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단양, 자연과 대화를 나누다
단양의 겨울은 마치 자연이 조용히 속삭이며 다가오는 듯했다. 문경새재를 뒤로 하고 단양팔경으로 유명한 단양에 도착했을 때,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눈 덮인 산과 얼음으로 뒤덮인 강이 어우러진 모습은 차갑지만 신비롭고, 고요하지만 강렬했다.
얼음으로 덮인 강물을 바라보며 나는 그 아래에서 평화롭게 유영하는 물고기들의 세계를 상상해 보았다. 겨울이기에 그들은 인간의 방해 없이 자신들만의 리듬 속에서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부러움처럼 다가왔다. 인간이 만든 다리를 걸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왜 우리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할까?”
강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갈 때, 차가움 속에서도 나는 자연의 숨결을 느꼈다. 산 아래에서 얼음과 바위가 대화를 나누는 듯한 풍경은 경이로웠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이 만든 전망대와 다리가 산 위에 자리 잡은 것을 보며, 자연을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자연을 훼손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흔적들이 언젠가는 자연의 불균형으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무겁게 만들었다.
단양시내는 고요했다. 주말인데도 겨울이라 그런지 관광객이 드물어, 한적한 거리의 모습이 오히려 낯설었다. 사람들로 붐비는 활기가 없는 도시는 다소 쓸쓸해 보였지만, 전통 음식을 맛보며 우리 일행은 소박한 즐거움을 나눴다. 토속적인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내 정체성을 깨닫게 했다. “나는 본디 이 땅의 일부다.” 그런 생각이 나를 따뜻하게 했다.
점심 후 우리는 도담삼봉을 찾았다. 강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세 개의 돌덩이는 마치 자연이 빚어낸 예술 작품 같았다. 안내문에 적힌 설명을 읽으며, 200여 년 전 김홍도가 그림으로 담았던 이 풍경이 지금과 얼마나 달라졌을지 상상해 보았다. 세 돌덩이는 수백 년간 그 자리를 지키며 인간의 발자취를 조용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삶과 발길을 바라볼 것이다.
돌덩이를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이 돌덩이처럼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돌덩이가 전해주는 묵직한 존재감은 내게 사랑과 배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자연 앞에서 나라는 존재는 작지만, 동시에 자연과 함께하는 내 삶은 의미로 가득 차 있었다.
단양을 떠나는 길에 눈이 힘차게 내렸다. 반가움 속에서도 차가 미끄러질 듯한 긴장감은 내게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겨울의 단양이 선사하는 또 다른 얼굴이었다. 우리는 여행의 마지막으로 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선배 목사님의 교회를 방문하며 이틀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 여행은 단순히 경치를 감상하는 시간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자연을 그대로 존중하고 바라보는 일이다.
사관학교 교수님들과 함께한 이틀간의 여행은 내 마음속에 단양의 겨울을 새겼다. 강물과 얼음, 산과 바위, 그리고 눈 내리는 하늘 아래서 나는 자연과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 대화는 내게 소중한 깨달음을 선물했다. 언젠가 다시 단양을 찾을 때, 나는 이 깨달음을 더 깊이 새기며 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