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디자인 불모(不毛)지대로 꼽히던 중소기업계에서도 ‘디자인 혁명’의 바람이 일고 있다. 중소기업이 전문 디자이너와 손잡고 만든 히트 상품이 속출하고, 좋은 디자인 하나로 매출액이 폭증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디자인이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주방용기 업체인 창신금속은 지난해 창업 후 처음으로 1000만달러 수출을 달성했다. 그것도 음식을 데우는 가정용 용기(양식기) 단 한 품목의 디자인을 고친 결과였다.
이 회사 박창수 사장은 서구식 파티 문화에 착안, 업소용 뷔페 용기를 가정용으로 전환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용인대학교 산업디자인과 김득곤 교수에게 제품 디자인을 의뢰했다. 김 교수는 벗겨낸 뷔페 용기 뚜껑을 좁은 가정용 식탁 위에 놓아두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탈부착식 뚜껑 걸이를 용기 뒤에 달았는데, 이게 예상밖의 대히트를 쳤다. 박 사장은 “올해도 1500만달러 이상 수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형가전 전문 생산업체인 카이젤은 전 제품의 디자인 혁신 덕분에 연간 30억원의 적자에 시달리던 회사가 살아난 경우다. 작년 가을 부임한 대우전자 출신의 김상도 사장은 주력 제품인 가습기의 경우 투박한 박스형 몸체 디자인을 부드러운 튤립 모양으로 고쳤다.
여성 소비자층을 겨냥한 시도는 훌륭하게 성공해 같은 성능인데도 물건을 제대로 못 댈 만큼 주문이 폭주해 들어왔다. 카이젤은 또 제빵기·생즙기 등에서 독특한 디자인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수출을 급속히 늘려가고 있다.
덕분에 카이젤의 생산라인은 풀가동 중이고, 올 1~3월 매출액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배 늘어난 108억원을 달성했다. 김상도 사장은 “품질이 비슷하면 결국 디자인에서 승부가 난다. 소형가전 업체들이 디자인 전문업체와 손잡고 제품개발을 하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승산있다”고 말했다.
중소 생산업체와 디자인 전문업체 간의 제휴는 속속 나오고 있다. ▲무선진공청소기를 개발한 드림테크와 퓨전디자인 ▲차량용 천장형 TV를 개발한 미래에이브이와 인프러스디자인 ▲광학식 지문인식 광마우스를 생산한 임마뉴엘전자와 이디엄 ▲욕실용 액세서리를 개발한 법한공업과 세올디자인 등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최근에는 아예 제품 기획단계부터 생산까지 중소기업과 디자인 회사가 손을 잡는 사례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가스레인지 및 난로 부품 생산업체인 아이씨텍은 디자인 전문업체인 가람디자인과 함께 세계 최초로 원적외선 할로겐 히터를 개발, 전기 히터 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두 회사는 기존의 난로 이미지에서 탈피한 다기능 전기 스토브를 디자인하기 위해 시장 및 소비자 취향 조사에서 제품연구·생산마케팅까지 전 과정에 함께 달라붙었다. 그 결과 아이씨텍은 할로겐 히터 하나로 2000년 28억원의 매출액을 지난해 85억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고, 올해에는 이미 받아놓은 주문만 250억원어치에 달한다.
한국디자인진흥원 정경원 원장은 “디자인이 상품 가치를 높여주는 ‘미다스(만지면 황금으로 변한다는 신화속 인물)의 손’과 같다는 것을 중소업체들도 깨닫기 시작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