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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사랑 오솔길 원문보기 글쓴이: 광나루
익원공 김사형 묘역(경기 문화재자료 107호) written by www.touralone.com |
가면 갈 수록 더 멉니다. 이제 한음 선생의 묘역에서 김사형 선생의 묘역까지는 장장 3Km를 또 걸어가야 합니다. 아무 생각없이 걸어가면 됩니다. |
▲ 김사형 선생의 신도비 |
▲ 마을의 다른 집안의 신도비 및 재실 |
30분 이상을 걷다보면 도로 우측에 비각이 하나 보입니다. 이 신도비가 김사형 선생의 신도비입니다. 같은 방향의 마을 입구에도 신도비 3기가 나란히 서 있는데, 좌측 신도비는 조금 오래 되어 보이고, 우측 2기의 신도비는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신도비군 뒷편으로는 재실 같아 보여서 안을 들여다 보니 진추당(愼追堂)이라고 현판이 걸린 건물이 한 채 있으나 김사형 선생과 관련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
▲ 사당 입구 전경 | ▲ 낙포제 | ▲ 묘역으로 오르는 길목 전경 |
마을 안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 보니 사당이 하나 보여서 사당 바로 좌측에 있는 집에서 물어보니 이 사당이 김사형 선생의 사당이고, 이 곳에 사시는 분이 김사형 선생의 종손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당 안에는 낙포제(洛圃齊)라는 현판이 걸린 건물이 한 채 있습니다. 사당 입구 안내석에는 "1903년에 건립한 옛재실이 퇴락하여 종친들의 헌정금으로 다시 세워 익원공의 호인 낙포를 따서 낙포제라 이름하였다." |
▲ 김사형 선생 묘역 전경 |
사당 우측으로 난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숲이 상당히 울창합니다. 중간에 산길 좌측에 묘역을 한 기 만나는데 그냥 지나치면 됩니다. 조금 더 가다 보면 좌측으로 꺽여 올라가는 곳이 있습니다. 산 길을 따라서 오르면 위 사진의 묘지 뒷편이 보입니다. 이 묘가 김사형 선생의 묘입니다. 김사형 선생의 묘는 조선 초기의 묘역으로 봉분이 일반 묘역과는 많이 다릅니다. 봉분의 호석은 3단의 돌로 6각으로 둘렀습니다. 앞에는 2단의 장대석이 있으며, 봉분 우측에는 묘비가, 정면에는 상석과 장명들이 그리고 좌우로는 문인석이 서 있습니다. |
▲ 김사형 선생 묘역의 석물들 |
묘역 좌측 하단에는 익원공 묘역 정화 1993년이라고 쓰인 표지석이 있는데, 뒤에 마을로 내려와서 들은 이야기이지만 김사형 선생의 묘역이 완전히 파제껴질 정도로 도굴을 심하게 당한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 이후에 묘역을 정화하고 세운 표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김사형 선생의 묘역 50여미터 전방에도 선생의 봉분과 비슷한 봉분이 있는데, 이 묘역도 조선 초기의 봉분으로 선생의 바로 밑의 후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바로 앞에도 쌍분이 있으나 아주 뒤의 후손의 묘역 같습니다. 묘역 관리는 안동 김씨 익원공파 종중에서 하고 있습니다. |
▲ 김사형 선생의 묘역 전방 멀리서 바라 본 전경 |
▲ 아랫 묘역에서 바라 본 김사형 선생의 묘역 |
계획한 양평군 양서면에 있는 4기의 묘지 답사를 마치고 마을 입구로 돌아 나오니 초여름의 더운 날씨로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어서 음식점(주막 같음) 마당의 수도에서 시원하게 머리도 감고 땀을 식리고 있는데 그 곳에서 술을 드시고 있는 동네 주민들께서 막걸리 한 잔 하라고 해서 동네분들이 직접 잡아서 끓인 매운탕에 막걸리 한 잔 얻어 마시며, 김사형 선생 묘역의 도굴 사건과 아래 재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시골에는 아직도 외지 나그네에 대한 인심이 있고, 이런 맛에 나홀로 다니는 것 같습니다. 한 잔 더 하라는 것을 사양하고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 두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네요. 승용차가 지나가면 손을 들어서 터미널까지 태워 달라고 할까하다가, 히치 하이크 할 용기가 없기도 하지만, 지금 세태가 호의를 이용하는 험악한 세상이라 저라도 선뜻 태워주게 되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포기하고 도로를 따라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에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가다가 뒤로 후진을 하면서 뭐라해서 길을 물어 보는 줄 알았더니, 운전자는 외지 사람 같은데, 걸어 가기는 너무 먼 거리라고 타라고 하시더군요. 가면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했습니다. 운전자는 당시 한 달 전인가 퇴역하신 군인으로 누이 동생이 암에 걸려서 요양하는 곳이 이 근처인데, 병문안 갔다가 오는 길이라고 하시며, 군 시절 생각이 나서 태우셨다고 하시더군요. 생판 모르는 분이지만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동생분이 지금쯤은 쾌유되었기를 기원합니다. |
▲ 김사형 선생 묘역 아래쪽에 있는 묘역 전경 |
익원공 김사형(1333∼1407)의 묘역이다. 김사형은 문신으로,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고,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우는데
공을 세운 인물이다. 태조 5년(1397)에는 대마도를 토벌하기도 하였다. 김사형의 묘는 부인 죽산 박씨와의 합장묘이다. 봉분은 길고 납작한 화강암으로 3단의 둘레돌을 둘렀다. 묘역에는 묘표, 상석, 향로석, 장명등 각 1기, 문인석 1쌍이 있고 묘역에서 약간 떨어진 마을 입구에 김사형의 신도비가 있다. 묘표는 원래의 것이 없어져서 다시 세운 것이다. 사모지붕을 한 장명등은 앞뒤에 창이 넓게 뚫려 있고 양옆은 막혀 있어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묘의 양옆에 서 있는 문인석 역시 조선 전기 문인석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수염이 표현된 것이 주목된다. 김사형은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조선 초기에 중요한 활동을 한 역사적 인물이다. 그의 묘역은 봉분에 둘러진 3단의 둘레돌이나 창이 넓은 장명등, 홀을 들고 있는 문인석 등 조선 전기의 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
양평군 양서면 주변 안내도 |
▲ 안내도 맨 우측 산자락 부분에 김사형 선생의 묘역이 있습니다. |
김사형선생 묘역 위치도 |
소재지 : 경기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 산 49 빨간 깃발이 있는 곳에 김사형 선생의 묘역이 있습니다. 한음 선생의 묘역에서 김사형 선생의 묘역까지의 거리는 3Km로 많이 멉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