祭生谷李公寅煥文
維歲次辛巳十月甲寅朔八日辛酉。累人完山崔錫鼎謹以酒脯,告于故吏曹參判生谷李公文伯之墓。記昔僑寓草坪也,繄公是依,杖屨相從,其樂無涯。數十年之間,聚散存沒,人事變移。今者妄言獲譴,謫配于玆。溪山依舊,村老提携,而公之遺墓宿草,故榭荒苔。弦琴醑酒,疇與娛嬉。撫念陳迹,惟有雪涕之沾頤。山陽子期之感,不待隣笛而興悲。公廉勁直之操,簡淡孤瘦之姿,諒於何而復得。徒彷彿乎容輝分華。終老之約已矣。參差一杯,敍哀以告。公其知乎不知。尙饗。<끝>
明谷集 卷之十
[역주]
維歲次辛巳十月甲寅朔八日辛酉 / 신사년 10월 갑인삭 8일 신유일에.
累人完山崔錫鼎 / 누인 완산 최석정이
謹以酒脯 / 삼가 술과 포(脯)를 갖추어
告于故吏曹參判生谷李公文伯之墓 / 고 이조참판 생곡 이공 문백의 묘에 고한다.
記昔僑寓草坪也 / 옛날 초평에 객거(客居)하였을 때를 기억하니
繄公是依 / 이에 공에게 의지하여
杖屨相從 / 지팡이와 신발을 함께하며 서로 따랐고
其樂無涯 / 그 즐거움은 끝이 없었다.
數十年之間 / 수십 년 사이에
聚散存沒 / 모이고 흩어지고, 살아 있고 죽음이 교차하니
人事變移 / 인사의 변화가 많았다.
今者妄言獲譴 / 지금은 망언으로 죄를 얻어
謫配于玆 / 여기에 귀양 와 있다.
溪山依舊 / 시냇물과 산은 옛 그대로이나
村老提携 / 마을 노인들만 서로 이끌고 다닐 뿐이고
而公之遺墓宿草 / 공의 남은 묘에는 풀이 무성하며
故榭荒苔 / 옛 정자에는 이끼만 가득하다.
弦琴醑酒 / 거문고 타고 술 마시던 자리에서
疇與娛嬉 / 이제 누구와 함께 즐길 것인가.
撫念陳迹 / 지난 일을 더듬어 생각하니
惟有雪涕之沾頤 / 오직 눈물이 뺨을 적실 뿐이다.
山陽子期之感 / 산양에서 자기가 죽은 자기를 잃은 듯한 슬픔처럼
不待隣笛而興悲 / 이웃의 피리 소리도 기다리지 않고 슬픔이 일어난다.
公廉勁直之操 / 공의 청렴하고 굳센 절개와
簡淡孤瘦之姿 / 간결하고 담담하며 고고한 모습은
諒於何而復得 / 진실로 어디에서 다시 얻겠는가.
徒彷彿乎容輝分華 / 다만 그 모습과 빛을 희미하게 떠올릴 뿐이다.
終老之約已矣 / 함께 늙기로 한 약속도 이미 끝났다.
參差一杯 / 엉성히 차린 한 잔 술로
敍哀以告 / 슬픔을 아뢰노라.
公其知乎不知 / 공이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尙饗 / 삼가 흠향하소서.
[번역문]
생곡 이공(生谷 李公 寅煥)을 제사하는 글.
신사년 10월 8일, 완산 최석정은 삼가 술과 포를 마련하여 고 이조참판 생곡 이공 문백의 묘에 고한다. 예전에 초평에 머물며 객지 생활을 하던 때를 기억하니, 그때 나는 공에게 의지하여 지팡이를 짚고 함께 오가며 지냈고, 그 즐거움은 끝이 없었다. 수십 년 사이에 사람들은 모이고 흩어지고, 생존과 사망이 교차하며 세상일은 크게 변하였다.
지금 나는 망령된 말로 죄를 입어 이곳으로 귀양 와 있다. 산천은 예전과 다름없으나, 마을의 노인들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공의 무덤에는 풀이 무성하고, 옛 정자에는 이끼만 가득하다. 옛날 거문고를 타고 술을 나누며 즐기던 자리에 이제는 함께할 이도 없다. 지난 일을 떠올리니 오직 눈물이 흘러 뺨을 적실 뿐이다.
산양에서 자기가 죽은 자기를 애도하듯 슬픔이 일어나며, 이웃의 피리 소리조차 기다릴 필요 없이 자연히 비통함이 일어난다. 공의 청렴하고 굳건한 절개와 간결하고 고고한 모습은 이제 어디에서도 다시 얻을 수 없다. 그 형상과 빛을 희미하게 떠올릴 뿐이다. 함께 늙기로 했던 약속은 이미 끝났고, 엉성하게 마련한 한 잔 술로 슬픔을 아뢰니, 공이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알 길이 없다. 삼가 흠향하소서.
[부주]
본 작품은『명곡집(明谷集)』권10에 수록된 제문으로, 저자는 최석정(崔錫鼎, 1646–1715)이다. 그는 조선 숙종대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학자로서, 경세론과 예학, 경학뿐 아니라 수리적 사고에까지 관심을 확장한 폭넓은 지성인이었다.
이 제문은 그가 유배지에서 옛 교유 인물인 생곡 이공(生谷李公) 이인환(李寅煥, 자 문백)을 추모하며 지은 글이다. 전체적으로 개인적 회억과 감정이 중심을 이루는 사제문(私祭文)의 성격을 가지며, 공적인 논리보다는 회고적 정서와 유교적 의리 의식이 결합된 형태를 보인다.
특히 “山陽子期之感”은 죽은 자를 잃은 상실감이 외부 자극 없이도 자연히 발생하는 정서의 자발성을 비유한 것으로, 동아시아 애도문에서 자주 사용되는 고사적 장치이다.
또한 본문은 시간의 단절(數十年聚散)과 공간의 지속(溪山依舊)을 대비시키며,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관계의 단절을 강조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끝>
출처> 명문경주이씨종친회카페 ㅣ 글 > 이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