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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1. 06. 08
해동역사
[주해]
[주01] 불사후(弗斯侯) : 후(侯)는 왕(王), 후(侯), 태수(太守)의 세 등급으로 구분하였던 백제의 제도 가운데 하나이고, 불사(弗斯)는 옛
명칭이 ‘비사벌(比斯伐)’인 전주(全州)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후의 성격에 대해 백제의 지방 통치 조직인 담로(湛盧)의 장(長)으로
보는 견해와 백제의 직호(職號)로 보는 견해, 대중국(對中國) 외교에 있어서 백제 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과정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譯註三國史記 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672쪽》
[주02] 고쇠(高釗) : 고국원왕(故國原王)의 이름이다. 사유(斯由)라고도 한다.
[주03] 수(須)가...매달았습니다 : 수는 백제 근구수왕(近仇首王)의 이름이다. 근초고왕(近肖古王) 26년(371)에 근초고왕이 태자인 근구
수(近仇首)와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三國史記 卷24 百濟本紀 第2》
[주04] 풍씨(馮氏)의...뒤 : 풍씨는 북연(北燕)을 가리킨다. 북연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시대의 한 나라로, 후연(後燕)이 혼란한 틈을
타서 시조인 풍발(馮跋)이 창려(昌黎)를 근거로 하여 나라를 세웠으며, 현재의 중국 요령성(遼寧省) 남부와 하북성(河北省)의 북
부를 영유하였다. 이때에 이르러서 북연왕 풍홍(馮弘)이 북위(北魏) 태무제(太武帝)의 공격을 받고 고구려로 망명해 왔다.
[주05] 고련(高璉) : 장수왕(長壽王)의 이름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고거련(高巨璉)으로 되어 있다.
[주06] 외효(隗囂) : 한(漢)나라 성기(成紀) 출신으로, 왕망(王莽) 말기에 농서(隴西)에서 웅거해 있으면서 서주 상장군(西州上將軍)이
라 자칭하였다. 처음에는 유현(劉玄)을 떠받들다가 뒤에 광무제(光武帝)를 섬겼으며, 그 뒤에 다시 반란을 일으켜 공손술(公孫述)
에게 붙었다가 광무제의 정벌로 인해 서역(西域)으로 도망쳤으며, 그곳에서 죽었다. 이로 인해 외효는 번복(反覆)이 무상(無常)한
대표적인 인물로 칭해진다.《後漢書 卷13 隗囂公孫述列傳》
[주07] 유씨(劉氏) : 중국 남조(南朝)의 송(宋)나라를 말한다. 송은 동진(東晉)의 권신(權臣)이었던 유유(劉裕)가 공제(恭帝)의 선양을
받아 세운 나라로, 현재 강소성(江蘇省)의 남경(南京)인 건강(建康)에 도읍하였으며, 8대 59년 만에 망하였다.
[주08] 유유(蠕蠕) : 북방에 있는 오랑캐 종족으로, 성씨는 욱구려씨(郁久閭氏)이다. 처음에는 탁발씨(拓跋氏)에 속하였다가 사륜(社崙)
이 유연가한(柔然可汗)이 되면서 내외몽고(內外蒙古) 지방을 영유하였다. 그 뒤에 후위(後魏)에게 패하고, 이어 돌궐(突厥)에게
멸망당하였다. 송나라와 제(齊)나라 때에는 ‘예예(芮芮)’라고 칭하였으며, 주(周)나라와 수(隋)나라 때에는 ‘여여(茹茹)’로 칭해졌
다.
[주09] 요(堯) 임금은...벌하였고 : 옛날에 요 임금이 단수포(丹水浦)에서 남만(南蠻)인 유묘씨(有苗氏)를 정벌하였다.
[주10] 맹상군(孟嘗君)은...않았습니다 : 맹상군은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재상인 전문(田文)을 가리킨다. 그는 어진 인재들을 끌어 모아
식객(食客)이 3000명에 달하였는데, 일찍이 조(趙)나라에 들렀을 적에 조나라 사람들이 그를 비웃자, 노하여 동행자와 함께 수백
명을 쳐 죽이고 한 현(縣)을 멸하였다.
《史記 卷75 孟嘗君列傳》
[주11] 소석산북국(小石山北國) : 현재의 위치는 미상이나, 마한(馬韓) 54국 가운데 하나인 소석색국(小石索國)과 관련이 있을 것이란
견해가 있다. 《譯註三國史記 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676쪽》
[주12] 송(宋)나라에서...뛰쳐나갔고 : 신주(申舟)는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대부로, 이름은 문지무외(文之無畏)이다. 초나라 장왕(莊王)
의 명을 받아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송나라를 지나던 중 송나라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장왕은 이 소식을 듣고 곧바로 송나
라를 치러 달려 나갔다.《春秋左傳 宣公14年》
[주13] 왕이 사신을 보내어 : 원문에는 ‘三遣使’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王遣使’로 바로잡았다.
[주14] 가행(假行) : 가(假) 자는 중국 왕조에서 임명한 것이 아님을 뜻한다. 당시에 백제는 가행(假行)의 형식을 빌려 관원을 임명한 다음
에 중국으로부터 추인(追認)을 받은 뒤 정식으로 임명하였다.
[주15] 태시(泰始) : 송나라 명제(明帝)의 연호로, 백제의 개로왕 11년(465)에서 17년(471)까지에 해당된다.
[주16] 험윤(獫狁)이...쳐들어왔습니다 : 험윤은 중국 북방의 오랑캐 가운데 한 종족으로, 여기서는 북위(北魏)를 낮추어서 부르는 말로 쓰
였다. 깊숙이 쳐들어왔다는 것은, 북위가 바다를 건너서 백제를 쳐들어온 것은 아니고 중국에 진출해 있던 백제의 지역에 쳐들어온
것을 말한다.
[주17] 흉리(匈梨) : 역시 북위를 낮추어서 부르는 말이다.
[주18] 과하마(果下馬)...은(銀) : 과하마는 우리나라에서 산출되는 키가 작은 말의 이름으로, 일찍부터 중국에 이름이 알려져서 중요한 조
공품이 되어 왔다. 두발(頭髮)은 미체(美髢)로, 여자들이 머리를 꾸미는 데 쓰는 것이다. 주(紬)는 조하주(朝霞紬)와 어아주(魚牙
紬)이다. 해표피(海豹皮)는 바다표범의 가죽이다.
[주19] 천객(泉客) : 교인(鮫人)으로, 이들은 남해(南海) 바깥의 물속에 사는 종족인데 눈물을 흘리면 진주가 된다고 한다.
[주20] 연(燕)...닭 : 바치는 사람은 소중한 것으로 여기나 받는 사람은 하찮은 것으로 보는 물품을 뜻한다. 옛날에 요동 사람이 기르는 돼지
가 새끼를 낳았는데, 머리가 희었다. 이에 기이하게 여기어 임금에게 바치려고 서울로 가지고 올라갔는데, 하동(河東)에 이르러서
보니 모든 돼지들이 다 희었으므로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되돌아갔다고 한다.
또 초(楚) 땅 사람이 닭을 들고 있는데 길 가던 사람이 무엇이냐고 묻기에 흰 봉황(鳳凰)이라고 속여서 답하자, 길 가던 사람이 이를
비싼 값으로 사서 초왕(楚王)에게 바치려고 하였다. 그런데 도중에 닭이 죽어 버리자 돈을 허비한 것은 아까워하지 않고 닭이 죽은
것만 애석해하였다고 한다. 《後漢書 卷33 朱浮列傳》
[주21] 봉호(蓬壺) : 봉래(蓬萊)와 방호(方壺)로, 모두 중국의 동쪽 바다에 있는 신선이 산다고 하는 산이다.
[주22] 패강...주셨습니다 : 패강은 대동강(大同江)이다. 성덕왕(聖德王) 34년(735)에 신라에서 김사란(金思蘭)을 사은사(謝恩使)로 파
견하면서 패강 이남 지역을 하사해 주기를 요청하였는데, 그 결과 당나라에서는 패강 이남의 지역에 대해 신라의 영유권을 정식으
로 인정하였다. 이러한 조처는 당나라가 신라를 통하여 발해(渤海)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뒤 신라는 선덕왕(宣德王) 3년
(782)에 이곳에 패강진(浿江鎭)을 설치하였다.《譯註三國史記 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277쪽》
[주23] 삼무(三無) : 불교 용어로,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을 가리키는데, 불법(佛法)을 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왕발(王勃)의 석가
불부(釋迦佛賦)에, “은혜는 구유에 젖어 들었고, 행실은 삼무에 흡족하였다.[恩沾九有 行洽三無]” 하였다.
[주24] 구유(九有) : 불교 용어로, 중생들이 윤회하는 삼계구지(三界九地), 즉 욕계(欲界) 1지(地), 색계(色界) 4지, 무색계(無色界) 4지
를 가리킨다.
[주25] 빈공(賓貢) : 제후(諸侯)가 천자에게 천거한 선비라는 뜻으로, 당송(唐宋) 시대에 변방 제국의 출신들을 등용하기 위하여 빈공과
(賓貢科)라는 과거제도를 두었다.
[주26] 급제(及第) : 원문에는 ‘笈第’로 되어 있는데, 《송사(宋史)》 권487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주27] 우이(隅夷) : 해가 뜨는 곳, 즉 동방 바닷가에 있는 족속이란 뜻으로 고려를 가리킨다.
[주28] 헌감(軒鑑) : 헌원경(軒轅鏡)으로, 곧 사람들의 사특함을 조감(照鑑)하는 거울을 말한다.
[주29] 노유(魯儒) : 노(魯) 땅의 유생이란 뜻으로, 학문과 문장에 뛰어난 선비를 가리킨다.
[주30] 계적(桂籍) :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한 사람의 명부이다.
[주31] 운대(芸臺) : 도서(圖書)를 관장하는 기관으로, 비서성(祕書省)의 별칭이다.
[주32] 공목리(孔目吏) : 고려 때 예빈시(禮賓寺)의 하급 관리이다.
[주33] 관고(官告) : 옛날에 관리에게 주던 위임장(委任狀)으로, 요즈음의 신임장(信任狀)과 비슷한 것이다.
[주34] 연조(年條)는 상고할 수가 없다 : 《고려사(高麗史)》 권16 인종 9년 조에, “경술년에 상의 봉어(尙衣奉御) 이중연(李仲衍)을 금나
라에 보내어 정조를 하례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보낸 것인 듯하다.
[주35] 삼양(三陽) : 음력 정월(正月)로, 봄이 시작되는 것을 말한다. 옛날 사람들은 동짓달에 1양이 생기고, 12월에 2양이 생기며 정월
에 3양이 생긴다고 하였다.
[주36] 대일통(大一統) : 천자의 나라가 천하를 통치하는 것을 말한다. 대(大)는 중시(重視), 존중(尊重)의 뜻이고, 일통(一統)은 천하의
제후가 모두 천자에게 통속(統屬)되는 것을 뜻한다.
[주37] 중부(中孚) : 주역(周易) 육십사괘의 하나로, 태하손상(兌下巽上) 괘(卦)인데, 마음이 성실하여 만물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을 상
징한 괘이다.
[주38] 어렵고 어지러운 때 : 광해군(光海君)이 폭정하던 시기를 말한다.
[주39] 천명(天命)을 바꾸어 버리셨습니다 : 원문에는 ‘降出厥命’으로 되어 있는데, 《명사(明史)》 권320에 의거하여 ‘降黜厥命’으로 바
로잡았다.
[주40] 배신(陪臣) : 원문에는 ‘部臣’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명사》 권320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주41] 제복(題覆) : 명나라 시대에 황제에게 올렸던 공문서를 말한다.
[주42] 양곡이 다 떨어져서 : 원문에는 ‘餼牢將竭’로 되어 있는데, 《명사》 권320에 의거하여 ‘餼牽將竭’로 바로잡았다.
[주43] 수미(須彌) : 신미도(身彌島)로, 모문룡이 철산(鐵山)의 가도(椵島)에 주둔하고 있다가 청나라 군대가 쳐들어오자 이곳으로 옮겨
주둔하였다.
[주44] 회간왕(懷簡王)이...졸하였다 : 회간왕은 덕종(德宗)을 가리킨다. 덕종은 세조(世祖)의 아들이며 성종의 아버지인데, 어려서부터
병약하여 20세의 나이로 죽어 즉위하지 못하였으며, 뒤에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주45] 김질(金礩) : 원문에는 ‘金礸’으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았다.
[주46] 발해(渤海)의...국서(國書) : 발해의 국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는 일본의 역사서에 실려 있는 것 자체가 오자(誤字)가 많으며, 여러
종류의 교감본(校勘本) 역시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이에 뜻이 통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여러 종류의 교감본을 참고해 바로잡아 번
역하였다.
[주47] 우러러...없지만 : 원문에는 ‘披膳未期’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披瞻未期’로 바로잡았다.
[주48] 천황의 성스러운 예지(叡智)는 : 원문에는 ‘天皇聖殿’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天皇聖叡’로 바로잡았다.
[주49] 조신광업(朝臣廣業) : 평군조신광업(平群朝臣廣業)을 말하는데, 어떤 데에는 ‘조신광성(朝臣廣城)’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당나
라 개원(開元) 26년(738, 문왕2) 3월에 조신광업 등이 당나라에 조회하러 갔다가 소주(蘇州)로 돌아서 바다를 건너오던 중 표류하
여 곤륜국(崑崙國)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에서 대부분 살해되거나 포로로 잡혔으며, 조신광업 등 8명만 겨우 빠져나와 다시 당나라
로 돌아갔다가 등주(登州)를 경유해서 바다를 건너 5월에 발해의 국경에 도착하였다.
[주50] 16년 : 원문에는 ‘十五年’으로 되어 있는데, 연대가 맞지 않기에 바로잡았다.
[주51] 이에...아룁니다만 : 원문에는 ‘謹狀力奉啓’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謹狀另奉啓’로 바로잡았다.
[주52] 기거(起居)가 만안하시고 : 원문에는 ‘動止萬社’로 되어 있는데, 《발해고(渤海考)》에 의거하여 ‘動止萬福’으로 바로잡았다.
[주53] 관료들이 의로움에 감동하여 : 원문에는 ‘官遼感義’로 되어 있는데, 《발해고》에 의거하여 ‘官僚感義’로 바로잡았다.
[주54] 광간대부(匡諫大夫) : 원문에는 ‘庭諫大夫’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았다.
[주55] 연조는 미상이다 : 이 국서에 나오는 광악(廣岳)이 발해에 사신으로 온 것은 강왕(康王) 3년(797)인데, 이때에 보낸 국서인 듯하
다.
[주56] 저...사람으로 : 원문에는 ‘嵩璘狠以冥德’으로 되어 있는데, 《발해고》에 의거하여 ‘嵩璘猥以冥德’으로 바로잡았다.
[주57] 국토는...되었는데 : 원문에는 ‘土統舊奉’으로 되어 있는데, 《발해고》에 의거하여 ‘土統舊封’으로 바로잡았다.
[주58] 사신의 … 않더라도 : 원문에는 ‘送使雖不過二年’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送使雖不過二廿’으로 바로잡았다.
[주59] 일을 …바랍니다 : 원문에는 ‘事與望則異足表不依’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事與望異則足表不依’로 바로잡았다.
[주60] 보내 주신 : 원문에는 ‘其所奇’로 되어 있는데, 《발해고》에 의거하여 ‘其所寄’로 바로잡았다.
[주61] 하만(賀萬) : 내장하만(內藏賀萬)을 말하며, 내장하무(內藏賀茂)로 표기되기도 한다.
[주62] 이 어찌...통하여서 : 원문에는 ‘豈非彼此齊契’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豈非彼此契齊’로 바로잡았다.
[주63] 특별히...아니겠습니까 : 원문에는 ‘特叶天心者我’로 되어 있는데, 《발해고》에 의거하여 ‘特叶天心者哉’로 바로잡았다.
[주64] 실로...알겠지만 : 원문에는 ‘奉知實輸’로 되어 있는데, 《발해고》에 의거하여 ‘奉知實諭’로 바로잡았다.
[주65] 사신을...앞당겨서 : 원문에는 ‘從其期限’으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促其期限’으로 바로잡았다.
[주66] 선백(船白) : 자야숙녜선백(滋野宿禰船白)을 말하는데, 자야숙녜선대(滋野宿禰船代)로 표기되기도 한다.[주
[주67] 재주가...부족하여 : 원문에는 ‘愗專對’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才慙專對’로 바로잡았다.
[주68] 허성(許筬) : 원문에는 ‘許荿’으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것이기에 바로잡았다.
[주69] 청사피(靑斜皮) : 청서피(靑黍皮)의 잘못인 듯하다. 청서피는 담비 종류의 털가죽이다.
[주70] 해송자(海松子)...1좌(座) : 이 부분이 원문에는 ‘豹皮心兒虎皮邊 海松子六碩 猠皮裏阿多介一座’로 되어 있는데, 뜻이 통하지
않기에 ‘海松子六碩 豹皮心兒虎皮邊猠皮裏阿多介一座’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아다개(阿多介)는 털가죽으로 만든 요이다.
출처>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