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향기로 말한다. 저마다의 향기로 목소리를 내어 사람들에게 지신의 존재를 알린다. 보기에 예쁜 꽃이 벌과 나비가 모여 드는건 아니다. ‘해 뜨는 집’에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심겨져 있지만 유난히 벌떼들이 모이는 꽃은 화려하고 예쁜 꽃이 아니었다. 작으면서 볼품없는 꽃이어서 내심 놀란 적이 있었다.
향기로 말을 하는건 꽃만이 아니라 사람 또한 마찬가지인 듯하다. 각기 자신만의 향기를 가지고 있어 어떤 이는 사람들을 향기롭게도 하고 또 곤혹스럽게도 한다. 그것은 사람의 생김이나 옷차림과는 거리가 없는 안에서부터 풍겨나오는 향기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을 보면 꽃과 연관하는 버릇이 생겼다. 우체국에서 손님들을 대하면서 우연히 생긴 습관이다. 그 사람을 대하면 먼저 꽃이 연상되어 백합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미같은 사람도 있다. 정작 나는 어떤 꽃으로 사람들에게 심어질까......
내성적인 나로서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부담되고 불편한 일중의 하나다. 인사만 건네면 할말이 없어진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얼하며 시간을 보내야 될지 막막할 때가 많다. 사람들과 잘 어울려 떠들고 가까이 지내지 못하는 나를 말 걸기가 어렵다고 하고 거만해 보인다고도 한다. 이런 나는 다른 이들에게 있어서 이름도 없는 들꽃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먼데서 바람에 향기가 실려와 주위를 둘러 본 적이 있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나무는 없이 향기만 전해오는 아카시아였는데 그 순간에 G가 떠올랐다. 나와는 반대로 사교성이 많아 그녀의 주위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때 같은 반 자모로 만났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나 키 어디 빠질데 없는 미모였다. 처음 G를 보았을때 밝은 표정이어서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으로만 알았는데 가슴속에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조금도 짐작하지 못했었다.
놀음에 빠져 무능력한 남편과 이혼하고 딸과 단둘이 살고 있음을 한참 후에 알았다. 가끔씩 전남편과 사는 아들이 보고 싶어 가슴을 후빈다고 했다. 암으로 막내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낸 사연이 내 가슴까지도 울린다. 아는 이도 없고 연고도 없는 이곳에 왜 정착하게 되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져 온다는게 여기였다고 했다. 낯선 곳에서 정붙이기까지 둘이는 힘이 들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러나 그녀를 힘들게 하는건 사람들의 편견이다. 혼자 산다고 가볍게 대하고 우습게 여기는 남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에게서 아픔위로 덧상처를 받는 것이다. 혼자 사는 젊고 예쁜 여자를 싱거운 사람들은 그냥 두질 않는 모양이다. 그래도 그녀는 씩씩하게 산다. 그래서 그 안의 아픔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추워본 사람만이 따뜻함을 잘 알고 아파본 사람만이 이웃의 아픔도 볼줄 아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가게는 사람들로 붐빈다. 물건을 사려는 이들보다 위로 받으려고 찾아오는 사람들과 고민을 털어 놓으려는 사람들로 늘 가득한 것이다.
향수 중에는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것이 용연향이라고 한다. 고래가 어떤 상처로 인해 가슴이 닳고 헐었을때 스스로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연고 같은 액체를 흘리게 된다. 상처와 힘겨움 뒤에 흘리게 되는 적은 양의 연고 같은 향수가 용연향이다. 그 아픔과 어려움을 극복한 고래는 세계 최고의 찬란한 향수를 만드는 것이다.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바람으로 전해오는 아카시아 꽃 같은 G. 그녀가 자신의 고통을 인내하는 동안 저절로 만들어진 은은한 향기는 고래가 만들어낸다는 용연향 같은 것이 아닐까.
바람이 분다.
나는 그녀의 향기에 이끌려 그곳으로 발길이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