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쓴 이 고 학 영
7월23일, 잔뜩 찌푸린 날씨에 바람 한점없는 고요한 날씨다.
차에 오르니 입추(立錐)의 여지가 없어 7명이나 자리가 부족하다.(53명) 복(伏)중의 삼계탕이 그새 소문이 났는가 보다. 기사님의 눈치가 슬슬 보인다.
군위 휴게소에서 조반(朝飯)을 드시니... 간간이 구름 사이로 광명(光明)한 빛이 새어 나옵니다. 숨바꼭질을 하시는가? 안도(安堵)의 숨을 내쉬며... 제천시(堤川市) 방향으로 내달으니... 짙푸른 녹색의 물결들이 나그네의 마음을 편안케 해 줍니다.
단양(丹陽) 부근에 이르러 단양8경의 하나인 사인암(舍人巖)과 도담삼봉(嶋潭三峰)의 풍경이 도로 연변(沿邊)에 입간판(立看板)으로 뽐내시니... 구담봉(龜潭峰)과 옥순봉(玉筍峰)을 탐승(探勝)한지가 어제련 듯 하구나...!
신단양대교 밑으로는 10여일 전에 내린 집중호우(集中豪雨)로 말미암아 남한강물이 한껏 불어 있다. 영월의 동강과 서강의 물이 합류하여 이곳 단양을 거쳐 충주호에 잠시 머무르다가 여주를 거쳐, 다시 팔당호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이름을 바꿔 천만 서울 시민들의 생명수가 돼고 있습니다.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 단양(丹陽)”이 옛 말이며, 소석대(瀟石臺)의 유수고산(流水高山:이인상의 글씨)이며, 옥순봉에 단구동문(丹邱洞門:퇴계 이황의 글씨)이라는 글씨가 다 물속에 잠겨 있으니... 옛 풍류(風流)도 인심(人心)도 다 충주호(忠州湖)에 침잠(沈潛)되어 있습니다.
남산호(南山號)는 숨가쁘게 달려 영월 서강(西江) 부근에 다다르니... 여기 저기 산천에는 홍수(洪水) 피해의 흔적이 력력하다. 설악산의 한계령이나 오색약수 부근, 평창군의 진부면 일대, 정선의 일부 등 등 이 피해가 막심 하여서... 지금쯤 복구 작업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님들을 생각하면 송구한 마음 금할길이 없구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상념(想念)은 끝 없이 이어 지는데... 연하리(蓮下里) 출발기점에 이르니 10시30분이다.
남산 까페에 올릴 간단한 기념 촬영을 마치고 일렬로 늘어서 오르니 끝이 보이지 않는구나! 연하교를 건너 계곡을 따라 나아가니 개울물은 불어 있어 곳곳이 폭포요, 소(沼)를 이루고 있어... 보기에도 시원하고 그대로가 대자연의 교향악(交響樂) 이로다.
출~출~출~ 촬~촬~촬~ 쏴아~쏴아~ 개울물은 흰 이빨을 드러내고 흐드러지게 웃는다. 어느 누가 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가? 곳곳에 개울물이 넘쳐흐른 흔적들이 보이고, 뿌리채 뽑혀 떠 내려온 나무들도 셀 수 없이 누워 있어... 대자연의 위력 앞에 다시한번 인간의 무력함을 느낌니다.
염소막 부근에 이르러 갈림길이 있는 곳에는 계곡내에서는 가장 넓은 터로 보이는 공지(空地)가 있는데, 오래 전에는 연하분교(蓮下分校)가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그 자취를 찾아 볼 수 없고, 허허로운 콩밭만 일구어져 옛 자취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등산로를 따라 얼마를 더 오르니 묵밭으로 보이는 넓은 지대가 있어 그 옛날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보이고, 돌담을 쌓았던 흔적이 상긔도 남아 있다. 인걸(人傑)은 가고 없으나 그 자취는 아직도 여여(如如) 하여서... 잡초만 무성 합니다.
심어놓은 낙엽송 나무들 사이로 오르니 숲 그늘도 짙게 드리워져 한여름의 더위는 간곳 없고 시원 하기만 합니다. 이틀전이 초복(初伏)이고 오늘이 대서(大暑)라! 옛말에 “대서(大暑) 더위에 염소뿔도 녹는다” 는데... 바람기는 없어 고요하나 숲 그늘과 구름이 이중으로 덮여 있어 산 오르기가 더 없이 좋습니다.
등산로 주위로는 다래넝쿨, 칡넝쿨, 원추리, 산뽕나무, 낙엽송, 두릅나무, 싸리나무, 철쭉,쑥(귀쑥,약쑥), 삽초(백출), 취나물, 둥굴레차나무 등 등 이름모를 기화약초(奇花藥草)들이 끝이 없어라!
특히 둥굴레차나무는 지천으로 널려 있어 신기하고, 어찌나 굵은지 그 해묵은 년륜을 충분히 짐작코도 남겠다. 약쑥을 한 움큼 뜯어 향기를 맡으며 걷노라니 힘드는 줄 도 모르겠다. 한움큼을 더 뜯어 뒤따라 오르시는 구슬님에게도 건넨다. 애향(艾香)은 우리의 영안(靈眼)을 밝게 해 줍니다.
다시 20여분을 더 오르니 응봉산(1013M) 정상이라 느껴지는데, 그 어디에도 정상표석(頂上標石)은 보이지 않는다. 주위는 상수리나무 숲으로 덮여 있고, 사방은 운무(雲霧)로 가리워져 시계(視界)도 흐려 있어 조망(眺望)이 쉽지 않다.
이곳 응봉산(應峰山:1013M)은 백두대간상의 함백산(1572M) 부근에서 서쪽 방향으로 백운산(1426M), 두위봉(1470M), 예미산(989M), 망경대산(1088M)을 연(連)하여 이곳 응봉산을 거쳐 계족산(890M)에서 남한강에 그 맥을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두위지맥(斗圍支脈)이라 하며, 백두의 정기가 오롯이 모여 있어 영월읍내를 비롯하여 연하리와 연상리, 하동면 일원을 품너르게 감싸고 있어 이고장 인걸들의 보금자리가 돼고 있습니다.
또한 응봉산의 북쪽 방향으로는 석항천(石項川)이 우(右)에서 좌(左)로 휘감아 흐르니... 길상(吉祥) 중에 길상수(吉祥水)요! 남쪽방향에 하동면에는 옥동천(玉洞川)이 흘러서 동강과 서강이 합류한 남한강으로 흘러들어 단양, 충주호, 여주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들어 대하(大河)를 이루고 있어라!
함백산 바로 이웃하여 고한읍내에는 오대적멸보궁(五大寂滅寶宮)의 하나인 정암사(淨巖寺)가 있어 신라 자장율사의 자취를 더듬을 수 있으니, 1300여년의 법향이 오늘날까지 도도히 전하여 오고 있으며...
또한 영월 사자산 남쪽 기슭에는 법흥사(法興寺)가 있어 신라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파로 일컬어 지고 있으며, 개창조(開創祖)이신 자장의 발자취와 사자산파를 창시한 철감국사 도윤(798~868)의 발자취도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영월읍 일원에는 단종(1441~1457)임금과 얽혀 있는 지명이 많이 있는데... 영월지맥의 국지산(626M) 아래에는 청령포(淸泠浦)가 있어 단종의 유배지로 알려져 있고, 이 밖에도 관풍루(觀風樓)와 자규루(子規樓), 동강의 어라연(漁羅淵) 등이 있으니...
단종임금은 태어난지 3일만에 어머니 현덕빈 권씨가 산후 끝으로 돌아가시고, 외롭게 자라 12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그의 숙부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니 단종 즉위 3년만에 일어난 일이다.
그 이듬해(1456) 사육신(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이 단종복위를 계획 하였으나 김질의 배반으로 사전 발각되어 처참히 죽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다.
그곳에서 거처 했던 단종은 여름홍수를 피해 영월객사 였던 관풍헌(觀風軒)으로 거처를 옮기고 겨울을 나게 되었으며... 그러던 중 경상도 순흥(順興)에 유배되었던 금성대군이 또 다시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된 일이 생겼다.
이로써 노산군은 다시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었으며, 1457년 10월 마침내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다. 이후 숙종24년(1698) 240여년 만에 단종으로 복위되었으며, 능호(陵號)도 장릉(莊陵)이라 하였다.
죽은뒤 단종의 혼령이 동강의 가장 아름다운 어라연(漁羅淵) 계곡에서 살고자 하였으나,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안된다. 태백산의 신령이 되어야 한다.” 고 간곡히 진언하는 바람에 태백산의 신령이 되어서 모셔져 있으며, 백두대간상의 선달산 바로 옆의 어래산(御來山:1064M) 주위에는 금성대군과 단종의 영정을 모신 신령각(神靈閣)이 있어, 임금님이 오신산으로 이름지어져 있습니다.
해마다 한식날에 제사를 지내는데, 1967년 부터는 단종제로 바뀌어서 향토문화제가 되었다. 당시의 금부도사 왕방연은 사약을 받들어 내리고는 그의 심정을 시로 읊었으니...
천만리 머나먼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이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물도 내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 놋다.
대저 인간의 오고 감이 아름다워야 하는 것인데... 어찌 님께서는 한과 슬픔이 천추(千秋)에 영원 하십니까?
하동면 옥동천 건너 와석리에는 마대산(馬臺山:1050M)이 있어 그 기슭에 방랑시인 김삿갓(1807~1863)이 잠들어 있다. 본명은 병연(炳淵)이요, 호(號)는 난고(蘭皐)라!
난고의 할아버지 김익순은 순조11년(1811) 홍경래의 난때 가산군수를 지낸 정시는 포로가 되어 저항하다가 죽임을 당하였으나, 선천에서 부사를 지내던 김익순은 농민군에 항복하여 겨우 목숨을 구했다가 농민군이 관군에게 쫓길 때에는 농민군의 참모인 김창시의 목을 1천냥에 사서 조정에 바쳐 공(功)을 위장하였다.
그런 이중인격의 행위가 드러나자 김익순은 참형(斬刑)을 당하였고, 비열한 인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아무것도 모르던 병연은 향시에 나가 장원을 하였으나, 결국 자신이 그토록 의기에 차서 비방 하였던 김익순이 자신의 친 할아버지 임을 알게 되었다.
출세를 보장해 줄 수단으로 믿었던 과거시험이 조상을 욕하는 영원한 기념물이 될 줄 이야, 그는 어이없이 천형(天刑)의 죄인이 되고 말았으며, 이때부터 고행에 가까운 방랑을 시작 하였다고 전해오니...
그는 전국을 떠돌아 다니며 당시의 양반사회상을 풍자하고, 응어리진 민중의 한을 시로 남겼으며... 57세에 전라도 화순군 동복에서 죽자,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시신을 거두어 영월땅 태백산 기슭에 묻어 주었던 것을 1982년 영월 향토사학자 박영국의 노력으로 와석리에서 확인 되었다고 한다.
이래 저래 영월(寧越)은 편안하게 넘어가는 땅이 못되는가? 옛 사람들이 넘어 들었던 소나기재 눈물고개는 오늘날에 터널공사로 역사속에서만 남아있고, 아련히 기억에서는 멀어지고 있으니...
하! 애달프다! 두 님의 넋이여...! 하늘이 내린땅! 영월(寧越)에서 편안히 잠드소서!!!
끝없는 상념(想念)에서 다시 몸을 추스르니... 운무(雲霧)에 가려진 백두대간의 모습은 볼 수 없어 아쉽고, 오뉴월의 녹음방초(綠陰芳草)의 향기를 맡으며 994M 고지로 향하노라...
40여분을 더 걸어 능선을 따라 나아가니 어찌나 산세(山勢)가 순(順)하고 편안한지 참으로 보기드문 산행이라!
발밑에는 낙엽이 쌓여 푹신 푹신하고, 능선길은 우거진 잡목숲의 향기가 온 몸에 베어드니... 산행의 즐거움과 감미로움이 배(倍)가되어 환희심이 절로 난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소슬바람을 심호흡 하며 20여분을 명상(冥想)에 잠기니... 물아일여(物我一如)의 세계가 이러한 것인가?
산행길이 너무 순탄하면 방심(放心)하는 것인가? 앞서가던 안병임 회원님이 미끄러져 오른쪽 손목에 미세한 탈골이 있어, 응급처치를 하고 압박붕대로 감아 고정시키니 통증이 덜하다고 하신다.
그만하기 다행이라면서 안도(安堵)의 숨을 내쉰다. 조심 조심 진행하여 소금치(峙) 부근에 이르러 시장끼도 더하여 가져온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우고, 후식으로 반주(飯酒)와 과일을 드시니... 입을 즐겁게 하는 일이 산행에 또 다른 즐거움일세!
응봉산 어디에도 이정표는 없어 계획한 산행보다 훨씬 더 나아가 하산길로 접어들어 궁장동계곡(宮藏洞溪谷)으로 향하는데... 일차 시도로 하산길을 찾지 못하고 되돌아 오르는 금나와님에게 “노인봉(老人峰)의 실수는 두 번 하지 않습니다.” 라는 필자의 말에 “마음을 들켰다” 면서 수줍어 수줍어 웃는다...
뒤따라 오르시는 늘푸른산악회의 전회장님, 고장석님, 최연식 산대장님, 박번님 등이 동시에 파안대소(破顔大笑)를 하신다. 노인봉에서의 추억담은 영원히 잊지못 할 것이야!
30여분을 내려가니 등산로는 없어지고 산림도(山林道)로 내려 가자니... 지루하고 딱딱하다. 궁장동계곡미(美)는 아름답고 그윽하여 인적은 드물고 산세가 높아 협곡이나 다름없다. 여러 곳에서 수해의 현장이 보이며 뿌리채 뽑혀 떠 내려온 나무들의 잔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구나!
1시간여를 더 걸어 연상(蓮上) 1교(橋)에 도착하니 시계는 16시를 가르킨다. 연하리(蓮下里)에서 연상리(蓮上里) 까지는 약 3KM 정도 되며, 아직 하산치 못한 회원님들이 30여명이나 되니...
다함께 모여 버스로 되돌아감(출발기점)이 좋겠다고 여겨져서 기다리자는 구호를 전한다. 잠시 주위를 살피니 도로 연변(沿邊)의 안내판에 응봉산은 “산나물 보호구역” 으로 지정돼 있어, 산나물 채취를 금(禁)하고 있슴을 알린다.
유달리 산나물과 약초가 많아 이상하다고 느꼈었는데... 이제서야 그 이유를 알겠도다. 땅심이 좋아 숲이 무성하고, 산세가 순하디 순하고 편하디 편안해서... 지덕(地德)이 뛰어나 약초재배나 잣나무를 육림(肉林) 하는 것이 적당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산행에 지친 몸들을 맑은 물에 씻어 피로를 풀면서 차례 차례로 도착 하신다. 뒤늦게 안병임 회원님이 도착하셔 사혈침(瀉血針)으로 간단한 2차 응급처치를 해드리니, 한결 낫다고 하십니다.
괜찮으셔야 될텐데... 기다림이 무료(無聊) 하신가? 금민자 회원님이 꽃시계(크로바)를 만들어 필자의 손목에 달아 주신다. 순수한 님의 정성에 무겁던 내 마음이 가벼워 집니다. 아직도 칠 팔세 소녀의 마음 이로고...!
다 모이시니 35명(A코스)이다. 출발기점에 도착하니 18명(B코스)이 기다리시며, 하산주(下山酒)와 복중(伏中)의 특식 삼계탕을 끓여 놓으셨다. 수고하신 많은 님들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그동안 환후(患候)로 말미암아 여러달을 산행에 참석하지 못했던 정예림님도 오늘은 밝은 모습으로 부부함께 동참 하여 기쁘고, 이해수 감사님은 귀엣말로 다음달에는 두분이 새로 더 가입 할 것이라고 하시니... 오늘은 기쁜일만 있는 날인가?
2열 횡대(橫隊)로 나란히 앉아 목마른 갈증을 한잔의 술로 축이며, 하루의 여독(旅毒)을 풀어 봅니다.
산 높고 물 깊은 영월(寧越)에 하늘이 내려 주옵신 땅에서...
응봉산의 가 없는 지덕(地德)에 근심 걱정을 다 놓아 버리고...
10여리(十餘里)의 장천(長川) 궁장동계곡(宮藏洞溪谷)에서...
세속(世俗)에 찌든 번뇌(煩惱)의 때를 씻어 봄이 어떨까요...
뚝딱님이... 회장님! 꽃시계는요 ???
앗~ 뿔~ 사~ !!! 들 켰 구 나 !!!
단기4339년(서기2006년) 7월 23일
영월(寧越) 응봉산(應峰山:1013M)을 가다.
첫댓글 회장님의 산행후기를 읽으며 응봉산의 산행을 다시한번 더 느끼게 됩니다....꽃시계는 어찌하셨나이까?~~~^^*
회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잘~읽고 갑니다.
구슬님, 금나와님 ! 변변찮은 후기(後記)를 읽으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늘 감사를 드리며... 꽃시계는요 ? 일체방하착(一切放下着) 하시옵기를 바라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