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천주교 춘천교구장 사순절 담화문
사랑으로 희망을 일구는 우리의 삶
사랑하는 춘천교구의 평신도, 수도자 그리고 형제 사제 여러분!
춘천주교의 직무를 시작하고 처음 공식적인 인사를 드립니다. 부족하고 부당한 교회의 종인 저의 주교 서품과 착좌식에 많은 기도와 격려로 함께하여 주시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고마운 많은 분에게 일일이 인사를 드리지 못해 송구스러운 마음도 함께 전합니다.
지난 2020년은 코로나-19 감염병의 창궐로 모두에게 어렵고 힘든 한 해였습니다. 2021년 새해를 맞은 지금까지도 감염병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안정한 마음으로 사순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전 인류에게 닥친 감염병의 고통 앞에서 우리 모두 간절한 염원을 담아 기도하는 한 해였을 것입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인류에게 직면한 이 초유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음에도 아직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려운 시기가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두 손 모았던 지난 시간 우리가 겪은 삶의 변화는 무엇이고 그 기도의 방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겸허한 마음으로 성찰해 보아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2코린 8,9)
위 말씀은 바오로 사도께서 곤궁에 빠진 예루살렘 신자들을 아낌없이 도와줄 것을 독려하고자, 코린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쓰신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전하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복음적으로 가난하게 살라는 이 초대는 오늘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웃에 대한 자선과 나눔의 초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힘과 물질을 움켜쥔 부유한 모습이 아니라, 약하고 가난한 모습으로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렇게 우리 가운데 오시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곁으로 다가와 넘치는 사랑을 주셨습니다.
“인간의 손으로 일하시고 인간의 정신으로 생각하시고 인간의 의지로 행동하시고 인간의 마음으로 사랑하셨다.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어 참으로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셨으며, 죄 말고는 모든 것에서 우리와 같아지셨다.” (사목 헌장 22항)
인간이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고 부유하게 하시고자 택하신 이 가난의 의미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길가에 초주검으로 버려진 사람에게 기꺼이 이웃이 되어준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이웃이 되어 끝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느님 나라의 백성들은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세상 안에서 물질·도덕·영적 빈곤 속에 살아가는 모든 이웃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며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가난하게 되시어 그 가난으로 우리를 부유하게 하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 사랑으로 희망을 일구는 우리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순 시기는 희생과 자선을 실천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만의 굴레를 벗어나 이웃과 시간·물질·공간을 나누어야 합니다. 이웃의 고통·아픔·절망을 함께 나누고 그들이 기댈 수 있도록 나의 어깨를 내어주어,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더불어 하나 되어 평화를 이루는 일입니다. 또한 가난을 실천하며 어려운 이웃과 연대하기 위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가난의 실천은 아픔과 어려움이 동반되기도 할 테니까요. 이러한 깊은 사유와 참회 없이 행해지는 희생과 자선은 형식적인 일회성 선심으로 그칠 뿐 참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런 감내가 없는 희생과 자선은 공허하고 신뢰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춘천주교가 되고 나서 처음 교구민들과 함께 맞이하는 이번 사순 시기에 당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과 공동체가 걸어가야 할 회개와 자선의 길에 관하여 함께 묵상하고 몇 가지 약속을 정하여 실천하는 것입니다. 묵상과 실천의 세 가지 핵심 주제는 기도·자선·희생입니다. 이번 사순절이 말로만 그치는 외침이 아니라 주제에 부합하는 생각과 기도와 실천이 함께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약속과 실천을 통해 복된 사순 시기와 영광스런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순 시기에 실천할 우리의 약속
주 일 : 주님을 찬미하고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을 기억함으로써 거룩하게 지냅시다.
월요일 : 신앙인의 특징은 기쁘게 살아가고 그 기쁨을 전하는 것입니다.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환한 웃음과 기쁨을 선물합시다.
화요일 : 이 세상의 평화를 구하며 우리 민족의 평화와 일치를 위해 기도합시다. 평화의 근원은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 시작은 ‘경청’이므로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입시다.
수요일 :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올해 ‘세계 평화의 날’에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문화는 ‘돌봄의 문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늘 돌아보고 그들의 고통·슬픔을 함께 나누며 그들을 돌보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합시다.
목요일 : 세상을 떠난 이들, 특히 코로나-19로 하느님 품에 안긴 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도 하느님 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묵상하고 실천사항을 정하고 행하도록 합시다.
금요일 : 전통적으로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이날은 금육을 하며 극기하는 날입니다.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을 절제하고 가난을 실천합시다.
토요일 : 신앙의 기본은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세상 속에 나를 존재하게 해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시다. 특별히 이날에는 인류 공동의 집인 지구를 살리기 위해 환경과 생태 보존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실천합시다.
희망을 일구며 은총의 시기를 기쁘게 지내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축복을 빌며....
2021년 사순절을 맞이하며
춘천주교 김주영 시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