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시며
하나님의 이름은 그 자체로도 이미 거룩하시다. 인간 자기가 말로서 높여 드린다고 거룩해지거나 낮추어지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의 진의는 나의 삶의 어떠함을 통해 높여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름이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의 이름은 단지 다른 이와 구별하기 위해서 붙여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존재가 되라는 부모의 소원성이 담겨져 있게 마련이다. 하나님도 작명의 대가이시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시몬을 베드로로, 요한, 예수, 바울...등등의 개명이나 작명 속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이름에 아주 예민하신 하나님이시고보면 분명히 뜻을 내포하고 계시리라 짐작이 간다. 이미 다른 글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여호와’란 히브리어를 파자하여 보면 ‘실존을 소망하다’이다. 여기에 우리 아버지의 위대함이 있다. 예수는 여호와의 실체이시다. 영이시며 말씀이셨던 분이 예수라는 사람의 모습으로 현현하셔서 인생의 고통의 삶을 다 체휼하셨기에 구원자가 되시며, 심판주도 되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말은 전능자(엘)라는 말인데 이 세상에는 수많은 하나님이 있다. 인간 각자가 의지하는 신들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하나님은 실존이 없다. 모두가 다 허상일 뿐이지만, 백번 양보해서 천사와 같은 영으로 존재한다한들 사람으로 살아보지 못한 자들이 어떻게 인생의 애환을 이해하여 구원의 손길을 뻗칠 수 있겠으며, 또한 심판은 무슨 근거로 집행할 것인가? 그 누구도 공감하지도 굴복하지도 않을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곳이 창2:4절이다. 그런데 우주 만물이 창조되는 창1장의 첫째 날부터 일곱 째 날까지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도 이상하지 않는가? 우리는 이 부분을 조심스럽게 유의해야 하며, 이런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구원을 이루는 도(길)를 발견하는 일이다.
창1장에서는 엘로힘(하나님들: 전능자들)이 계속 등장한다.
하나님들(복수)이 가라사대(단수)...
하나님들(복수)이 ~라 칭하시니(단수)...
하나님들(복수)이 만드사(단수)...
...
...
이렇게 엘로힘이 주어로 번역되었지만, 원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동사는 3인칭 단수인데 주어가 하나님들이라는 3인칭 복수가 될 수 없다. 히브리어의 특징은 동사 속에 주어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 1장에서의 주어는 ‘하나님들’이 아니라 ‘그’라는 3칭 단수가 맞다는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들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는 문법상 연계형으로서 정확히 해석하자면 ‘전능자(엘)이 되게 하는 일환(~로힘:복수)으로’가 맞다.
이러한 전제를 하고 1절을 재해석하면,
「태초에 (그가) ‘전능자가 되게 하는 일환으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다. 이와 같은 전제로 창1장의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전능자가 되게 하는 일환으로’로 치환하여 읽어보면 창1장이 영원전의 우리 아버지가 우리를 창조하신 의도를 파악할 수가 있다. 이렇게 구원 받기로 예정된(예수 안에서) 자를 복음을 통해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의 경작을 통해 당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들어 가시기 위한 전체적 밑그림이 창1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체적 창조 작업의 시작이 창2:4부터이니, 이때부터 아담인 나를 실존의 존재인 전능자(혹은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어 가시는 사역의 목적을 드러내기 위해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실존의 소망)라는 단어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누구이신가? 자식인 우리 각자를 당신의 속성인 선, 사랑, 의, 거룩, 겸손, 오래참음, 온유, 절제, 자비, 양선, 충성, 지혜, 명철...등의 신의 성품을 가진 실존으로 만드시는 분이시다. 이 분을 이름하여 여호와라 한다.
유대인들은 특별한 종교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신성시했다. 구약성경을 보다가 여호와라는 단어만 나오면 옷매무새를 새로이 하였는가하면, 율법사나 서기관들은 여호와라는 말을 온전히 옮겨 적지 못하고 자음은 덮어두고 모음만 기록하거나 아도나이(주)라는 다른 단어로 대체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일견 깊은 신앙심 같으나 바른 신앙을 왜곡시키는 외식일 뿐이다.
<암5: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이 말이 액면대로라면 주님은 오셔서 왜 여호와를 부르시거나, 가르치시지 않으셨는가? 신약에서도 살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찾고 불러야하지 않는가 말이다. 여호와를 찾으라는 말은 실존이 되기 위한 신앙이 되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 종교적인 열심으로 충만한 벧엘(성전)은 멸하신다는 것이다.
<롬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여기서도 부른다는 말은 ‘에피 칼레오마이’라는 합성어인데 ‘열매를 맺기 위한’ 뜻의 에피가 사용되었으니, 예수라는 실존이 되기 위해 호소하라는(매달리는) 의미이다. 주문을 외우듯이 온 종일 예수를 불러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인가? 구원의 도를 실추시키는 망령된 행실이요, 악행을 일삼는 일이다.
예수라는 단어도 ‘구원인 실존’이라는 말이다. 예수는 여호수아의 헬라적 발음이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라는 말이니, ‘실존의 소망인 구원’이라고 풀어 쓸 수가 있고, 이를 더 줄이면, 실존인 구원이다. 믿는자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빼 닮은 자 들이 되어야 온전한 구원을 이루는 것이라는 말이다. 육신을 입고 내면에는 하나님의 신성을 가지신 분인 예수는 인자이시다.
인자- 사람의 아들, 사람이시면서 하나님...
에스겔은 인자였다. 베드로도, 요한도, 마태도, 스데반도, 바울도,... 디모데도 인자다. 맏아들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들은 주님의 형제요 동생들이다. 이들을 인자라 한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남편을 다섯 번 갈아치워야 한다. 세상에서도 유치원을 거쳐 초중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전문분야인 석, 박사를 전공하려면 대학원을 가야하듯 영적인 장성한 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섯 번째 남편인 예수를 만나야한다. 누구든지 구원을 위해 예수를 만나기를 소원하지만 절차와 단계가 있다.
긴 세월을 율법의 멍에를 지고 몽학선생들 밑에서 회초리로 맞아가며, 율례와 규례를 익히고 배우는 것이 먼저다. 도(길)를 배우기 전에 성전 마당을 쓸고 제단에 쓸 땔감을 준비 하는 것부터가 도의 시작이기 때문이리라. 낮아지고 겸손해진 성품이 되고서야 신의 성품을 받을 수 있다. 모두가 실존의 문제이다. 예수는 때가 찬 여자에게서 나시고, 때가 찬 율법에서 태어나신다. 사라에게서의 이삭이 그러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 것은 모두에게의 숙제다. 여자가 해산함으로 구원을 이루기 때문이다.
변화산에서 몽학선생의 대명사인 모세와 엘리야(세례요한)의 말을 듣지 말고 오직 주님의 말만 들으라 했다. 무엇을 말하는가? 모세는 여호와의 이름인 하나님의 형상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고 등만 보았다(출33:17~23). 엘리야의 영을 받은 세례요한은 가장 큰 자이나,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다. 몽학선생들의 가르침은 생명수가 아니기에 먹고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주님을 만나야만 그간의 물동이를 버려두고 기쁨의 환성을 지를 수가 있다.
여기에서 벗어난 모든 가르침은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다. 종교적이며 율법적인 교훈의 누룩이 가미된 떡이나, 애굽의 하수가 한 방울이라도 섞여 있다면 실존이 만들어지기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영원전 우리 아버지의 의도가 왜곡되면 악이 된다. 아무리 화려한 경배와 섬김이라도 하나님의 의를 모르는 사람의 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짓이다.
<롬2:21~24>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이 시대도 이러한 하나님의 이름의 뜻을 모르면서 목회하는 자들은, 인용한 본문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둑질이요, 간음이요, 우상숭배를 가르쳐서, 신사물건으로 비유된 성도들의 영혼들을 도적질하는 만고의 대 역적죄를 짓는 셈이다. 이같이 땅의 아비인 마귀의 영을 받아 종교적인 부흥과 권세의 보좌에 앉아 능력자로 행세하는 자를 네피림 혹은 아낙 자손이라 한다. 이들은 혈통과 육정으로 난 처음의 이름(인격)을 그대로 가지고 종말을 맞게 된다. 영혼을 팔아 겉옷을 산 것에 대한 대가이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자녀들은 겉옷(종교적 직위, 세상 성공)을 팔아 검(진리)를 사는 자들로서 마침내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빼어 닮아, 여호와의 이름(인격)에 다다르게 된다. 이들은 감추인 만나를 먹고 흰돌에 새긴 새이름을 받은 자들로서,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이 인 새겨진 자들이다. 이렇게 이기는 자의 반열에 들어가 새 예루살렘성이 되고, 전능자의 아들들이 된 자들만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긴 자들의 주역들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아멘