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과 다이어트는 현대인의 영원한 고민입니다. 맛 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도 적정 체중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뿌린대로 거두고, 먹은대로 찌는 법입니다. 다이어트를 위해선 적절한 운동으로 살이 안찌는 체질로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식사량을 줄여야 합니다.
탄수화물만 제한하고 고기 등은 배불리 먹는 ‘황제 다이어트’는 살이 빠지긴 하지만 영양소의 균형이 파괴되고,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다시 살이 찌기 때문에 요즘엔 시들한 편입니다.(물론 미국에선 건강보조식품을 함께 섭취함으로써 이같은 단점을 보완하려는 속(續) 황제다이어트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도무지 식사량을 줄이지 못하겠다는 분들을 위해 오늘은 또 다른 다이어트법을 소개할 까 합니다. 얼마전에 조선일보 헬스 섹션을 통해 소개한 ‘저 인슐린 다이어트’입니다.
기사가 나간 뒤 몇몇 의사 선생님이 ‘배불리 먹고 살을 뺄 수는 없다’는 요지의 항의를 해 왔습니다. 물론 적절한 지적입니다. 아무리 저 인슐린 식품이라도 과식하면 살이 빠질리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기사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배불리 먹으라는 게 아니라 굶지 않고도 식단만 바꾸면 어느 정도 다이어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먹는 것인지, 저 인슐린 다이어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 다이어트는 체내에서 가급적 인슐린이 적게, 서서히 분비되도록 식사습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탄수화물 중심의 식사를 하면 고혈당인슐린 분비 촉진비만의 과정이 진행되므로 가급적 탄수화물을 적게 먹고, 탄수화물을 먹더라도 당 수치가 낮은 탄수화물을 골라 먹는 게 이 다이어트법의 핵심입니다.
저 인슐린 다이어트를 위해선 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인슐린의 역할을 이해해야 합니다. 밥이나 빵 등 탄수화물은 소화·흡수 과정을 거쳐 포도당(글루코스)으로 바뀌며, 따라서 식사 직후엔 혈액 속 포도당의 양, 즉 혈당 수치가 높아집니다.
혈당이 높아지면 이를 본래 상태로 되돌려 놓기 위해 자동적으로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는데, 인슐린은 일차적으로 혈당을 인체 장기나 근육 등의 세포에 보내 에너지원으로 사용케 하며, 그래도 남은 포도당은 지방의 형태로 바꿔 저장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혈당이 높아지는 속도입니다.
만약 혈당이 서서히 증가하면 인슐린 분비량도 서서히 증가하고, 이 때문에 장기나 근육 등에 포도당을 보내는 속도도 늦어집니다. 이 경우, 인체 장기나 근육세포는 느린 속도로 공급되는 포도당을 모두 자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게 되므로 포도당이 지방의 형태로 축적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혈당수치가 급격히 높아지면 여기에 대항하기 위해 인슐린이 대량으로 분비돼, 혈액 속 포도당을 빠른 속도로 근육이나 장기 세포에 보냅니다. 결국 포도당 공급초과에 직면한 근육이나 장기 세포가 ‘백기’를 들면, 인슐린은 잉여 포도당을 재빨리 지방으로 전환해 지방세포에 축적시킴으로써 ‘고혈당 위기’를 해결합니다. 살이 찐다는 얘깁니다.
저 인슐린 다이어트는 인슐린 분비를 억제한다는 점에서 황제 다이어트와 유사하지만, 밥이나 빵 국수 등 탄수화물도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어떤 종류의 영양소든 당지수(糖指數-GI-Glycemic Index)가 낮은 음식만 먹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당지수란 음식이 체내에서 당으로 바뀌는 정도를 수치화한 것으로, 포도당의 GI를 100이라 할 때의 상대적인 값입니다.
당 지수는 대체로 탄수화물이 높고, 지방이 낮기 때문에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 사람은 따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저 인슐린 다이어트를 위해선 당 지수가 60 이하인 음식만 먹어야 하는데, 우리가 먹는 흰 쌀밥(84), 우동(90), 흰 식빵(91)은 모두 엄청나게 수치가 높으므로 처음부터 문제에 봉착합니다.
그러나 현미밥(56) 등 잡곡밥이나 통밀빵(50), 호밀빵(55), 메밀국수(54) 등으로 메뉴를 변경하면 이 문제는 해결됩니다. 현미, 호밀, 메밀 등은 혈당과 콜레스테롤 등을 억제함으로써 당뇨나 고지혈증 등의 생활습관병(성인병)을 예방하므로 다이어트가 목적이 아닌 분들도 현미밥 등으로 식단을 바꿀 것을 적극 권장합니다.
저희 집도 몇달 전부터 현미 대 백미를 50대 50으로 섞어 먹다 요즘은 현미 70대 백미 30의 비율로 먹고 있습니다. 아주 고소하고 맛이 좋아 저희집 꼬마도 군 소리 없이 먹고 있습니다.
곡류만 조심하면 다른 음식은 선택이 비교적 수월합니다. 대부분의 육류와 어패류는 GI가 40~50 정도이므로 마음껏 먹어도 됩니다. 야채도 GI가 낮은 편이지만 감자(90)와 당근(80)은 엄청나게 높으므로 삼가하는 게 좋습니다. 옥수수(75), 호박(65), 토란(64) 등도 비교적 GI가 높은 편입니다.
과일 중에선 딸기잼(82), 파인애플(65), 황도통조림(63)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과(36), 배(32), 귤(33), 오렌지(31), 딸기(29), 감(37), 복숭아(41) 등 대부분의 과일은 GI가 낮으므로 많이 먹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설탕(109)과 맥아당(105), 초콜릿(91) 등은 저 인슐린 쇼크에 빠진 당뇨환자의 응급약으로 쓰일 만큼 즉각적으로 인슐린을 높히므로 절대 먹지 말아야 합니다. 유제품 중에선 아이스크림(65)만 조심하면 됩니다. 금방 살이 찔 것 같은 생크림(39), 버터(30), 치즈(31)는 생각보다 훨씬 GI가 낮습니다. 맥주(34), 정종(35), 위스키(30), 와인(32) 등 대부분의 술도 GI가 낮은 편이라 저인슐린 다이어트에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미국과 일본 등지에선 이같은 저 인슐린 다이어트가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서도 제가 기사를 쓰고 난 뒤 저 인슐린다이어트 안내서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고 출판사에서 감사 전화가 왔습니다. 아마 국내서도 조금씩 번져나가는 것 같습니다. 저 인슐린 다이어트 예찬론자들은 각종 다이어트에 실패한 사람, 식욕을 억제하기 힘든 사람, 매일 밤 회식을 해야 하는 사람, 운동을 할 수 없는 사람도 고생하지 않고, 손 쉽게 살을 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슐린 저항성 다이어트:인체의 지방제조기를 꺼라’는 책을 출간한 미국의 셰릴 하트 박사는 그의 저서 서문을 통해 ‘음식을 먹을 때마다 칼로리를 계산하는 따위는 잊어 버리고, 마음 껏 먹으라. 그래도 살이 빠지고 몸은 더욱 건강해 진다’고 주장합니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물론 없습니다.
그러나 똑똑하게 먹으면 굶지 않고도 체중을 관리할 수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당장 흰쌀밥을 현미밥으로 바꾸고, 가급적 당 지수가 낮은 음식으로 식단을 바꾸어 보는 게 어떻습니까. 당 지수가 낮은 음식을 먹으면 생활습관병도 예방할 수 있으므로 일거다득(一擧多得)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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