 했으니 산티아고를 떠올릴 때면 그녀의 얼굴도 함께 따라오겠지. 이제 변호사가 아닌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로만. 그토록 원하는 영적인 삶의 길을 그가 끝까지 걸어갈 수 있기를.
2005년 8월 3일 수요일 맑음
오늘 쓴 돈 :
▲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길안내를 담당했던 조개껍질이 박힌 표지석 ⓒ2005 김남희
정오 무렵이면 도착하겠거니 싶어 휴식도 없이 계속 걸었는데, 2시 30분에야 올베이로아 마을에 도착했다. 다 같이 모여 호스피탈레로가 요리한 수프와 빵, 과일을 나누는 저녁 식탁에서 왜 그렇게 갑자기 외로워졌을까? 가족, 친구들과 나누던 따뜻한 밥 한 끼가 눈물나도록 그리웠다. 아, 이제는 정말 집에 가고 싶다.
마을에서 케이트와 코엔을 만났다. 함께 펍으로 가 차를 마셨다. 코엔은 12살 때 카미노에 관해 들은 이후 늘 이 길을 걷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거나, 혹은 여자친구의 만류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늘 이렇게 말을 하곤 했다. "나를 두고 혼자서 몇 달씩 떠날 수는 없어. 나중에 나와 함께 같이 가." 그렇게 이십 년이 흘러갔다. 이제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어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케이트를 만났다.
케이트는 대학에서 불어와 스페인어를 전공했다. 어느날 수트케이스 하나에 다 들어가는 짐을 꾸려 스페인 남부로 건너가 살았다. 배낭 하나만 들고 떠나 낯선 곳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은 그녀를 매혹했다. 몇 년 후 영국으로 돌아갔을 때, 아무도 그녀가 겪은 일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다음에 스페인에 돌아갈 때는 걸어서 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케이트와 코엔은 만났고, 바로 집 현관문을 나서서 걷기 시작했다. 지난 110일간, 지도에도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3000km를 걸어왔다. 길의 끝에 설 일만을 남겨둔 지금, 여기까지 온 게 꿈처럼 아득하다는 두 사람. 남은 생을 가는 동안 뒤돌아 볼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 만든 두 사람이 부럽다.
▲ 폰테 마세이라 마을 ⓒ2005 김남희
2005년 8월 4일 목요일 맑음
▲ 피네스테레로 가는 바닷가 풍경 ⓒ2005 김남희
숲을 빠져나와 이제는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길. 더위를 참지 못해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쉰다. 해수욕하는 사람들의 팔자가 부럽다. 나도 내일이면 이 고생도 끝이란다. 혼자 중얼거리며 걷는다.
3시. 피네스테레에 들어섰다.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 등대(El faros)에 왔다. 길의 끝이자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진정한 끝. 한때 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던 곳.
▲ 세상의 끝에서 해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순례자들 ⓒ2005 김남희
산티아고에 사흘을 머문 후 다시 배낭을 메고, 지팡이를 짚고, 사흘간 90km를 걸어 이곳에 섰다. 바닷가 절벽 위에 하얀 등대가 서 있는 곳. 이곳에서 순례자들은 긴 순례의 끝을 마감하며 신고 온 신발을 태우곤 했다.
결국 이렇게 걸어서 또 다른 길의 끝에 다다른 건가. 이렇게 내 삶의 또 한 막이 내려진다. 내일부터는 다시 다른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디선가 어떤 순례자가 태우는 신발의 고무 냄새가 짠 내음에 묻어 실려 오고 있다.
절벽에서 바다로 지는 해를 바라봤다. 바다는 잔잔하고, 검푸르고, 수평선은 가없이 아득하다. 하루를 영원처럼 마감하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지금까지 온 길을 돌아보았다. 아름다운 길이었고, 그 길 위에서 길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 내 가슴 속에 일렁이는 파도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럴 때 언어는 속수무책이다. 나는 지금 가득 차 있고, 텅 비어 있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 더 이상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 생을 사랑하고, 그 생에 감사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을 즐겨라)
2005년 8월 5일 금요일 맑음
한 때 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던 곳에 왔다.
'끝'과 '끝까지 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다
- 알베르게에 남긴 글
▲ 알베르게의 방명록에 한 순례자가 길 위에서 만난 다른 순례자들의 그림을 그려놓았다(왼쪽). 순례자들이 알베르게에 남겨 놓고 간 지팡이들(오른쪽) ⓒ2005 김남희
오마이뉴스 김남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