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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국기행을 방문하셔서 게시물을 열람(閱覽)하시고
댓글을 달아주시는 님들께 감사드리며 문중에서 낙골당을 지어놓고
돌아오는 7월1일(음력 윤 5월8일)조상묘와 부모형제들의 묘를 파묘
하고 유골을 수습하여 안치하기 위한 회의와 준비를 하기 위해 지방
에 다녀오느라 2일간 게시물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오늘
오후 18시경 귀가하여 지난 주 금요일에 다녀온 곳의 풍경을 게사물로
아래에 계시합니다..
주산지와 주왕산둘레길의 풍경들
2017년6월9일 금요일 인터넷 카페
"아름다운5060" 길동무동호회에서 길동무길로 정한
경상북도청송군 부동면 이전리에 있는 주산지(注山池) 주왕산(周王山) 둘레길
을 걷기 위해 새벽04:40분에 기상하여 여장을 준비하고 05:20분에 집에서 출발
06:40분에 종로3가역에 도착 국일 앞 버스정에서 미즈관광버스에 승차하여
07:00시에 출발 두 곳의 후게소를 거쳐 주산지 입구 주차장에 도착된 시간이
11:00 연일 계속되는 가뭄에 물아 말라 연못 한가운데의 물에 잠겨 운치를
보이던 왕벚나무는 바싹마른 바닥에 뿌리를 드러내어 고시되지 않게 하려고
드러낸 나무마다에 물을 대주려는 비닐호스가 연결되어 있고 이미 죽은
나무는 잘라냈느지 그루터기만 남아 있어서 가뭄이 예상외(豫想外)로
심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답니다.
주산지 윗 전망대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시간이 낮 12가 조금 지난 시각
다시 버스에 승차하여 주왕산 입구에 도착하여 옛날 보부상들이 걸었던 객주
길에 진입하여 제1 용추폭포와 제2 절구폭포, 제3 용연폭포로 가는 길은 거대한
바위가 산정(山頂)을 이루고 기암절벽으로 된 계곡을 이룬 길을 걷는 마음에
거대한 바위의 형상에 압도(壓度)된 느낌이기도 했지만 정작 구경꺼리가 될
폭포 장소엔 긴 가뭄으로 절구폭포는 아예 물이 말라있었고 용추와 용연폭포는
유량(流量)은 작았지만 폭포를 이룬 작은 물 줄기가 아쉬움을 달래
주기도 했습니다.
용연폭포 위에서 계속 이어지는 둘레길을 15.4km만 더 가면 옛 규수방 아씨들이
즐겨 걸을 것 같기도한 외씨버선길이 이아진다는데 폭포를 관람하고는 가던 길을
되돌아 내려와서 16:00경 주차장 근처의 식당에서 늦은 점심 빠른 저녁식사를 겸한
뒷풀이를 마치고 17:30경에 귀경길에 올라 집에 돌아오니22:20분이었습니다.
소설 객주 김주영 작가의
"보부상길"과 "외씨버선길"
깊어가는 가을이면 떠오르는 고장이 몇몇 있다. 특히 단풍철이 되면
폭발적인 인기를 독차지하는 뜨거운 지역이 있는데 이번에 여행할
경북 청송도 그에 속한다. 청송이 그리워질 즈음, 그곳 태생의 김주영
작가의 대하소설 〈객주〉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길 위를
떠돌며 살아냈던 보부상들을 따라 청송으로 향했다. 조선후기 객주와
보부상들의 이야기를 그린 김주영 작가의 대하소설 〈객주〉가 지난
8월, 완결본인 11권을 선보이며 대장정을 마쳤다. 1979년 서울신문에
첫 연재를 시작한지 30여 년 만의 일이다. 이를 기념해 김주영 작가의
고향, 청송으로 떠난 독자와의 여행에 동행했다. 소설을 써 내려가며
켜켜이 쌓인 시간과 역사의 무게에 방황하기도 했던 작가는 자신의
인생과도 같은 소설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으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게다가 시작되는 가을, 청송이라니. 주왕산 단풍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가을이면 유독 빛을 발하는 청송으로 선생을 따라 나섰다.
출발 당일, 가을을 알리는 듯한 비가 내렸다. 안동을 지나 34번 국도에
올라 한참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가야 닿는 청송. 가는 길만 보자면
영락없는 강원도 산골의 오지마을이다. '푸른 소나무'를 뜻하는 '청송
(靑松)'이란 이름이 괜히 붙었을까. 잠시 청송 주변을 살펴보자. 먼저 이
고장을 이름만큼 푸르게 만든 일등공신 낙동정맥이 보인다. 강원도 태백
부터 동해안을 따라 부산 몰운대까지 이어지는 낙동정맥. '가을 청송'을
유명하게 만든 '주왕산'도 낙동정맥에 솟아 있다. 그를 사이에 두고 왼편
으로는 산골마을 청송, 오른편으로는 해안마을 영덕이 있다. 산골 마을
청송을 여행하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그리 멀지 않게 바로 동해바다와도
닿을 수 있다는 뜻이다. '볼(수록)매(력)'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 아니
던가. 전체적으로 산자락 권역에 속해 있지만 또 멀지 않게 바다와도 닿는
동네 청송으로 들어가 보자. 이번 여행은 〈객주〉 김주영 선생과 함께 하는
여행인 만큼 '김주영 객주길'이 빠지지 않는다. 청송에도 제주올레나 지리산
둘레길 같은 둘레길, '외씨버선길'이 있다. 청송뿐 아니라 영양, 봉화, 영월
까지 국내의 대표 청정지역의 옛길 240km를 잇는다. 그중 김주영 작가의
고향인 청송 구간에는 그의 이름을 딴 '김주영 객주길'이 있다. 신기리 느티
나무부터 감곡저수지(왕버들군락지)~수정사~마뭇골&비봉산~김주영생가&
객주테마타운~고현지(야송미술관, 신촌약수터)까지 잇는 총 15.6km의
길이다. 넉넉하게 5~6시간은 필요한 길이다.
승무(僧舞)
조지훈 시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진보시장·진보초등학교에서 시작하는 문학기행
작가의 이름이 붙은 길을 주인공과 함께 걷는 기분이 새롭다. 꼬마
김주영이 뛰어 놀았을 진보초등학교 주변 풍경은 "알아볼 수 없게"
변했지만 운동장은 그대로이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진보시장 자락의
생가터도 자리를 지킨다. 한창 공사중인 객주문학마을에서도 청송
태생 작가의 흔적이 묻어난다.
객주길을 살짝 걸어 달기약수터에서 목을 축인다. 달계약수라고도
부르는 달기약수는철분과 탄산 등이 풍부한 물이다. 상탕·중탕·하탕·
신탕 외에도 약수터가 더 있다. 철분가득한 특유의 알싸한 물맛은 익숙치
않은 이들에게는 넘기기 어려운 맛이다. 하지만 이 약수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으니, 약수터 주변에 자리한 달기약수닭백숙으로 맛보면
된다. 달기약수를 넣고 백숙을 만들면 초록빛이 도는데 특이한
색감과 더불어 담백한 맛이 으뜸이다.
달기약수로 목을 축인 후 청송문화예술회관으로 이동한다. 〈객주〉를 30여 년간
끌어온 노작가의 강연은 잡초처럼 이리저리 휘몰아치는 세상을 기어코 살아낸
소설 속 인물들이 또 다른 목소리처럼 들려온다.
객주, 보부상들처럼 직접 두 발로 길 위에 올라 삶을 유지해가는 이들이 아니
더라도 우리 모두는 각자의 길 위에 발을 딛고 있어서일까. 끝없이 갈라지는
여러 가지 생각들은 주왕산에 닿아서야 사라지기 시작한다. 청송하면 바로
떠오르는 주왕산이 보인다.
주왕산이라는 이름답게 이 산은 '주왕의 전설'을 품고 있다. 주왕은 중국
당나라때 진나라 재건을 두고 반역을 일으켰다 실패했다. 그러다 쫓기고
쫓겨 신라땅까지 들어섰다 신라 마일성 장군에게 잡혀 최후를 맞는다.
뿐만이 아니다. 주왕산 전설의 실체가 신라 왕위쟁탈전에서 밀려나 반란을
일으켰던 김주원 김헌창 김법문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반란 역시
실패했기에 당나라를 끌여 들였다는 설명이 더해진다. 어찌되었건 여러
전설을 품었다는 것은 그만큼 볼거리가 많다는 이야기이리라. 아직 단풍은
보이지 않지만 푸릇한 주왕산도 나쁘지 않다. 위풍당당한 기암 사이로
파고든 폭포들이 남아있는 더위를 식혀준다.
산을 찾으면 꼭 정상을 찾아야 하는 이들도 있지만 주왕산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대전사에서 시작해 제1폭포~제2폭포~제3폭포까지 보고 돌아
오는 코스만으로 충분히 주왕산의 매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을
이면 울긋불긋 물든 단풍이 더해져 찾는 이들이 많다. 게다가 앞서 소개한
코스는 남녀노소 모두 별 무리없이 걸을 수 있어 주왕산을 찾는 이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코스다. 청송의 속살을 마음껏 구경하는 기분이랄까.주왕산과
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언젠가 〈객주〉의 보부상들도 이 풍경을 바라보지 않았
을까. 두 어깨에 가득 짐을 실은 그들은 이 대갓집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길 위에 오른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을까. 누구보다 자신의 인생에
뜨거웠을 객주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주왕산(周王山) 721m
주왕산의 이름에 대한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전설.
<주왕산전설>은 현재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전승되고 있다. 첫 번째 유형은
다음과 같다. 옛날 당(唐)나라 덕종(德宗) 때 주도(周鍍)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주왕’이라 자칭하며 장사 백여 명을 거느리고 장안을 치려다 도리어 패하여
요동을 지나 천신만고 끝에 지금의 주왕산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당나라에서는
신라왕에게 주도를 잡으라고 부탁했다. 신라왕은 마일성(馬一聲)의 다섯 형제를
시켜 그곳에 가서 주왕이라는 자를 죽이라고 명하였으며, 다섯 형제는 우여곡절
끝에 주왕을 잡아 죽였다. 그날 밤 주왕의 서자 대전도군(大典導君)이 주왕의
주검을 찾아 굴을 파서 감추었다. 형제는 그것을 알고 그 굴에 안치된 주왕의
시신을 꺼내어 굴 위에다 쇠갈고리로 주왕과 그 부하를 찍어 올려 세웠다.또
다른 유형은 다음과 같다. 신라의 왕자 김주원(金周元)이 이곳에 와서 공부하였
다고 하여 ‘주방산(周房山)’, 고려의 군사를 막느라 쌓은
성이 ‘주방산성(周房山城)’이라 일컫는다.
<주왕산전설> 중 하나는 당나라 덕종 때 주도란 사람과 관련된 전설이며, 다른
하나는 신라의 왕자 김주원에 관련된 전설이다. 그런데 두 전설 유형은 우리나라
역사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으며, 산 이름도 주방산과
주방산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1587년 2월에 학봉 김성일이 주왕산을 유람하고
남긴 시에서도 전설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서애 유성룡의 경우에도 주왕산의
한자를 ‘주왕(朱王)’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긍익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성재(省齋) 권상익(權相翊)의
『주왕산유기(周王山遊記)』에서도 주왕산의 언급은 있으나, 인물전설에 대한
언급은 없다. 또한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이 1597년에 저술한 『주왕산록
(周王山錄)』에서는 ‘이 산이 주왕이라고 이름 붙은 것은 삼한시대에 왕호를
가지고 있던 자가 이곳에 피난을 와서 산 위에 대궐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 자는
위급한 일이 있으면 폭포수 가운데 바위구멍에 숨어 자신의 모습을 감추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각편 또한 현재 전승되는 전설유형과는 다른 것이다
. 따라서 현재 전승되는 주왕산 유래와 관련된 두 유형의 전설은 이러한 문헌이
생긴 시기보다 훨씬 후대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현재 전승되는 전설 유형 중 주도 관련 각편은 『동아일보』 1926년 10월 31일자
기사에 소개된 내용이고, 김주원 관련 각편은 1966년에 발간된 『경상북도
관광자원집』에 실린 내용이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주왕산에는 유래전설 외에도 주왕산 주변의 자연물에 얽힌 전설이 주왕과
관련하여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기암병풍바위, 학소대, 급수대, 주왕암,
주왕굴, 무장굴, 연화굴, 자하성, 백련암 등에 관한 유래전설은 모두
주왕의 전투 및 가족 관련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진형(金鎭亨)
조선 중기 성리학자의 산수 감상 특징과 그 의미-여헌 장현광의 주왕산
록을 중심으로(이지양, 고전문학연구29, 한국고전문학회, 2006년)
주왕산에 얽힌 전설(국립공원문화73, 한국자연공원협회, 1998년)
경상북도 관광자원집(경상북도, 1966)
청송명물 주왕산의 내력(동아일보, 1926년 10월 31일)
출처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 국립민속박물관)
청송주산지일원 [靑松注山池一圓]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이전리에 있는 저수지와 그 주변 지역.
2013년 3월 21일에 명승 제105호로 지정되었다. 청송군 부동면 소재지인
이전리에서 약 3㎞ 지점에 있는 주산지는 길이 100m, 폭 50m, 둘레 1㎞,
수심 7.8m의 크지 않은 저수지이지만,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제방의 길이는 63m, 높이는 15m, 총 저수량은 10만 5천 톤이다.
주산지는 주산천 지류의 발원지이다. 저수지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별바위
까지 이어지는 주변 지역도 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주왕산국립
공원 내에서도 맑은 물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하다.
주산지는 저수지의 동쪽 부동면 내룡리에 있는 고개인 주산재(주산령
, 注山嶺) 정상부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가둔 저수지라는 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주산이라는 이름은 주아산(注兒山)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아산이란 이름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주산지 동쪽에
있는 해발 745m의 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산의 정상에는 ‘별산
’이라는 표식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산 정상에 별바위가 있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주산지가 다른 저수지에 비해 돋보이는 이유는 수려한 주변의
산줄기와 함께 저수지에 서식하는 왕버들 때문이다. 저수지에 자생하는
능수버들과 왕버들 20여 그루는 울창한 수림과 함께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
한다. 수령이 300년 이상 된 왕버들이 수면으로 뻗어 있는 모습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듯하다.주산지 일원은 주왕산의 정상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
를 따라 만들어진 울창한 숲이 주산지와 그 일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주산지 둘레에는 굴참나무, 굴피나무, 망개나무 등이 자라며, 야생동물로는
솔부엉이(천연기념물 제324호), 원앙(천연기념물 제327호), 수달(천연기념물
제330호), 고라니, 너구리 등이 서식하고 있다.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야생동물들의 먹잇감이 풍부하다.
주산지는 조선 숙종 때인 1720년 8월에 착공되어 1721년 10월에 완공되었다.
수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데, 주위의 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주산저수지에 고이면서 아랫마을인 이전리에서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1983년에 제방 확장공사로 저수지 물을 뺀 이후, 30년 만인 2013년 11월에
제방 보수공사를 위해 주산지의 물을 모두 뺀 적이 있다. 당시 저수지의 물을
빼고도 왕버들의 생육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주산지는 비온 뒤의
청아한 풀잎과 별바위를 지나가는 낮은 구름과 안개, 가을 단풍과 저녁 노을이
어우러져 신비롭고 아름다운 비경을 보여준다. 주왕산 절골의 아름다운 산세와
주산지의 경치가 아름다워 사진작가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곳이었지만,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란 영화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관광객들이 주산지를 찾는 주요 이유는 왕버들
군락이 만들어낸 경치를 감상하기 위함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조사에 따르면
왕버들이 고사하게 될 경우 다시는 주산지를 찾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
이었다. 따라서 왕버들 군락의 생태경관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복원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주왕산국립공원을 방문하는 사람의 40% 가량은 주산지와 그
주변 지역을 탐방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주산지는 주왕산국립공원에서 경제적
가치의 기여도가 매우 높은 곳이다. 주산지의 생태 문화자원을 보전함과 동시에
탐방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주산지 일원은 야생동물
서식지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주산지 입구에는 월성이씨 이진표
(李震杓)의 후손과 조세만(趙世萬)이 세운 이진표의 공덕비가 있다. 이진표는
주산지 건설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한국지명유래집』경상편(국토지리정보원, 2011)
『주왕산국립공원 자연자원조사』(국립공원관리공단, 2008)
「주왕산국립공원 탐방객의 인식에 기초한 주산지 왕버들 군락의
생태경관 복원방향 탐색」
(한상열·주성현, 『한국삼림휴양학회지』14-2, 2010)
문화재청(www.cha.go.kr)
주왕산국립공원(juwang.knps.or.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왕산
2017-06-10 작성자 명사십리
첫댓글 경북 청송에 주산지와 주왕산 멋지며 아름다운 청산 자세한
소개와 자연에 사로잡히는곳 구경 잘 함에 흐뭇합니다.
지기님 덕분에 자연에 심취하는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명랑하며 넉넉한 마음으로 행복한 하루 펼치세요!!!
경북 청송에 주산지와 주왕산 멋지며 아름다운 청산 자세한
소개와 자연에 사로잡히는곳 구경 잘 함에 흐뭇합니다.
지기님 덕분에 자연에 심취하는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명랑하며 넉넉한 마음으로 행복한 하루 펼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