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3대 황당 시리즈
며칠 전 점심 시간에 우연히 단풍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IMEC 주변에 있는 나무들의 색깔이 가을이 되어 예쁘게 단풍이 들었다고 점심 식사 후 30분 정도 산책을 나가자고 누군가 제의를 했습니다. 저는 산책을 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이렇게 예쁜 단풍을 놓치면 억울하지 않느냐고 누군가 물었습니다. 저의 대답은 “이런 단풍은 한국에서는 단풍 축에도 못 들어간다” 였으며, 산책 후에 제 사무실로 오면 단풍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이 사람들이 커피 한 잔씩 들고 진짜 제 사무실로 우르르 몰려 왔길래 인터넷으로 내장산, 설악산 등의 단풍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국의 단풍이 너무나 아름다워 벨기에 사람들이 졸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한결 같은 질문은, 이렇게도 beautiful한 한국의 가을 산들이 벨기에의 어느 관광 안내 책에도 한마디도 안 나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혹시 벨기에에 오셔서 오줌싸개 소년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직접 보신 분들은 첫 느낌이 “황당”하지 않으셨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황당이란, 실제로 보았을 때 그 명성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거나 볼 것이 없는 경우입니다.
(위) 유럽 여행 3대 황당 시리즈 - (1) 독일 라인강의 로렐라이 언덕 (을 찾다가 포기하고 아무 언덕이나 하나 찍음. 2001년)
(위) 유럽 여행 3대 황당 시리즈 - (2) 덴마크의 인어공주상
(위) 유럽 여행 3대 황당 시리즈 - (3) 벨기에의 오줌싸개 소년
유럽 3대 황당 시리즈는 벨기에의 오줌싸개 소년, 덴마크의 인어공주 상, 독일 라인강의 로렐라이 언덕이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벨기에의 관광 정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벨기에 정부 관광청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정책이 아니라, 제 스스로 느낀 점입니다.
유럽 지도에서 보시면 벨기에는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 작은 나라 벨기에에 멋있는 건물이 있다고 한들 얼마나 유명하겠습니까? 브뤼셀 시청도 멋있기는 하지만, 프랑스의 궁전들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그래서 동양 사람들이 짧은 일정으로 유럽 여행을 오면, 영국-프랑스-(바로 옆에 있는 벨기에는 통과)-스위스-이탈리아 이런 식으로 다녀갑니다. 그렇지만 주말에 브뤼셀에 나가보면 동/서양 외국 관광객이 상당히 많습니다. 한번은 imec에 있는 외국 사람들에게 벨기에의 독특한 볼거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오줌싸개 소년, 미니유럽, 아토미움, 꽃 카펫 등이라고 합니다. 오줌싸개 소년이야 3대 황당 시리즈니까 잘 아실 테지만, 나머지 3가지는 이름이 좀 생소할 것입니다.
오줌싸개는 이미 유럽의 3대 황당 시리즈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저도 오줌싸개를 보기 전에 볼품 없는 조그만 동상일 뿐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제가 오줌싸개 동상을 실제로 보았을 때는 “이건 일종의 배반이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브뤼셀은 여기 루벵에서 20분만 운전하면 닿는 곳이라서, 주말에 저녁을 먹고 “사람 구경”하러 브뤼셀 시청 근처에 산책을 가끔씩 나갑니다. 시청 근처에 오줌싸개가 있기 때문에 꼭 그 앞을 지나가게 되는데, 그렇게 황당하다고 소문났는데도 오줌싸개 앞에는 매번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작년에 서너 번 오줌싸개를 본 후 올해부터는 우리 큰 아이가 시간만 나면 브뤼셀에 오줌싸개를 보러 가자고 합니다. 이유는 오줌싸개가 볼 때마다 변신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알몸으로 있다가 어떤 때는 프랑스 국빈이 가져다 준 프랑스 옷을, 어떤 때는 일본 옷을, 어떤 때는 중국 옷을, 어떤 때는 인디안 옷을…. 이렇게 전 세계 국가의 전통 옷을 번갈아 입으면서 방문할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 보았을 때는 황당하지만, 여러 번 보면 볼수록 이번에는 무슨 옷을 입고 오줌을 누고 있을까 호기심이 자꾸 생깁니다. 한번은 운 좋게도 오줌싸개 소년한테서 맥주를 얻어 먹은 적도 있습니다. 생맥주 탱크를 연결해서 맥주싸개 소년으로 둔갑을 했던 것입니다.
미니유럽 (www.minieurope.be)은 브뤼셀 외곽에 있는 조그만 공원입니다. 이 곳에 가면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전체 유럽 국가의 유명한 건물들을 단 2시간 만에 다 구경할 수 있습니다. 실제 건물을 25분의 1로 축소했지만 정교하게 실제 건물과 너무나 똑 같습니다. 아이들이 공원에 들어가면 마치 거인나라에 들어간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여러분들도 혹시 브뤼셀에 오실 기회가 있으시면 이 곳에 가셔서 단 한번 만에 유럽 구경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1년 돌아다녀도 힘들다는 유럽 구경을 단 2시간 만에 마칠 수 있습니다. 비록 벨기에에는 남들에게 자랑할 건물들이 없지만, 남의 나라의 건물을 이용해서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브뤼셀은 거의 평지이며, 서울의 남산 같은 산이 도시 내에 없기 때문에 어느 높은 곳에서 브뤼셀 전체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아토미움 (www.atomium.be)입니다. 철(Iron)의 결정을 1500억 배 확대한 모양으로 전망대를 만든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관련 URL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곳에도 끊임없이 관광객이 몰린다고 합니다.
유럽의 도시 시청 앞에는 항상 광장이 있습니다. 브뤼셀 시청 앞에도 상당히 넓은 “그랑쁘라스”라는 광장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시청 앞 광장과 차이가 없는 평범한 광장이지만, 이 광장을 보러 많은 관광객이 몰래 든다고 합니다. 이 광장이 유명해 진 이유 중의 하나는 이곳에서 열리는 “꽃 카펫” 전시회 (www.flowercarpet.be) 라고 합니다. 실제 생화로 그 넓은 광장을 꽃 카펫으로 둔갑시켜 버립니다. 자주 열리는 것이 아니라 매 2년에 단 4일간 꽃 카펫이 만들어 집니다. 최근에는 1998년, 2000년에 행사가 있었고, 올해 8/15~18 일에 꽃 카펫이 만들어 졌습니다. 2년에 단 한번 있는 행사라 길래 구경 나갔다가 관광객들한테 밟혀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특이한 행사들이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서 아름다운 광장으로 소문이 퍼져 나가는 가 봅니다.
위에 소개한 브뤼셀의 유명 관광지를 보면, 이제 벨기에의 관광 정책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볼거리가 늘려 있는 유럽 대륙에서 “틈새 시장을 공략” 하는 정책입니다.
다른 주변 나라들은 워낙 관광 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만히 보존만 잘 해도 관광객이 몰려 들지만, 벨기에의 경우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개척하지 않으면 영국-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를 축으로 해서 지나가 버리는 관광객을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틈새 시장을 공략하는 주요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줌싸개처럼 널리 알려진 것은 끊임없는 변화를 주어 싫증나지 않도록 합니다. 그곳에 생맥주 탱크를 연결할 줄은 저도 상상을 못했습니다. 미니유럽 경우처럼 큰 것은 작게 만들고, 아토미움 경우처럼 작은 것은 반대로 크게 만들어 봅니다. 브뤼셀 시청 광장의 꽃 카펫 장식은 자주 하는 것 보다는 2년에 한 번 전시함으로써 희소가치를 극대화 시킵니다. 이런 독특한 아이디어 때문에 브뤼셀 전체의 이미지가 좋아지고, 유럽 사람들에게는 멋있는 도시로 여겨져서 항상 관광객으로 복잡한가 봅니다.
우리나라 서울은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 없는 한강이라는 정말 멋있는 강이 있으며, 재래 시장도 많고, 궁궐도 있고, 초 현대식 건물도 많고, 높은 산도 있고… 외국 관광객 입장에서 보면 없는 것이 없는 재미나는 도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외국 관광객을 만나기가 힘든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관광을 담당하는 기관에서는 아직도 벨기에 사람들한테서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2002. 10.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