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부터 추진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선관위가 '선거법' 운운하지만 않았어도 진작 했어야 했던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에 모두가 올인하고 있기도 했고,
또 선관위의 불법 낙인이 말도 안 되는 수작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정면으로 걸고 넘어질 그럴 용기가 없기도 했다.
(모르지, 알량한 선생이라는 딱지만 없다면 선거법 위반으로 잡혀가더라도 1인 시위라도 하고 싶었다.)
집회 준비는 그닥 힘들지 않았다. 늘 하던 일이었으니까.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왔다. 꼽아보니 대략 70명 내외가 될 것 같았다.
초를 50개 준비했는데 스무명 넘게 초를 받지 못했으니 말이다.
꼬마들까지 합하면 80은 넘지 않을까 싶다.
장애인분들이 많이 오셔서 특히 큰 힘이 되었다.
부산 글쓰기회의 이승희 선생님과 구자행 선생님등도 오셨다.
부산대 점필재연구소 연구교수로 밀양에 와 있는 후배 임상석 부부는
한겨레신문에서 전단지를 보고 벌써 모금운동에 5만원을 쾌적(!)하기도 했고,
어떻게 알았는지 밀양경찰서 정보과 형사도 전화를 했다. 물론 돈을 내진 않았고..
나는 이미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사문화된 집시법의 야간옥외집회금지 조항을
갖고 운운하는 건 우습기도 하고(그쪽도 동감하는 눈치) 우리도 알아서 잘 할테니
걱정 마시라 했다.
집회를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오고갔다.
날씨가 너무 후텁했고 몇시간동안 종종걸음치느라(특히 전교조 밀양지회의 K아무개 교사가
스피커를 빌려갖다 반납을 안 하는 통에 잠시 쑈를 하기도 했고) 몸이 많이 달아있기도 해서
더 더웠을 것이다.
울 학교 축구 대표로 뽑힌 아이들이 연습경기를 하고 학교로 돌아가면서 우리 현장을 보고 가기도 했다.
아이들은 꽤 반가워해 주었다.
멀리서 연진이가 왔다. 아직 시험이 덜 끝났는데, 경주서 여기까지 일부러 걸음한 것 같았다.
참 고맙고 귀한 마음이라 생각했다.
가까이 살아도 잘 들여다보지 않은 늙고 낡은 마음이 넘쳐나는 곳에서
참 싱그럽고 귀했다.
푸른영상에서 제작한 동영상은 벌써 열번이 넘게 보고 있는데(수업 시간에 틀어주니깐)
봐도 봐도 참 잘 만들었고 뭉클한 감동이 있다.
버스에 끌려가는 분의 절규, 이명박 정신차려라, 농민 다 쫓아내고, 농토 다 망가뜨리고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하는 부분, 마지막, 늙은 농민 한분이 '막막합니다'하면서 울먹이는 부분이 특히 그랬다.
나는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고, 관련된 자료를 읽으면 읽을수록 더 가슴이 옥죄어 오고,
그 현장에 가 보기면 하면 그저 막막할 뿐인 이 일을
사실 마음 속에서 밀쳐두고 싶었다. 정말, 너무나 큰 일이고 어이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현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이 강을 지키기 위해 또 내가 바쳐야 할 시간과 고통을 생각하니
아득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박성대 선생님의 말씀은 그래서 더 절절했다. 너무나 의욕적으로 하시고 싶었던
심중의 말씀을 하시느라 살짝 길어지는 느낌도 있었지만^^,
당신이 어린 시절 놀고 자라던 빈지소의 아름다운 모래밭과 숲을 이야기하시는 대목은
그대로 하나의 시와 같은 느낌이었다. 선생님의 풍부한 감성, 그리고 걸쭉하고
아름다운 입말의 힘은 아마도 '강물소리'가 길러준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빈지소의 인공보가 결국 빈지소를 망가뜨린 그 짧은 과정은 결국
4대강의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확장될 것이라는 느낌에 잠시 짧은 전율이 일기도 했다.
이응인 선생님의 시는
선생님의 영혼의 리듬처럼 부드럽고 감미롭기까지 했고,
그리고 또 절실했다. 참 아름다운 시였다. (아래 글에 옮겨 놓았음)
밀양은 참 복받은 도시라는 생각을 했다.
탁월한 이야기꾼이자 산문가인 박성대 샘과 아름다운 영혼의 리듬을
가진 시인 이응인 샘이 계시니 말이다.
문정선 시의원 당선자의 발언도 좋았다.
나는 솔직히 민주당에 대한 약간의 반신반의 같은 느낌도 있었는데,
이 분이 내가 전교조 밀양학생의 날 축제에 함께 했던 세종고 학생회장 박윤지 학생의
어머니라는 말을 듣고 단박에 믿음이 생겼다.
그 학생이 보기드물게 훌륭하고 반듯해서, 이런 아이를 기른 어머니라면 하는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율스님의 강연 때는 정말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내용이었고, 스님의 말씀이 또한 고요하고 깊은 곳을 움직이는 내용이었는데 주변이 너무 어수선했다.
오고가는 많은 차량들의, 후텁한 공기, 왔다갔다하는 아이들까지..
그래서 좀 집중이 잘 안 됐다. 스님도 그러신 것 같았다.
그러나, 묵직한 한마디는 지금도 가슴 속에 남아 있다.
천성산에서 벌목하던 현장을 처음 봤을 때, 그리고 비켜갈 때,
그 나무들이 '너도 비켜가는 구나' 하는 이야기를 했을 때,
결국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느꼈노라며,
문수스님의 심회로 돌아가시던 대목이 특히 그랬다.
이명박을 향해 목소리를 높일 일이 아니라는 말씀은
궁극적으로 옳고,그래서 깊은 말씀이었다.
그러나 나는 절반은 받고 절반을 받아들이기는 못할 것 같다.
이것은 넓게는 나 자신의 삶의 책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명박이라는
한 어처구니없는 정치인의 패악이기도 한 것이다.
저 강과 나의 절연으로부터 이것은 시작된 것이지만, 또한 구체적으로는
토건자본의 막무가내의 패악스런 질주의 말기적 발광이기도 하지 않은가.
집회 준비를 하면서,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좀 덜 괴로울 것 같았다.
이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좀 있다가 서명전에도 나가려 한다.
이렇게라도 해야 덜 괴로울 것 같다.
이제 보가 준공되면 강바닥을 파헤칠텐데,
아, 남은 90%의 공정동안 파헤쳐질 강을 생각하면
끔찍하고, 괴롭고, 그래서 아프다.
정신건강에 몹시 좋지 않은 일이란 걸 안다.
그러나, 문수스님이 결국 자신의 목숨과 맞바꾼
이 사바세계의 어이없는 광란의 살생 앞에서
결국 우리는 끊임없는 실존의 선택 속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여덟시 반에는 아르헨티나전이 벌어질 모양이다.
아이들은 난리가 났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이 싸움에서 한국의 선전으로
다시 파묻혀질 이 광란의 파괴 놀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은 사실이다.
어쩌겠는가.
이번 집회에 함께 해 주신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내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 아니란 거 잘 알지만,
이렇게라도 우리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뭔가
다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라는 것 또한 잘 압니다.
기운내서 서명전 잘 하고, 그리고 힘차게 싸워나가요.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