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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성경정리
1. 구약 성경의 배열
<역사서>는 창세기부터 에스더까지이고,
<시가서>는 욥기부터 아가서까지,
<선지서>는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입니다. 각각 17권, 5권, 17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성경책 목록표에 세 가지 색연필로 구분해서 같은 부류를 표시해 봅시다. 예를 들면 <역사서>는 초록색, <시가서>는 노란색,< 선지서>는 빨간색 등으로 나누어 색을 칠해 봅시다. 세 가지로 눈에 확 띄게 구분해 놓는 것이 이번 일독학교 공부에서는 매우매우 중요합니다. 이 구분이 일독학교의 성경읽기표를 만드는 데 기본이 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게 될 것입니다.
※3 부류별
역사서 (17권) - 창세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에스더
시가서( 5권 ) - 욥 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아 가
예언서 (17권) - 이사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말라기
2. 구약 39권의 내용
1) 역사서 부류 17권
눈치가 있으신 분은 <역사서>! 할 때 벌써 감 잡으셨을 것입니다. 역사라는 것은 시간을 타고 흘러간다는 사실을 … 그렇습니다. 이 역사서 17권의 책들은 앞에 있을 책인지 뒤에 놓일 책인지 아주 분명한 순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17권을 비슷한 시기끼리 모아서 보통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창조시대 : 창세기 1∼11장:인류 일반역사
족장시대 : 창세기 12∼50장:이스라엘 국사의 시작
모세시대 : 출애굽기 / 레위기 / 민수기 / 신명기
사사시대 : 여호수아 / 사사기 / 룻기 / 사무엘상 / 사무엘하
왕정시대 : 열왕기상 / 역대상 / 역대하
포로시대 : 에스라 / 느헤미야 / 에스더
( 앞 글자만 따서 읽으면 창·족·모·사·왕·포가 됩니다)
① 창조, 족장, 모세시대 ? 창세기 / 출애굽기 / 레위기 / 민수기 / 신명기 ? 모세오경
'모세오경'이라는 말을 모르시는 분은 거의 없으실 줄 압니다. 모세가 기록한 다섯 권의 책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입니다. 그런데 창세기는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역사들인데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어떻게 이 창세기를 쓸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계시를 받은 사람입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를 쓰신 것입니다. 인류가 창조된 이후 어떻게 그 역사가 흘러내려 갔는지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동안 감추셨던 비밀을 모세를 통해 폭로(?) 하신 셈입니다. 창세기 앞 부분은 농축된 인류의 비밀이 집약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한두 번 읽는 것만으로는 알맹이가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깊은 사색과 연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② 사사시대 ? 여호수아 / 사사기 / 룻기 / 사무엘상·하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해서 차지하는 역사입니다. 또한 사사기도 그 뒤를 이어 땅 전쟁의 기록으로 시작됩니다. 사사기의 여러 부분이 여호수아와 겹쳐서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만큼 여호수아서와 사사기는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룻기는 사사 기드온 시대를 배경으로 한 기록입니다. 또한 마지막 사사라고 볼 수 있는 사무엘의 이야기를 비롯해서 사울, 다윗의 역사가 기록된 사무엘상하도 역시 사사시대의 성격을 갖고있습니다. 사사기 한 권만 사사시대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폭 넓게 여호수아부터 다윗 시대까지 범주를 만들어 놓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③ 왕정시대 ? 열왕기상·하 / 역대상·하
왕정시대(열왕기, 역대기)와 포로시대(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의 성경들은 자세한 설명들이 좀 필요한 대목입니다. 열왕기부터 포로시대가 어려운 부분이라서 그렇습니다. 사무엘상하는 다윗이 왕이 되기까지 일어난 일이니까 그냥 그렇게 계속 읽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이야기(열왕기상)부터 포로시대로 이어지는 부분은 복잡합니다. 그래서 지금 각 권 설명을 하면서도 말을 좀 많이 하려고 합니다. 제4과 읽기 실제에서 더 자세히 다루지만 지금 이곳 각 권 공부에서 이해하고 지나가야 할 것들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될 수 있으면 또 설명하고, 또 설명하려고 합니다. 자꾸만 성경의 흐름을 들어야 마지막에는 전체를 얼기설기 꿸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④ 포로시대 ? 에스라 / 느헤미야 / 에스더
지금 무얼하고 있는지 놓치지 맙시다. 역사서 17권을 한 권 한 권 간단하게 보고 있는 중입니다. 창족모사왕포(어? 이게 뭐더라? 하면 안되지요?) 중에서 포, 포로시대의 성경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를 공부하려는 것입니다. 이 세 권의 책은 한꺼번에 설명을 합니다. 주의해서 한번 읽어보세요.
2) 시가서 부류 5권 (성문서, 聖文書)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세 부류의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도를 전했습니다. 즉 제사장들은 율법을 알리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이상을 전하며, 지혜자들은 모략을 베풀었습니다(참조:렘 18:18, 겔 7:26). 제사장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선지자들은 선지자학교에서 후계자들을 양성했습니다(참조:왕하 2:5, 4:38∼44, 6:1, 2). 그리고 장로와 지혜자들은 지혜학교를 세우고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전도서의 '전도자'는 지혜학교의 교사였을 것입니다. 잠언과 전도서에는 '내 아들아'라는 호칭이 자주 등장하는데, 한글 개역성경에서 '선지자의 생도들'이라고 번역된 말이 문자적으로 '선지자의 아들들'을 뜻하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전도자나 지혜자가 '내 아들'이라고 부른 자들은 바로 지혜학교의 생도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혜문학은 고대 근동의 여러 나라에서도 발견되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지혜문학은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토대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주변 세계의 지혜문학을 초월합니다.
3) 예언서 부류 17권 (선지서)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는 모두 다 선지자의 이름입니다. 말라기도 사람이름입니다. 마지막 '말, 末'자에 기록할 '기, 記'자가 아닙니다. 이 <예언서> 부류의 17권은 왕정시대(12권)와 포로시대(5권)의 산물입니다. 사사시대도 아닙니다. 모세시대도 아닙니다. 족장시대도 아닙니다. 당연한 얘기인 것 같지만 이 사실을 못박아 놓고 예언서 부류를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왕정과 포로시대, 기억하십시오.
통상 선지서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하나는 대선지서, 또 하나는 소선지서입니다.
'대' 자가 붙은 것은 그 선지자가 '위대한 선지자'여서가 아니라, '그 책의 분량이 많아서'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이 대선지서이고, 나머지 12권은 소선지서입니다.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등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분량보다 역사적인 시기에 의해 목록을 구분하는 것이 성경을 읽는 데는 더 중요합니다. 공교롭게도 시기에 의해서 포로, 왕정으로 구분하고 보니 이것 역시 5권, 12권입니다. 포로시대 선지서 5권(에스겔,다니엘, 학개, 스가랴, 말라기), 왕정시대 선지서가 그 나머지 12권(이사야, 예레미야, 애가,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입니다. 대선지서, 소선지서로 나눈 것과
왕정시대, 포로시대로 나눈 것을 잠잠히 비교해 보십시오.
이제 아래에서 선지서 각 권 공부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성경목록은 대선지서, 소선지서로 구분이 되어 순서가 매겨있기 때문에 이사야부터 출발합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남방유다가 아직 망하기 전에 활동한 왕정시대 선지자들입니다. 각 선지서 옆에 어느왕 때의 활동인지 표기해 놓았습니다. 뭔가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하겠구나, 감잡으셔야 합니다.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난 과에서 공부한 것과 같이 구약을 17권, 5권, 17권으로 그 문학적 유형에 따라 정리만 해도 마음이 산뜻해집니다. 그리고 각 권에 대해 하나 하나 정리하고 보니 구약을 다 배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바로 그 <문학적 유형>에 따라 나눈 성경 목록이 얼마나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무리 유형별로 산뜻하게 구분을 해 놓았어도 구약을 읽어 내려갈 때 여전히 엉켜 있는 실타래같이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목록을 공부할 때 특히 왕국, 포로시대 부분의 목록들이 복잡했었지요? 거기가 막혀 있는 체증 부위이기 때문입니다.
나란히 붙어 있기는 해도 <역사서 부류>인 에스더와 <시가서 부류>인 욥기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또 아가서를 읽다가 이사야를 읽으면 전혀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문학적으로 분류하다 보니 두 부류의 경계선에 접해 있으니까 우리는 그냥 그렇게 읽는 것일 뿐입니다. 선지서 부분들의 책도 왔다 갔다 정신이 없었습니다. 포로에 있다가 왕정으로 갔다가, 또 포로로 왔다가 왕정으로 가고 말입니다.
즉, 선지서 17권은 왕정시대와 그 이후 포로시대에 살던 선지자들의 예언이라고 했는데 왕정시대의 역사와 포로시대의 역사 자체를 잘 모르니 선지자들의 예언은 더 더욱 이해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대선지서들과 소선지서들 속에는 왕정시대와 포로시대가 각각 들어 있어서 이것들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1과를 지나왔어도 여전히 어리벙벙한 겁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앞에서부터 무조건 읽을 것이 아니라 읽기 전에 먼저 정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문학적 유형에 따라 분류된 이 세 부류를 어떻게 하면 통하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우리 일독학교의 이슈입니다.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를 통하게 하려면? 생각해 보십시다.
1. 구약 성경 39권을 시간 순서대로 다시 분류합시다
문학적 유형에 의해서 분류되어 있던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 세 종류의 유형을 무너뜨립시다. 그리고 구약 39권 모두를 역사적인 순서에 의해서만 새로 배열해 보자는 것입니다. 시간 속에서 다시 순서를 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분류”라는 용어보다는 “통합”이라는 말을 쓰고 싶습니다. 39권을 일단 시간 순서라는 한 가지 조건에 의해서 정리를 해 놓으면 복잡할 게 없습니다. 때로는 문학적 유형, 때로는 시간 순서, 때로는 책의 분량 등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 분류되어 있던 것을 그저 시간 순서에 의해서만 정리하자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마음먹고 나면 앞으로 읽어야 할 구약이 웬지 단순하게 느껴집니다. 대충 이렇구나 하는 전체 윤곽을 일단 잡아 놓고 출발하면 전체 속에서 내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마치 여행하기 전에 지도를 충분히 연구하고 떠날 때처럼 그렇게 든든하고 흥미진진해집니다. 전체가 일직선상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될까요? 이 작업을 하려면 다음 몇 가지 단계가 필요합니다.
1) 베이스 캠프 설치
(우선 베이스 캠프를 설치합시다.< 역사서>를 베이스 캠프로 쓰자는 겁니다.)
39권을 시간 순서대로 다시 배열하려면 우선 39권 하나하나가 다 어느 시대의 책들인지를 알아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1과에서 39권 하나하나를 역사순서에 초점을 맞춰 설명한 것입니다. 눈치 채신 분도 계시지요? 자, 그렇다면 현재 우리들 입장에서 볼 때 제일 쉽게 눈에 들어 오는 시간 순서로 된 것은 어떤 부류의 책들입니까? 그렇습니다.< 역사서> 부류의 책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역사서>는 그 자체가 시간을 타고 흘러 내려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서>는 시간을 타고 흘러 내려온 순서대로 이미 되어 있으니까 이 <역사서>를 베이스 캠프로 쓰자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선 먼저 <역사서>17권을 주욱 벌려 놓읍시다. 17권이 베이스 캠프입니다. 그리고 나서 <시가서>의 5권, <예언서> 17권을, 벌려 놓은 베이스 캠프 17권 사이사이 어딘가에 쏙쏙 끼워 넣자는 말입니다.
어디에 끼워 넣어야 할까요? 각각 자기 시대에 끼워 넣는 겁니다. <시가서> 5권,< 예언서> 17권은 진공 상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설명을 하면서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 이렇게 셋으로 구분했던 개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막연하게 생각하실 것 같아 일부러 <>에 넣어 표기하고 있습니다. 1과에서 여러분의 성경책 목록표에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으로 구분해 놓으라고 했었죠?
이 구분이 우리 일독학교에서는 매우 중요하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시죠? 이제 앞으로 <>표시에 들어있는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라는 말을 보시면 얼른 17권, 5권, 17권이라는 복수 개념이 떠올라야 합니다.
=성경을 꿰뚫는 안경=
성경은 1,600년 동안 약 40명의 인간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진정한 성경의 저자라면 이 성경은 반드시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통일성이 있어야 합니다. 한 주제를 가지고 분명한 목적을 향해 흘러가야 됩니다.
수 천년의 인간 역사 속에서 인간저자들이 그때 그때 자기 상황에서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기록했습니다. 그 후 역사가 흘러가면서 그것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숨겨져 있기도 했습니다. 그 하나 하나의 낱권이 어느 시점에 한 군데 모아지는 때도 있었습니다(70인 역). 복음서나 편지로 쓰여진 것들은 교회사 속에서 종교회의를 걸쳐 '이것만 정경이다' 하고 최종적으로 인정한 때도 있었습니다. (제1과에서 배웠죠?) 그래서 오늘날 구약전서, 신약전서라는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성경책이 마치 어떤 한 사람이 책상 앞에 앉아 써 내려간 소설처럼 그 사건과 내용이 퍼즐 맞듯 착착앞뒤가 맞아떨어지고, 결국에 가서는 한 폭의 그림으로 한 눈에 확 들어온다면 우리는 이 책이야말로 하나님이 쓰신 책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어느 순간 이 사실이 뼈 속 깊이 느껴진다면 우리는 사도 요한처럼 죽은 자같이 되어 엎드러지는 경험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늘 이런 심정으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을 만나는 책이라서 그렇습니다.
1. 관점 1 : 성경은 '누가 왕이냐?'를 다룬 왕 싸움 이야기이다
'결국, 인류 역사에서 누가 왕이어야 하는가?'를 가장 기본적인 밑그림으로 보자는 말입니다. 누가 왕이냐?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왕이냐, 아니면 인간 그 누구가 왕이냐를 다룬 것이라고 성경을 크게 일단 한번 생각해 봅시다. "왕"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의미 중 하나는 "다스림"의 개념입니다. "통치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다스림"이라는 말은 반드시 "다스림을 받는 대상"이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통치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왕"이라는 말에는 "국가개념"이 있습니다. 이런 여러 생각들을 갖고 한번 출발해 보십시다.
세상나라든 하나님 나라든 '나라'를 이루려면 세가지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주권, 국민, 영토입니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사회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도 이 틀로 스케치하면 끝입니다. 하나님이 왕(주권)이신 나라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스라엘 백성(국민)을 만들어 가시고, 출애굽이라는 현실문제로 구원을 경험케 하시고, 가나안 땅(영토)을 주시고, 왕의 대리통치자 다윗을 세우시더니, 결국은 당신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내려와 목숨을 바쳐서 백성을 만드는 "이상국가의 모델"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세상나라들은 백성의 목숨을 밟아야, 자신의 통치권이 생기는 모델입니다.
섬기려 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는 것입니다. 가서 정복합니다. 그 땅의 백성들을 죽여 피를 땅에 쏟아야 그 정복자의 왕권이 인정되는 샘플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나라 왕 예수는 자기 생명을 죽여, 피를 쏟아 바쳐서 그 백성 하나하나를 국민으로 삼는 샘플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사실을 알고 그 왕에게 항복하면 그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2. 관점 2: 셋 계열은 가인 계열과 섞이면 안된다, 정복해야 한다
1) 아브라함은 갑자기 나타난 사람인가?`… 그는 셋 계열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아브라함에 와서야 시작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11장까지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심어 놓으셨던 사실을 꼭 알아야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명령하시고 그에게 나타나십니다만 11장까지의 역사 속에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사실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이들은 거룩한 "계열"을 이루어 역사를 타고 흘러 내려 왔습니다. 어떤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의 영향을 받은 다음 세대가 있었으며, 이런 흐름이 계속되어 거룩한 무리의 계보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
하나님의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일독학교 학생 여러분! 그렇다면 성경이 처음으로 소개하고 있는 족보가 누구한테서 시작해서 누구에게로 가는 것인지 눈여겨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것은 셋으로부터 시작되는 셋 계열의 족보입니다(창 5장). 그런데 이 셋은 누구 대신 나타난 사람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벨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한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지 않으시고 다시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구원입니다.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왕이심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제물을 가지고 나가 하나님께 용서를 빌며 다시 그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그의 백성으로 살아갔습니다. 그 부류의 사람들 중 대표가 아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사람들은 가인이 대표로 있는 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종교전쟁이 가장 무섭습니다. 테러와의 전쟁도 그 뿌리가 그곳에 닿아 있습니다. 세상에 처음 일어난 살인도 그 싸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자들은 세상의 핍박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결단코 이 무리들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셋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 셋이야말로 아담을 이어가는 후손으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족보라는 형식을 빌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창세기 5장 1∼4절을. "아담 자손의 계보(족보)가 이러하니라…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이 이후로 성경은 아담이 가인을 낳았다거나, 아벨을 낳았다거나 하지 않고, 언제나 "아담은 셋을 낳았다"(대상 1:1, 눅 3:38)고 말합니다.
공식적인 성경 역사의 족보는 아담이 셋을 낳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을 잇는 셋의 역사가 족보를 타고 흐르다가 멈추어 서는 곳이 있습니다(창 5장). 노아입니다. 셋의 족보는 노아까지 이르는 족보입니다. 이제부터 전개되는 중대한 사건은 노아를 통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이제 노아가 주인공이라는 말입니다. 보십시오. 이 족보가 노아를 찾아내더니 계속해서 노아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노아 얘기를 하고 싶어서 셋으로부터 노아까지 온 것입니다. 거룩한 계열의 사람들입니다. 앞뒤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는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앞으로 성경은 이 흐름을 따라 내려갈 것이라는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10장에 다시 족보가 나옵니다. 노아부터 다시 시작되는 족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족보도 방향이 있을 텐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12장의 아브라함입니다. 노아의 아들 중 셈에게 초점이 맞춰지더니 결국은 아브라함에게 가서 멈춥니다. 왜냐하면 10장이 셈의 족보로 끝나는데 11장 바벨탑 사건을 얘기한 후 11장 끝에 와서 다시 셈의 족보를 거론하면서 데라가 등장하고 아브라함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의 신앙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여호와께 단을 쌓고, 하나님과 동행하며"라는 한두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셋?에녹?노아?셈?아브라함… 셋 계열입니다.
2) 네피림, 니므롯 같은 사람은 갑자기 나타난 사람인가?
이 셋 계열이 아닌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서는 성경이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죄를 지으면서, 이 세상 문화를 발달시키는 사람들'이라고 특징지우고 있습니다.
가인계열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 문화에 아주 뛰어났습니다. 각종 산업, 건축, 목축업, 공업, 일부다처제, 예술(창 4:16∼22) 등의 원조가 되었으며, 이들 가운데 다스리는 원리가 있었다면 그것은 처음에 말했던 바와 같이 힘 센 사람이 폭군으로 군림하며 지배하는 것(창 4:23∼24)이었습니다. 이들 가인의 후손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패역한 노아시대, 바벨, 소돔, 고모라, 가나안과 같은 당시로서는 매우 뛰어난 세상문화를 창출하는 주역이 됩니다. 즉 가인의 계열을 타고 네피림과 니므롯같은 당시 폭군지도자가 나타납니다.
3) 셋 계열(하나님 나라)과 가인계열(세상 나라) 간의 긴장
기독교 세계관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두 계열간의 긴장을 "영적 전투"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 둘 사이는 다음 유형으로 유지됩니다.
① 세상 나라 문화가 하나님 나라 문화를 침투해서 세속화되는 유형
② 하나님 나라 문화가 세상 나라 문화를 침투해서 하나님 나라로 변화 시키는 유형
이 유형을 정리해 놓고 다시 성경 처음으로 돌아가십시다. 성경의 역사는 한마디로 "왕 싸움"의 역사로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왕 되심을 거부한 아담의 후손들은 두 계열로 나뉘어 흘러 내려왔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한 사람들은 전체가 다 하나님을 대적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하나님 쪽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있었더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상하게도 하나님 쪽에 있게 되는 이 현상을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로 정리합니다. 그들을 받아들이시는 하나님은 "피흘림의 제사", "용서", "화해", "순종하는 삶", "하나님의 통치를 받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됨" 등, 소위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길을 터 놓으셨습니다. 당신이 창조하신 사람들을 버리지 않으시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구원"이라고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렇게 교제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1. 창세기 읽기 (창 출·민·수·삿·삼·왕)
1) 창 1∼11장 (창조, 타락, 노아 홍수, 바벨탑)
제3과에서 배운 내용을 생각하며 읽읍시다. 인류일반 역사입니다.
2) 창 12∼20 장 (아브라함으로 시작되는 하나님의 나라)
12장의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갈대아라는 나라는 성경 역사 속에서 때로는 바벨론, 때로는 앗수르로 불리운 민족입니다. 북방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이 이들에 의해 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때는 약 기원 전 2,000년으로 추정합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위대한 떠남이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는 첫 출발입니다. 세상나라(갈대아)에서 떠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라엘의 국부가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국사가 시작됩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열국의 아버지가 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도 나라를 세우시는데 특히 창세기는 “국민 만들기”를 하시는 중이라는 큰 그림을 가집시다. 그러므로 “누가 하나님 나라의 후사(기업을 물려받을 후손)인가?”가 관건입니다. 사실 신약에 들어와서도 이 질문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도 그 당시의 한 석학으로서, 정치지도자로서, 또 깨끗한 심령을 가진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평생 숙원의 질문을 갖고 씨름했었습니다.
모든 인류는 결국 이 질문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가?” “누가 구원을 받는가?” “어떻게 해야 구원받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을 구체적인 인간의 삶을 통해 하고 계신 것입니다. 누가 그 나라의 백성들인가를 보임으로써 그 구원의 원리를 한 가지씩 한 가지씩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가 시작되는 12장도 이런 질문을 갖고 읽읍시다.
20장까지의 아브라함의 생애는 다음 내용들입니다. 세상 나라 가운데 있던 아브라함을 “은혜”로 부르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게 되고 신약의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 “믿음”을 정의할 때 이 아브라함의 케이스를 꼭 갖다 대는 것입니다. 즉 누가 하나님이 세우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후사(아들, 하나님의 자녀)는 인간의 노력이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출생시키신다는 뜻입니다. 사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한 인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인데 그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출산입니다. 하나님이 출산하십니다. 이 나라의 백성들은 하나님에게서만 나옵니다. 거듭남의 예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첫 백성인 아브라함에게 첫 아들(하나님의 아들, 약속의 자녀; 갈 4:28)이 반드시 출생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증명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계약을 하자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계약(창 15장)에 목숨을 거십니다. 100세나 되어 아들을 갖게 되는 과정, 소돔과 고모라 사건, 주변 연합국가들과의 전쟁, 이삭의 출생과 번제 사건 등을 통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우는 이유를 생각해 보고, 하나님이 앞으로 어떻게 이 약속을 이행해 나가시는지 주시하며 읽읍시다.
3) 창 21장∼26장 (아들을 주심 : 이삭의 생애 )
그 첫 후사는 이삭이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이삭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예표합니다. 이삭은 출생부터가 하나님의 방법으로 태어 났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출생도 인간의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자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사건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제물로 내어 놓으시는 구원사역의 정점을 예표로 보이시는 것입니다. 수풀에 걸린 염소는 다시 살아나는 이삭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자기네 인생을 그저 살았는데 그들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님 나라의 특징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신비입니다.
앞으로 역사 속에 진행될 하나님 나라는 독생자를 내어 놓으시는 구원이 그 핵심이 될 것이라는 신비스러운 계시입니다. 그런데 이 핵심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생애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표현됩니다. 역사적 사건 속에서 정확하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며 읽읍시다. 인간이 자기 삶을 살아도(자유의지) 하나님의 계획(주권)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사실을 깊이 깨닫고 감사하며 이 대목을 읽는다면, 당신은 A.D. 2,000년대에 살고 있으나 성경 속에서 이 주인공들과 함께 사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바로 오늘 당신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기록으로 남기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당신 때문에 남기셨다는 말입니다.
4) 창 27장∼37:1(‘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명명 되는 하나님 나라 - 야곱의 생애)
이삭에게서 쌍둥이 두 아들이 태어납니다. 야곱과 에서입니다.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셔야겠다는 하나님의 뜻은 참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둘 중에서 누구는 선택되고, 누구는 선택되지 않습니다. 이 하나님의 선택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밖에 없는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칼빈이 얘기한 대로 이 선택에는 조건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조건적 선택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온 인류는 모두 다 하나님을 떠났는데 그 중에 어떤 이들(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과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셋이나 에노스나 에녹이나 노아 등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했습니까? “은혜를 입은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입은 자들은 그들에게 공로가 없습니다. 무슨 조건이 있어서라면 그것은 이미 은혜일 수 없습니다. 쌍둥이라는 이미지는 똑같다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무조건적 선택, 은혜를 이렇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에서 보면 오히려 야곱이 나쁜 사람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롬 3:23) 하나님은 더 이상 선행으로 무엇을 판가름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첫 관계 회복은 믿음으로, 은혜로 된다는 것입니다. 도덕률을 넘어서는 것이 성경 원리입니다. 그래서 선, 악이라는 기준만으로 성경을 읽으면 이해가 안되는 것이 많습니다.
야곱은 에서를 피해 밧단아람으로 피신해 그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열두 아들을 갖게 됩니다. 밧단 아람에서 이 아들들을 얻습니다. 후에 모든 재산과 식구들을 이끌고 형을 피해 도망 나왔던 가나안으로 되돌아 갑니다. 이들이 후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되며 창세기 12장에서 출발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열두 아들의 후손들이 번성하면서 그 구성원이 됩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다시 얻은 이름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의 이름으로 확정됩니다.
5) 창 37:2∼50장 (이집트로 향하는 야곱의 식구들 - 요셉의 생애)
사실 ‘족장’하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까지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는 야곱의 12아들 중 유독 요셉의 생애에 초점을 맞춰 아브라함, 이삭, 야곱 수준으로 그의 생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제 앞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이집트라는 곳으로 무대를 옮기게 되는데 그 역할을 하는 장본인이 요셉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 분들은 이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먼저 미국에 첫 발을 디뎌서 자리가 잡히면 그 후에 한 식구 한 식구 초청해서 모든 가족이 다 오게 되는 것처럼 이 요셉이 첫 사람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나타나는 “출애굽의 역사”는 “입(入)애굽의 역사”가 있은 다음에 생긴 일입니다. 어떻게 형들에게 팔렸으며, 어떻게 이집트에서 고생했으며, 혼자 몸에 그것도 외국에서 어떻게 “자기 조상의 하나님”을 인식했는지,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을 지표로 삼고 어떻게 실제 생활에서 그 말씀대로 살았는지를 살피면서 읽읍시다. 야곱도 부모 떠나 혼자 살며 하나님을 경험했는데, 아들 요셉은 그 아버지보다도 훨씬 성숙한 인생을 삽니다. 이집트에서 정치적으로 큰 지도자가 된 요셉은 아버지와 그 열 한 형제들을 이집트로 오게했고, 새로운 이민생활을 시작하는 내용으로 창세기는 끝을 맺습니다.
6) 창세기 결어
우리가 창세기 12장에서 처음 이슈로 생각했던 주제는 “누가 하나님 나라 후사인가?”였습니다. 누가 하나님 나라의 국민인가 입니다. 창세기가 끝나면서 그 뚜껑을 열어보니 야곱의 70식구로 귀결되었습니다. 이들로는 아직 나라를 이룰 만큼 많은 숫자가 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섭리 가운데 400년이라는 긴 기간을 침묵하십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유목민인 그들은 풀을 찾아 여기 저기 다녀야 했기 때문에 그냥 가나안 땅에 있었으면 70식구가 여기 저기 흩어져 살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집트의 고센이라는 땅을 바로가 주어서 한 곳에 모여 살았고 그래서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생산이 중다하게 되었다고 출애굽기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국민 만들기를 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집트를 하나님 나라 백성 만드시기 위해 가장 좋은 장소로 온상처럼 400년 동안 사용하셨습니다. 그동안 장정 남자만 60만명 정도, 전체 인구는 약 250만 명 정도까지 증가하게 됩니다. 즉 다른 나라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공동체로
서 단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 사이에서 하나님의 후사들은 70명이 250만 명 가량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2. 출애굽기 읽기 (창, 출 민·수·삿·삼·왕)
앞으로 전개되는 출애굽기의 이슈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한 국가의 국민들이 발 딛고 살아야 하는 “땅”을 찾아 나서는 일이고,
둘째, 한 국가로 건국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법”이 제정되는 일입니다.
“법”은 준행하라고 있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 백성들이 그 “법”을 우선 “이해”해야 하고(교육), 그 후에 “준수”할 실력이 있기까지 소정의 훈련과정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시다.
위의 두 가지만 염두에 두고 출애굽기를 읽읍시다. 십계명이 어떻고, 율법이 어떻고 제사법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일단 옆으로 밀어 둡시다. 우선 한 국가가 서기 위해 당연히 있어야 할 틀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법, 땅, 이 두 가지를 정리하고 있는 중이라고 쉽게 생각하고 출애굽기를 읽읍시다. 한 나라를 구성하기 위해 주권과 영토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국민들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이 그렇게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으셨습니다. 땅을 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들을 구원해 내시는 겁니다. 그래서 출애굽 사건은 노예 상태로부터의 자유를 주는 것이 대표 이미지인 것이 사실이지만 더 나아가 그들은 영토를 찾아 소유해야 한다는 사실이 절실한 현실이었습니다. 땅이 있어야 살지요.
그런데 이집트의 고센에서 400년을 살아온 히브리 민족이 그곳을 떠나 나오자마자 그 옆 동네쯤에 울타리가 쳐 있고 “이곳은 히브리 민족의 땅!” 하고 영토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집을 지을 때 땅을 마련하면 소위 “새끼줄” 쳐 놓고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합니다. 그 땅 임자인 나만 그 땅에 대해 권리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 가지 재앙으로 바로가 항복을 하고, 홍해가 갈라지고 하는 대목까지는 승승장구 흥분해서 좇아 나왔지만 막상 홍해를 건너 이집트의 위협에서 자유하게 되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울타리 쳐 놓은 땅”이 아니라 “광야”였습니다. 생존 불가능의 땅이었습니다. 구원은 받았는데 살아가야 할 인생은 여전히 “광야”였습니다. 아직은 그 땅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이 정착하고 살아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국법”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는 공동체가 되었으니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그 공동체가 무엇에 의해서 유지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무 경험이 없던 오합지졸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의 당당한 백성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하나님의 뜻은 어떠한지를 제시하시는 것이 급선무였던 것입니다. 세상 나라들을 향해 “여기 하나님 나라가 있는데, 이런 특징이 있다!” 하고 선전하려면 그 오합지졸 같은, 방금 전에도 노예로 노동만 하던 그들에게 훈련과 교육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야 하는 땅 가나안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공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고도의 세속 문화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찬란한 문화와 종교를 가지고 발전하는 도시 국가가 떡- 자리를 잡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거기를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이라는 말은 곧 “가나안 문화 정복”, “가나안 문화 파괴”, “가나안 종교 파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찾아 소풍가는 듯한 낭만적인 말이 아닙니다. (앞에서 관점 공부를 할 때 하나님 나라 백성의 ‘존재 의의’는 세상나라 정복에 있다고 말씀 드렸지요? 구원의 방향성을 잃지 말자고 그랬지요? 그 관점으로 이 상황을 보십시오. 그래서 이스라엘은 가나안과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출애굽은 전투태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민수기도 전투태세입니다.
전투를 위해 규칙을 정해야 했고, 병력을 파악하기 위해 계수를 해야 했고, 작전을 짜야 했고, 효과적인 관리를 위해 소대, 중대, 대대를 편성하듯,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런 스토리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모든 경우의 가능한 상황, 즉 결혼 전 남녀 관계부터 시작해서 재산 문제, 형사 사건, 민사 사건 등 수도 없이 많은 일들을 해결해 주면서 또한 전투태세로 무장시켜야 하는 이중부담입니다. 분쟁이 발생했을 때 재판도 해야 했습니다. 병이 생겼을 때 대처해야 하므로 보건사회법도 있어야 했고, 몇 백만 명을 움직일 수 있는 조직과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 어떻게 그 땅을 관리할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아주 세심한 모든 법을 하나님께서는 친절하게 다 세세히 주셔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 사이에 생기는 일들에 대한 모든 법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법 위에 가장 큰 법을 주셨는데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법입니다. 그래서 십계명도 첫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그 아래는 사람 간의 일입니다. 하나님과는 어떻게 관계하며 살 것인가, 즉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에 대해 주신 구체적인 법을 한마디로 “성막”에 관한 규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출애굽기 이후에 광야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을 위에서 얘기한 관점을 가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봅시다. 성경이라고 해서 그렇게 특별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한 나라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만드시는구나, 성막, 제사법, 절기 등 하나님 섬기는 규례가 있고,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규례들이 있구나 … 하고 생각합시다. 그 당시 오합지졸로 광야까지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것이 얼마나 필요했겠나 생각하고 읽읍시다. 지겹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당시 그들의 입장이 되어서 같이 출애굽해 봅시다.
3. 민수기 읽기 (창, 출 민 ·수·삿·삼·왕)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부터 출발한 이 하나님 나라가 야곱의 열두 아들로 골격을 만들어 250만 명 가량의 인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민수기에 와서 이제 한 공동체로서 조직을 갖춥니다. 명실공히 한 나라가 되어서 이 세상나라를 정복할 바로 “그 기회”가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내적으로는 법으로 든든히 조직을 강화했고, 이제 드디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에 대해 한 번 할 일을 해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온 것입니다. 세상문화 정복입니다.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을 주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애써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신 목적이 하나님 나라를 그 곳에도 전파하고 그 영역을 넓히는 것이었는데, 막상 다 와서 뚜껑을 열어보니 이스라엘은 자격미달이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그
대표들이 정탐하고 나서 보인 반응으로 보아 도저히 가나안 정복은 역부족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아직 싸울 힘이 없는 믿음의 졸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을 가지고는 가나안을 정복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은 그 다음 세대로 그 사명을 미루셨고, 그 다음 세대 역시 40년은 더 훈련시켜야 된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흔히 생각해 왔던 광야생활 40년을 하게 된 이유는 말 그대로 ‘더 훈련시키시려고’ 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훈련인가를 분명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냥 막연히 신앙을 훈련시키셨다든지, 믿음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라든지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인으로서의 “사명”을 자각하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훈련입니다. 이스라엘의 존재의의를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이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위치, 가데스 바네아까지 다 와 가지고 광야 제2세대 이스라엘은 이제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유리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1세대는 결국 광야에서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사명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면 똑같은 얘기입니다. 가나안을 정복하고 싸우는 일은 무엇입니까? 선교입니다. “선교”는 선교부원만 하는 교회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전도”는 전도폭발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증인”의 삶을 사느냐 못사느냐는 그 교회 공동체가 죽느냐 사느냐, 사활이 달린 이슈입니다. 이 세상을 향해 침투해 들어가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사명은 교회 공동체 전체가 목숨을 걸고 지향해야 하는 이슈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있는 이들을 건져내면 그 다음에 교회 공동체가 하는 일이 교육(하나님의 법도를 계속 가르쳐가며 이스라엘에게 경배받으셨던 것처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그대로 살라고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갓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연석이기 때문입니다. 다듬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훈련을 통해 깎여져야 모양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성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이처럼 구약에서도 말하고 있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구원 얻은 자로서 그 얻은 구원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의 자각이 없으면 그저 늘 이집트에서 먹던 수박, 마늘, 파, 부추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서도 이 세상 문화를 정복(전
도, 선교)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늘 나 복 받는 것, 내 식구 잘 되는 것에만 관심이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나 한 사람 구원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나 위로받고, 나 치유되고, 나 사랑받는 것만 관심을 가진 교회 공동체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소멸된다는 무서운 경험을 이 광야의 구약교회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어디 250만이 모이는 교회가 있습니까? 광야의 이스라엘 교회는 그 성도가 적어도 250만명 가량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구원을 경험한 이래, 그 구원의 하나님을 열심히 배우고, 외적으로는 이 세상을 침노하는 증인의 삶을 살았어야 했는데 그런 태도조차 없이 아낙 자손을 두려워해서 원망하고 불평했을 때 하나님은 250만 명 교회 교인도 쓰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 살긴 살아도 하나님이 쓰실 수 없이 살다가 가는 오늘날의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다니기는 다녀도 그저 나 한 사람 겨우 구원받고 살다가 그저 가는 것입니다.
민수기를 떠나가면서 여러분은 어떤 잔상이 남아 있습니까? 어떤 그림이 남습니까? 그렇습니다. 황혼의 들녘, 광야에 즐비하게 엎드러져 죽은 이들의 길게 드리워져 있는 주검입니다. 가나안을 향해 가겠노라고 꿈을 안고 이집트를 떠나 고생고생하며 광야까지 왔는데, 그만 그 광야가 끝이었습니다. 목적지를 놓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목적지를 가야하는 그 이유, 이스라엘의 존재 의의를 잊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교회생활하지 맙시다.
4. 여호수아 읽기 (창, 출, 민, 수 삿·삼·왕)
이제 모세의 마지막 설교가 다 끝나면 우리는 모압 들판에서 벌떡 일어나야 합니다.
성막을 가운데 모시고 동서남북으로 각각 흩어져 쳐 놓았던 텐트를 또 걷어야 합니다.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지파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왜 그런지 아시죠? 이 세 지파는 요단 동편 길르앗 땅에서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때 함께 요단강을 건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20세 이상 병력들은 요단 서편 가나안 땅 정복을 도우려고 짐을 꾸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요단 동편
에 남겨두고 긴 여행을 위해 헤어지는 겁니다.
세 번에 걸친 마지막 고별 설교를 끝으로 하고 위대한 종 모세는 죽습니다. 이제는 모세의 후임, 여호수아를 좇아 요단강부터 건너야 드디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호수아” 하면 얼른 “땅 찾기”가 생각나야 합니다. 사실 400여 년 전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살았던 땅, 그 땅입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다 나온 세대들의 후손, 광야에서 태어난 젊은 청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하는 땅이 바로 그들 조상들이 발붙이고 살았던 땅입니다. 이미 이 사실은 아브라함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창 15:16).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의 목숨을 걸고 반드시 지키리라 언약하신 그대로 이렇게 신실하게 이루시는 장면입니다. 여호수아는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책입니다(수 21:45).
** 여호수아의 구조
이제 여호수아는 다음 세 영역으로 나뉘어 있음을 기억하고 읽읍시다.
들어감 ? 약속의 땅에 드디어 들어감(1∼5장)
정복함 ? 약속의 땅 정복 전쟁(6∼12장)
분배함 ? 정복한 땅을 지파 별로 분배함, 안식이 찾아옴(13∼22장)
여호수아의 마지막 사명 ? 고별설교(23∼24장)
5. 사사기 읽기 (창, 출, 민, 수, 삿 삼·왕)
1) 사사기 구조
① 여호수아서 연결선 상에서 본 정복 (삿 1:1∼2:9)
여호수아가 앞장서서 땅을 정복한 이야기는 여호수아에 기록되어 있지만, 지파별로 정복한 전투들은 다 일일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여기 사사기 1:1∼2:5 까지는 유다 지파가 앞장서서 자기네가 살 땅을 정복한 기사와, 갈렙의 가문에서 아낙 자손을 정복한 내용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록은 이미 여호수아서에 그 내용이 있습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저자는 기록으로 남길 때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내용들에 연이어 땅 정복기사를 남긴 것 같습니다.
② 사사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 (삿 2:9∼3:6)
③ 사사들의 활동과 업적들 (삿 3:7∼16:31)
옷니엘 ? 에훗 ? 삼갈 ? 드보라(바락) ? 기드온 ? 돌라 ? 야일 ? 입다 ? 입산 ? 엘론 ? 압돈 ? 삼손
사사시대의 사사들은 위와 같은데 대체적으로 열두 지파별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이들 중 크게 활동한 대표적인 사사들은 옷니엘, 에훗, 드보라, 기드온, 입다, 삼손 등입니다.
④ 사사시대를 대표하는 두 이야기(삿 17장∼끝)
6. 사무엘상·하 읽기 (창, 출, 민, 수, 삿, 삼 왕)
1) 이 지점에서 사무엘은 누구인가?
사무엘은 왕정을 수립하는데 하나님께 쓰임받은 마지막 사사입니다. 사사기 끝 부분에 룻의 스토리가 붙어있어도 괜찮을 뻔했다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사무엘의 이야기도 사사기 뒤에 붙어있는 이야기라 해도 될 것입니다. 12사사의 행적이 사사기
에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은 사무엘도 사사이기 때문에 내용상으로는 사사기 뒤에 넣어도 무난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만 그 한 사람이 초대 왕 사울과 2대왕 다윗을 왕되게 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감당하는 내용이라 그 분량이 많았을 뿐입니다.
또한 지금까지는 사사시대였던데 반해 이제는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이므로 다른 사사들과는 달리 그 역할이 독특했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이런 훌륭한 지도자들을 통해 다시 하나님 나라가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즉 미가까지만 보면 실망이지만 룻기를 보면, 또 이 사무엘을 보면 희망입니다. 그들은 평범한 자기네들의 인생을 살았지만 룻은 룻대로, 사무엘은 사무엘대로 하나님 나라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확보하는 결과를 낳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2) 사무엘상·하의 중요한 스토리들
워낙 내용이 많지만 하나하나 읽어보면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의 생애, 사울의 생애, 다윗의 등장, 다윗의 초년기, 다윗의 중년기, 다윗의 말년기 등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놓고 읽어보면 구분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① 사무엘의 생애 (삼상 1:1∼8:22)
사무엘의 출생과 유년기 ? 엘리 집안의 몰락 ? 사무엘의 사역 시작과 미스바 성회 (미가신상 사건도 있었지만, 사사시대 때에 이런 뜨거운 영적 부흥회도 있었군요.) ?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오늘날도 중국에는 교회 지도자가 부족해서 한 목회자가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목회한다고 합니다. 사무엘도 이 우매한 사사시대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해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라마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삼상 7:16∼17). 이 지역은 가나안 땅 중부 쯤에 분배된 에브라임과 베냐민 지역에 있는 성읍들이었습니다.
② 사울의 생애(삼상 9:1∼15:35)
초대 왕이 된 사울 ? 암몬 자손을 물리친 사울왕 ? 사무엘의 마지막 설교 ? 블레셋과의 전쟁 ? 사울의 죽음모세시대에는 블레셋이라는 나라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여기 다윗 시대에는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이방나라들이 등장하는데 다 그게 그거 같아서 아무 감각 없이 스쳐 지나가듯 하면 안됩니다. 적어도 어느 나라가 어느 시대에 등장하는가 쯤은 대충이라도 익히는 것이 앞으로 성경을 일독, 이독 계속해 나갈 때 매우 필요합니다.
12지파의 지도를 외웠듯이 이 나라들도 대충 어느 지점쯤에 있는 나라이며, 이스라엘의 어느 시대와 맞물리는지 공부해 놓아야 합니다. 우리 귀에 익숙한 여러 다른 나라들이 있는데 여기 왕국시대 초기에는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최강적이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함 자손으로 애굽혈통의 해양민족입니다. 일찌기 헷 족속(힛타이트)에게서 철기 문화를 배워서 당시로서는 싸움 잘 하는 나라였습니다. 특히 평지 해안 지역은 다윗왕 때에 와서야 정복되는 강한 사람들이었고, 오늘까지도 “블레셋⇔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상극이 되어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사울왕이나 다윗 왕이나 다 이 블레셋으로부터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인가가 중요한 관건이 된다고 했습니다.
③ 다윗의 등장 (삼상 16:1∼31:13)
④ 다윗, 왕으로서의 초년기 (삼하 1:17∼7:29)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또 모세와 계약하셨듯이 잊지 않고 이 중요한 대목에서 그와 똑같이 언약을 하십니다(삼하 7장).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 이 말씀이 구약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합니다. 이 말씀은 쉽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다윗왕조를 무너뜨리는 역성혁명(왕조멸망)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약속대로 북방 이스라엘은 왕조가 아홉 번 바뀌지만, 남방 유다 다윗의 왕조는 바뀌지 않고 다윗의 자손으로만 왕이 이어집니다. 두 번째는 또한 다윗의 위(왕 혈통)는 영원토록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다윗의 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어가시는 왕권을 의미하게 됩니다. 신약에 와서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와 같은 내용으로 예수님께 간구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사실 이런 구약의 역사를 안 사람들이며 “다윗의 위를 이어 오실 왕이 바로 예수 당신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의미 있는 외침입니다.
⑤ 다윗왕의 중년기(삼하 8:1∼19:43)
다윗의 전쟁업적 ? 므비보셋 이야기 ? 암몬과 아람 격퇴 ? 밧세바 사건 ? 솔로몬 출생 ? 압살롬의 반역 ? 다윗의 망명 ? 암살롬의 패망 ? 다윗의 예루살렘 귀환
⑥ 다윗의 말년기(삼하 20:1∼끝)
세바의 반역 ? 3년 기근과 사울 가문 처단 ? 다윗의 노래 ? 다윗의 유언과 공적 ? 인구조사와 재앙
1. 역대상·하 읽기 (대 라·느)
역대상·하는 창세기부터 다시 시작하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족보부터 새로 시작합니다(대상 1:1). 족보형식을 빌어 창세기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정돈합니다.
그리고 다윗왕국으로 이어지는 다윗의 계보를 기록하므로 앞으로 진행해 나갈 방향이 유다왕국의 후손으로 오실 왕 “예수”로 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포로시대 주인공들의 후손들이 바로 400년의 암흑기를 지나 신약시대 무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역대상·하 이후 등장하는 포로시대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귀환해서 대를 이어 400년을 살다보니 무대는 어느덧 신약의 배경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역대상·하의 중심인물이 다윗왕이라는 사실도 바로 이 역대상·하가 예수님을 향하여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 역대기는 열왕기하와는 달리 특별히 성전에서 수종드는 레위인들의 활동조직, 제사드리는 성전문화를 중점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문화의 중심은 성전입니다. 이것을 강조한 것이 역대기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위의 성전문화와 제사장문화를 이루어가는 역사는 다윗왕까지의 얘기입니다. 그 이후 솔로몬의 역사를 거쳐(열왕기에서 다뤘지요?) 남북이 갈라집니다. 열왕기의 머리 부분의 분열역사는 여로보암 얘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중심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남방 유다의 역사만 다루는 역대기에 있기 때문에, 르호보암 이후 남방 유다의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열왕기에서는 북이스라엘 역사 사이사이에 살짝 살짝 끼워있던 얘기들인데 여기서는 그 역사만 죽 이어 나오는 거지요.
르호보암으로부터 출발하는 남방 유다왕국을 네 가지의 특징을 붙여 구분하면 쉽습니다.
남북 갈등시기, 남북 동맹시기와 선한 왕들의 시기, 앗수르에게 시달리는 시기, 바벨론에게 망하는 시기, 이렇게 네 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남북 갈등시기
처음에는, 말 그대로 분열되다 보니, 남북이 원수관계입니다. 왕국으로서는 초대왕 르호보암(1대), 아비얌(2대), 아사(3대)왕까지가 긴장하면서 지나갑니다. 이 아사(3대)왕은 남방 유다에서 처음으로 선한 왕이라고 칭찬들은 왕입니다.
② 남북동맹시기와 선한 왕들의 시기
그러다가 북이스라엘과 갈등 관계가 사라집니다. 남북이 화해하는 시기입니다.
북이스라엘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이 딸 아달랴를 유다의 여호사밧(4대)의 아들 여호람(5대)에게 시집보내면서 남북이 평화시대를 누립니다. 정략결혼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아달랴와 여호람 사이의 아들 아하시야(6대)가 북이스라엘 예후의 부하들에게 잡혀서 살해되자 이후 아달랴(7대) 여왕이 다윗의 혈통을 끊어버리려는 시도로 요아스(8대)를 제외한 왕족을 몰살하는 비극을 낳았다는 사실입니다.
아합왕은 자기 아내 이세벨을 통해 북이스라엘에 바알을 들여오는 장본인이 되어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빠지게 하는 주범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 딸을 남방유다에 시집을 보내고 여기 남방유다에 바알사상을 들여오는 역할까지 한, 대단한 악역의 왕입니다. 그래서 열왕기의 몸통 부분은 아합왕의 역사로 대표되고, 엘리야는 이에 맞서 싸운 것입니다. 이와같이 남방 유다는 이스라엘과 평화하는 시기 동안 바알세력에 휘말리게 되어 혈통까지 끊어질 위기로 휘몰리다가 겨우 빠져나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렇게 극적으로 살아남은 요아스가 북이스라엘의 혈통을 타고 유다에 흘러 들어온 바알종교 세력을 척결하는 대단한 종교개혁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겠죠. 그 이후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9대)를 거쳐 웃시야(10대), 요담(11대)으로 이어지는 왕들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순종하는 선한 왕으로 일컬어집니다. 폭풍을 지나고 나서는 오히려 하나님을 순종하는 세력이 형성됩니다. 남은 자들입니다.
③ 앗수르에게 시달리는 시기
요담의 아들 아하스(12대), 즉 히스기야왕(13대)의 아버지때로부터, 므낫세(14대), 아몬(15대)에 이르기까지는 앗수르에게 시달리는 시기라고 정리하자고 했습니다. 물론 히스기야도 선왕입니다. 북이스라엘을 정복한 앗수르가 남방 유다까지 괴롭히는 시기입니다. 그러다가 이 앗수르도 결국 신흥 바벨론에게 망한다고 그랬죠? 바로 이때 이사야, 미가가 활동한다 그랬습니다.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합니다(저절로 외워지는 방법).
④ 바벨론에게 망하는 시기
그래서 요시야(16대), 여호아하스(17대), 여호야김(18대), 여호야긴(19대), 시드기야(20대)는 바벨론에게 시달리게 됩니다. 앗수르가 쓰러져 가니 애굽도 넘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애굽과 바벨론 틈새에서 고통당할 때에도 하나님은 예레미야, 나훔, 스바냐, 하박국 선지자들과 말씀하시면서 이 하나님의 나라를 인도해 가십니다.
2. 에스라, 느헤미야 읽기 (대·라·느)
1) 당시의 정복국가들에 대하여
바벨론, 갈대아,메대, 파사… 성경에 나오는 나라이름은 이 정도지만 포로시대가 지나고 나서는 더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어쨌든 에스라, 느헤미야 등 포로시대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적어도 이 포로시대의 바벨론왕국을 중심으로 그 당시 패권다툼의 상황을 조금은 알아야 에스라를 읽든 학개를 읽든 이해가 되기 때문에 조금은 이 공부에 투자해야 합니다.
본래 이 바벨론(오늘날에는 이라크)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민족 중 한 나라입니다.
역사 속에서 이 민족은 앗수르(북쪽지역), 바벨론, 갈대아(남쪽지역으로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 왕국지역)라는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때로는 앗수르와 바벨론(마치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처럼)으로 분열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구 바벨론 왕국이라는 통일 왕국으로 오다가 B.C. 1200년 경부터는 앗수르가 약 600년 동안 권력을 확장해서 북방 이스라엘을 정복한 B.C. 722년경 까지는 앗수르 대제국을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그 후 갈대아 왕조가 이 앗수르를 장악하여 신 바벨론 왕국(갈대아 왕국)을 세우게 되는데 바로 남방 유다가 이들에게 정복당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때 이 왕국의 왕이 바로 느브갓네살이었습니다.
그런데 혜성처럼 나타난 신 바벨론 왕국은 90년도 못되어 그만 멸망합니다. 이 바벨론을 정복한 나라가 바로 메데 바사(메디아 제국과 파사-페르시아-제국의 합성어이며, 오늘날의 이란)입니다. 티그리스강 동쪽에 자리잡고 있었던 민족입니다. 이 바사제국은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수천 년을 그저 자기 조상들의 땅에서 자기네 나라 하나 유지하며 살아왔었는데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폭발적으로 비대해집니다. 이 때의 왕이 바로 우리가 많이 들었던 이름, ‘고레스’왕입니다. 바사는 그 당시의 큰 나라였던 애굽, 그리고 이스라엘과 남방유다를 정복한 상태에 있는 바벨론, 베니게 등을 포함하여 수많은 나라들을 짓밟으며 그 당시 세계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강대국으로 올라섭니다. 바로 이 때 성경에 등장하는 왕들이 “고레스, 다리오 1세, 아하수에로, 아닥사스, 다리오 2세”등인 것입니다.
고레스는 피정복국가들에 대해 우호 정책을 폅니다. 이전 정복국이었던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잡혀와 바벨론 땅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 대해서도 호의를 베풉니다. 그래서 바사왕 고레스 원년 (B.C. 538)에 유다인들에게 영을 내려 예루살렘성을 재건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바벨론이 빼앗았던 성전의 기명들까지 돌려주는 친절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 칙령에 의해 시작되는 것이 “포로귀환”이라는 역사적 전환이었습니다. 고레스는 고레스의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애를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는 예언을 이루는 데 쓰신 것입니다.
2) 에스라는 누구인가?
성전이 완공된 지 약 60년이 지난 때니까 두 세대가 지나가고 있던 때입니다. 다니엘과 에스겔이 포로 1세대라면 에스라나 느헤미야는 그 포로 1세대들이 바벨론에 살면서 자식을 낳고, 낳고, 또 낳은 포로 3대나 4대쯤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타난 이 두 그룹(다니엘, 에스겔과 에스라, 느헤미야)의 연대가 B.C. 605 년과 B.C. 440년, 즉 약 160년 정도의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도 바벨론 포로로 살다가 처음으로 귀향한 무리들, 즉 1차 포로 귀환자들이 귀국(B.C. 538년)하고도 약 80년이 지나서야 예루살렘에 돌아온 사람입니다. B.C. 458년의 일이지요. (그래서 다니엘과 에스겔 동네는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 말라기와는 다른 동네라 그랬지요?
1차로 포로 귀환해서 돌아온 사람들은 많이 죽었을 것이고, 후손들이 또 그 땅에서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민족적인 사명이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일에 또 흐지부지해져서 심지가 흔들리는 사회상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율법에 능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말씀으로 교육되지 못한 것입니다. 성전은 재건되었으나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에스라는 태어나 보니 페르시아 땅입니다. 그는 자기가 바벨론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이때는 이미 고레스왕이 자유령을 내려서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는 귀환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자각을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행을 결심하고 페르시아를 떠난 것입니다. 이 일에 사명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여호와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열왕의 시대에 허물어졌던 모세율법의 정신을 다시 찾아냅니다. 포로시대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평생 모세율법을 연구했고, 순종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포로시대의 모세이며, 여호수아이며, 사무엘 같은 사람입니다. 그 많은 모세율법의 법 조항을 조목조목 연구했습니다. 마치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처음 받았을 때 모세가 그 법을 해석할 능력을 갖춘 학자로서 그가 먼저 이해하고 백성들을 가르치고 준행하도록 훈련시킨 것과 똑같은 작업이었습니다.
3) 에스라서 읽기
① 바벨론(바사)에서의 제1차 귀환 (1∼2장) : B.C. 538년
바벨론 제국이 무너집니다. 600년 정도의 역사를 자랑하던 ‘앗수르 제국’을 무너뜨리고 혜성처럼 역사무대에 떠올랐던 ‘신흥 바벨론’도 무너집니다. 앗수르나 바벨론이나 오늘날의 이라크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약 90년 정도를 지나는 동안, 바벨론 동쪽 그러니까 티그리스강 동쪽에서는 ‘메대’라는 이름으로 한 세력이 떠올라 얌전히 실력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레스라는 사람이 메대도 점령하고, 신흥 바벨론도 점령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것입니다.
고레스는 유다민족에게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감동시켰다고 에스라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고레스는 바벨론을 정복하자마자, 즉 자기가 왕이 된 원년에 유다포로들을 자유하게 합니다.(생각해 보십시오. 모세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 백성들을 자유하게 하는데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바로가 이들을 안 보내려고 나라를 다 들어먹었는데 이 고레스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그냥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B.C. 538 년의 일입니다. 처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던 B.C. 605년에 대비해 보면 약 70년이지요? 그렇습니다.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바벨론 70년의 포로 이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리라고 한 예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렘25:11∼12, 29:10). 이렇게 해서 고레스가 칙령을 내리고, 유다인들이 돌아왔는데 그 명단이 조사되어서 기록되었습니다. 에스라가 이 때 예루살렘에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제2차 포로귀환 때 돌아왔음), 이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② 성전 재건과 예배 회복 (3∼6장) : B.C. 516
포로시대 <예언서> 부류, (학개), (스가랴)가 끼어 들어가는 자리
포로시대 <역사서> 부류, (에스더)가 끼어 들어가는 자리
70년 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유다인들은 황폐해진 성읍들을 돌아보고 그들이 살아갈 집과 마을을 보수하면서도 전체가 공통적인 목표를 가지고 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다고 했습니다. 포로생활을 겪으면서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 다니엘이 큰 역할 했었지요.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지도자가 되어 귀환한 유대인들은 성전을 재건합니다. 예수아는 성전제도를 재확립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오자 일부 족장들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전 건축헌금을 합니다. 건축에 필요한 자재들을 레바논에서 수입하는데 뱃길을 택해 지중해로 운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북방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던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성전이 건축된다는 사실을 알고 스룹바벨과 족장들을 찾아가서 자기들도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동참케 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유다 지도자들은 그들이 이스라엘이 패망한 이후 혼혈이 되었기 때문에 거절합니다. 그러자 사마리아인들은 이때부터 성전건축을 방해하는 세력이 됩니다. 그래서 성전건축이 어려워집니다. 방해세력이 나타나자 해이해진 백성들은
자기들의 집과 농경지를 돌보는데 주력하게 되었고 결국 성전 건축은 기초를 놓은 단계에서 그만 중단되어 16년 동안 방치하게 됩니다.
③ 바벨론(바사)에서의 제2차 귀환과 에스라의 사역 (7∼10장) : B.C. 458년
드디어 에스라는 제2차로 예루살렘에 귀환합니다. 1차로 귀환한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했고, 중단했지만 다시 완공된 사실을 다 알고 있었던 상황입니다. 성전이 완공되고도 한 60년쯤 지나서네요. 아닥사스다왕의 허락을 받고 많은 귀환자들을 인솔해서 예루살렘에 돌아옵니다. 처음 고레스왕이 칙령을 내려 자유를 선포한지 80년이 흘렀고 왕이 바뀌었는데도 이 아닥사스다왕이 포로들을 보낸다는 조서를 내린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유다백성들은 계속해서 대가 거듭하면서도 예루살렘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여기 아닥사스다왕의 조서 원문이 7장 12∼26절까지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이 아람어로 되어있는 부위입니다. 구약성경이 거의 다 히브리어로 되어있지만 일부 아람어로 되어있다고 한 그 중 한 부분입니다. 에스라는 히브리어에도 능통했고 아람어도 잘 쓴 것 같습니다.
그는 혼혈 결혼을 하고 있던 1차 귀환백성들의 사회를 개혁합니다. 그래서 그의 지도로 사회가 정화됩니다. 구약의 역사가 계속 그래왔듯이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는 그 사회가 어느 정도 지나면 또 다시 부패하고 타락하는 현상을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비유처럼 늘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있고, 염소와 양이 있으나 그 공동체를 유지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이어가십니다.
4) 느헤미야서 읽기
히브리어 원전에는 원래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가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다고 했지요?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느헤미야도 에스라가 기록한 것이라고 봅니다. 70인역은 에스라를 ‘에스라 제1서’, 느헤미야를 ‘에스라 제2서’라는 표제를 달고 있습니다. 그만큼 에스라는 포로시대 때의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즉 이 두 책은 분리할 수 없이 같이 가는 책입니다. 사실 이 두 권의 책이 포로시대 역사를 다 말하고 있습니다.(에스라가 귀환한 지 13년 후에 느헤미야는 귀환합니다. 일찍이 예루살렘 성전
은 재건되었고 그후 약 100년 후에 성벽을 재건할 사명을 자각하고 귀환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얘기니까 다 평면적으로 보여서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 같아 보이고, 다 같은 시대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성전을 재건한 포로귀환 1세대들은 다 가고 그 다음 세대들이 다시 성벽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마치 가나안 땅을 정복한 것이 출애굽 2세대들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같은 시대에 같이 활동합니다. 그래서 늘 같이 붙어다닙니다.
마치 에스겔과 다니엘이 같이 붙어있듯이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같이 붙어있습니다.
① 3차로 귀환한 유대인들과 성벽재건 (1∼7장) : B.C. 445
느헤미야는 제3차로 귀환하는 유대인 포로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그는 바사의 아닥사스다왕의 명을 받아 유다의 총독이라는 직임으로 공적인 임무를 띠고 12년 동안 사역합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곽을 중건하고, 개혁 운동을 일으킨 후 일단 바벨론으로 돌아갔다가 한번 더 예루살렘에 와서 사역합니다. 예루살렘성은 성전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보다 넓은 지역입니다. 수도 예루살렘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남한산성이라는 성벽이 있듯이 예루살렘도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전쟁 중에 다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울타리 없는 집처럼 된 예루살렘 성을 울타리 치는 작업이 느헤미야의 사명이었습니다.
포로이후 사역을 총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차로 귀환한 스룹바벨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데 힘썼고, 2차로 귀환한 에스라와 유대인들은 율법을 준수하는데 힘썼고, 3차로 귀환한 느헤미야와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벽”을 개축하는 데 힘쓴 것입니다.
②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공동사역 : 종교개혁 (8∼13장)
성벽을 다 완성한 후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공동사역을 합니다. 율법책을 낭독하고, 회개하며, 개혁을 위한 서약을 하게 합니다. 또 귀환한 사람들을 위해 거주지를 배정해 줍니다. 외적인 성곽을 보수할 뿐만 아니라 영적인 보수에도 힘씁니다. 통치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인구조사를 실시하고, 초막절을 지키며, 레위지파를 정비하여 제사제도를 확립합니다.
5) 말라기 읽기
이와 같이 3차에 걸쳐서 대거 돌아온 포로들은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율법을 따라 삶도 개혁하고, 성벽도 재건하며 살아갑니다. 사실 구약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활동이 그 마지막 무대입니다. 비록 나라의 주권은 빼앗겼어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다시 옛 땅에 돌아와 성전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살 수 있는 사회가 정착된 것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없었다면 신약시대를 이어갈 주인공
들은 나타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아직도 이방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이렇게 돌아온 유대인들이 나름대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말라기가 나타납니다.(내용적으로는 이렇게 느헤미야와 가장 밀접하게 붙어있는데, 느헤미야는 성경 727쪽 정도에 있고 말라기는 1,327쪽 정도에 있습니다. 그러니 구약, 하면 헷갈렸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완성한지 10년 후쯤으로 봅니다. 약 B.C. 430년 경입니다. 고레스 칙령이 발표된 지 약 150년 가량 흘러간 때입니다. 그 동안 3차에 걸쳐서 포로들이 귀향했고, 성전과 성벽이 재건되었고, 율법대로 사느라고 무던히도 노력해오는 중입니다. 또한 족보를 보완했고, 유월절을 지키고,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인 명단을 공개해서 그 이방여인들을 추방하는 굉장한 사회개혁을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회개하는 심정으로 온 백성들은 율법대로 준수하려는 의지를 갖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바란 것은 메시야 왕국입니다. 성전이 재건되고 나면 메시야 왕국이 오리라는 소망을 품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성전을 바라보며, 그래도 학개나 스가랴, 에스겔, 다니엘 등에게 임하셨던 말씀으로 위로를 받으며,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도 임하리라던 그 큰 영광이 임하지 않게 되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했고(1:2),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에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2:17). 새로 형성된 포로시대 문화를 하나님 중심으로 잘 유지해야 하는데 제사장들부터 부당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 말라기는 그들을 질책합니다. 제사를 소홀히 하고, 계약을 파괴하고 율법을 행하지 않는 제사장들을 꾸짖습니다. 잡혼과 이혼이 끊이지 않으며, 십일조와 헌물을 소홀히 하는 백성들을 또한 꾸짖습니다. 말라기는 이런 점들을 지적합니다.
그리고는 가장 마지막으로 말라기에게 하신 아주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말라기는, 즉 구약은, 이 약속으로 끝을 맺습니다. 말라기 4장 5∼ 6절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이 엘리야는 신약의 세례요한을 지칭하는 말이며, 세례요한 이후에는 “예수님“이 오십니다. 이 포로귀환의 백성들이 형성한 새로운 하나님 문화는 이제 향후 400년 정도 더 흘러가다가 신약시대를 맞이합니다. 뭔가 새로운 시대를 기다려야 된다는 여운을 안고 이렇게 구약은 막을 내립니다. 이 새로운 시대는 ‘엘리야의 출현’이라는 분명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이 ‘엘리야의 출현’은 망망한 대해의 등대 불빛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며 신약을 향해 역사는 흐릅니다.
=신약정리=
신약의 배경이 되는 400년 동안의 중간기 역사를 대강
정리하고, 이제 우리는 신약의 무대가 되는 로마에 발딛고 있습니다. 신약 읽기를 하기 전에 먼저 신약의 27권 목록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어떻게 신약을 읽어 내려갈지 관점도 찾아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맨 처음 구약 읽기를 공부할 때 39권 목록 하나하나를 간단히 정리하고 나서 읽는 방법을 찾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신약 목록도 하나하나 간단하게나마 살펴봅시다. 물론 주석성경이나, 요즈음 나오는 성경책에는 간단한 각 권 설명이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잘 참고하시고 이것도 잘 읽어 보십시오.
마태복음
예수님의 제자 세리 마태가 세무 공무원답게 꼼꼼하게 메모를 많이 해 두었던 자료를 바탕으로 기록했다고 봅니다. 구약에서 말라기로 끝난 이야기를 이 마태복음에 붙여서 연결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구약적 배경을 갖고 쓴 예수님의 생애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신약성경의 시작이다’ 하는 “성경책”이라는 생각을 갖고 읽어오던 관점과 함께한 세금쟁이(?)였던 사람이 어떻게 그 예수 사건을 경험했으며, 그 경험을 결국 어떻게 이해하고 썼나… 하는, ‘한 사람의 일생’을 투영해 보는 시각으로도 이 마태복음을 읽읍시다. 특히 산상수훈이나 예수님의 비유 등 수많은 설교와 교훈들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은 그가 그 내용들
을 성령의 감동으로 깊이 소화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셔서 받아 적은 것이 아닙
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목사님의 설교를 수천 번 들으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몇 편이나 그 내용을 요약해서 이 마태처럼 요점 정리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마 깊이 깨달은 말씀이 있다면 여러분의 표현으로 다시 기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마태뿐만 아니라 다른 신약의 책들을 읽어보십시오. A.D. 63∼67년 사이에 기록한 것으로 학자들은 생각합니다.
마가복음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이며,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입니다. 그의 예수님복음은 제일 짧습니다. 그는 요한(행 13:5, 13)으로도 불리워졌습니다. 바나바, 바울과 함께 1차 전도여행을 가다가 중도에서 포기했던 그 마가입니다. 베드로에게서 들어서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했다고 해서 베드로복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승천 후 갈릴리에 있던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모인 장소가 마가의 집이였던 것으로 보아, 일찍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실 때도 그곳에 통상 모이곤 하셨던 게 분명하므로, 그도 예수님을 만나보았을 것 같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였겠지만 그의 집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큰 다락
방이 있었으니 부유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도 그의 선교 초기(행13:5)와 후기(딤후 4:11)까지도 마가와 관계했습니다. 이와같이 마가 요한은 베드로와 바울과 함께 초대교회를 이루고, 또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초대교회의 교부 이레네오는 베드로가 헬라어를 못하니까 마가가 통역을 했다고 말합니다.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한 이후에도 쓰임 받다가 성경까지 기록합니다. A.D. 55∼65년에 기록한 것으로 봅니다.
누가복음
유일한 이방인 성경기록자로서, 사도행전을 쓴 의사 누가입니다. 그는 ‘사랑받는 의원 누가’ (골 4:14)라고 불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복음을 읽고 사도행전을 읽으면 호흡이 맞습니다. 마태는 경험한 예수를 썼고, 마가는 베드로에게서 직접 들어서 썼고, 누가는 이방인으로서 사도들에게서 듣고, 연구해서 쓴 것입니다. 우리같은 사람들과 가장 근접한 타입의 성도라서 친근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지도 못했고, 우리같이 다른 나라 사람이고, 자료를 통해 부지런히 연구하고 살피고 조사해서 진리를 발견하는 방법으로 복음서를 썼기 때문입니다. 2,000년이라는 시간의 격차를 제외하고는 의사 누가나 우리나 예수를 믿는 방법은 같습니다. 누가 자신이 이방인이기 때문에 누가복음에서 이방인들에 대한 주님의 관심을 특히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저술 연대는 아무리 늦게 잡아도 바울의 투옥생활이 끝나던 A.D. 63년 이전으로 봅니다.
요한복음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입니다. 어부 출신이었는데도 학자 출신 바울 못지 않게 지적인 통찰력과 심오한 철학적 센스가 있었던 사람 같습니다. 예수님께 들었던 말씀들을 일차 소화해서 깊은 해석까지 겸하여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요한이 이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는 공관복음이라 일컫는 위의 세 복음서들이 회람으로 돌아다니던 때였으므로 요한은 가급적 이 세 복음서에 없는 내용을 기록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세 복음서끼리는 거의 같은 내용들을 기록한 데 비해 요한복음은 90%가 이 세 복음서에 없는 내용입니다. 이런 연유로 요한복음은 다른 세 복음서 부류에 넣지 않습니다. 마태, 마
가, 누가, 이 세 복음서만 공관(共觀)이라는 말을 붙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장 말씀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요한복음뿐만 아니라 요한 1, 2, 3서, 요한 계시록까지 받은 사람입니다.
요한은 자기 어머니 Mrs. 세베대까지 동원해서 예수 혁명정부가 들어서면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고 야망을 품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그 즈음까지도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목적 중 하나가 그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 나라, 포로 시대 때 없어져서 지금까지 주권없이 떠도는 이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로 한 자리 하고 싶었던 명예욕도 있었겠지만, 애국적인 마음을 가지고 이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고자 하는 욕망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또 마지막 승천하시는 그 순간까지도 그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이 이 욕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구약에서 사라진 것 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찾고 싶어하는 하나님 백성들의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이 바로 이 요한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을 좇아 다니게 했던 원동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한과 야고보가 어머니까지 대동해서 ‘자리’를 청탁하자 모든 제자들이 다 들고일어나 분히 여긴 걸 보면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 이 질문이 그들을 이끌어 간 엔진이었습니다. 그 당시 웬만한 남자들은,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참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것을 보려고 기다리면서 기도해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 시대라는 정치, 종교, 사회 상황을 지나오면서 이렇게 좌충우돌하던 제자들이 결국 어떻게 이 ‘하나님의 나라’(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는 주제)를 이해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눈여겨 보십시오. 요한은 요한대로, 베드로는 베드로대로 그들의 일생을 찬찬히 이런 관점에서 관찰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로마를 정복하면 그 나라가 임하리라고 기대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청탁도 했었습니다. 그들의 어머니도 그것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 된 것을 은근히 좋아하며 뒷바라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보십시오. 구약의 사건들을 영해하며 예수를 증명하는 요한의 그 필치를 보십시오. 잡히시기 전날 밤 마지막 고별설교를 하신 내용들, 그 깊은 내용들을 기억해서 기록으로 남긴 것을 보십시오. 우뢰의 아들이라고 불리우던 그 강한 개성(?)을 갖고 있던 사나이가 “사랑”이라고 하는 개념을 정리해서 요한1, 2, 3서에 기록한 그 깊고 섬세한 인간 이해를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에 밧모섬 채석장에 끌려가 노동을 착취당하는 현장에서 받은 계시를 보십시오. 사람의 입으로 다 말하지 못할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결국 살아간 것입니다.
‘요한복음’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해 온 고정관념도 좋지만, 한 인간 요한이 어떻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갔는가 하는 그 과정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걷고 있는 ‘예수 믿어가는 노정’과 비교하며 요한복음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A.D. 85∼95년에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사도행전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부터 남아 있는 제자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형성되는 과정(베드로 중심)과 그 교회가 세계로 흩어지는 선교의 과정(바울 중심)을 그린 역사서입니다. 4복음서가 증언적 성격의 책이라면 사도행전은 역사적인 기록이면서도 기행문적인 성격의 책입니다. 이 사도행전은 예수사건의 핵심부위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삶으로 관통한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질주해 나가는 책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깊이 경험한 사람이 읽는 책입니다. 마치 그 옛날의 제자들과 같은 심정, 이 예수를 전하고 싶은 충동을 갖고 읽는 책입니다. 일단 복음서를 통과한 사람이 신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겁 많던 제자들이 이렇게도 용감해져서 폭발적인 힘으로 ‘예수의 도’를 전하는 것을 보면서 같이 신이 나는 사람이 밤을 새워가며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만약 아직 복음서의 핵심인 ‘주의 죽으심과 부활’을 깊이 공감하지 못한 이들이 읽는다면 사도행전은 너무나 재미없는 책입니다. 지루한 책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지명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입에서 지명들만 뱅뱅 돌다가 내용은 못 찾고 그만 성경을 덮어버리게 되는 겁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탄생, 성장, 확장, 그리고 바울의 세계선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자인 누가는 바울을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A.D. 63년 경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로마서
로마서는 성경 중의 성경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로마 교회의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마틴 루터도 이 책을 읽고 종교개혁을 일으켰고, 어거스틴도 이 책을 읽고 회개했습니다. 정독해야 하며, 일생 동안 한번은 깊이 연구해야 할 책입니다. 바울 서신 중 가장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복음을 설명한 논문 성격의 책입니다. 제3차 전도여행 끝 무렵, 속 썩이던 고린도 교회가 안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고린도 교회를 방문해서 겨울을 기다리며 쓴 것이 로마서인데 겐그레아(고린도 지방)에 살고 있던 뵈뵈라는 자매의 손에 들리워 로마로 전달된 책입니다. 그 로마 교회들의 후원을 받아 스페인으로 전도하러 갈 계획으로 후원을 요청하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A.D. 58년 경에 쓰여진 것으로 봅니다.
고린도전·후서
사도 바울의 속을 제일 썩인 고린도 교회에 사도 바울이 보낸 편지입니다. 제2차 선교여행의 중심 사역지입니다. 많은 문제를 가지고 사도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교회인데 그 때문에 오늘날 교회에서 문제가 일어날 때 답을 제공해 주는 책이 되었습니다. 오고 오는 교회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소극적인 의미에서 쓰임 받은 셈이라고나 할까요?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 중 소아시아의 에베소 교회를 개척하고 있을 때 글로에 집 종으로부터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을 합니다(1:11).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유럽지역 아가야의 고린도 도시 중심)때 세운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개척해 놓고 떠난 이후 고린도 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했습니다. 3명의 대표단이 많은 질문을 가지고 에베소로 찾아옵니다(고전 16:17). 바울의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거지요(7:1). 그래서 그들이 질문한 문제들을 자세히 풀어 설명해 주는 답변이 고린도전서입니다. 이 편지 속에서 바울은 지금 머무르고 있는 에베소를 오순절 때까지는 계속 있을 것이고 그 후 에베소를 떠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16:5∼8).
그 뒤 바울은 그들에게 한 통의 편지를 더 씁니다(고린도후서가 아님). 고린도전서를 쓴 그 장소, 에베소에서. 왜냐하면 고린도전서를 받고 난 이후 또 고린도 교회에 위기가 닥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파당 문제, 은사 문제, 교회 내의 음행문제 등 교회 성도들 사이에서 일어난 문제 정도가 아니라 ‘바울 사도를 공격하는 문제’였습니다.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그 편지는 전해지지는 않습니다. 소위 ‘눈물로 쓴 편지’라고 불리우는 편지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이 눈물의 편지를 전해 주려고 들고 간 사람이 디도였습니다(고후 2:1∼11). 디도는 고린도에 가서 교회를 잘 평정하고 좋은 소식을 갖고 돌아오는데 이때는 이미 바울이 에베소 (고린도전서와 눈물의 편지 쓴 장소)를 떠난 후입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마케도니야 (유럽) 쪽으로 올라갔고, 디도도 고린도 (남유럽)를 떠나 마케도니아(유럽)로 갑니다. 둘이 마케도니아지방에서 만난 것입니다. 거기서 고린도교회가 잘 회복되었고 바울을 진짜 사도로 믿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쓴 편지가 고린도후서입니다(고후7:6이하). 이렇게 고린도전·후서는 56∼57년 경에 기록한 것 같습니다. 고린도후서는 인간 사도 바울의 개인적 감정이나 생각이 풍부히 들어 있는 책이라서 인간 사도 바울을 만날 수 있게 해줍니다.
갈라디아서
다메섹에서 개종한 바울 얘기는 사도행전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후 그가 아라비아로 갔었다
가 다시 다메섹으로 올라갔고, 그 후 3년 있다가 게바(베드로)를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갔다는 정보는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한테 보내는 편지(갈 1:17∼18)에만 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2장은 바울이 1차 선교여행을 마친 후 예루살렘 총회(행 15:2)에 올라가서 있었던 일을 말합니다. 이런 예루살렘 총회 얘기도 이곳에서만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의 초창기 사역에 매우 밀접하게 연류되어 있다고 보여집니다(이런 연유로 갈라디아서는 1차 전도여행후 예루살렘 총회 어간에 쓰여진 최초의 편지라고 보는 사람도 있음).
말 그대로 갈라디아 지방에 보낸 편지입니다. 이것은 이미 갈라디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빨리 바울이 전한 복음에 도전해서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이 문제였습니다. 바로 이 문제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예루살렘 총회에서 한 것입니다. 율법과 복음의 관계, 성령에 대해서 다룹니다. 즉, 성령을 받은 것이 할례로 대표되는 율법을 지킴으로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받은 것임을 강조합니다. 유대주의자들의 심각한 공격이 구체적인 배경이 되었기 때문에 할례, 율법 등과 복음의 관계들이 다뤄지는 것입니다. A.D. 52년 정도에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바울의 로마 제1차 구금 중에 보낸 편지들로 봅니다. 사도행전 28장끝 부분에서 쓴 것입니다.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간 바울은 체포되어 가이사랴(팔레스타인땅, 지중해
연안 항구도시로 대헤롯이 세운 로마식 도시. 가이사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해서 붙인 도시이름)에서 2년간 억류됩니다. 그 후 로마로 호송되어 그곳에서도 약 2년간 감금 생활을 합니다(행 28:30). 그가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도착한 시기는 A.D. 61년 봄 쯤으로 추정되는데 63년에 풀려나기까지 감금된 상태에서 쓴 편지들이 바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입니다. 그러니까 약 62∼63년 사이에 쓰신 편지로 봅니다. 빌립보서를 조금 더 후에 썼다고 생각됩니다.
골로새는 에베소의 인접 도시인데 사도 바울이 직접 가서 전도한 곳이 아닙니다. 에바브라에 의해 개척된 것 같습니다(골 1:27). 이 골로새 교회는 빌레몬서의 수신자인 빌레몬이 중요 지도자로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레몬서와 골로새서, 이 두 통의 편지는 주소가 같겠지요? 그런데 에베소는 골로새랑 인 접한 도시지요? 그러니까 이 편지 세 통을 두기고(엡 6:21, 골 4:7)가 오네시모와 함께 들고 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
데살로니가 전서는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중이었던 A.D. 52년 경에 고린도에서 기록한 편지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는 인구가 많게는 약 50만 정도였다고 합니다. 항구 도시로서 번화한 곳이었습니다. 유럽(마게도니아 지방)의 도시입니다. 그래서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였습니다(딤후 4:10).
데살로니가후서는 전서가 기록된 이후에 뒤이어 쓰여진 것이 분명합니다. 전서에서는 데살로니가 교회 내부가 별 분쟁없이 조용한 데 반해, 후서에서는 광신자들의 종말 도래설로 몹시 소란스럽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광신적인 사상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러한 사상이 교회를 어지럽게 하기까지는 적어도 수개월이 걸리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따라서 전서와 후서의 시간 차이는 최소한 5∼6개월은 된다고 보여집니다. 아마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를 가지고 갔던 동역자가 되돌아온 후 그러니까 A.D. 52년경 말에 이 후서를 썼을 것입니다.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사도행전이 그의 감금으로 끝나기 때문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바울이 그 후 순교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잡혀가서 2년 간 감금되었다가 (이 기간에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쓴 것 기억나지요?) 풀려납니다(A.D. 62년경). 그 후에 그는 계속 전도를 하는데 이 전도를 일반적으로 4차 전도여행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바로 이 때 기록된 것이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입니다. 소위 목회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목회자인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낸 사도 바울의 서신입니다.
그 후 바울은 제2차로 로마 감옥에 투옥됩니다. A.D. 64년 로마의 대화재가 기독교인들의 소행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어 그리스도인들은 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와중에 바울도 체포된 것입니다(A.D. 66∼67). 디모데후서에는 이때의 상황이 매우 자세히 언급되고 있습니다(1:15, 2:9, 4:6∼8…).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1차 구금 때와는 달리, 제2차 구금 때는 매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감옥에 있으면서 겨울이 오기 전에 디모데가 와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구절을 참고해 볼 때 디모데후서는 A.D. 68년 가을에 쓰여진 것 같습니다.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의 가장 마지막 편지입니다.
목회자로서 교회를 어떻게 목양해야 할지, 그리고 목회자 개인의 생활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디도는 사도행전에는 안 나오지만 사도 바울의 충성스런 조수로 선교활동에 적극 참여한 사람입니다. 교회사에서는 디모데, 디도같은 사람들을 속사도(사도들의 뒤를 이은 사도)라고 합니다.
빌레몬서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인 빌레몬에게 보낸 개인 서한입니다.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가 주인집을 탈출하여 로마로 가서 사도 바울을 만나 개종을 합니다. 그를 용서해 줄 것을 부탁하는 사도 바울의 인간미가 풍기는 편지입니다. 위에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를 설명할 때 이 빌레몬서도 함께 다뤘습니다. 로마 1차 감금때 쓰여진 옥중 서신 중 하나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미상이라고 봅니다. 혹자는 사도 바울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흔히 믿음을 설명하는 책이라고 알고 있으나 사실은 예수님이 대제사장이심을 강조한 책입니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임이 분명합니다.
야고보서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는 초대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갈 2:9)이라고 불렸습니다. 예루살렘을 근거지로 활동했기 때문에 야고보서는 예루살렘에서 기록된 편지로 보여집니다. 흩어진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처음에는 형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얘기를 듣고 걱정하기도 하고, 또 형을 비꼬기도 했습니다. 형을 인간으로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후에는 그 형을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고뇌가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가 왕인 것을 발견한 다음 그도 그 발에 입 맞추고 예수로 인한 새 이스라엘, 새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충성합니다. 그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바울의 신학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2:24; 롬 3:28). 따라서 이 야고보서는 최소 바울의 저술 연대인 A.D. 57년 이후에 쓴 것 같습니다. 야고보는 이 편지를 통해 바울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행실을 무시하는 자들에 대해 논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가르침이 왜곡되어 유포되기까지는 몇 년의 세월이 걸렸을 것입니다.
베드로전·후서
사도 베드로가 역시 흩어진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A.D. 65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닥친 핍박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쓴 편지입니다. 베드로전·후서라는 한 권의 책 이름으로 고정된 우리의 관념을 벗읍시다. 베드로가 복음서에서 어떤 사람이었나 비교해 보며 한 유대 사나이가 물고기 잡아서 먹고 살다가 왕 예수를 만나 그가 하나님이셨다는 진리를 깨닫기까지 얼마나 파란만장했는가를 동시에 봅시다. 복음서에서의 베드로와 연결해 봅시다. 그런 베드로가 나중에 교회 개념을 이해하고 그 성도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가 하는 관점으로 읽어봅시다.
‘내 양을 치라’ 하신 유언의 말씀을 따라 어떻게 일평생 목양하는 삶을 살았는지 보십시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모델로 해서 ‘저렇게 살아야지’ 하기에는 구약이 너무 먼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환경이 주어진 사도행전 이후의 삶의 내용들은 우리가 모델로 할 수 있습니다. 요한, 베드로… 다 제자들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제자라는 말을 우리의 삶 속에서 재 소화합시다. 요한이나 베드로의 한 일생 속에 투영된 예수사건이 우리의 삶 속에도 통과되어야 합니다. 고뇌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실수하기도 해야 합니다. 깨닫지도 못한 채 열심히 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지나면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는 목양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13절의 ‘바벨론에 있는 교회’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A.D. 63∼64년 경에 로마에서 기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요한1, 2, 3서
요한은 에베소에서 목회를 했다고 합니다. 약 A.D. 90∼96년경으로 봅니다. 그는 특히 사랑을 강조했는데 이 서신에서도 사랑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단들을 경계하라고 썼습니다. 당시 이단은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한 것으로 보는 영지주의 계통이었으며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였습니다.
당시 예수사건 대해서는 원조격인 요한이 볼 때 너무 거짓된 예수님에 대한 정보가 흘러 다녔습니다. 사실 복음서는 이 이단들의 거짓된 복음서가 흘러 다니는 것을 본 이후에야 “아, 이거 진짜 예수사건을 써야지 안 되겠네!” 하고 쓰여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복음서는 소극적인 방어 입장에서 쓰여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 이단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것은 바로 거짓 교사, 거짓 예수 복음, 거짓 예수사건 기록자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후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교회 역사 속에서 27권을 정경으로 채택하는 작업이 있었고 오늘날 우리 손에 들리워진 것입니다.
유다서
역시 예수님의 친동생 유다가 쓴 것입니다. 이단을 경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동생 둘이 성경 저자로 남게 된 것은 예수님의 동생이라는 점 때문도 있었을 것입니다. 거짓 성경들이 돌아다니고 있을 때 예수님의 친동생이라는 신분은 베드로, 요한과 함께 대단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A.D. 64년 경에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기로 잡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보다 아래 동생이니까 오래 산 것 같습니다. 서신서 내용을 보아 당시 이단의 형태도 매우 발전된 단계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요한계시록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유배 생활할 때 말세에 일어날 일들을 환상 중에 받고 기록한 것입니다. 약 A.D. 85∼96년 즈음입니다. 로마가 공공연히 기독교를 박해할 무렵에 기록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로마에 화재가 났던 네로의 박해 때보다 후대인 도미티아누스의 박해 때로 봅니다. 짐승과 짐승의 우상을 섬기기를 거부했기 때문에(20:4) 박해를 받았다는 얘기는 자신을 신격화하여 ‘우리 주’, ‘우리 신’으로 부르도록 명령했던 도미티나누스 황제 시대를 반영한 것 같습니다. 핍박 가운데 있는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가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을 물리쳤다는 사실을 전함으로써 교회를 위로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여기부터 예수님의 사생애(私生涯)입니다
예수님의 족보 / 마 1:1∼17 ; 눅 3:23∼38
마태는 예수님의 일생을 족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치 구약 창세기에서 사람이 난 이후, 중간 중간에 족보를 통해 그 역사를 정리했듯이 말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이 말은 구약을 총 정리하는 말인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이 너무 길어서 다 말 못하니까 구약에 뿌리를 두고 유다 지파, 그것도 다윗의 자손 중 바벨론으로 끌려간(북방 이스라엘이 아닌) 정통 유대인의 자손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 마 1:18∼2장 ; 눅 2:1∼7
마태와 누가만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탄생 정보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후에 초대 교회에서 많이 간증한 내용들일 것입니다. 누가도 후에 이런 정보들을 듣기도 하고 연구해서 기록으로 남겼을 것입니다.
이 때 등장하는 헤롯은 대헤롯이라 일컬어지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마카비 가문이 이룬 하스모니안 왕조 4대째에는 에돔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확장된 지역을 통치하도록 유다는 안티파스를 총독으로 임명했다 그랬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라는 사람입니다. 그 유명한 헤롯왕가의 첫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손자가 바로 예수님 탄생에 나오는 대헤롯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와 결탁해서 든든히 자리를 잡고 있던 터였습니다.
소년 예수의 유일한 기록 / 열 두 살 때 성전에 올라감 - 눅 2:41∼52
예수님의 탄생 사건과 공생애를 시작한 30세 경 사이에 있는 유일한 기록입니다. 또한 이 내용은 누가만 찾아냈습니다. 예수님의 식구들은 이집트에서 이사와서 갈릴리 나사렛에 살았었는데 남방 유다 쪽의 예루살렘 성전에 유월절을 지키러 간 것입니다.바벨론에서 포로로 돌아온 유대인들의 신앙생활하는 모습을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 말라기 등을 통해 알 수 있었는데 오늘 그 이후 약 500년이 지나 신약성경으로 내려와 보니 그래도 모세율법을 따라 이렇게 유월절을 성대하게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이런 구절을 통해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전쟁 속에 여러 나라들이 이 땅을 차지했었고, 지금은 로마가 차지한 상황인데도 예수님이 12살 때 갈릴리 나사렛에 살고 있으면서 부모님과 또 많은 친족들이 유월절 명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입니다.(성경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분명히 포로시대에 스룹바벨이 성전을 재건했었는데 예수님이 30세때, 성전을 짖기 시작한지(아직도 짓고 있었다) 46년이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보면(요 2:18), 그 스룹바벨의 성전은 400년 기간 언젠가 또 전쟁으로 무너져버렸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성전은 대헤롯이 짓기 시작했던 성전입니다.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너진 스룹바벨 성전터에다가 또 다시 성전을 짓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는 건축광이었습니다. 대단한 열심과 전문지식이 있었습니다. 소년 예수께서 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때가 12살 때이므로 성전 공사가 시작된지 약 28년쯤 되었을 때입니다. 지어져 가고있는 성전을 매 해마다
보시며 예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을 출입하셨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3년입니다. 3년은 유월절 네 번을 지난다고 했습니다. 틀 만든 것, 관점공부했던 것 기억하며 이제 읽어갑시다. 그런데 예수님의 공생애는 정확하게 첫 번 유월절부터가 아닙니다. 첫 유월절이 되기 전에 일어난 몇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우선 그것을 정리합시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공생애는 엄밀히 얘기해서 만 3년 하고도 짜투리 시간들이 더 있는 셈이지요. 아래의 사건들입니다. 이 사건들은 첫 유월절 이전에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마 3:13∼17;막 1:9∼11;눅 3:21∼22)
▶ 유대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하심(마 4:1∼11;막 1:12∼13;눅 4:1∼13)
▶ 세례요한의 집회장소 지역에서 다섯 제자를 만나심(요 1:19∼51)
▶ 가나 혼인잔치(요 2:1∼11)
▶ 가버나움에 며칠 내려가 계심(요 2:12)
지금까지 갈릴리 나사렛에서 식구들과 사시던 예수님이 짐을 챙겨서 장거리 여행을 준비하시고 집을 떠나시는 것으로부터 예수님의 공생애는 출발합니다.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그곳에 가셔서 세례를 받으시고, 또 광야(유대광야로 보임)에서 40일 간 금식기도로 준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갈릴리에서 유대지역으로의 이동입니다(공간개념).
공생애를 준비하시기 위한 금식기도요, 세례받으심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공생애는 세례를 받으시고, 금식기도하신 이 두 사건으로 빵빠레를 울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세례 요한의 집회장소에서 다섯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나십니다. 즉 안드레, 베드로, 요한, 빌립, 나다나엘, 다섯 사람입니다. 이 다섯 사람은 모두 다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집회장소는 요단강 하류, 베레아 지역 쯤입니다. 사나흘 길 걸리는 거리를 떠나 다 여기 외지에 와서 만난 겁니다. 다섯 사람도 그 유명한 세례요한의 집회에 왔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까지 된 것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인데 유대에 와서 만난 셈입니다(공간개념).
여기서 이 다섯 제자는 의기 투합하여 갈릴리 집으로 올라가는 길을 동행합니다. 목적지는 가나 혼인잔치입니다. 예수께서 적어도 50여 일 전,(금식기도 40일+그밖의 소요된 날=아무리 적어도 50일 이상) 집 나사렛을 떠나올 때 어머니하고 가나 결혼식 집에 같이 참석하기로 한 것이 분명하며, 날짜에 대어서 이 다섯 제자와 함께 가나 혼인잔치에 가시는 것입니다. 그 곳에서 첫 번째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이적은 제자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요2 :11). 그러므로 이때 말하는 제자들은 12제자가 아니라 베드로, 안드레, 요한(요한이라고 지칭하지는 않지만 요한복음을 쓴 요한임), 빌립, 나다나엘, 이 다섯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30세 되기까지 갈릴리 나사렛에서 조용히 사시던 예수님이 약 두 달 전에 유대 예루살렘 쪽으로 내려와서 50여 일 이상 계시다가(세례, 금식), 다시 갈릴리로 올라가셨다가(가나혼인잔치, 가버나움 방문), 시 얼마 안되어 여기 13절에서 예루살렘으로 유월절 지키러 가신다는 말입니다. 유월절① 이전까지 사건
여기서부터 공생애 제 1년 시작, 첫 유월절, 예루살렘
? 이제부터 첫 유월절은 유월절① 두 번째는 유월절② 세 번째는 유월절③ 네 번째는 유월절④로 표기함.
성전을 청결케 하신 사건 - 요 2:13∼25 제 1년 카운트 시작점, 4월 중순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다녀오신 이후, 유월절①을 맞아 예루살렘에 가십니다. 이때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십니다. 이 성전을 청결케 하는 사건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시작되십니다. 예루살렘(공간개념, 틀!)이라는 사실을 주지합시다. 즉 예수님의 본격적인 사역은 갈릴리에서가 아니라 예루살렘 유다지역에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 예루살렘은 정치, 종교, 사회, 문화, 경제 각 분야의 중심지였습니다. 그 예루살렘 가운데서도 “성전”은 중심 중의 중심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갈릴리 시골에서부터 하시지 않고, 수도 예루살렘 유다의 심장부에서부터 하신 것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도 남자들이 모이는 유월절에 이 성전에서 판을 뒤집어 엎는 일을 감행하므로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이 판은 당시 기득권 세력들이 돈을 벌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해서 형성된 조직이었습니다.
대제사장 안나스가 로마로부터 제사장권을 돈을 주고 샀기 때문에 투자한 만큼 뽑기 위해 제사용품 전매청을 만들어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수전매청은 감람산에 있었습니다. 당시 이 지도자들은 로마를 등에 업고, 제사 드리기를 원하는 순진한 백성들의 종교심을 이용해 폭리를 남기는 강도짓을 하고 있는 대 세력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이 판을 뒤엎은 일은 당시 사회에 예수님 당신을 공적으로 표현하는 선언방식이었습니다. 공적인 도전장이었습니다. 감히 어느 누구도 이 역사를 등에 업고 도도하게 내려오는 거대한 세력의 물결에 도전하지 못했는데 나사렛 시골의 한 청년이 갑자기 나타나 이들을 대상으로 마주 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이 날 이후로 전국적으로 알려지는 인물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말로 말하자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뜨신(?)겁니다. 매스컴이 없던 시절이었으나 이 유월절 기간에는 전국 남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다 알려지는 기회 때 뜨신 겁니다. 따라서 기득권 세력을 대상으로 도전장을 낸 청년 예수는 갑자기 그 사회에 요주의 인물이 됩니다. “예수, 그는 누구냐?” 이것이 당시 세인들의 예수님을 향한 질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는 누구냐?” 이것이 당시 정치 종교지도자들의 이슈가 됩니다.
이 질문은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할 “관점”이라고 말했던 것 기억나시죠? 앞으로 그가 십자가에 죽기까지,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장 중요하게 흘러가고 있는 “중심 주제”라고 했습니다. 그 때 그 당시 사람들에게나, 지금 우리에게나 가장 중요한 신약성경의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관점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많은 이적으로 사역하심 - 요 2:23 제1년 중간기
성전을 숙청한 사건이후 예루살렘에서 유월절 군중 앞에서 하신 일은 “이적”을 행하심이었습니다. 제사장 그룹에 찬물을 끼얹어 놓았는데 그 후 만약 아무 일도 안 하시고 힘없이 계셨다면 성전에서 휘두른 채찍에 무슨 권위가 있겠습니까? “예수 그는 누구인가?” 하고 호기심으로 쏘아보고 있는 많은 백성들로 하여금,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구나 하는 결론을 내리도록 한 것은 “이적을 행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적을 행하시고 말씀도 전하시는 사역을 하시며 약 8개월 동안 이 예루살렘에 머무르십니다. 첫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오셔서 이 유다지역에 꽤 오래 계시는 셈입니다.
니고데모의 방문 - 요 3:1∼21
당시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으로, 또한 바리새인으로서 덕망 있었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방문합니다. 성전청결 사건도 봤을 것이고, 많은 이적도 본 학자 니고데모는 뭔가 예수님에 대해서 판단한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범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찾아 온 것입니다. 적어도 예수님을 “하늘로써 내려온 선생”으로 인정했습니다. 니고데모도 고민한 것입니다.
예수, 그는 누구인가, 하늘로서 오신 분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을 취한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런 인물들이 ‘예수님의 정체성’ 문제에 이렇게 다 맞닥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그로서는 ‘복음’, ‘진리’, ‘구원’, ‘하나님의 아들’ 개념 등에 대해 미숙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와의 대화에서 구원의 가장 중요한 교리인 ‘거듭남’ ‘영생’을 설명하셨으며, 이 장면을 요한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 대화의 의미를 깊이 알고 소화한 상태에서 요한은 수십 년 후 에베소에서 이 요한복음을
기록할 때 생생하게 그 내용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심 - 요 4:3 제 1년 말기:12월 경
여기 요한복음 4장 3절이 또한 예수님의 사역의 행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구절됩니다.
지금까지 8개월 동안 유대 예루살렘에 계셨었는데 이제 갈릴리로 이동하신다는 말입니다.
4장 1절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를 삼고, 그 제자들은 세례를 주기도 했다는 것을 보면 이 예루살렘에서 많은 활동을 하신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시고는 그 이유로 예루살렘을 뜨십니다.
아직은 기득권 세력들과 부딪히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때가 아직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이제 유월절① 이후 예루살렘 8개월 사역을 철수하시고 갈릴리로 가시는데 사마리아를 거쳐가시기로 한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심 - 요 4:4∼42
사마리아는 B.C. 721년경에 여러 민족들과 피가 섞여서 유대인들은 그들을 개 취급을 한다
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막 예루살렘, 유대를 거쳐, 사마리아에 들어가 그것도 개인전도를 하시며 ‘예배’ 개념을 논의하신 것을 보면 그 메시지가 큽니다(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제는 여기서 예수님이 첫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오셔서 8개월 동안을 계셨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구절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이 사마리아에 계실 때가 언제쯤인지 알려주는 요4:35입니다. “앞으로 넉 달이 되면 곡식을 거둘 때가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 말씀은 사마리아에 예수님이 계실 때가 언제쯤인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이스라엘 땅의 곡식을 거두는 때는 4월 경입니다. 즉, 유월절 밤을 지내고 그 이튿날부터 무교절의 안식을 보내고 그 다음 곡식에 낫을 대는 것이 이들의 추수방법입니다. 그런데 넉 달 있으면 추수할 때가 된다는 말은 넉 달 있으면 4월이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난 유월
절①에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에 오셨으니까 이 사마리아에 계신 그 때가 바로 12월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또 넉 달이 되면 그 다음 유월절②이 된다는 말이니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머문 기간이 8개월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랜 동안 예루살렘에서 그분의 명성이 알려졌고, 갈릴리보다도 먼저 예루살렘에서 종교 지도자들과 중심인물들을 대상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 소문은 유월절에 예배하러 왔던 갈릴리 사람들에게도 톱 뉴스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비로소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보다도 소문이 먼저 가 있는 고향 갈릴리를 향하시고 계신 것입니다(요 5:45).
여기부터 갈릴리 사역 - 아직 공생애 제 1년 말
왕의 신하를 고치심 - 마 8:5∼13; 눅 7:1∼10; 요 4:43, 54
예수님은 이틀 후에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리 가나에 도착하십니다. 이 때는 이미 세례 요한은 감옥에 있을 때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이 그친 시점입니다. 갈릴리에 도착하자마자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살고 있던 어떤 왕의 신하의 아들을 말씀으로 고쳐 주십니다. 이 일이 갈릴리에서 두 번째 행하신 이적입니다. 지난번도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는데 이번에도 가나에서 병을 고치십니다. 살기는 가버나움에 살고 있는 사람을 가나에서 말씀으로 고치신 것입니다. 왕의 신하라고 했으니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의 신하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의기투합한 다섯 제자가 가나 혼인잔치(갈릴리)에 참석하며, 그 일 후, 유월절에 또 다시 예루살렘(유대)에 올라가셨고, 거기서 성전을 청결케 하는 사건이 있었으며, 예루살렘에서 줄곧 많은 이적을 베푸시며 약 8개월 간 머무르신 이후, 예루살렘에서 다시 갈릴리로 올라가실 때 사마리아를 거쳐가시며 수가성 여인에게 전도하신 것까지가 요한복음에만 있는 내용입니다. 갈릴리에 거의 다 가셔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는 사건 등 갈릴리 사역부터는 다른 복음서들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8개월이나 집을 떠나 예루살렘에 계셨다가 그 후 갈릴리 나사렛 집에 돌아오시고, 그 다음에 거기서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이사 가시고, (그 후에야 비로소 본격적인 갈릴리 복음전파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다시 부르심으로 본격적 갈릴리 복음 전파 사역을 시작하심
- 눅 5:1∼11; 마 4:18∼22; 막 1:16∼20
우리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사역(유월절①)을 한참 공부하고 오랜만에 갈릴리로 돌아와 이사까지 하신 이후의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읽으려고 하는데, 누가복음이나 마태복음이나 특히 마가복음같은 경우는 이제 막 세례받자마자 예수님이 갈릴리 사역을 하시는 것 같이 기록하고 있지요? 그래서 네 복음서는 같이 모아놓고 그 가운데서 순서를 따라 골라가며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우선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시점에서 완전한 헌신을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제자들을 보시고는 “이제 고향에 왔다고 해서 본래 직업으로 돌아가지 말고, 다 놓아두고 내 사역에만 전적으로 따르라!”고 정식으로 재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다는 말입니다. 직업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전문 사역자로 뛰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앞으로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전파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을 보시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이 시점에서 약 2년 반이 지나면 예루살렘교회를 목회하는 지도자가 됩니다. 적어도 2년 반 전부터는 풀 타임으로 전문교육을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 이들은 이제 풀 타임 전문 사역자로 예수님의 제자 훈련반에 들어갑니다.
가버나움에서 어느 안식일 하루에 일어난 여러 가지 일 - 눅 4:31~37; 막 1:29~39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귀신을 쫓으시는 예수님(눅 4:31∼37)
그 이후, 어느 안식일 날 아침 경 예수님은 회당에 들어가십니다. 거기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권세 있는 자와 같이 가르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는 목수였습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돌아오셔서는 “가르치는 사역”을 하신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일을 하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이 사역은 예수님의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병만 고치시고, 가르치시지 않으셨다면 이적의 의미를 알 길이 없습니다. 그가 이적을 행하시며 그 이적 뒤에 의미와 뜻을 펼치셨고, 그 가르치신 내용들은 후에 제자들의 기억 속에 정예된 것으로 남아 오늘날 복음서에 기록된 것입니다. 이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해석이, 그 의미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표적이라고 합니다. 메시야적 싸인, 즉 표적입니다. 그런데 그 회당에 귀신들린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귀신을 내쫓으십니다. 영계를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보이신 일입니다. 표적입니다.
베드로의 장모님 집으로 심방가서 열병을 고치심, 그리고 그 날, 밤을 새우심 막1:29 ∼
39그 회당에서 나와서 시몬 베드로의 장모님 집으로 들어가십니다. 열병을 고치십니다. 해질 무렵이 되어 각색 병든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귀신들이 예수를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말을 하니, 예수께서 그런 말을 하지 못하도록 꾸짖으십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로마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정치적인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셨습니다. 예수님을 정치적인 구원자로 이해하기를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메시야 은닉사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정체가 꼭 알려져야 할 대상이나 상황에서는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날이 밝아서야 그 집에서 나오셨다고 했으니(눅 4:42) 그 날은 하루 종일 낮에 일하셨을 뿐만 아니라 철야까지 하시면서 병을 고치신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 이집이 누구네 집입니까? 베드로의 장모님 집입니다. 베드로의 아내의 친정 어머니집입니다. 남편이 이제 고기를 안 잡겠다고 선언한 이후 그 아내는 많은 갈등을 했을 것입니다. 아내가 이 일에 동의해야 가능하니까요. 그런데 친정어머니가 소생하게 된 이 사건으로 모름지기 남편이 예수님을 전적으로 따라다니는 사역을 기쁜 마음으로 이해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베드로가 그물을 버렸는데, 그 아내도 이제 이런 체험을 통해 동역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제자 베드로, 그도 가장이었고, 그래서 해결해야될 과정들이 있었는데 이런 섭리를 통해 하나씩 풀려나가는 것 같습니다.
갈릴리 1차 순회전도 - 막 1:38∼39 / 그 후에 마태를 부르심 - 눅 5:27∼32
베드로의 장모님 집에서 나오신 이후로 예수께서는 더욱 더 열심히 “온 갈릴리(가버나움 마을에 있는 본부를 벗어나서 갈릴리 지방 전체)”와 “여러 회당”을 다니시며 말씀을 전하시고, 귀신을 내쫓으십니다. 이 온 갈릴리를 다니시며 일하신 내용들을 자세히 다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38∼39절 말씀으로 그 사역을 표현합니다. 다음 유월절(공생애 2년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전까지 하신 일을 한 마디로 요약한 말씀으로 봅니다.
이렇게 순회전도를 하신 이후 ‘본 동리(가버나움을 말함)’에 들어가서 하신 일이 중풍병자를 고치신 일(눅 5:17∼26)이고, 그 후에 제자 마태를 부르신 일(눅 5:27∼32)이 있습니다. 마태를 부르신 때는 유월절②이 가까워 오는 초봄 쯤으로 보입니다. 예수께서는 일해 나가시다가 이렇게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제자들을 부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공생애 1년 말엽, 갈릴리사역
여기부터가 공생애 2년, 예루살렘사역
베데스다 연못 옆 38년 간 병든 사람을 고치심 - 요 5:1∼8 2년 봄
2년 봄 유월절② 즈음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예루살렘 하면 벌써 요한복음이 등장하는 것을 눈치채야 합니다. 요한은 거의 예수님의 예루살렘 사역만을 기록한 특징이 있습니다. 특별히 마지막 십자가에 죽으시는 기간의 내용이 요한복음의 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38년된 환자를 안식일에 고치신 일, 그뿐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한 분임을 안식일에 관련하여 설명하신 것이 화근이 되어 문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이 사건에서도 예수님은 ‘당신이 누구인지를’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감히 자기 아버지라고 발언했습니다. 안식일에 일한 것도 율법을 어긴 것인데, 설상가상의 발언들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두 번째 유월절에 대해서는 오직 이 한 가지 사건만 기록되어 있지만, 지난 첫유월절 이후 갈릴리로 가셨다가 약 4개월 만에 예루살렘에 또 나타난 예수는 그들에게 있어서 완전 감시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지만 이런 기류를 찾아내는 것이 성경을 읽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제2년 유월절② 때는 예루살렘에 잠깐 계신 듯 합니다.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일 이외에는 기록이 없습니다. 여기까지, 공생애 2년, 예루살렘
여기부터 공생애 2년 유월절② 이후 중엽. 갈릴리사역
12제자를 확정하셔서 임명하심 - 마 10:1∼4; 막 3:13∼19; 눅 6:12∼16
공생애 2년 갈릴리
이제 또 갈릴리로 돌아오셨습니다(틀!). 공생애 1년 때도 유월절②에 예루살렘에 8개월 체류 하신 후 갈릴리에 돌아오시자마자 하신 일이 제자를 정비하시는 일(풀 타임으로 부르심)이었는데, 두 번째 유월절②을 다녀오셔서는 12제자를 임명하십니다. 비로소 예수님의 공생애 2년쯤에 와서야 열두 제자를 확정하셔서 부르신 것입니다. 함께 있게 하시고, 귀신을 내어쫓게 하시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을 주십니다. 이 제자들을 임명하시기 전날 밤 예수님은 철야기도를 하십니다. 그리고는 분명히 공식적으로 12명을 지명하여 부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처음부터 12명과 함께 다니신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예수님은 매우 신중하게 시간을 두고 한 사람 한 사람 보아 오다가 최종적으로 12명으로 확정하셨습니다. 조직 속에서 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는 구약의 12지파를 이어가는 새로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을 이루는 새로운 야곱, 새로운 이스라엘임을 분명히 하시는 것입니다. 이 12명으로 인해 온 세계로 흩어지는 영적 이스라엘이 탄생되는 것입니다. 드디어 구약에서부터 이루어 오신 하나님 나라가 세계를 향하기 위한 조직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산상수훈을 베푸심 - 마 5:1∼7장까지 제2년 중엽
그 유명한 산상수훈을 주신 것이 바로 이 때로 봅니다. 제자들이 다 확정되었습니다. 구약식으로 얘기한다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요구하는 십계명(새 계명)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왔을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계명을 주신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백성들이 만들어진(국민만들기) 다음에 율법을 주셨는데, 이 신약에서도 제자들이 만들어진 다음에, 이 새 이스라엘에게 새 계명을 주십니다. 바로 그것이 그 유명한 산상수훈입니다.
한창 예수님의 명성이 높아져서 민중들의 마음이 쏠리자 특히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도 예민해지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일반 백성들은 그래도 바리새인을 존경하고 그들의 말을 들었는데 예수께서 민중을 빼앗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할 수 있는 대로 예수님의 단점을 찾아내서 그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가 하는 유언비어를 민중 가운데 퍼뜨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본부 쪽에 있는 바리새인들은 지금 예수님이 사역하고 계신 갈릴리로 사람을 파견하여 예수에 대해서 꼬투리를 잡으려고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있는 시기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생애를 읽을 때
‘왜 이렇게 바리새인, 바리새인… 이런 얘기가 많이 나오냐?’ 그러면서 그저 무작정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 이렇게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아래 사건들을 보면 이해가 잘 갈 것입니다.
장터에서 피리 부는 아이 비유 - 눅 7:31∼35 제2년 중엽
세례요한은 먹지 않고 금욕한다고, 귀신들렸다고 욕하고, 예수는 너무 먹고 마시는 죄인들의 친구라고 폄론하는 당시 지도자들의 세태를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최초의 비유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 마 11:20∼30
바리새인들의 폄론에 대해 제자들에게 그 실상을 깨닫게 하려고 가르치신 후에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11:20∼30절 말씀입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 - 눅 7:36∼50 제2년 중엽
바리새인이 예수님에게서 흠을 잡으려고 자기 집에 초청하는데 여기서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붓습니다.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된 자를 고치심 - 마 12:22∼37 제2년 중엽
이 고치심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예수님이 귀신들렸다고 폄론합니다. 이 사건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반응, 또 이 반응에 대해 예수님이 펼치신 귀신의 세계 등을 알 수 있는 사건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구함 - 마 12:38∼45
역시 계속해서 서기관, 바리새인들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음을 말씀하시므로 그의 십자가 사역을 예시하고 계십니다.
13개의 중요한 비유를 베푸심 - 마 13장; 눅 12:16∼20; 눅 12:42∼48; 막 4:26∼28
위의 바리새인들의 세태적 긴장 속에서 여러 사건이 있는 이 즈음에 위의 비유들이 베풀어집니다.
바다를 잔잔케 하심, 가다라지방의 귀신들린 자를 고치심- 마 8:23∼34
비유로 천국을 설명해 주시는 이 때쯤 해서 위의 두 가지 큰 이적이 일어납니다.
레위 마태가 큰 잔치를 베품 - 마 9:10∼13
레위 마태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연초 봄이지만(마 9:9), 모든 것을 정돈하고 자기 집에서 잔치를 베풀어 동료까지 초청해 놓은 일은 이 때 쯤입니다.
혈루증여인을 고치심,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 눅 8:40∼56 제2년 말기이 두 큰 사건은 예수님 공생애 제2년 말기쯤에 있었던 일입니다. 여기까지가 공생애 제2년, 갈릴리입니다.
이 때쯤 해서 제3년이 시작됩니다. 여전히 갈릴리입니다.
요한복음 6:1∼15절에 나타나는 오 천명을 먹이신 사건은 유대인의 명절 유월절③이 가까워 오는 때였습니다. 이로 보아 제3년 유월절 기간에는 예루살렘에 가시지 않고 갈릴리 지방에 계속 머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먹이신 사건은 제 3년 초엽 유월절 즈음에 일어난 일인 것입니다.
이 오병이어 사건이 있기 전에는 예수께서 고향 나사렛에 가셔서 또 한 번의 배척을(마 13:54∼58) 당하시고, 그 이후 12제자를 파송하시며(이에 사도라는 말을 쓰는 것)강론하십니다. 제자들을 보낸 이후 예수님은 혼자 전도하시며 다니시고 그 이후에 제자들과 합류하여 갈릴리 순회전도를 또 나가십니다. 바로 이 즈음에 세례요한이 목베임을 당했다는 소식도 듣게 됩니다. 이와같이 바쁜 일정으로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이 쉬지 못하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는 곳으로 쉬실 겸 가십니다. 그런데 또 사람들이 이 벳세다 들녘으로 모여든 것입니다.
이 일 후에 주로 예수님은 갈릴리 윗지방 쪽에 많이 계시는데 두로와 시돈(베니게 쪽, 지중해바다 쪽의 이방 땅), 데가볼리(갈릴리 바다 동쪽의 이방 땅), 또 헬몬산 줄기에 있는 가이사랴 빌립보, 변화산 등에 머무르십니다. 이 기간 동안은 주로 예수께서 대중보다는 제자들에게 앞으로 1년 안에 일어날 십자가 수난 사건을 바라보시며 제자훈련을 시키십니다. 예수의 메시야되심,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 등 가장 중요한 일들을 마음에 품으시고 질문하시고 가르치시는 기간입니다. 그리고는 가버나움에 내려왔다가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초막절(10월12일∼19일) 명절을 지키려고 갈릴리를 떠나시는데 이번에 떠나시므로 다시는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영 이별의 떠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명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가 후에 수전절(12월 25일)을 지키셨고, 그리고는 유월절에 잡혀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초막절에 갈릴리를 떠나 유대 지방 쪽으로 내려가셔서 지내는 기간은 그러므로 약 6개월 정도가 됩니다. 초막절 10월경에 내려가셔서 유월절 4월 16일경에 돌아가시기 때문입니다. 6개월 머무시는 동안 예루살렘 성을 중심으로 활동하시지만 베레아 지방에만 3개월을 머무시는데 이 곳은 요단강 동편 이방인의 땅입니다. 특기할만한 것은 마지막 갈릴리를 떠날 즈음에 70인 전도단을 파송하시는데 바로 이 베레아 쪽으로 파송하십니다. 후에 이 파송된 전도단이 예수께 보고하는 것도 이 기간 중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기 갈릴리를 출발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마지막 시간까지의 6개월 간은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마지막 6개월의 이런 특징들을 생각하며 다음 사건들이 정말 그러한가 보십시다.
오병이어 - 요 6:1∼15 제3년 초엽, 4월 초
여기 오병이어 기적은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심을 표적으로 보이신 사건입니다. 예수의 살은 영원한 생명의 떡이라는 귀중한 영적 진리를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벳세다 들판이었습니다. 모세 시대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와 비교되며 이 사건이 해석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참수 당했고, 그의 제자들이 몸둥이만 장사 지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라(막 6:31)’고 하셔서 떠나 도착한 곳이 이 벳세다 들판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다 동북쪽에 있는 한적한 들판이었는데도 거기까지 남자 장정만 5,000명이 따라왔습니다. 예수의 명성이 가장 치솟은 때였습니다.
바다 위를 걸으심 - 마 14:22∼34
오병이어 사건 이후 벳세다에서 되돌아오는 길에 제자들은 먼저 배를 타고 떠납니다. 예수님은 그곳에 남아 기도하시다가 후에 바다를 걸어오십니다. 물 위로 걸으시는 예수님을 본 베드로는 바다에 뛰어내렸다가 빠져 들어가는 경험을 합니다.
장로의 유전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 - 막 7:1∼23
제3년 유월절이 지나서 예루살렘에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정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지적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 - 막 7:24∼30
갈릴리 지방을 떠나 서북쪽 해안가에 있는 두로와 시돈, 즉 베니게 사람들이 사는 국경지대로 올라가십니다. 갈릴리 지역의 많은 민중들을 떠나 제자들을 훈련시키시려는 목적으로 이방지역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여인을 만납니다. 이방에 전파되는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4,000명을 먹이심 - 마 15: 9∼39
헬라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이방사람들이 많이 와서 살고있는 데가볼리 지역입니다. 주린 군중을 불쌍히 여기심이 나타납니다.
마가단 지역에까지 와서 하늘로 오는 표적을 보이라는 바리새인들 - 마 16:1∼4
데가볼리(갈릴리 바다 동쪽)에서 배타고 서쪽으로 건너와 마가단(막달라)지역에 오니 그 곳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의 위대한 질문과 대답 - 마 16:13∼28 제3년 후반, 9월 경갈리리 바다 서쪽 막달라 지역에서 바다를 건너 다시 윗쪽으로 올라가서 헬몬산 자락에 있는 휴양도시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으로 가십니다. 이 여행에서 제자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두 질문은 지금까지 사역하신 예수님께서 앞으로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제자들에게 “기독론”의 핵심을 확고히 하시려는 의도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일곱 달쯤 남겨 놓은 때입니다. 지금까
지 예수님이 행하시고 말씀하신 핵심은 ‘예수, 그는 누구인가?’를 찾아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서를 읽을 때 “관점”이 바로 이 질문이라고 했었습니다. 예수님도 이 질문을 정확하게 제자들에게 하십니다. 이것이 영생을 얻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변화산 사건 - 눅 9:28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을 들으신 이후 따로 베드로, 요한, 야고보만 데리시고 산(헬몬산으로 봄)에 올라 영광의 몸으로 변화하십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증명해 보이시는 사건입니다. 얼마 전에 “나를 누구라 하느냐?” 질문하신 주님은 이 사건을 통해 대답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이와같이 하나님이다”라고.
산 아래에서 제자들이 귀신 들린 아이를 놓고 쩔쩔 매고 있음 - 막 9:14∼29
갈릴리로 돌아오는 길에 제자 간에 누가 크냐 싸움 일어남 - 막 9:33∼35
하나님의 영광을 본 제자들은 그 동안 예수를 좇으면서 내심 품어왔던 생각들이 겉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 정권이 들어서고야 말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생각들은 드디어 구체화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나라를 세우면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인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때만 하더라도 예수의 사역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때였습니다. 이로부터 수십 년 후 요한이 요한1, 2, 3서, 그 ‘사랑학’의 편지를 쓸 때쯤 해서 만약 이 싸운 것을 생각했다면 “그 때 참 나도 많이 어렸었지… 뭘 몰라도 한참 몰랐어… ” 하고 부끄러움이 솟구쳤을지도 모릅니다. ‘누가 크냐’의 싸움은 ‘자리 다툼’이었습니다. 단순히 잘났냐 못났냐의 차원을 넘어서서 매우 구체적인 ‘자리다툼’이었습니다. 얼마 안지나면 미세스 세베대까지 출현해서 청탁을 할 정도입니다.
갈릴리로 돌아와서도 집중적으로 제자훈련 시키심
- 마 18:1∼4, 12∼14절, 21∼35절, 요 10:1∼18
여기까지, 갈릴리(갈릴리 북쪽 이방땅)에서 제3년 가을 경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향하심
예수님은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이 떠남은 갈릴리가 고향인 그분으로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마지막 떠남이었습니다. 초막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10월 초엽 경에 떠나시는데 이제 앞으로 4월 16일 유월절에 죽으시기까지 6개월 간의 여행을 시작하십니다(얼마 전에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을 무시하며 먼저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사마리아를 통과 - 눅 9:51∼56
예루살렘으로 내려갈 때 요단강을 건너 아라바 길(보통 유대인들이 다니는 길)로 가지 않고 사마리아로 직접 통과하려 하는데 사마리아인들이 영접지 않습니다. 요한이 불을 내리게 하자고 화를 낸 곳입니다.
가는 길에 제자 되고 싶어하는 세 사람을 만남 - 눅 9:57∼62 생각해 보십시오. 이 때는 제자가 되기에는 너무 늦은 때입니다.
70인 전도단을 둘씩 짝 지워 베레아 지방에 파송하심 - 눅 10:1∼12
베레아 지방은 사해 동편(옛날 갓 지파들의 땅)지경인데 앞으로 유대 쪽으로 내려가셔서 주로 거하실 지방입니다. 전에 세례 요한이 세례 주던 곳입니다.미리 전도단을 그리로 보내십니다.
마리아와 마르다 - 눅 10:38∼42
마리아는 말씀 듣고, 마르다는 일을 하고. 이 이야기를 뚝 떼어서 생각지 말고 이런 흘러온 이야기 속에서 보십시다.
예수님의 가르치심 - 눅 11: 1∼15 제3년 11월 경
주기도문을 이 때 가르치셨다고 봅니다. 비교적 생애 말기에 가르친 기도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심 - 요 9:1-4 제3년 11월 말 ? 12월 25일 사이
수전절에, 성전에서 ‘목자와 양’에 대해 설교하심 - 요 10:1∼30 제3년 12월 25일
B.C. 166년, 셀루코우스의 안티오커스 4세가 유대인들에게 아주 심한 만행을 해 오고 있었을 때 유다의 마카비가 투쟁해서 독립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나라를 잃은 이래 처음으로 독립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B.C. 165년 더럽혀진 성전을 수리하고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께 감사했는데, 이 때 이후로 이 날을 기념하여 수전절(성전을 수리하고 깨끗케 함)로 지켜왔습니다. 수전절은 구약시대 명절이 아니라, 마카비 시대(신구약 중간기) 때의 명절입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12월 25일에 지키는 하누카가 그 날입니다. 이 명절에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사건을 해석하시고, 이 후 수전절에 당신만이 진정한 목자라고 설교하시며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십니다. 유대인들의 진정한 지도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목자의 모습임을 나타내십니다.
나사로를 살리심 - 요 11:1∼27
예수님 죽으시기 3개월 전에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이 사건으로 유대에서는 예수님이 더욱 알려지게 되었고 이것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제사장 무리들은 회의를 합니다. 그 결과 예수님에 대해 체포령이 내립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더 이상 유대에서 다니시지 못하고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제자들과 은둔해 계시기도 했습니다.
베레아에서 마지막 3개월
예수의 죽으심은 수전절이 지나고 나사로를 살리신 이때로부터 약 3개월 후의 일입니다. 이 3개월 동안은 베레아에서 일어난 일이 대부분입니다. 명절 때만 잠깐 성전에 모습을 비친 이후 예수님은 동쪽 베레아 지경을 다니시며 마지막 3개월을 쓰십니다. 이 베레아 지경만 전도를 못하셨다는 것을 아시고 미리 70인을 보내 길을 닦게 하신 후 이렇게 마지막 3개월을 지내시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대에서는 수배령이 내렸기 때문에 이방 땅에 계시는 것이 좋으셨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곳에서 18년 간 꼬부라진 여인(눅 13:10∼17), 고창병 든 사람(눅14:1∼6)을 고치시는데 역시 안식일이 이슈가 됩니다. 베
레아에서도 허다한 무리가 좇았는데 그 때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설교하십니다. 또한 그 유명한 잃은양, 잃은 은전, 잃었던 아들의 비유, 불의한 청지기, 부자와 나사로 비유 등 누가복음에 나타나는 비유들은 이 베레아 지역의 세리와 죄인들에게 베풀어주신 비유들입니다 (눅 15∼16장).
베레아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길에 삭개오를 만나심 - 눅 19:1∼10
베레아에서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다는 것은 이제 죽으러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수배령이 내리고 약 3개월이 지난 것입니다. 베레아에서 서쪽 방향인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려면 여리고를 지나야 되는데 그 곳에서 삭개오를 만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 생애 거의 말년에 새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약 5개월 후 오순절 이후 초대교회가 시작될 때 예루살렘 교회 교인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마지막 일주일
베다니 마리아가 향유를 부음 - 요 12:1∼8 유월절 엿새 전, 토요일
베다니 마리아의 집에 유하셨습니다. 3개월 전 나사로가 살아난 집입니다. 이 나사로로 인해 수배를 받았는데 이제는 때가 되어 다시 이 집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마리아가 극진한 예우로 예수님께 옥합을 깨어 향유를 붓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당신의 장사를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셨습니다.
나귀타고 예루살렘 입성 - 눅 19:29∼48 일요일
지금까지 여러번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으나 이번 입성은 그의 마지막 입성이 됩니다.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대로 그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이는 그가 승리의 왕이심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구약에 예언 된 대로 겸손한 왕이 되어 백성들을 위하여 죽으러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목숨을 빼앗고 통치하는 왕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목숨을 내어주므로 왕이 되시는 이상한 모델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문화가 다릅니다.
두번째 성전숙청 - 막 11:11∼19, 무화과나무 저주 - 마 21:18∼22 월요일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도 성전을 청결하게 하셨는데 이제 마무리 할 때도 다시 한번 성전문화에 도전하십니다. 우리가 구약을 공부했지만 모세시대부터 성막(성전)은 하나님 나라의 중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성전문화에 대한 도전은 썩어있는 하나님 나라 문화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는 작업입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러 오신 분이심을 그의 사역 앞, 뒤로 보이시는 장면입니다. 성전청결로 유명해지기 시작하신 예수님은 다시 성전 청결로 끝을 맺으십니다. 성전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의 마지막 질문공세, 그리고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그리고 감람산 강설
- 마 21:12∼25장
그리고 베푸신 강설이 감람산 강설입니다. 말세에 일어날 징조들입니다. 결국은 멸망당할 예루살렘성! 구약부터 그토록 파란만장했던 예루살렘성! 이 성을 바라보시며 우시는 심정을 여러분 이해하시겠습니까? 솔직히 우리는 함께 울 가슴이 없습니다. 구약을 계속 공부해 오신 여러분! 조금이나마 이 예루살렘의 역사를 배우셨으니 예수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십시요.
유월절 만찬/잡히심/철야심문/베드로의 배반 - 마26:17∼75 목요일
마지막 목요일 밤은 참 슬픈 날입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밤입니다. 노아와 언약하셨고,
아브라함과 언약하셨고,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하셨고, 다윗과 언약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당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최후의 언약을 하는 밤입니다. 성경 역사의 클라이막스와 같은 언약의 밤입니다. 유월절 밤은 바로 이 밤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를 위해 내어놓으시겠다고 직접 떡과 포도주로 언약하셨습니다. 계약을 체결한 밤입니다. 그리고는 그 밤 스스로 잡히십니다. 그리고 밤새 철야 심문을 당하십니다. 불법 심문이었습니다. 사형을 결정하려면 70인 공의회가 다 모여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거짓으로라도 사형에 해당하는 증거를 찾기 위해 야밤에 증인을 찾느라 소동을 했습니다. 군중들을 피해 어떻게 해서든지 제거하려고 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억장이 무너지는 배반을 합니다. 야밤, 어느 후미진 구석을 찾아, 아무도 안 보는데서 뼈아픈 눈물을 흘리며 통곡합니다. 사나이의 통곡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던 식민백성 한 유대인 베드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꿈을 품고 달려온 지금, 여기는 깜깜한 밤 후미진 구석, 통곡의 현장입니다. 베드로에게는 세상이 무너진 밤이었습니다. 혁명을 해서 로마를 뒤집어 엎을 줄 알았었습니다.
빌라도의재판, 십자가에 죽으심 - 마 27:1∼66(요 18∼19) 참고 금요일
예수님을 죽이기로 조서를 꾸민 대제사장들이 사형집행권이 있는 빌라도의 손을 빌어 로마의 역적으로 몰아 죽이기로 최종 결안하고, 회의를 마칠 때쯤 되니까 날이 밝았습니다. (빌라도에게 나아가 벼락 사형선고를 요청했습니다.) 골치 아픈 빌라도는 헤롯에게로 이 문제를 넘기려고 했으나 결국 자기 손으로 사형언도를 내립니다.
부활하심 - 요 20장
그러나 그가 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다시 살아나시므로 증명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죽음에게 갇혀 계실 수 없습니다. 죄 값을 치루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영생이신 분이 죽음에게 당하실 수 없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예수님 안에 영생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은 관념이나 사상이나 추상개념이나 은유나 상징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역사적인 사실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추상이 아니듯이, 우리의 구원도 추상개념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잃어버려 그것을 증명하는 물증으로 죽음을 죽습니다. 우리의 죽음도 사실입니다. 추상이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즉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그것이 추상이나 신화나 관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죽음이 현실이듯이 선악과 사건도 현실입니다. 역사적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도 역사적 사건이고, 아담을 만드신 것도 역사적 사건이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역사적인 사건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역사적인 사건으로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역사적인 사건으로 부활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역사적으로 하늘로부터 다시 내려오실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관념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생은 개념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공생애 제 3년말, 예루살렘 사역 끝
3.복음서와 사도행전 중간지대
1) 진공상태에 빠진 제자들
아직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이해하지 못했던 제자들은 허탈한 심경으로 일단 그들의 고향인 갈릴리로 돌아갑니다. 한 때 꿈을 갖고 예수를 좇던 모든 일들이 일장춘몽인양, 꿈을 꾼 듯, 폭풍이 휘몰아 친 듯, 해석되지 않는 과거 3년의 경험을 정리하지 못한 채 진공상태에 빠져 버립니다. 갑자기 할 일을 잃어버린 그들은 우선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우선 배고프니까 고기를 잡습니다. 그들은 실직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부터 무얼 하며 인생을 살아 가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방향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사명을 잃은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가끔씩 나타나시므로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사실인 것 같으나 그들에게는 아직 “So what?”의 상태입니다.
2) 제자들이 앞으로 무얼 하며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사명을 주심
부활의 주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나타나십니다. 베드로를 그 대표자로 세우셔서 “내 양을 치라”는 구체적인 명령을 하십니다. 처음에 고기 잡을 때 “이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신 그 장면을 기억케 하는 갈릴리바다 바로 그 현장에, 이번에는 부활의 몸으로 똑같이 나타나셔서 구체적으로 명령하십니다. “내 양을 치라”고 하십니다. 양육하라고 하십니다. 목회하라고 하십니다. 비록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베드로의 손을 들어주십니다. 네가 잘 이끌어가보라고… . 교회시대를 내다보시며 포석하시는 장면입니다.
3) 아주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주심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지금 예수님을 잡아죽인 대제사장들이 무서워 갈릴리로 부리나케 도망 와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제 갈릴리를 떠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그 무서운 예루살렘으로 또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주님의 부활 이후 제자들이 행해야 할 구체적인 명령이었습니다. 일단 제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보따리를 쌉니다.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다는 희한한 사실을 목격한 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조금씩 밀어냈을지도 모릅니다. 주님이 살아나셨으니 우리가 잡혀 죽어도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영생이란 무엇인가, 이런
명제들로 머리가 복잡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난 이 시점에서 그들은 이런 인간의 궁극적인 질문들을 진지하게 물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잡히면 죽을텐데 그런 생각 안 날 리가 없지요. 얼마 전에 베드로도 그래서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것 아닙니까? 다시 그 문제에 부딪힌 거지요. 그렇지만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시니, 그들은 일단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갑니다. 이때 연락망을 통해 연락된 갈릴리 핵심 멤버들과 예루살렘의 핵심 멤버들은 120명 정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마가의 다락방(행 1:15)에 모인 사람들이 120명 가량이었으니.
4) 감람원이라는 산, 예루살렘 근교에서 승천하심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에 와서 머물러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이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부활후 40일째였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십니다.바로 이 승천 직전에 예수님이 하신 마지막 유명한 말씀을 우리가 잘 압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이 말씀입니다.
5) “약속”을 기다리라고 하심 ? 보혜사 성령을 보내겠다는 약속
제자들은 그들의 추적이 빗나가자 또 방향을 잃었을 것입니다. 또, 하늘로 올리워 가신 예수님은 이제 웬지 쉽사리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합니다. 보고 싶어도 이제는 못 보는 예수님. 이제는 믿고 의지할 것은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한 달 여 전에도 다락방 강설에서 하셨던 말씀(요 15:26, 16:7∼14), 또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하셨던 말씀, “보혜사 성령을 보내마” 그 약속입니다. 보고싶은 예수님, 이제는 볼 수도 없고, 음성도 못 듣고, 이제는 무어라 지시하시지도 않으시고, 이젠 정말 이별이구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이제 기도밖에는 할 것이 없었습니다. 전혀 기도에 힘쓸 수 밖에는 … (행 1:14) 그분이 하신 마지막 약속을 기다리는 것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6) 약속하신 성령이 오심, 창세기 11장에서 흩어졌던 언어가 다시 통일됨
예수님의 승천, 그 날 이후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오순절입니다. 약속하신 성령이 강림하십니다. 그런데 성령의 오심으로 나타나신 가시적인 현상은 언어영역입니다. “불의 혀같이,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사도행전 1장부터 12장까지는 최초의 교회 예루살렘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12제자(12지파)를 다시 설정합니다. 맛디아를 뽑아 유다 대신 보충하고, 베드로는 이 교회의 초대 담임 목사격으로 이들을 지도합니다. 베드로는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성도들을 구심점으로 새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그토록 하나님이 기다려 오신 세상을 향한 새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교회입니다. 구약의 이야기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구약과 신약은 다른 책이 아닙니다. 이와같이 구약과 신약은 한 권의 책입니다.
=사도행전에 진입=
사도행전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구약에서 공부해 온 ‘하나님 나라’가 사도들에 의해서 어떻게 세계로 전파되어 나갔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구원은 운동성이 있어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가나안 땅은 침노하고, 정복하고, 투쟁해서, 얻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이 시대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세계만방을 향하여 전투태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입니다.
사도행전은 누가 썼습니까? 아시다시피 누가가 쓴 책입니다. 누가는 사도 바울의 조수로 선교여행에 동행한 헬라인이며 의사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행적 「누가복음」을 쓴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서 초대 교회가 어떻게 발전되어 나갔는지에 대한 과정부터 사도 바울의 1차 로마구금까지 비교적 자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1. 사도행전 읽으며 서신서들 연결하기
사도행전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부는 초대 교회의 시작부터 사도 바울이 등장하기 전까지인데, 이 때 중심인물은 베드로입니다. 2부는 사도 바울의 선교입니다.
1) 제1부 :1∼12장 : 초대 교회 시작부터 베드로의 활약
중심교회 : 예루살렘 교회
중심인물 : 사도 베드로
① 1장
예수께서 승천하십니다. 제자들은 오실 성령님을 기다리며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합니다. 120명이 모인 것을 보면, 갈릴리에서 올라올 때 같이 올라온 사람들도 있었지만(이 사람들은 수배될 것을 각오하고 올라왔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생긴 제자들도 수소문해서 모였을 것입니다. 몇 달 전에 베레아(베레아 ‘요단동편’과 베뢰아‘마게도냐, 유럽’은 다르다.)에 파송되었던 70인 전도단 제자들도 많이 가담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 120명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이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창립 교인쯤 되겠지요? 예수님의 처형, 부활, 승천이라는 일연의 폭풍 같은 사건이 지난 40여 일 동안 일어났
기 때문에 지금 이들은 특별한 각오를 갖고 모였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의 유언에 의하면 무슨 일이 벌어져야만 하니까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이들은 소위 마가의 다락방으로(13절) 알려진 방에 모여서 기도에 힘썼습니다. 교회는 기도로 출발했습니다. 또 가룟 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12제자 중 하나로 선출합니다. 세계 열방으로 나가기 전에 12지파를 정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② 2장 - 새로운 View Point(전망대)
드디어 유월절 (죽으신) 이후 50일이 되는 오순절 날에 성령께서 강림하십니다. 이 사건으로 이제 더 이상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지 않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의 의미를 그들 스스로 파악합니다. 그리고는 그 사실이 너무 놀라워서 막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합니다. 그들도 놀란 것 같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50여 일 전에 일어났던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사건을 스스로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다윗의 시편(시 16:8∼11)과 매치되면서 깨달음이 온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각 나라 사람의 방언으로 동시통역으로 들리게 되자 그것은 요엘서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욜
2:28∼32)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부활(현재 일어난 사건)과 관련해서 구약(기록된 예언)을 풀어 설명해 주신 예수님의 방법론을 터득한 것 같습니다.
그때를 계기로 베드로가 배웠나 봅니다. 베드로는 구약을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맛디아를 뽑을 때도, 가룟 유다가 죽은 것도 다 그렇게 해석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아주 많이 얘기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구약 성경이 응하는 묘미에 무릎을 치며 기뻐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게 너무 신기해서 북받치는 마음으로 막 외친 것입니다.설교를 한 거지요. 언제 그렇게 설교를 많이 해 봤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그는 할 말이 생긴 것입니다. 메시지가 생긴 겁니다. 베드로에게 깨달아진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도 깨달아진 말씀이 있어서 외쳤던 것처럼 말입니다.
동시통역 사건은 창세기 11장에서 언어가 흩어진 사건과 비로소 연결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의 주인공들이 흩어졌는데 여기 와서 다시 하나님의 언어로 통일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류 문화를 대표해서 나타났던 바벨 사람들이 심판을 받았으나, 그들을 다시 품으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나라를 이루어 오시더니, 드디어 여기 예수사건이 일어난 직후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시 언어가 통일되는 것입니다. 다시 그들에게로 향하는 복음의 방향성을 보이시는 큰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할 때 언어의 통일이 왔습니다. 창세기 11장과 12장 사이가 성경 전체를 볼 수 있는 전망대, View Point라고 했었는데, 여기 사도행전 2장의 통역사건도 바로 그 사건과 이렇게 연결되는 전망대, View Point라는 말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지점입니다.
이미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유대인들의 후손은 세월이 흐르면서 헬라문화권이 되어 버린 곳에서 살게 되었지만 나름대로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사회를 형성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내적으로 집정관(Archon)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나 장로들을 중심으로 예루살렘과 계속 관계를 맺으며 회당을 중심으로 살아갔습니다. 이런 흩어진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예루살렘 성전 문화에서 힘을 공급받아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로마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폼페이가 유대에 출동해서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후 많은 유대인들을 로마로 잡아갔었습니다. 마카비 왕조가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쥴리어스 시저 때에는 로마에 유대인 거류집단이 있었습니다. 이런 흩어진 유대인들로부터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3대 명절 때마다 예루살렘은 예배하는 디아스포라들과 개종자 이방인들로 붐볐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범세계적인 도시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습니다.
약 50일 전 십자가에 처형 되었던 예수사건도 이들 디아스포라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데 이번에는 그 제자들이 나타나 예수사건을 해석하는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베드로를 중심으로 그 유명한 초대 교회,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합니다. 베드로가 교회의 대표로 분명히 드러납니다.
③ 3장∼4장
3장에서는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이적적으로 고쳐줌으로 다시 한번 예루살렘에 복음이 전파됩니다. 그 결과로는 남자만 5천 명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됩니다(4:4). 그로 인해 베드로와 요한이 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핍박을 통해 교회는 오히려 견고해집니다(31절).
④ 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만 교회는 오히려 더 정화되고(11절), 계속되는 박해 속에서도 교회는 더 강해집니다(41∼42절).
⑤ 6장∼7장
교회에 구제문제로 인한 갈등이 생깁니다. 아무리 초대 예루살렘 교회라고 해도 예수 믿고 나자마자부터 다 거룩한 천사처럼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죽기까지 성화되어 나가야지요. 바울이 세운 교회들도 맨-날 그런 일로 갈등하고, 싸우고, 문제가 생깁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유형 교회는 언제나 이렇게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구성원은 크게 두 그룹이었습니다. 하나는 히브리파 사람들이고, 또 다른 하나는 헬라파 사람들입니다. 바울의 서신서에도 늘 등장하는 용어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는 말이 여기부터 등장하는 것입니다.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서 누락되면서 헬라파 사람들이 불평합니다. 이에 대해 초대 교회는 일곱 집사를 선출하여 구제문제를 전담케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실제로는 헬라파 유대인들 중에서 선택되었습니다. 즉, 불평이 제기된 헬라파 사람들에게 그 일을 맡김으로써 해결합니다. 초대 교회의 넉넉한 마음을 봅니다. 그런데 그 일곱 명 중 한 사람이 스데반이며, 7장에서 스데반은 순교를 당합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이 일독학교에서 다루어 오고 있는 구약역사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어야지요.
⑥ 8장
드디어 사울(사도 바울)이 등장합니다(1∼3절).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자 중 하나인 청년 사울입니다. 그 핍박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흩어집니다. 그 중에 빌립이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특별히 구스 내시에게 전도합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행1:8)를 거쳐 ‘땅 끝’을 향하기 시작합니다.
⑦ 9장∼11장
사울이 회심합니다. 다메섹으로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 하다가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다메섹, 갈릴리 북쪽 수리아입니다. 구약으로 말하자면 아람, 수리아 거기입니다. (지도를 반드시 보십시오.) 그는 회심 후 즉시 회당에서 예수를 증거합니다(20절). 그러자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 합니다. 그래서 다메섹을 떠나 예루살렘에 갔다가 후에 그의 고향 다소로 갑니다(26∼30절). 지도를 놓고 그 행선지를 선으로 그어 보십시오. 다소는 예루살렘에서 다메섹 가는 거리 두 배 정도 더 서북쪽에 있는 사울의 고향입니다.
한편 베드로는 순회전도를 합니다. 그러다 10장에 보면 하나님의 뜻 가운데 로마 사람인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가서 전도를 합니다.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있었습니다. (가이사랴라는 도시는 앞에서 설명했습니다만 대헤롯이 시저를 기념하며 세운 도시입니다. 지중해 해변에 로마 군인들의 성채가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헤롯 아그립파 1세의 통치 중심지였습니다. 바울도 로마로 후송되기 전에 가이사랴 감옥에 2년 동안 억류되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 가이사랴는 당시 정치를 위한 중심지였습니다. 해변이라 아름다워서 거기에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또 지중해를 거쳐 로마나 소아시아쪽을 갈 때 출발하기 좋은 장소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두로와 시돈처럼 항구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앞으로 이 지명이 많이 나옵니다. 지도를 꼭 보십시오. 지도를 보기 시작하면 새 세상이 열립니다.) 이 가이사랴에 심방간 베드로가 설교합니다. 그런데 이 때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이방인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습니다. 이 사건은 대단히 의미있는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공식적으로 전파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사건의 중심 인물로 베드로가 사용되지 않고, 만일 사도 바울이 쓰임 받았다면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 성도들을 하나님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데 한결 더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11장).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지만, 막상 이방인을 최초로, 또 공식적으로 개종시키는 사람은 베드로였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과 섭리가 계셨다고 봅니다. 사도행전 기록자 누가는 이 사실을 놓치지 않고 기록합니다. 이제 후에 전개 될 바울의 이방선교의 당위성을 포석하는 장면입니다.
⑧ 12장
헤롯이 죽습니다. 이 헤롯은 파사엘(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헤롯 대왕의 형)의 손자 아그립바 1세(대헤롯의 아들 아켈라오, 안티파스, 빌립 등과는 다른 계열)입니다. 그는 로마 황제 글라우디아와 같이 교육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친분 관계로 A.D. 41년에 이르러서는 과거 대헤롯이 다스렸던 땅을 다 다스리는 세력을 얻습니다. 그런데 여기 12장에 보면 그가 충이 먹어 죽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일찍 죽었기 때문에 그를 이어 어린 왕자가 대를 잇습니다. 그의 아들 헤롯 아그립바 2세입니다. 그는 거의 A.D. 100년경까지 유대 통치자로 다스립니다. 이 아그립바 2세를 끝으로 헤롯 가문은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헤롯(아그립바 1세)은 정치적으로 인기를 얻기 위해 초대 교회를 핍박하였는데 그의 교만함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진노로 죽은 것입니다. 그는 가이사랴 바닷가에 있었던 연극장(에베소의 연극장처럼 타원형 부채꼴인데 새파란 지중해 바다가 보인다.)에서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의 생일을 맞는 축제경기에 참석했다가 복통으로 급사한 것입니다. 이제 이후로 등장하는 헤롯왕은 아그립바 2세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2) 제2부: 사도 바울의 활약과 세워지는 이방인 교회들
중심교회 : 안디옥 교회 (수리아)
중심인물 :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에도 베이스 캠프가 있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베이스 캠프입니다.
안디옥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출발해서 안디옥 교회로 다시 돌아오면 1차씩 지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음과 같은 말을 족집게로 찝어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거기서 배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18:22) 등입니다. 그런데 2차와 3차 사이는 찾아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찰싹 붙어 있습니다. 바로 18장 22절과 23절 사이입니다. 이 한 절 사이가 2차와 3차를 갈라놓습니다. 22절은 “안디옥으로 내려가서”로 끝나는데 곧이어 23절은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니라”로 되어 있습니다. 22절에서 안디옥으로 갔는데 이제 얼마 있다가 다시 떠난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얼핏 보면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베이스 캠프를 염두에 두시고 아래에 자세히 나누어 놓은 장 절을 참고하며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을 같이 따라다녀 보십시다. 지도! 꼭 챙기셔야 합니다.
① 제1차 선교여행 (13장∼14장 )
안디옥? 실루기아? (배 타고)? 살라미? 바보? (배 타고)? 버가?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 버가? 앗달리 아? (배 타고)? 안디옥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안수받는 장면 13장부터가 사도 바울이 정식으로 선교사로 출발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여기가 선교여행 출발지점입니다. 1차 선교여행 처음에는 바나바가 선교여행의 중심인물로 출발하지만 중간에 리더가 바울로 바뀝니다(13절 참고). 이 때 파송 교회는 안디옥 교회로 이방인 최초의 교회입니다. 이 안디옥이라는 이름은 사실 셀루코우스 1세(누군지 아시죠? 그래서 중간기 역사를 배웠습니다.)가 자기 아버지 안티오쿠스의 이름을 기리며 세운 도시 이름입니다. 16개나 세웠는데 다 안디옥입니다. 그 중의 하나인 ‘수리아 안디옥’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성경에는 비시디아 안디옥이 또 나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터어키 중부에 있고, 수리아 안디옥은 그보다 남쪽, 그러니까 유대에서 본다면 더 가까운 북쪽입니다. 지도 보시죠? (사도행전은 절대로 지도 없이 읽으면 안되는데, 아직도 지도를 안 보는 분이 계실까봐 걱정돼서 그럽니다. 오죽하면 이러겠습니까?) 안디옥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유명한 도시입니다. 당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최초의 이방인 교회가 이 안디옥에 생긴 것입니다.
1차 선교여행의 여정은 구브로 섬을 거쳐 비시디아 안디옥(13:14), 이고니온(14:1, 오늘날의 코냐), 루스드라(8절), 그리고 더베(20절)로 이어집니다. 돌아올 때는 왔던 도시들을 다시 재 방문하여 교회들을 굳게 합니다. 다만 구브로 섬은 들리지 않고, 배로 안디옥으로 돌아와 교회 앞에 선교보고를 합니다(27절). 딱 여기까지가 1차입니다. 별로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구브로 섬을 끼고 바다로, 육지로 돕니다.
② 예루살렘 종교회의 (15:1∼35)
갈라디아서에 보면, “내(바울)가 전한 복음에서 떠나 어쩌면 그렇게도 빨리 다른 복음을 좇아갈 수 있느냐?”고 안타까워하는 내용으로 서두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회의에 대한 얘기도 나옵니다. 이렇게 갈라디아서는 사도행전 13장∼15장 정도의 내용과 연결이 됩니다. (처음 일독하면서 일일이 다 맞춰가며 이런 점들을 찾아내서 읽기는 어렵겠지만 이렇게 연관이 있구나 하는 것들만 생각하고 읽어도 어딘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차츰 읽어나가시는 재미가 생길겁니다.) 예루살렘 회의의 주제도 한마디로 ‘율법이냐, 복음이냐’를 다룬 것인데 이것은 갈라디아서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로마서도 같은 주제지만 더
깊고 원숙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유대인의 독점이었던 율법, 할례, 선민사상 등을 뒤로 하고, 이제 열방으로 나아가는 세계화 과정은 이렇게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가 문제가 됐으니 … 이제껏 율법을 지켜오던 유대인들이 ‘복음으로만 구원 얻는다는 원리’로 구원관을 바꿔야 한다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 본부 자체 내에서도 정리하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과정을 하나하나 거쳐가면서 비로소 예수사건, 복음은 정리되어 갑니다. 그 역할의 장본인이 바울이었던 것입니다. 이 회의에 참석해서 강력한 발언을 하는 것부터 그렇습니다. 그것이 그의 신학이었습니다. 그의 깨달음이었습니다. 그의
메세지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바울을 쓰신 것입니다. 그 광대한 구약이해와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 접속되면서 바울이 깨달은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삼위일체, 성경의 정경화 등등 굵직굵직한 원리들도 이런 교회역사의 회의 속에서 정돈되어 갑니다. 그래서 ‘교회사’니 ‘교리사’니 하는 말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계화시켜 나가시는 과정에서 이렇게 역사 속에서 계속 일해 오시며 섭리해 가십니다. 여기 예루살렘 종교회의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15장에는 예루살렘 회의에 관한 비교적 상세한 보고가 들어있습니다. 이 회의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채택한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회의였습니다. 이것은 이방인 교회들의 설립과 발전에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으며, 또한 복음을 변질시키지 않고 순수하게 유지시키게 하는 결정이었습니다. 이 때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베드로가 등장하지 않고 야고보가 등장하는데(13절),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으로서(마 13:55), 야고보서를 기록한 사람이며, 예루살렘 회의의 최종결론을 내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③ 제2차 선교여행 (15:36-18:22) 데살로니가전·후서, 갈라디아서 들어가는 자리
안디옥? 다소? 더베? 루스드라? 비시디아 안디옥? 드로아? (배 타고)? 네압볼리?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배 타고)? 아덴? 고린도 (사역의 중심지, 데살로디가전·후, 갈라디아서 기록)? 겐그레아? (배 타고)? 에베소? (배 타고)? 로도? (배 타고)? 가이사랴? 예루살렘? 안디옥
여러분,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하면 이제부터 이 생각 하나는 꼭 하십시오. 뭐냐 하면 바울은 남쪽 갈라디아를 거쳐서 소아시아의 에베소에 가고 싶었는데, 하나님은 마게도냐 유럽의 고린도로 인도하셨다고. 소 아시아(큰 덩어리땅)의 에베소(도시이름)를 가려고 했는데, 아가야(큰 덩어리땅)의 고린도(도시이름)로 인도하신 사실입니다.
바울은 바나바와 결별합니다. 직접적인 이유는 마가를 동반하는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한 갈등이었으나 또 다른 원인은 갈라디아서 2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베드로와 함께 한 바나바의 외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길리기아를 통과하고 토러스산을 넘어 소아시아의 서해안 도시지역인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등을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소아시아의 중심도시 에베소가 그 중요 목적지였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막으십니다(행 16:6). 그래서 할 수 없이 갈라디아와 부루기아(큰 지명인 것 기억하십시오.), 즉 중부 소아시아 지대를 관통합니다. (이때 디모데를 발탁해서 합류합니다. 지도를 보십시오.) 그래서 사도행전에는 없는 도시 이름이지만 여행계획에도 없었던 아모리온, 페시누스, 오르키스토스, 그리고 니콜레이아 등의 인구 조밀한 갈라디아 도시를 통과하며 거기서도 선교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시아로 가려고 애썼다는 말은 에베소로 가려고 애썼다는 말입니다.) 그는 대도시 중심의 선교전략을 세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에베소로 가려고 했던 것은 인간 사도 바울의 뜻이었고, 주님은 그를 유럽으로 보내십니다. 천사같은 바울이었으나 역시 인간이었습니다.
이 때 유럽이라고 하면 오늘날의 터어키가 있는 아나톨리아 반도 맞은 편에 있는 땅, 즉 오늘날의 이스탄불이 그 동쪽 경계가 되고, 서쪽으로는 스페인과 바다 건너 영국까지를 말합니다. 바울 사도 일행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에 따라 바다를 건너 마게도냐 빌립보 성에 도착합니다. 마게도냐 환상을 따라 유럽으로 건너간 사도 바울 일행을 통해 유럽 최초의 교회, 빌립보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 설립되는 과정이 16:11∼40에 나옵니다.
그런데 드로아(아시아 서쪽 끝 도시)에서 그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본 후 바울이 유럽으로 건너가는 바로 그 장면부터 비로소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한 번 찾아보십시오. “우리”라는 단어입니다. 즉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의 동반이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2차 여행의 일행은 이렇게 해서 실라, 누가, 디모데입니다. 알려진 대로 누가는 의사였는데 빌립보 출신으로 추측됩니다. 당시 빌립보에는 큰 의과대학이 있어서 주변도시에 의사들을 공급했다고 합니다.
빌립보에는 또한 로마의 퇴역군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두아디라 출신 자주장사(자주색은 귀족들이 입는 옷 색깔이었는데 당시 소아시아 두아디라 성의 특산물이었다) 루디아를 비롯하여 간수가족, 점치는 여종 등을 중심으로 교회가 생깁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옥에 갇히고 태장(채찍으로 맞는 매)을 맞습니다. 한밤중에 찬송 가운데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열리고 그 결과 간수가 예수 믿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지진은 이 지역에서 지금도 간혹 발생합니다.
그 후 석방되어 데살로니가를 거쳐 베뢰아로 갑니다. (유대인들의 심한 소동을 피해 바울은 혼자 아덴(아테네)로 갑니다. 그리고 실라와 디모데를 약 6개월 후에 고린도에서 재회하게 됩니다. 자, 이렇게 여기 우리가 아는 교회 이름들이 나오지요? 지금 현재 이렇게 다녀가면서 교회들이 생긴 것입니다. 지금 서신서에 나오는 어느 어느 교회가 생겼는지 지도 속에서 점찍어 놓아보시기 바랍니다. 빌립보,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염두에 두십시오.) 그리고는 바울은 혼자 따로 더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바울 일행이 2차 전도여행하는 지역들은 지중해를 끼고 있는 그리스 반도의 항구도시들입니다. 위에서부터 차례차례 내려오는 중이지요. 바울은 아테네에 도착합니다.
한편 일행이었던 실라와 디모데는 그 동안 어떻게 됐을까요? 바울은 소동 때문에 일찍 떠났지만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걱정되어 그들을 거기 남겨두었기 때문에 그동안 떨어져 있었습니다. 나중에 6개월이 지난 후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이 머무르고 있는 고린도로 내려와 만나게 됩니다. 그들에게서 그 궁금했던 교회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펜을 들어 그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편지가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입니다. 지금 현재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하고 있으면서 몇 개월 전 지나왔던 데살로니가 교회가 생각나서 쓴 겁니다. 자식 많은 부모가 이 자식, 저 자식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또 전통적으로 이 즈
음에 갈라디아 교회에도 편지를 보낸 것으로 봅니다(그러나 1차 선교여행 끝나고 예루살렘 총회 즈음에 갈라디아서를 썼다고 생각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 같은 경우입니다. 이렇게 될 경우는 갈라디아서가 최초의 서신서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가 쓰여집니다. 여러분이 고린도에 머물고 있는 사도 바울의 일행 중에 끼여있다고 상상하면서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를 읽어보십시요.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의 내용을 기억하시나요? 성경목록 공부에 가셔서 다시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다가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겐그레아에서 배를 타고 에베소에 갑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부부를 에베소에 남겨 놓습니다. 거기서 목회하라고 말입니다. 그 후 바울은 예루살렘을 들러, 수리아 안디옥 교회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2차 전도여행입니다.위에서 말했던 18장 22절까지 얘기입니다.
④ 3차 선교여행 (18:23∼21:16) 고린도전·후서, 로마서가 끼어들어가는 자리
안디옥? 다소? 이고니온? 에베소(사역의 중심지 : 고린도전서 기록)? 미둘레네? 앗소? 드로아? (배 타고)? 빌립보(고린도후서 기록)? 데살로니가? 베뢰아? 고린도(3개월 과동, 로마서 기록)? 베뢰아? 데살로니가? 빌립보? (배 타고)? 드로아? 앗소? 미둘레네? (배 타고 기오, 사모를 거쳐)? 밀레도? (배 타고 고스, 로도를 거쳐)? 바다라? (배 타고)? 두로? 가이사랴? 예루살렘(체포)
에베소 도착 : 그동안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있었던 브리스길라와 아울라
(얼핏보면 찾아낼 수 없이 숨어있는 것 같지만, 사도행전 18장 22절에서 2차 선교여행은 끝난다고 했습니다. 이 2차 여행 마지막에 잠깐 들른 곳이 에베소라고 했습니다. 2차 여행 출발할 때 여기가 목적지였는데 결국은 고린도 교회를 크게 개척하고 이제 2차 여행이 끝나 돌아가는 길에 잠깐 스쳐 지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뭔가 아이디어는 얻었겠지요? 다시 와서 어떻게 하리라 하는 … 그러지 않아도 오고 싶었던 곳인데 이 곳 사람들이 또 바울이랑 맘이 맞았는지 함께 있자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의 뜻이면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에베소를 떠났었는데 3차 여행이 시작되면서 바울은 곧바로 에베소를 목표로 하고 지금 여기 온 것입니다.) 왜 바울은 이렇게 에베소를 가려고 했을까요?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로마령 수도였기 때문입니다. 안디옥에서 가까운 소아시아 지방의 수도인 에베소부터 점령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저- 멀리 유럽, 아가야 지방의 고린도부터 점령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소아시아지방이라고 하면 무시아, 루디아, 카리아, 루시아, 그리고 서부 브루기아 등을 포함하는 지역을 말합니다.
바울은 그래서 2차 선교여행 말기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에베소를 들른 것이고 거기에 그들 부부를 남겨 놓은 것입니다.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알렉산드리아 (이집트의 도시, 기억하시지요?) 출신 신학자 아볼로가 왔을 때 그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렇게 교육시킨 아볼로를 고린도에 파견해서 고린도 교회를 목회하도록 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고린도에 자리잡고 있었던 사람들인데 거기서 빠져 나와 에베소로 왔으니, 고린도에 사람이 필요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볼로를 보낸 거지요. (고린도전서에 보면 교회가 파당 갈등이 일어나는데, 그 때 ‘나는 아
볼로파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볼로가 이렇게 파송되어서 목회를 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즈음에 베드로도 고린도를 방문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분쟁이 있었을 때 게바파가 등장합니다. 고린도전서 편지를 이 3차 여행지 에베소에서 쓰게 되는데 이 고린도전서를 쓰기 전에 이미 게바파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간 시점, 그러니까 이렇게 아볼로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로부터 훈련을 받은후 고린도 교회에 들어가 목회를 하던 그 시점 언젠가 베드로도 고린도를 방문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에베소 사역: 회당, 두란노 서원에서 전도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하여 먼저 회당에서 전도했는데, 약 3개월 간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두란노 서원으로 자리를 옮겨 가르쳤습니다. ‘두란노’는 어떤 수사학자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의 개인 학교 이름이기도 했는데 그곳은 11시부터 4시까지는 siesta(낮잠 시간)를 위해 비어 있었습니다. 그 때를 이용해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이 점은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행 20: 34)라고 말한 데서도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선선한 아침과 저녁에는 일을 하고 한 낮 더운 때에 모여서, 그것도 날마다, 에베소 교회는 열심히 배우고, 또 전도하였습
니다. 이렇게 햇수로 3년 동안을 계속해서 사역을 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기록이 없는 에베소에서 있었던 일 고린도전서가 끼어들어가는 자리
사도행전에는 위와 같은 내용만 간단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우리는 그냥 이 내용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게와의 아들들 얘기와 에베소에서 일어난 폭동얘기만 더 있고는 끝입니다. 폭동 이야기로 에베소를 왜 떠나게 되었는지 말해 주고 에베소 사역은 막을 내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3년 동안 바울이 어떻게 지냈는지 그 이상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 에베소에서 기록한 고린도전서는 많은 정보를 줍니다.
에베소 폭동사건으로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로 이동 - 행 20:1
고린도후서가 끼어들어 가는 자리
(바울은 3차 전도여행 경로를 에베소(아시아), 마게도냐(빌립보, 데살로니가 등 유럽), 아가야(고린도, 유럽)로 잡고 있었습니다(행전 19:21).) 그런데 지금 머무르고 있는 에베소에서 바울을 잡겠다고 폭동이 일어나니까 더 이상은 에베소에 머무를 수가 없어졌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를 향해 떠납니다. 북진입니다. 그가 마게도냐로 가는 이유는 거기 교회(빌립보, 데살로니가 등)들을 돌보는 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고린도 교회로부터 소식을 가지고 돌아오는 디도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이 쯤에서 지도를 한번 보세요. 소아시아와 유럽이 함께 있는 지도 말입니다. 에베소에서 출발해서 마게도냐로 올라가는 길을 잘 보십시오.
그래서 이런 기쁨 속에서 쓴 편지가 바로 고린도후서입니다. 마게도냐에서 쓴 편지입니다.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고린도후서가 읽혀집니다. 이제 한번 고린도후서를 열어보십시오. 전에 그냥 읽던 때와는 기분이 다르실 겁니다. 사도 바울의 기쁨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1장에 보면 위로 받았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오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도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고린도후서는 그간 사도와 고린도 교회 사이에 있었던 불편한 관계가 해소되는 극적인 기쁨 속에서 쓴 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이런 스토리를 모르고 그저 읽으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건지 유난히 이해할 수 없는게 고린도후서입니다. 로마서만 하더라도 내용이 좀 어려워서 그렇지 그냥 읽어집니다. 그러나 유난히 고린도후서는 정말 편지가 읽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구체적인 사연이 쌍방 간에 있었는데, 그들은 알고 있어서 그냥 편지를 읽어도 이해됐지만, 우리같이 그 사연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그 편지만 읽어서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고린도 교회 성도 사이의 이런 스토리를 다 알고 나면 이해가 잘 됩니다. 예를 들어서 고린도후서 2장 1절∼8절을 이제 한 번 보십시다.
“내가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노니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디도가 갖고간 편지) …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찌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러한 사람(문제 일으킨 장본인)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받은 것이 족하도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 (표준새번역으로 읽으면 더 쉽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구제헌금’을 모으고 있으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구제헌금 보내는 사역을 무척 중요시했습니다. 이방인 교회들이 그들로부터 영적인 복음을 나누어 가졌으면 물질적인 것을 예루살렘 교회와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 고린도후서 편지를 받고 미리미리 헌금을 모아두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마게도냐 빌립보 교회로 봄) 얼마간 더 머무른 후에(실제로 한 8개월 정도 있다가 고린도로 갔다고 봅니다. 헌금할 시간을 주려고 … ) 당신들(고린도교인들)한테 갈텐데 그때 가면 헌금을 달라고 합니다. 지금 현재 바울이 편지를 쓰고 있는 장소인 마게도냐 사람들한테 ‘고린도 교회는 헌금도 많이 모으고 있다고 자랑해 놨다’고 하면서 은근히 헌금 경쟁도
시키는 바울의 모습도 보입니다(고후 9:2∼5). 고린도 교회가 평정이 안되었다는 소식을 디도가 가져왔더라면 이런 헌금하라는 부탁은 하기도 어려웠을텐데 일이 잘 되고 나니까 한술 더 떠서 금방 이 어려운 부탁을 하는 사도 바울, 대단한 분이십니다. 대단한 추진력입니다.
마게도냐(빌립보 교회거나, 데살로니가 교회거나 베뢰아 교회겠지요? 대체적으로 빌립보 교회라고들 합니다)에서 디도와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바울은 맛있는 것도 많이 드셨을 것입니다. 이제 소화도 잘 되었을지 모릅니다. 고린도 교회가 회개한 것만 생각하면 너무 기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양했을 겁니다. 고린도 교회에 이 편지(고린도후서)를 써서 보내놓고는 그들이 헌금할 시간도 주면서 마게도냐 지역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약 8개월 정도 이 지역에 머무는 동안 가만히 맛있는 것만 잡숫고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5장 18∼19절에 보면 일루리곤까지 다 복음을 전파했다고 나오는데 바로 이 8개월 여기 마게도냐 지방에 머물면서 그 전도여행을 한 것 같습니다.) 헌금할 시간도 주고, 그 사이 윗지방을 다니며 전도하신 것입니다. 이 얘기는 아래, 로마서가 끼어들어가는 자리에서 더 자세히 보십시다. 자, 이제 여기 일루리곤까지 다 전도한 이후 이제는 드디어 그 속 썩였던 고린도 교회로 들어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절입니다.
그렇습니다. 서신서는 이렇게 상황과 연결해서 읽어야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행전을 읽다가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깔고, 고린도전서는 고린도전서대로, 고린도후서는 후서대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석 달 동안 고린도(헬라, 그리스, 아가야지방)에 머물러 있음 - 행 20:2하절, 3상절로마서가 끼어들어가는 자리아! 드디어 이 고린도 교회에 왔군요. 세번째 방문입니다(고후13:1). 마게도냐 지방의 환송을 받고 바울은 고린도에 들어왔습니다. 얼마나 감개 무량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 고린도에서 석 달 동안 체류하게 됩니다. 그동안 바울이 무엇을 했는가? 지중해는 겨울에 항해가 어렵기 때문에 겨울을 난 것입니다. 겨울을 지나면서 그동안 보고 싶었던 고린도 교회 식구들과 아주 감격스러운 교제를 했을 것입니다. 겨울만 조용히 났겠습니까? 그러면서 여기서 로마서를 쓰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이제 보십시다.
우선 이제 이쯤에서 사도 바울의 앞으로의 계획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 지금이 3차 여행 중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제 3차라고 하면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의 뒷 부분이라는 것도 생각하십시오. 바울의 계획은 지금 무엇일까 궁금해 하십시오. 왜냐하면 사람이란 다 미래를 내다보며 사는 거니까요. 요즈음도 우리 주변에 선교사님들을 뵈면 한 텀씩 마치시고 안식년을 맞으실 때마다 그 다음에는 어떤 사역을 할지, 선교지를 옮길지, 다른 선교 교육기관으로 갈지 진로를 놓고 기도하시는 것을 많이 봅니다. 우리는 지금 다른 건 잘 몰라도 이 시점에서 바울의 분명한 한 가지 계획은 눈치챌 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우리가 위에서 얘기한 헌금문제입니다. 이방 교회를 지금 다니시며 헌금을 모은 다음에는, 그것을 전달해 주러 가실 것이라는 행로입니다. 그러니까 분명한 행선지는 일단 예루살렘이라는 사실을 짚어놔야 합니다.
그러면 그 후에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었을까요? 로마를 거쳐 서바나(스페인)까지 가시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는 스페인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로마서 15장 22∼2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로마 교인)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헌금전달)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
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여기서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중요한 정보는 우선 이 고린도에서 과동하는 3개월 동안 바울은 나름대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싶어하는 심경이라는 것입니다. “이 지방에는 일할 곳이 없고 … ”라는 말입니다. 당신 사역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입니다.이 생각은 여기뿐만이 아닙니다. 로마서 15장 18∼19절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는 자기가 지금까지 해온 1, 2, 3차 선교여행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과거 선교여행한 그 모든 일들을 추억하면서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지금 이 시점에서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까지 사도 바울이 일해온 지역 전체를 둥-그렇게 원을 그려 표시하고 있는 말입니다. 하루 종일 장사한 사람이 번 돈 다 꺼내놓고 앉아서 얼마 벌었나 돈 정리 하듯이, 지금 바울은 그 동안 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예루살렘부터 일루리곤까지 다~ 전도했다’고 전도를 정리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루리곤이 어딜까요? 달마디아(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 딤후 4:10)와 동일한 곳이며, 마게도냐의 서쪽 끝입니다. 로마 바로 전에 있는 아드리아해 동쪽지역입니다. 언제 사도가 이 지역에 갔을까요? 사도행전에는 언급이 없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바울 사도가 마게도냐에 있을 때 디도를 만나 좋아하던 얘기를 했습니다만, 그 때 거기서 고린도후서를 쓰면서 헌금 준비하라고 했다 그랬지요? 그 때 바울은 약 8개월 쯤 마게도냐에 머무는데 그때 일루리곤을 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고린도후서 편지를 보내놓고 나서도 여러 지역을 전도하러 다닌 것 같습니다. 이 일루리곤을 이 때 전도한 후 바울은 드디어 고린도로 향한 것 같습니다. 바울이 일루리곤까지 전도했다고 분명히 말하는데 3차례에 걸친 전도여행 행로 중에는 바로 이 기간이 가장 적합한 때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이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쓸 때쯤 해서는 이제 선교의 일단락을 마쳤다는 사실을 거듭거듭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듯한 시점이라는 말입니다.
이제부터는 새 계획을 펼쳐야되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보여 주는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새 계획은 로마를 거쳐 스페인을 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15장 22~29절 이 말씀에서 우리는 중요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왜 이 계획이 하필 로마서에 기록되어 있을까요? 바로 여기 고린도에서 과동하면서 로마서를 쓰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석 달 동안 고린도에 머물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을 하셨는데 로마서를 쓰신 것입니다. 그 동안의 사역을 정리하면서, 새 계획을 세우는데 그 새계획이 로마에 살고있는 성도들과 관련이 있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로마서를 쓰게 된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때까지 바울 사도는 한번도 로마에 가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거기에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유월절에 성전을 청결케 하시고, 그 후에 수많은 표적을 행하셨고, 역시 유월절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 강림으로 떠들썩했던 것을 본 여러 이방인들 중에 로마에서 온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경로는 몰라도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이 직접 가서 전도하지도 않았는데 그 곳에 이미 교회가 있었고, 그 곳의 많은 성도들은 이미 사도 바울과 교제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전에 에베소에 같이 갔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만 하더라도 지금 이 시점에 로마에 있습니다(16:3∼20). (폭동으로 에베소를 떠날때 바울은 디도를 만나러 마게도냐로, 아굴라 부부는 로마로 떠난것 같습니다. 다음 선교지 로마를 위한 포석이지요.)그밖에도 로마 교회에 아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구체적으로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과거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혔었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분들은 바울 보다 먼저 예수를 믿은 친척되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르바노, 스다구, 아벨레, 아리스도불로의 권속들, 친척 헤로디온, 나깃
수의 권속,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버시, 루포와 그 어머니(바울은 이분을 자기 어머니라고 표현합니다), 아순그리도, 블레곤, 허메, 바드로바, 허마와 그 형제들, 빌롤로고, 율리아, 네레오와 그 자매, 올름바와 그 성도들입니다.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이제 드디어 내가 로마로 가겠다고 포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용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이 용건을 풀면 이렇습니다. “내 목표는 로마를 지나서 스페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는 길에 로마에 들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여러 번 로마에 가고 싶었지만 못갔는데 이제 스페인에 가는 길에는 꼭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그 때 여러분들께서 나를 좀 후원해 주시면 참 좋겠다. 지금까지 내가 일해 온 소아시아, 유럽 일대에서는 선교를 할 만큼은 다 한 것 같다. 여기서는 이제 할 일이 없어 보인다. 여기 대도시 일대를 중심으로는 다 교회가 세워졌다. 이제는 로마, 스페인 쪽으로 더 영역을 넓히려는 계획이다. 그러나 지금은 당장 못 간다. 왜냐하면 여기 아시아와 마게도냐 유럽교회들이 모아준 구제헌금을 예루살렘에 일단 전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단은 예루살렘에 갔다가 그 후에 가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 편지부터 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 곳 성도들에게 자신의 복음이 어떤 것인지 예리한 필치로 정리한 것이 그 유명한 로마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간의 고린도 교회와의 갈등이 원만히 해결되어 마음이 편안하고 기쁨이 있었을 것이고, 또 스페인까지 가려는 선교여정에 마음이 뿌듯한 상태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로마서가 나왔기에 로마서가 로마서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바울 사도는 당신이 세운 교회는 아니지만 이렇게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뵈뵈라는 자매가 로마 교회에 전달해 주었습니다(롬 16:1).
이렇게 해서 여기 3차여행 중 고린도에 머무는 시간이 로마서가 끼어들어가는 자리입니다.
우리도 함께 고린도에 겨울동안 머물면서, 바울이 쓴 로마서 편지를 이런 무드 속에서 읽어봅시다. 멀리 지중해 바다를 바라보며…
로마서는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서에서 다루었던 문제들, 또 율법으로부터의 자유하는 내용 등을 한층 더 심화시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말한 ‘자유’를 ‘방종해도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바울에 대해 악담을 퍼뜨렸습니다. 바울은 이 경험을 고려해서 로마서를 씁니다. 6장 1절에서 8장 39절에서 도덕률 폐기론주의 (도덕이 필요없다는 주의. 사실 바울은 그런 뜻으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었음)에 대해 길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바울의 복음설명은 시간이 가면서 더 풍성해지고, 발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로마서는 앞선 갈라디아서보다 복음을 깊이 있게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런, 복음을 논증해나가는 날카로운 서술 속에서도 그는 간간히 자기가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 본 것입니다. 정말 지금 이 고린도에 있는 이 때야말로 과거를 정리하고 새 미래사역을 바라보며 조용히 정리하기에 좋은 시점입니다. 이제 새로운 선교의 무대를 바라보며 바울 사도는 부지런히 짐을 챙기십니다. 예루살렘을 거쳐서 로마, 스페인으로 가시려는 계획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분의 계획대로 스페인을 가셨는지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로마에는 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여기 고린도에서 짐을 챙기는 순간까지도 당신이 죄수의 몸으로 재판 받으러 로마에 가게
된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셨을 것입니다. 결국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에 헌금을 전해주러 가셨다가는 체포당하시고, 2년 동안 가이사랴 감옥에 계시다가 배를 타고 로마로 후송될 것입니다.)
⑤ 예루살렘에서 체포, 로마행 (21:17- 끝 )
예루살렘? 가이사랴? 시돈? (배 타고, 구브로섬 오른쪽으로 돌아)? 무라? 니도? 살모네? 라세아? 미항? 멜리데? 수라구사? 레기온? 보디올? 압비오저자(광장)? 삼관?로마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가능한 한 화평을 위해 양보를 한다는 평소의 신념에 따라 야고보의 제안을 따라 결례를 위한 비용을 내고 함께 금식에 동참합니다(행21:23∼24).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한 것이지요. 유대인 금식기간이 끝나갈 즈음에 아시아에서 온 어떤 유대인들이 바울이 이방인들을 데리고 성전의 이방인 금지구역에 침입했다고 사람들을 선동하였습니다(행 21:27∼29). 성전오염은 심각한 죄였습니다. 로마 당국이 유대인들에게 자치적으로 심문하고 벌할 수 있도록 허용한 몇 가지 안 되는 범죄행위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성전 문 위에 다음의 경고문이 헬라어, 라틴어, 히브리어, 아람어로 쓰여 있었습니다. “이방인은 성전과 그 구내에 둘러친 경계를 넘어올 수 없음. 위반자는 반드시 극형에 처하며 그 책임은 본인에게 있음.” 성전에서 바울을 목격한 유대인들은 법정판결도 없이 현장
에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로마의 천부장이 그들을 구조했고, 산헤드린이 소집되었으며,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임을 주장하면서 자신을 변호하자 바리새파는 바울 편을 들므로 사두개파와 분열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드디어 로마를 향해!
죄수의 몸으로 로마를 향해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2년 전에 체포되어서 가이사랴 감옥에 있는 동안 바울은 스스로 결정한 것 같습니다. ‘아, 차라리 잘 됐다, 로마 가이사에게 상소하자, 그래서 로마로 가자’ 하고 말입니다. 바울이 스스로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한 것 보면 말입니다. 자 이렇게 해서 바울은 로마로 갑니다. 누가와 아리스다고를 대동하고 떠났는데 이것은 바울이 특별대접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로마 상류층의 사람들이 보통 종 두 명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배를 타고 가면서 당하는 우여곡절은 성경을 통해 보십시오. (너무 재미있습니다.) 당시 팔레스틴에서 로마까지는 정기적으로 죄
수들을 운송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죄수들은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검투사를 하거나 혹은 짐승에게 잡혀 먹히는 것을, 십자가형보다 차라리 원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들어갑니다. 로마에 도착해서도 또 2년 동안 구금됩니다. 사도행전 28장 30∼31절에 보면 비교적 자유스러운 옥중생활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사도행전이 끝납니다.
바울의 선교여행거리 개관
바울이 선교를 위해 여행한 거리는 모두 몇 마일쯤 될까요? 바이젤(Beitzel) 교수는 약 13,400 항공 마일(뉴욕, 한국간 왕복 거리)이라고 합니다. 항공 마일이란 직선거리로 계산할 때 사용하는 단위입니다. 이 수치는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하여 계산한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 거리인데 실상은 더 될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에 기록되지 않은 여행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2차 고린도 방문(고후 12:14, 13:1), 난파의 경험(고후 11:25), 그리고 스페인 여행을 했다면(롬 15: 24, 28), 훨씬 더 긴 거리들입니다.
2. 사도행전 이후의 사도 바울
사도행전이 끝나는 것으로 바울 사도의 사역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그 생각을 완전히 버리셔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끝났지만 사도 바울의 활동은 계속됩니다. 다른 서신서들과 초대 교회 교부들의 증언을 연구해 보면, 사도 바울의 그 이후행적을 찾아낼 수 있는 정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걸 마저 정리하려고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바울의 서신서 13권 중에서 우리가 다루지 않은 서신서들은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직 잘 감이 안잡히시지요? 바울서신 13권이 사도행전과 몽땅 다 연결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
는 지금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을 연결하면서 읽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막상 보니까 모든 서신서들과 사도행전을 연결시킬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 연결되었으면 서신서들을 이해하기가 훨씬 쉬웠을텐데 ….
아직도 조금 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도행전을 정리하면서 데살로니가전
서, 데살로니가후서, 갈라디아서(갈라디아서가 먼저일 수도 있음),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로마서만 사도행전 여행경로 속에다 끼워 넣었습니다. 6권뿐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서신서 13권을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7권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그걸 찾아내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행적이 사도행전 28장에서 그 이후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다음 세 부분으로 요약이 됩니다. 굉장히 중요한 요점 정리니까 무조건 꽝꽝 외워두십시오. 왜 이렇게 되는지는 이제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서신서 7권이 끼어들어가는 자리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차 구금상태 2년 간(A.D. 60∼62): 사도행전의 마지막인 28장의 상태4차 선교여행이라고 불리는 기간(A.D. 62∼66): 디모데, 디도 등과 활동2차 구금상태(A.D. 66∼67경): 4차 선교여행 이후 바울의 임종이 가까운 때
1) 1차 구금(행28장 끝)
골로새서, 빌레몬서, 에베소서, 빌립보서(옥중서신)가 끼어 들어가는 자리
사도행전 28장 끝에 가면 사도 바울은 1차 구금상태에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은 미결수로서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미결수는 당시 자기가 집을 얻어서 살 수 있었고, 약간의 제한만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셋집”에 살면서 (2년 동안 재판을 기다리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주 예수와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가르친 것입니다. 드디어 그토록 가고 싶었던 로마에 오긴 왔는데 죄수로 온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로웠기 때문에 만날 사람들을 다 만났을 것입니다. 누가 찾아왔을 것 같습니까? 전에 뵈뵈 편에 보냈던 로마서 편지에 등장한 인물들이 안 찾아왔겠습니까? 아마 그랬겠지요? 그러면서 2년 동안 복음을
전파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늘 아시아와 마게도냐에 있는 성도들이 그리웠을 것입니다.
바로 이때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 빌립보 교회, 그리고 골로새 교회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또 빌레몬에게 보내는 빌레몬서를 썼습니다. 바울이 이 1차 구금당시를 지나는 동안 아마 도망나온 노예 오네시모를 만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네시모는 바울이 알고 있는 골로새교회 지도자 빌레몬의 종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를 용서해 주고, 자기와 함께 있게 허락해 달라는 개인적인 일로 빌레몬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이 상황을 생각하고 이 옥중 서신들을 읽어 봅시다. 그러니까 골로새서와 빌레몬서는 전달 장소가 같겠지요? 또 이 골로새 교회와 에베소 교회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두기고(편지 들고 간 사람)는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한꺼번에 갖고 갔을 것입니다. 이 때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가 두기고와 동행합니다(엡 6:21, 골 4: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중략 …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저희가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골 4:7∼9).”
골로새서,빌레몬서, 에베소서(다 소아시아 지역)가 한 묶음이고, 빌립보서(마게도냐)는 나중에 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빌립보서는 다른 감옥에서 쓴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지요. 어쨌튼 빌립보서는 에바브로디도(빌 2:25)를 통해 빌립보에 전해집니다.
2) 4차 전도여행(62∼66년) 디모데전서, 디도서(목회서신)가 끼어들어가는 자리
위의 옥중 서신도 다 쓰고 난 이후, 사도 바울은 2년의 감옥생활에서 풀려납니다. 1차 구금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어떻게 재판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잘 된 것 같습니다. 바울은 자유의 몸으로 로마를 중심으로 4∼5년을 활동합니다. 그가 로마에 보낸 편지대로 로마 성도들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을 갔다 왔는지에 대해서는 그 후 성경기록이 없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록으로 남아있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디모데와 디도와 함께 계속 전도활동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마게도냐로 가시면서(이건 2차나 3차가 아닙니다. 4차입니다) 가는 길에 디모데를 에베소에 떨어뜨려 놓습니다(딤전1:3). 또, 디도와 함께 그레데섬에도 가셨다가 디도 보고 거기 남으라고 하십니다. 그레데 교회를 목회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 사도는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잡혀 갔다가 풀려나서 로마 일대를 전도 하셨겠지만(또 스페인에도 가셨는지는 모르지만) 한 때 마게도냐로, 지중해 연안으로 또 전도활동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게도냐에 계실 때 언제인가, 에베소와 그레데 섬에 목회하라고 떨어뜨려 놓은 두 사람, 디모데와 디도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입니다. 그것이 바로 목회서신이라고 불리우는 서신입니다(디모데후서는 나중에 또 2차로 감옥에 갇힐 때 기록합니다).그러니까 이 사도 바울의 4차 전도여행 시기는 목회서신 디모데전서와 디도서가 끼어 들어가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빌레몬서를 읽은 다음, 다시 디모데전서를 읽는 것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읽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로마에서 감금생활 하시다가 풀려나셔서, 또 다니시며 전도하시다가, 디모데를 후계자로 에베소에 떨어뜨려 놓고 목회 잘 하라고 쓴 편지구나’ 이런 생각 말입니다. 또 디도서도 그렇게 읽읍시다. 디도는 참 충성스러운 바울사도의 동역자인 것 같지요? 이렇게 그 어려운 고린도 교회 문제 다 해결하고, 그
이후로도 계속 함께 하다가 마지막에는 또 그레데섬에서 목회까지 하니 말입니다.
(이 지점에서 예수님 생각이 납니다. 부활하신 이후 이제 조금 있으면 떠나야 되는 시간이 다가오실 때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선생님들은 이렇게 잘 훈련시키신 다음에는 독립적으로 목회하도록 하십니다. 제자들을 잘 키워서 또 목회하도록 하는 것, 우리의 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구원 얻은 자들이 목놓아 외치며 전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교하는 것입니다. 목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방향성이요, 해야 할 사명인 것입니다. 사명 없는 구원, 그것 참 문제입니다
3) 2차 구금 (66∼67) 디모데후서가 끼어들어가는 자리
A.D. 64년에는 그 유명한 네로 황제가 로마에 불을 지릅니다. 미친거지요. 새 로마를 건설하고 싶다는 이유로 불을 놓습니다. 이 화재를 기독교인의 소행이라고 발표한 이후 막무가내로 기독교인을 잡아들이는 박해가 발생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로마 대 화재 이후 또 다시 투옥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감옥이 전에 1차로 셋집에 머물면서 있었던 때와는 다른 감옥입니다. 이 2차 감옥생활을 자세히 말해 주고 있는 편지가 디모데후서입니다. 그러니까 이 디모데후서가 바울 서신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기록되는 편지입니다. 디모데후서를 끝으로 사도 바울의 체취는 성경에서 사라집니다. 디모데를 간절히 보고싶어 하며 자기를 면회 와 달라고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입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이 추위를 대비해야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자기 겉옷을 가지고 빨리 오라는 것입니다. 드로아에 살고 있는 ‘가보’라는 사람네 집에 아마 바울 사도가 그 겉옷을 놔 두었던 모양입니다(딤후 4:13). 올 때 그 겉옷하고 가죽에 싼 책(아마 구약 성경책인 것 같습니다)을 가져오라고 부탁합니다.
바로 이런 흔적들이 바울 사도가 2차 구금으로 또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목회를 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이기 때문에 공식예배는 어때야 하는지, 감독이나 집사는 어때야 하는지, 노인들, 과부들, 장로들을 대하는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를 꼼꼼하게 가르쳐 줍니다. 노 스승 바울입니다. 네 연소함을 인해서 업신여김 받지 말고 권위를 잃지 말라는 말입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디모데에게 보낸 이 편지를 이런 무드 속에서 읽어 보십시오. 여기가 이렇게 디모데후서가 끼어들어가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도행전과 사도 바울의 모든 서신서를 읽어야 할 순서대로 정돈을 했습니다. 서신서 순서대로 말하라고 한다면 이렇습니다. 데살로니가전·후서 갈라디아서(갈라디아서가 먼저일 수도 있음), 고린도전·후서, 로마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디모데전서, 디도서, 디모데후서입니다.
위의 순서를 사도행전과 연결시켜서 여러분들이 이해한 것입니다. 한번 읽는다고 다 이해되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 사도행전과 연결해서 지나온 내용을 골격으로 삼고 사도행전과 서신서를 읽을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 내용들을 읽으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출발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는 이렇게 온 세계만방으로 퍼져나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등장했던 신실한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이 군사되어 싸워 온 것처럼, 이제 우리들도 똑같은 그 나라의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9장부터는 우리가 씁시다.
3. 나머지 공동서신들
사도행전과 13권의 바울 서신서가 끝났다고 해서 신약성경이 다 끝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공동서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약을 처음 시작하면서 이야기했듯이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연결되는 그 서신서들, 이렇게 두 큰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큰 두 기둥을 다 세우고 보니 공동서신서들이 이제 남은 것입니다. 어쩌면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하고 싶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은 이렇게 사도행전과 연결된다는 걸 알겠는데 신약의 나머지 서신서들은 사도행전과 연결이 안됩니까? 예를 들면 베드로전후서, 야고보서, 요한의 서신서들 말입니다.”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그런데 한마디로 답해 드린다면, 연결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이 모든 사도들의 행적을 다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지요? 예를 들면 야고보서의 저자인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의 행적은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정도이고, 예수님의 동생이고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 역시 사도행전에는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비록 그가 유다서를 썼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요한 1, 2, 3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은 사도행전에는 등장하긴 하지만, 시기적으로 볼 때 아직 서신서들을 쓰기 이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선 사도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베드로께서도 베드로전후서를 쓰셨지만, 사도행전에 등장하신 때(1∼12장)는 아직 그 서신서들을 쓰시기 훨씬 전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서신 이외의 다른 서신서들이 사도행전과 연결 안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물론 고린도교회에 베드로가 방문한 것 같긴 하지만 베드로서신서와는 연결이 시키기 어렵습니다.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이 읽기 어렵지, 나머지 공동서신은 한 권씩 이런 초대 교회 분위기를 상상하며 읽으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얘기를 하십시다.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요한복음이나 요한 1, 2, 3 등을 기록할 때와 같은 방법으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같은 것은 ‘요한’이라는 한 사람의 성격과 경험과 인생경로 속에서 발견한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사실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건을 경험한 한 사람으로서 해석하기도 하고 주석을 붙이기도 해서 정리한 것입니다. 즉 요한이라는 사람을 통과해 나온 책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이해하고 깨달아서 쓴 책이 아닙니다. 그냥 쏟아져 내리는 환상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 보이는 장면들을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 장면을 기록하기는 해야하는데 힘들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성경 중 가장 마지막에 그 위치가 놓여졌습니다. 아마 요한 자신도, 베드로도, 바울도 그들이 기록한 편지나 예수님 사건에 대한 얘기들이 성경이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후에 역사가 흘러가면서 이것이 정경화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요한 계시록이 구약 창세기부터 흘러 내려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마무리하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하나님이 왕이심을 선포하는 이 하나님 나라 운동’이 이제 완벽하게 영광 중에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며, 바벨론으로 지칭되어온 이 세상나라들은 결국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즈음 뉴에이지 영역에는 수많은 ‘계시 기록자’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닐 도날드 월쉬라
는 사람은 자기 가정이 파탄되고 괴로운 상황 속에서 인생의 질문들을 갖고 번민하고 있었는데 새벽 3시만 되면 신이 내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갖고 있는 수많은 질문들을 하며 그 신과 대화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록한 것이 책으로 출판되어 우리나라 말로도 “신과 나눈 이야기 1, 2, 3”으로 번역이 되었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단체가 홈페이지에 형성되어 세계적인 조직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탄은 대체적으로 이런 환상이라는 무의식을 이용해서 계시를 주는 것처럼 인간을 속입니다. 과거에도 이런 방법으로 이단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경기록 방법은 정상적인 한 사람의 생애 속에 경험된 하나님을, 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쏟아져 내리는, 그야말로 환상을 보고 기록한 것이 바로 구약의 에스겔, 다니엘의 일부와, 신약의 요한계시록 등입니다. 인간 저자를 넘어서서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보여주시는 환상을 기록한 것입니다. 만일 이 성경이 진정 하나님만이 저자시라면 에스겔이나 다니엘, 요한계시록이 다 일관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시대가 달라도 그 내용이 짝을 이뤄야 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저자
시니까. 구약이 끝날 때도 성전에 대한 환상을 보여 주셨고, 신약이 끝날 때도 성전을 보이심으로 마감하십니다. 에스겔은 앞으로 새로 세워질 성전을 이상 중에 보고 기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느부갓네살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다시 성전이 세워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 예언대로 유다지파들은 성전을 재건합니다. ‘성전재건’은 무엇을 암시합니까? ‘왕권의 도래’입니다. 왕이 임한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약 끝도 이제 왕이 도래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의 좌소인 성전 재건으로 끝나더니 신약의 끝도 똑같습니다. 요한은 한 사람의 노예 노동자로 로마제국 아래서 돌을 깨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새 예루살렘성으로 완성될 것이라고 그 요한의 손을 빌어 마지막 결론을 주시는 것입니다. 멸망하는 것 같아도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이 이 환상을 볼 때 죽은 자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계 1:17). 예수님과 이 땅에서 같이 사는 동안 그 품에 기대어 살았는데 지금은 그 인자 같은 이 앞에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우주의 왕, 창조주 왕이셨다는 것입니다. 인자 같은 이라고 했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라고 했습니다. 이 ‘인자 같은 이’는 다니엘이 봤던 그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600년 전에 다니엘은 이 ‘인자’를 보았습니다. 700년 후에 요한은 그 인자를 보았고 그 인자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묵시입니다.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나라, 마지막에 정리될 이 하나님의 나라를 최종적으로 영광스럽게 마무리하는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인류에게,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신.구약 중간시대를 알아야 성경이 열린다=
말라기 선지자에게 여호와의 신이 감동되어 말씀이 임한 이후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계시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구약시대에 그 흔했던 수많은 선지자들의 활동이 더 이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약 200년 간의 포로 귀환의 역사 속에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그 이후 침묵하십니다. 마치 애굽에 내려간 야곱의 70 식구 얘기가 있은 이후 모세가 등장하기까지 약 40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성경이 침묵하는 것처럼 말라기 이후 예수님이 등장하기까지 약 400년 동안 성경은 역시 침묵합니다. 그래서 이 400년의 기간을 암흑시대, 또는 신·구약 중간시대라고 일컫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끊어져서 암흑시대라 일컫기도 하지만, 실제적으로도 이 시대에 대해서는 글로 기록된 자료가 가장 빈약한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경책에서 구약과 신약 사이는 한 장 차이지만 그 사이에 숨겨져 있는 400년의 역사는 구약을 읽던 우리의 관점을 당황하게 만듭니다. 웬지 신약은 구약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어쨌든 구약보다는 좀 수월한 느낌이 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복잡한 역사얘기가 없어서 좋고, 읽으면 그래도 깨달아지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어서 친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읽는 신약은 겉으로 그냥 읽어서 얻는 깨달음의 한계를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구약을 역사적인 배경과 연결해서 읽지 않으면 윤리와 도덕률을 깨닫는 수준 정도의 교훈밖에는 얻기 힘들고, 눈에 안보이게 깔려있는 수많은 신약의 사건들과 예수님의 교훈은 그래서 읽어도 읽어도 어려울 때가 많은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신약의 배경이 되는 정치구조, 사회구조, 영적인 상황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역사는 연결된 것이고 흘러온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약에 나타나는 기원 후의 역사, 소위 A.D. 원년이라 불리우는 예수탄생의 역사도 과거에 끈이 매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 끈은 바로 구약 이후 400년 동안 성경이 침묵한 그 기간 동안의 것입니다.
구약은 구약인가보다 하고, 신약은 신약인가보다 하지만, 신·구약 그 사이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배울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약의 선지서 부분처럼 바로 이 신 구약 중간 부분도 안개에 싸여있는 동네처럼 늘 뿌연 느낌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부분도 우리가 조금 투자해서 공부해 놓으면 신·구약이 뻥 뚫리는 장소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지 않고 있는 이 기간 동안의 역사를 이스라엘이 소장하고 있는 그들 나름대로의 역사기록, 세계역사들, 또 역사가들이 기록한 책들을 통해서라도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전복따러 갑시다!!)
신약시대에 나타나는 성경의 주인공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파괴했다는 것은 이제 ‘국가’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사라졌다고 하는 것은 그 국가를 이루고 있던 제도나 조직도 이젠 옛날 같은 형태로는 재조직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에 잡혀가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유다의 지도층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유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합니다. 이들에 의해서, 이전의 국가조직처럼은 못 돼도,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데 혁혁한 활동을 한 사람이 바로 에스라와 느헤미야였다는 것은 이미 공부했습니다.
이제 중간기 시대를 공부하기 위해서 우리가 그려놓아야 할 그림이 있습니다. 지금 이 중간기 시대의 사람들이 어디 어디에 흩어져 있는 중인가를 염두에 두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신약에 들어가서 나타나는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지역뿐만 아니라 그 일대에 흩어져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등장인물들이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 아니라 이 중간기 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이후 성경은 유다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기록이 없어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신약에 와 보니 예수님이 자라나신 땅은 북방 이스라엘의 갈릴리입니다. 갈릴리는 팔레스타인 땅 북부지역의 한 도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과는 상종을 안하고 돌아다니는 유대인들이 북부 갈릴리 지역에는 살고 있더라 이말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구약을 공부한 것으로 보면 북방의 10지파들이 살고 있던 땅에는 북이스라엘 사람만 살 것 같았는데, 막상 신약에 오니까 북방땅에도 유다지파 요셉과 마리아가 살고 있는 겁니다. 분명 어느 때부터인지 이 북부 갈릴리쪽에도 정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바사에서 귀환한 백성들은 나름대로 살 곳을 찾아 여기저기 흩어진 것 같습니다. 에스라서 명단에 나타나는 귀환백성들은 주로 레위지파 중심의 지도급 인물과 예루살렘 지역에 살았던 유대인들인데 이들의 후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북쪽 지역으로도 퍼져나가 정착한 것입니다. 사마리아 땅에 살고 있거나, 북방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거나, 남방 유다지역을 중심으로 흩어져 살고 있거나, 이 사람들은 모두 다 팔레스타인 땅 덩어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서 후손이 퍼져나와 계속해서 신약까지 흘러간 것입니다. 또,
팔레스타인 땅, 가까이로는 요단동편 베레아지역(모압), 데가볼리(갈릴리 동북쪽 이방땅), 지중해 연안의 두로와 시돈 지역에도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3개월 간은 베레아지역에서 사역하시는데 회당에서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눅 13:10).
그런데 이 사람들 말고 또 있습니다. 디아스포라들입니다. 즉 포로로 잡혀갔거나 일찍이 팔레스타인 땅을 벗어나 외국에 흩어져서 계속 거기에 정착해 살고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애굽으로도 흩어졌고, 또 우리가 아는대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나름대로 살게 됐고, 에스더서에 있는대로 바사(이란)의 수사성에도 유대인 무리들이 살았습니다. 바벨론, 바사의 세력이 지나고 그리스, 로마로 이어지면서 터키 지역(소아시아, 에베소), 유럽(첫 성 빌립보, 데살로니가, 마게도냐, 아테네, 고린도 지역 등), 그리고 이탈리아 로마에도 유대인들이 살았습니다. 물론 러시아 쪽으로도 흘러가 산 유대인들이 있습니다.(심지어는 일본에도 유대인들이 흘러들어 갔다는 사실을 전시해 놓은 사진을 박물
관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이방을 전도할 때 먼저 회당에서 복음을 전도한 것을 보면, 위에서 설명한 세계 여러 지역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그들 나름대로 회당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 그럼 이렇게 온 세상에 흩어지게 된 400년 동안 유다는 어떤 나라에 종살이를 하면서 흘러가게 되는지 그 역사를 자세히 훑어봅시다. 우리의 목적지인 신약시대에 오면 로마가 주인으로 앉아있습니다. 그러면 400년 동안 어떤 나라들이 이 유다의 주인으로 행세했는지 그 역사를 살피면서 그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이 유대 공동체는 어떻게 몸살을 하면서 살아남는지 보십시다. 이 공부를 하면서 또한 예수님 시대에 나타나는 헤롯, 분봉왕, 대제사장, 바리새파, 사두개파, 가이사 등등 수많은 시대적 배경들도 간단하게나마 살펴봅시다.
1. 바뀌고 바뀌는 팔레스타인 땅의 패권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은 70년 간 바벨론에 종살이를 합니다. 그 후 구약이 끝날 때는 바사의 통치를 받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바사통치를 받은 총 연수는 약 200년입니다. 그러다가 B.C. 336년 경 그리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바사를 점령해서 약 30년 간 지배권이 넘어갑니다. 그후 알렉산더의 부하였던 프톨레미가 이집트지역을 점령하면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어 100년을 지배합니다. 그리고 나서 역시 알렉산더의 부하 중 한 사람이었던 셀레우코스(프톨레미와 맞수였음)가 팔레스타인 땅을 프톨레미에게서 빼앗는 바람에 이번에는 셀레우코스 왕조에게 넘어갑니다. 그리고 셀레우코스(셀주크 왕국)왕조가 약 34년 간 지배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유다의 마카비가 B.C. 165년에 셀레우코스에 대항하는 독립전쟁을 일으켜 성공합니다. 그후 약 100년간을 유대는 독립국가로 있다가 B.C. 63년 로마의 폼페이 장군에게 예루살렘을 점령당하므로 그 유명한 로마제국의 수하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십니다. 이것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바벨론(70년)? 바사(200년)? 헬라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30년)? 이집트의 프톨레미왕조 (100년)? 앗수르 바벨론 통치자 셀레우코스왕조(34년)? 유다가 독립함(100년)? 로마의 점령(B.C. 63년)? 예수탄생(B.C. 4년)
1) 첫째 주인 : 바벨론
바벨론은 70년 동안 유다를 지배합니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벨사살)는 혜성처럼 나타난 페르시아 고레스에게 패합니다. 이 기간 동안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유대인들은 근근히 그저 개인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이지 특별한 집단이나 공동체 운동도 없습니다. 바벨론으로 잡혀간 고급 인력들은 나름대로 왕궁에 등극되기도 합니다. 이때 다니엘과 에스겔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시작합니다. 이곳에 잡혀온 레위인, 제사장을 중심으로 율법이 가르쳐지고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들을 통해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의식을 고수합니다.
2) 둘째 주인 : 바사 (페르시아)
성경에 나타나는 포로시대의 주인공들은 주로 바사, 즉 페르시아의 왕들을 많이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포로에게 자유령을 내렸던 고레스를 비롯해서 다리오 1세, 아하수에로, 아닥사스다 1세, 다리오 2세, 아닥사스다 2세를 거쳐 다리오 3세에 이릅니다. 이 왕들 사이에 함께 살았던 유대 지도자들은 다니엘, 스룹바벨, 예수아, 학개, 스가랴,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말라기 등입니다. 그러니까 포로시대의 거의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바사의 영향력 밑에 있었던 셈입니다. 우리는 이 동안에 일어났던 성경의 사건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의 포로귀환, 성전재건, 성곽재건, 개혁운동 등을 통해 새로운 포로귀환 공동체가 생기는 기간입니다.
그러면서도 외적인 그들의 생활도 점점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페르시아 말기(에스라 후 100년) 즈음부터는 유다는 자체의 화폐를 찍어내고 내국세를 징수하는 정도의 권한이 허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유다의 제사장 가문 이름의 인(印)들이 찍힌 항아리 손잡이가 발견된 것을 보면 이미 이때부터 제사장들이 바사의 총독으로서 행정관 역할도 한 것이 아닌가 보입니다. 또한 이 때는 이미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히브리어 대신 그 당시 공용어였던 아람어를 쓰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상적 공용어로는 아람어를 썼지만 히브리어도 기독교 초기까지 계속해서 쓰이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다가올 헬라문화도 주변을 공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페르시아와 헬라는 자주 접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아직
헬라가 페르시아를 정복하기 전이라 해도 이미 문물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침투하기 시작했습니다. 상인, 군인, 학자 등이 오고 갔고, 헬라의 공예품들과 그릇들이 뵈니게 항구를 거쳐 유다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이제 유대인들이 헬라문화에 접속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3) 셋째 주인 : 그리스 (헬라)
사실 바사의 마지막 왕인 다리우스 3세와 그리스 마게도냐의 알렉산더는 같은 시기에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각각 자기 나라에서 왕이었지요. 그런데 이제 그 패권이 알렉산더에게로 넘어갑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알렉산더는 어렸을 때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배운 사람입니다. 학문과 문화, 철학에 일찍 눈이 떴던 알렉산더는 온 세상을 헬라화시켜야 한다는 분명한 꿈을 갖고 대단한 열정으로 세상을 정
복해 나갔던 사람이었습니다. B.C. 333년 이수스 전투로 페르시아군을 패주시킨 후, 뵈니게, 두로, 이집트가 차례로 그의 지배에 들어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유다)도 그의 수하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 그의 정복은 동방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바벨론 지역을 공격해서 수사(에스더 궁이 있던 곳)까지 점령했고 멀리 인더스강까지 건넜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병에 걸려 서른 세 살이 채 못되어서 죽었습니다(B.C. 323). 정말 짧고 거창하게 산 사람입니다. 그의 저돌적인 공격은 동방지역에 새로운 획을 그었습니다. 헬라화입니다. 당시로서는 온 세상을 완전히 헬라화하는 바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비록 그는 갔어도 그의 부하들이 이 빼앗은 땅들을 맡아서 다스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4) 넷째 주인 : 프톨레미 왕조
온 세상을 다 얻다시피 통일천하를 한 알렉산더는 그 어마어마한 땅들을 정복했지만 갑자기 죽는 바람에 후계자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부하 장군들 사이에는 서로 권력을 잡으려는 투쟁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중에 두 사람이 가장 큰 권력을 갖게 되는데, 프톨레미와 셀레우코스였습니다. 프톨레미는 이집트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고, 셀레우코스는 바벨론 땅을 갖게 됩니다. 이 두 경쟁자는 팔레스타인과 뵈니게를 탐냈는데 결국 프톨레미 손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은 ‘헬라인이 다스리는 이집트’의 속국이 됩니다. 이 왕조는 100년 동안 팔레스타인을 다스립니다. 헬라의 속국이었을 때는 팔레스타인에 이렇다 할 중요한 사건이나 자료들이 없는데 반해 이 프톨레미 왕조는 유대 공동체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5) 다섯 번째 주인 : 셀레우코스 왕조
① 선왕들의 호의정책
알렉산더 대왕의 유력한 두 부하가 있었다고 했지요? 한 사람은 앞에서 얘기한 프톨레미 왕조를 이룬 프톨레미 1세이고 또 한 사람은 셀레우코스 1세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셀레우코스 왕조도 헬라 사람의 왕조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역사의 무대에서 일찍 사라졌지만 그의 부하들이 곧 이어 이집트와 바벨론 두 큰 덩어리 땅들을 차지했기 때문에 알렉산더가 원했던 대로 사실은 헬라화가 된 셈입니다.
② 안티오쿠스 4세의 잔인한 유대교 탄압
안티오쿠스 4세는 B.C. 167년 급기야 유대인 양민들을 급습하여 학살합니다. 그의 부왕이 내렸던 유대인들에 대한 특혜를 폐지하고 유대교의 모든 관습을 금하는 칙령을 공포했습니다. 희생제사를 금지했고, 안식일과 절기 지키는 것을 금했고, 율법의 사본들을 파기하는 명령을 내렸고, 할례를 금지시켰습니다. 어길 경우 사형에 처한다고 방을 붙였습니다. 이교의 제단들을 도처에 세웠고, 예루살렘 성전 안에 제우스 신의 제단을 세우고 숭배하게 했으며 돼지고기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6) 마카비 혁명
셀레우코스 왕국(앗수르 지역)의 안티오쿠스 4세(에피파네스)와의 전쟁으로 독립을 얻어낸 유다 마카비 혁명의 역사는 앞으로 전개될 신약시대의 정치 구조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신약에 헤롯가문이 등장하게 되는지 그 연고를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마카비 시대와 관련되어 탄생되는 헤롯 왕조의 가문을 이해해야 신약시대의 정치 판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7) 여섯 번째 주인 : 로마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계사에서 가장 유명한 제국이었던 로마도 처음 B.C. 8세기 경에는 이탈리아 반도의 중간 쯤에서 생겨난 작은 도시국가였습니다. 도시국가 로마는 점점 힘이 강대해져서 B.C. 270년경에는 드디어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했습니다. 이러면서 잡아온 노예들을 검투사로 만들어 즐겼는데 이런 노예들을 특별히 ‘스파르타쿠스’, 즉 ‘검노’라고 불렀습니다.(영화로도 나왔었죠? Gladiator, ‘검투사’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이 검노들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검노들이 뭉쳐서 반란군이 되었고 급기야는 그 수가 10만이나 이르게 됩니다. 이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원로원은 폼페이, 크랏수스를 임명했고 이들은 성공리에 검노들의 반란을 진압합니다. 그 후 이 두 사람은 한 사람을 더 가입시켜서 원로원을 누르고 그 유명한 ‘3두정치’라는 걸 합니다. 그 한 사람이 바로 케자르, 즉 율리어스 시저(가이사)였습니다. 가이사는 이렇게 해서 등장합니다. 그 후 가이사는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지역, 북이탈리 지역) 지방에 쳐들어가서 엄청난 숫자의 부족들을 평정합니다.
폼페이 장군 역시 여러 지역에 출정(出征)해서 나라들을 합병합니다. 그는 특별히 동방으로 진출해서 터키 지역과 수리아 등지를 정복합니다. B.C. 64 년에 다메섹을 점령한 후 수리아 주(州)를 만들더니 1년 후에는 그 아래로 눈을 돌려 유다를 정복합니다. 이 찬스를 놓치지 않은 에돔 총독이었던 안티파터는 폼페이를 도와 예루살렘을 정복하는데 일조를 합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전쟁으로 1만 2천 명이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카비 혁명으로 시작된 유다의 독립이 약 100년 후 다시 로마에 의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즉 B.C. 63년에 폼페이 장군이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킨 이 사건을 시작으로 로마 통치시대를 연 것입니다. 마카비 하스모니안 왕조의 힐카누스 2세는 항복을 하고 조공을 바치기로 합니다. 이로 인해 힐카누스는
더 이상 왕으로서가 아니고 “대제사장”으로서 유다를 다스리게 됩니다. 폼페이가 그렇게 임명했습니다. 그리고 안티파터(안티파스의 아들, 대헤롯의 아버지)는 “집정관”이라는 이름으로 유대지역을 다스리게 해 주었습니다. 이 때로부터 마카비 수하에 있었던 헤롯 가문은 공공연히 유다지역의 정치가로 등단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로마로 간 헤롯은 대단한 로비활동을 합니다. 만약 자기를 유대의 왕이 되게 해 주면 돈을 내겠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로마 원로원은 헤롯을 유대의 왕으로 임명합니다. 지금 쫓겨온 신세인데 왕으로 임명했다는 말입니다. 현재 유다 땅은 유대인 안티고누스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다 백성들은 헤롯 가문을 ‘에돔의 종놈들’이라고 증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로마가 헤롯을 정식 ‘왕’으로 임명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지금 유대인들이 차지하고 있어도 다시 뺏어라. 뺏을 때 도와주지!” 그런 뜻이겠지요. 헤롯은 다시 싸워서 이 땅을 얻어야 했습니다. 결국 헤롯은 로마군의 지원을 받아 마카비 하스모니안 왕조 계열의 마지막 통치자 안티고누스를 죽이고 예루살렘성을 빼앗습니다. 이 때 헤롯을 도와준 사람이 안토니우스였습니다. 헤롯은 안토니우스에게 대단한 충성을 맹세했겠죠? 이렇게 해서 헤롯은 명실공히 “유대의 왕”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B.C. 37년의 일입니다. 이 때부터 에돔사람 헤롯가문은 “유대의 왕”으로 다스리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B.C. 37년부터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B.C. 4년까지 유대를 통치합니다. 대헤롯은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입니다.
동부지역(수리아, 터어키 등 지중해 동쪽 내륙)을 장악했던 안토니우스는 그만 이집트에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집니다. 가이사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이라는 곳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연합군’과 해전을 벌입니다. 그런데 옥타비아누스가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므로 명실공히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대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입니다. 예수님 탄생 시기의 로마 황제입니다. 이때에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가 영을 내려 천하에 있는 사람들은 다 호적을 하라고 하는 바람에 요셉과 마리아도 그들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내려갔습니다(눅 2:1).
이렇게 황제 명칭을 최초로 가진 사람이 가이사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숭고한 사람’이라는 칭호를 나중에 받음)였지만 ‘가이사’라는 이름이 통상 ‘로마황제’를 상징하는 칭호로 쓰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가이사’ 하면, 황제를 가리킵니다.
2. 신약에 등장하는 주요 직책들
q 헤롯왕? 분봉왕? 총독? 산헤드린 공의회?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파? 사두개파? 열심당? 엣센파?…
1) 헤롯
성경에는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나타났던 대헤롯(Herod Great, B.C. 37∼4)도 헤롯왕이라고 말하고, 또 예수님이 사역하시던 30세 어간에 있었던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 B.C. 4∼A.D. 39:대헤롯의 아들, 아켈라오 동생, B.C. 78년에 사망한 최초의 에돔 왕 안티파스와 이름은 같지만 4대째 내려온 때임)도 헤롯왕이라고 지칭합니다.
대헤롯은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해서 알다시피 소위 헤롯가문을 유다에 튼튼히 ‘왕’으로 자리매김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된 이후에도 약 30년 이상을 다스린 사람입니다. 마치 남방 유다를 쳐들어온 애굽과 바벨론이 자기 말 잘 듣는 왕을 세워놓고 떠났던 것과 똑같은 그런 식으로 된 왕이지요. 식민 백성은 유대인이요, 꼭뚝각시 왕은 에돔사람이요, 실권자는 로마인 셈입니다. 그는 B.C.3 7∼4년까지 유대를 다스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건축도 시작했고, 여러 도시들을 세워 나가고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통치 말년에 예수님의 탄생을 둘러싸고 있는 사건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왕인데, 어떻게 해서 얻은 “유대인의 왕” 자리인데, 자기 말고 누군가 “유대인의 왕”이 난다니, 이 대단한 헤롯이 가만 있을 리가 없지요. 유아들을 다 살해하라는 명령까지 냈는데 그만 자기가 죽어버립니다. B.C. 4년 봄에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 년도를 B.C. 4년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보다 더 일찍인 B.C. 5년 겨울로 잡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래서 이 대헤롯의 죽음이 예수님의 탄생 년도를 계산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참 흥미롭습니다, “유대인의 왕” 예수께서 나타나시자마자, “유대인의 왕” 대헤롯이 죽는다는 사실이…)
그러니까 예수께서 성인(30세)으로서 활동하시는 때는 더 이상 이 대헤롯 왕 때가 아닙니다. 그의 아들들이 다스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이 여럿이었다는 겁니다. 안티파스, 빌립, 아켈라오입니다. 누구 한 사람을 지명해서 왕을 잇게 했으면 우리도 안 복잡할텐데, 대헤롯은 아들 셋에게 골고루 나눠주겠다고 유언을 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복잡한데 그 쪼그만 땅을 또 조각조각 나눠 따로 다스리게 해 놨으니 우린 여간 골치 아픈게 아닙니다. 안티파스에게는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요단 동편)을 줍니다. 빌립에게는 갈릴리 북동부 지역을 물려줍니다. 그리고 아켈라오에게는 유다, 사마리아, 이두메(에돔지역)의 통치권을 줍니다. 아켈라오에게 반을 주었고 나머지를 두 아들에게 준 셈입니다. 이렇게 나눠진 땅을 다스리던 왕들을 가리켜서
‘분봉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대헤롯이 유언했다고 다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로마의 인가를 받아서 되는 것인데 ‘분봉왕’ethnarch는 ‘왕 king’(대헤롯 같은)보다는 낮은 지위입니다. 한국말로는 똑같은 분봉왕이지만 ‘분봉왕 ethnarch’는 ‘분봉왕 tetrarch’보다 높은 지위로 불리던 명칭입니다. 아켈
라오에게는 ethnarch를, 빌립에게는 tetrarch라는 명칭으로 허락합니다.
아켈라오는 마태복음 2장 22절에서 한 번 성경에 언급됩니다. 이집트에 피난갔던 예수님의 가족이 유대지역으로 들어가지 않고 갈릴리로 올라가 살게 된 경위를 말해주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대헤롯이겠다는 생각이 나야합니다.)을 이어 유대의 임금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유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에돔지역을 분할받습니다. 유대지역은 아켈라오 영역이었습니다.
빌립이 다스리던 갈릴리 북동부 지역은 주로 이방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데가볼리 지역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가이사랴 빌립보’는 그가 세운 도시였습니다. 이것 역시 로마황제 가이사를 기리기 위해서 지은 도시였습니다. 이미 ‘가이사랴’라는 도시(건축광 아버지 대헤롯이 세웠음.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후 로마에 재판 받으러 가기 전에 2년 동안 억류되어 있던 곳)가 지중해 연안 해변에 있었기 때문에, 그 도시와 구분하기 위해 자기이름도 붙여서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명명했습니다. 북쪽의 헐몬산 자락에 있는 휴양도시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에 가셔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묻기도 하신 그 곳입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님의 고향 갈릴리와 베레아를 다스렸던 대헤롯의 아들 분봉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생애 삼 년 중에 나오는 헤롯왕은 바로 이 헤롯 안티파스를 가리킵니다. 그는 예수님의 고향인 갈릴리 분봉왕이었기 때문에 이 사람에 대한 언급이 세 번 있습니다. 그는 헤롯 빌립(분봉왕 빌립은 아님, 다른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한 헤롯왕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이 사건을 질책합니다. 결국은 이 헤롯이 세례요한을 죽인 장본인입니다. 세례요한의 참수 이후 예수님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죽었던 요한이 살아난 것 아닌가 싶어서 매우 초조해 하기도 한 사람입니다(눅 9:7). 그리고 예수님을 매우 보고 싶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헤롯을 가리켜 여우라고 불렀습니다. 교활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예수님은 이 헤롯에게 심문을 받습니다. 그도 아버지를 닮아 건축광이었습니다. 갈릴리에 디베랴라는 도시도 건설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는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나타났던 헤롯가문들은 그 후 사도 바울이 선교하는 동안에도 계속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승천이후 사도행전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다른 헤롯왕들이 나타나지요. 이 때 나타나는 헤롯왕가의 이름이 바로 아그립바입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아켈라오나 빌립, 안티파스 같은 분봉왕들의 자식이 아닙니다. 그들의 아버지 대헤롯의 형, 그러니까 그들의 삼촌들 가운데 파사엘이라고 하는 사람의 혈통을 타고 내려온 다른 계열의 사람들입니다. 아그립바 1세는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를 옥에 가두고, 결국은 충이 먹어 죽은 헤롯왕(행 12장)입니다. 처음으로 아그립바라는 이름으로 성경에 등장한 인물입니다.
그 후 어린 왕자가 왕위에 올라 헤롯 아그립바 2세가 됩니다. A.D. 55년경에 이르면 갈릴리와 데가볼리, 베레아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이 되며 헤롯 가문의 마지막 왕으로 A.D. 100년 경까지 다스립니다. 사도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체포된 것 아시지요? 이미 1, 2, 3차 선교여행을 다 마치고 예루살렘에 헌금 전달하러 갔다가 체포된 얘기 말입니다. 데살로니가서, 갈라디아서, 고린도서, 로마서 편지를 이미 다 쓴 시점이지요. 바울은 자기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가이사에게 상소하겠다고 해서 일단 가이사랴 감옥에 억류됩니다. 바울이 가이사랴 감옥(유대총독 관저가 있었다)에 있는 동안 유대지역의 총독으로 있었던 벨릭스의 후임으로 베스도가 부임합니다.(빌라도 다음에 나타난 총독이겠구나 생각이 나시죠?) 이 부임을 축하하기 위해 아그립바 2세가 가이사랴로 방문오는데 이때 바울이 그들 앞에서 간증을 합니다. 그 유명한 바울의 개인 구원 간증이 이 아그립바 2세 앞에서 한 간증입니다(행25∼26장). 아그립바2세는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 도다…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행 26:28, 32)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2) 총독
보통 전쟁을 해서 나라를 빼앗으면 그 나라를 다스리기는 다스려야 하니까 누군가 통치자를 임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통상 정복자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을 통치자(king, ethnarch, tetrarch)로 새로 세운 다음에, 그 사람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약을 배울 때 애굽의 바로느고가 백성들이 세운 여호아하스는 잡아가고,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웠던 것 기억나시지요? 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도 여호야긴은 잡아가고 그 아자비 시드기야를 대신 왕으로 세웠던 것 생각나시지요? 그것처럼 자기 말 잘 듣는 왕을 만들어 놓고 원격조정하는 것이 보통 하는 식민정책입니다. 그런데 마땅히 세울 왕이 없을 때는 본국에서 사람을 파견합니다. 그 사람을 총독이라고 불렀습니다. 포로시대 때 느헤미야는 총독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을 빌라도 총독이라고 말합니다.
3) 산헤드린공의회
황제나, 헤롯가문이나, 총독이나 그런 정복자들은 순수 유대인 공동체에서 볼 때는 적들입니다. 힘이 없어 당하고 있는 것이지 힘만 있다면 들고 일어나서 독립하고 싶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다보니 바로 이 순수 유대인 공동체 속에는 나름대로 그들을 대표하는 기관이 있었습니다. 산헤드린 공의회라는 겁니다. 이 말 속에 들어있는 ‘공의회’라는 말이 시사해 주듯이 이것은 ‘의회’를 가리킵니다. ‘유대인 최고 자치 의결기관’입니다. 황제나, 헤롯이나, 총독같은 외부세력 말고, 유대공동체 속에서는 가장 높은 소위 ‘정치기관’이 바로 이 의회였습니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파 사람 등 유대 사회의 지도자급의 사람들 71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식적인 주권은 비록 로마나 헤롯왕이 갖고 있었으나 산헤드린 공의회는 사법적 기능과 입법적 기능, 그리고 행정적 기능까지 갖고, 어느 선 까지는 자치적으로 정치를 했습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요 18:31)”라고 한 말에 나타난 법이 산헤드린 공의회의 법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단 한가지 예외는 이방인이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죄를 범했을 때입니다. 물론 모든 법은 율법정신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이 공의회라는 것은 언제부터 있어왔는가? 우리는 이 공의회를 쉽게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아주 먼 옛날 모세시대 때 모세를 돕는 백부장, 오십부장 등이 있었지요? 그 사람들을 장로라고 불러왔습니다(신 27:1). 이들은 그 후 여호수아나 사사시대를 지나오면서도 계속해서 백성들의 대표로 유대사회에서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장로들’, ‘귀인들’, ‘방백들’이라는 이름으로 있어오다가 신약에서는 ‘산헤드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4) 대제사장
산헤드린이 유대인 자치세력으로서 최고의 기관인데 반해 한 개인으로서도 또 대장(?)이 있는 겁니다. 이 대장은 누구였을까요? 이 유대인 공동체는 신앙 공동체였기 때문에 과거 에스라 이래로 대제사장이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위치라고 볼 수 있는 직책이라면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대제사장이 산헤드린의 주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종교당파(신학적 배경)로 말하자면 사두개파였습니다. 이렇게 외형적 전통으로 볼 때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을 종교적으로 이끌어가는 지도자는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이 대제사장이요, 백성들을 영적으로 이끌어가는 지도자지, 사실은 로마나 헤롯이나 총독에 붙어서 자기의 권력을 즐기며 백성들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착취하는 세력으로 쉽게 타락하곤 했습니다.
잘하는 대제사장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러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이라는 직함이 유대인 공동체의 대표라는 것을 안 정복자들은 아예 이 대제사장까지도 자기네가 다루기 쉬운 사람들을 임명해 버리면 쉽다는 것을 터득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론계열의 레위인이 대제사장이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을 임명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데 눈이 밝은 사람들은 돈을 갖다주고 이 ‘대제사장권’을 샀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 안나스같은 사람입니다. 물론 유대공동체 내에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남은 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숨어있는 참 이스라엘, 경건한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대로는 나다나엘, 시므온, 안나, 요셉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대제사장이 그런 사람이어야 하는데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순수 유대 공동체를 대표하는 영적지도자로 자처하지만 속으로는 결국 로마나 헤롯 가문과 결탁해서 그게 그거인 셈이 된 형국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성전에서 제물을 팔아서 돈을 버는 장사까지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1년에 한 번 대 속죄일에 백성들을 대신해서 속죄제사를 드리는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은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5) 서기관, 율법사, 랍비
팔레스타인 땅 본국에 사는 유대인들은 어쨌거나 이런 성전에라도 출입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온 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예배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흩어지지 않고 모여서 율법을 배우고 유대정신을 이어갔습니다. 그 모이게 된 장소를 가리켜 회당이라고 부릅니다. 외국 땅에서 유대정신을 잇게 하는 집회장소인 셈이지요. 이 회당은 후에 팔레스타인 땅 안에도 수없이 많이 세워져 교육기관이 되었고, 그 후로 바울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세워집니다. 회당에서 제사를 드린 것은 아니지만 율법을 가르치고,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교육을 한 것입니다. 회당은 이방 땅에서뿐만 아니라 고국에 포로귀환으로 돌아온 사람들 가운데도 세워졌습니다. 사실 이 운동은 원래 제사장
겸 학사였던 에스라가 했던 일입니다.
에스라 이후 중간기를 지나오면서부터는 어떻게 그 당시 사람들에게 율법을 쉽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해석하고 쉽게 풀어주는 서기관, 율법교사, 지혜교사, 랍비가 생겨난 것입니다. 우리들도 요즈음 교회에 가면 목사님이 성경을 본문으로 하고 설교를 하십니다. 성경이 무슨 말씀인지 풀어 해석해 주어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었습니다. 과거 모세 시절에 기록된 모세오경을 포로시대 후기에는 어떻게 적용해야할지 ‘해석’의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 ‘안식일에 걸을 수 있는 거리는 2Km다’, ‘정결케 하는 규례로 손을 씻을 때는 팔꿈치까지 씻는다’ 등등 율법을 연구하고, 명상하고, 또 그것을 구체적으로 삶에 적용하는 일들을 서기관들이나 율법사들이 한 것입니다. 또 공적인 자료들을 기록하고 필사했던 사람들(왕하 12:10)이 있었듯이 서기관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서기관들은 법률가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기도 했으며, 그 중 일부는 산헤드린의 회원이기도 했습니다. 또 신학자의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6) 바리새파(The Pharisees)
이들은 그들 스스로를 거룩하게 생각하며 의식상 부정한 것을 엄격하게 구별했습니다.
정결 예식과 먹는 법 안식일 계명 등을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이들은 실제적으로 백성들의 인정을 받는 그룹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사장 그룹들은 엉터리라는 것을 백성들이 알았기 때문입니다(조세프스 기록에 의하면 제사장가문을 욕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민중이라는 세력을 등에 업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정치적으로 보다 종교적인 면에서 더 인정을 받는 그룹이었습니다. 니고데모, 바울과 같은 바리새인도 있었던 점으로 보아 진지하게 율법을 연구하며 구약을 계승하려는 그룹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구약에서 흘러 내려오고 있었던 하나님 나라 운동이 이들을 통해 명맥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정통유대교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유대교의 핵심세력이 이들입니다. 사두개파가 A.D. 70년, 또 한번의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사라진 것에 비하면 바리새파야말로 유대교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7) 사두개파(The Sadducess)
‘사두개파’는 유대교 안에서 제사장적 귀족 집단을 형성하고 있던 종파입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지주들입니다. 이 명칭은 일반적으로 ‘사독’에서 유래된 것으로 봅니다. 사독은 다윗시대에 아비아달과 함께 제사장이었고 솔로몬이 아비아달 대신에 대제사장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직의 원조라고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마카비 혁명을 전후로 해서 제사장 제도가
재정비되고 재조직될 때 사두개파가 하나의 당파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바리새파와는 반대 입장을 취하며 경쟁관계에 있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또한 천사와 영의 존재를 부인했습니다. 그들은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교사들과 논쟁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습니다.
8) 열심당(The Zealots)
열심당은 영어의 음역을 따라 ‘셀롯인 시몬’(눅 6:15)이라 표기된 것과 같이 ‘셀롯당’이라고도 합니다. 이 당파는 종교적 당파가 아닙니다. 열성적 민족주의 집단입니다. 이들은 ‘마카비’ 활동에 그 기원을 둡니다. 그런데 요세푸스같은 역사가는 이들을 ‘강도들’, ‘산적’으로 불렀습니다. 맹렬한 반로마주의자면서 또한 유
대 종교지도자들이나 기득권 세력자들에 대해서도 적의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토라(모세율법)에 대해서는 목숨을 걸고 헌신했던 사람들입니다. 언제나 칼을 품고 다녔다고 합니다.
9) 엣센파(The Esseness)
이밖에도 쿰란 공동체로 불리우는 ‘엣센파’가 있었습니다. 경건한 유대 공동체 중의 하나인데 성경에는 기록이 없지만 문서들의 발견으로 이 시대의 많은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바리새파, 사두개파들이 백성들과 접하는 대중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면 이들은 광야에 은둔하는 수도사적 성격을 가진 단체였습니다. 이들은 광야에서 공동생활을 했습니다. 세례요한이 이 엣센 공동체에 관계된 사람이 아니었겠는가 추정하기도 합니다. 종교 공동체로서 극기하며 금욕적인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들이 주로 거주했던 동굴 속에서 많은 문서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중에 유명한 것이 ‘사해사본’입니다. 이 사본은 구약성경의 정확성을 증명하는 아주 중요한 증거자료로 공헌을 합니다.
▒ 당시 팔레스타인 땅의 행정구역
신약성경의 배경이 되는 로마시대의 유대 지리는 매우매우 간단합니다.
구약시대처럼 열두 지파 땅들을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세 도만 알면 됩니다. 북쪽으로 갈릴리도, 중간에 사마리아도, 아래에 유대도, 이렇게 머리에 그려놓고 신약에 많이 등장하는 성읍들만 좀 공부하면 됩니다.앞으로 신약성경을 읽을 때 거리감각을 가지고 읽으면 좋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하면 어느 정도 여행길인가를 감 잡으면 좋습니다. 적어도 사흘길입니다. 주로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갈릴리도의 가버나움 사역과 유대도의 예루살렘성에서의 사건이 많으므로 이 정도 지역쯤은 늘 머리에 설정해 놓고 있으면 재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나 유다사람들의 땅으로 알려진 위의 세 도 말고도 예수님께서 활동하신 그 근처의 이방 도들이 있습니다. 행정적으로는 이방이지만 그래도 많은 유대인들이 그곳에 섞여 살았습니다. 그것은 구약의 요단 동편으로 알려진 지역인 베레아도, 갈릴리 호수 동남쪽의 이방인들의 땅 데가볼리도, 갈릴리 지방 북쪽의 두로와 시돈(베니게 지역)지역 등이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